퇴계의 [도산구곡가]
퇴계의 「한거독무이지차구곡도가운십수」
도산구곡(제8곡 고산정)
| 안동하면 양반 선비문화가 떠오르고 도산과 하회 두곳이 부각된다. 그중 도산구곡에 대해 알아보자 도산면은 사람이 살기에 얼마나 좋은 곳인가? 도산면에는 낙동강이 흐르고 있는데, 강의 물줄기가 굽이굽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중국 주자(朱子)의 고향에 있는 ‘무이구곡(武夷九曲)’에 빗대어 ‘도산구곡(陶山九曲)’이라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얼마나 경치가 아름다운지 조선 중기의 학자로 안동 출신인 권시중(權是中)의 <선성지(宣城誌)>에 의하면 ‘조물주가 특별히 만들어 놓은 땅이며,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별천지’라고 했습니다. 500km가 넘는 낙동강 중에서 안동의 도산을 지나는 20km 정도만이 싱그럽고 다양한 아름다움을 연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 우리나라에서 최적의 주거지(가거지지, 可居之地)로 안동의 두 지역을 거론했는데, 바로 도산(陶山)과 하회(下回)입니다. 도산면에 자리를 잡은 명문 집안 9곡 중에 4곡이 분천곡으로 농암의 고향이고, 1곡은 광산 김씨를 비롯한 일곱 군자가 있었다고 하여 군자리라 했으며, 3곡에는 유학자 우탁 선생이 살았고, 5곡은 퇴계 이황 선생이 만든 도산서당이 있으며, 6곡은 퇴계의 후손인 항일 저항 시인 이육사의 고향입니다. 그런데 6백년 내려오던 그 땅에 안동댐이 생기면서 9곡 중의 여섯이 사라지고 셋만 남았다고 합니다. 도산구곡은 경치가 좋아 많은 문장가들이 시를 썼는가 하면 겸재 정선이나 강세황 같은 화공들도 산수화를 그렸던 곳인데 안타깝지요. 어떤 좋은 점이 있기에 그렇게 살기 좋은가? 산이 좋고 물이 좋고 경치가 좋다고 해서 사람이 살기에 좋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살만한 땅은 볼만한 땅이나 놀만한 땅과는 다르다는 것이죠. <택리지>에 의하면 산들이 푸른 병풍처럼 둘러 있지만 산이 너무 높지 않기에 자연이 사람을 압도하거나 사람에 압도당하지 않고 알맞게 더불어 살만한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수려한 산천도 좋을 뿐만 아니라 문전옥답(門前沃畓)이 있기에 넉넉한 살림살이를 할 수 있어 좋았던 겁니다. 농암은 “정승 벼슬도 이 강산과 바꿀 수 없다”고 찬탄했다고 하지요. 그래서 도산 땅에는 큰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이황의 무이도가 차운시 인용 : 영남일보 [九曲기행 .6] 도산구곡(下) -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71026.010220803570001 [九曲기행 .6] 도산구곡(下) -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71026.010220803570001 주자의 ‘무이도가(武夷櫂歌)’를 차운하여 시를 짓고,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를 감상하고 ‘무이지(武夷志)’를 읽고 무이구곡을 상상하는 조선 선비들의 본격적 삶은 이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황은 어느 날 ‘무이지’를 읽고 ‘무이도가’를 차운하여 시를 지었다. 이 시의 제목은 ‘한거독무이지차구곡도가운십수(閒居讀武夷志次九曲櫂歌韻十首)’인데, 풀이하면 ‘한가롭게 지내면서 무이지를 읽고 구곡도가를 차운한 10수’이다. 시의 제목에서 이 시가 어떻게 지어졌는가를 알 수 있다. 도산구곡가 ‘선산(仙山)은 이령(異靈)을 자랑하지 않고 창주의 유적은 맑기만 하다 지난 밤 꿈의 감격 때문에 구곡가 운을 빌려 다시 노래하네 일곡에서 고깃배를 찾아 오르니 천주봉은 예와 같이 의연히 서천을 굽어보네 한 번 진유(眞儒·주희)가 음상(吟賞)한 후로는 동정(同亭·도교 전설 어린 정자)에 다시 풍연을 관장함이 없어라 이곡이라 선녀가 변한 푸른 봉우리 아름답고 빼어나게 단장한 얼굴이네 다시는 경국지색 엿보지 않노라니 오두막에 구름이 깊고 깊게 드리우네 삼곡이라 높은 벼랑에 걸린 큰 배 공중을 날아와 걸린 그 때 일 괴이하다 내를 건넘에 마침내 어떻게 쓰였을까 오랜 세월 헛된 번뇌 귀신 보호 가련하구나 사곡이라 선기암(仙機巖)은 밤이 되어 고요한데 금계가 새벽 되니 날개 치며 새벽 알리네 이 사이에 다시 풍류가 있으니 양구 걸치고 월담에 낚싯줄 드리우네 그 때 오곡 산 깊이 들어가니 대은이 도리어 수풀 속에 은거하셨네 요금(瑤琴)을 빗겨 안고 달밤에 타노라니 산 앞의 삼태기 맨 사람 이 마음 알겠는가 육곡이라 푸른 옥빛 물굽이 둘러 있고 신령한 자취는 어디인가 구름 관문뿐이로다 꽃잎 떠 있는 물길 따라 깊은 곳 찾아오니 비로소 알겠네 선가의 한가로움을 칠곡이라 노를 잡고 또 한 여울 오르니 천호봉의 기이한 풍경 가장 볼만하네 어찌하면 신선이 마시는 유하주를 얻어서 취하여 비선(飛仙)을 따라 학의 등에 오르려나 팔곡이라 구름 걷히니 호수가 열리고 표연히 노에 맡기고 물 위를 선회하네 고루암은 조물주의 뜻을 알아서 나그네를 불러서 끝까지 찾아오게 하네 구곡이라 산 열리니 눈앞이 확 트이고 사람 사는 마을 긴 하천 굽어보네 그대는 이것을 유람의 끝이라 말하지 말라 묘처(妙處)에 반드시 별천지가 있으니’ 도산구곡도 출처 : https://blog.naver.com/rjk5065 [출처] 도산구곡가|작성자 어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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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구곡(제8곡 고산정)
퇴계의 「한거독무이지차구곡도가운십수」를 일별한다.
신선 산은 신이함을 붙이지 않으니 不是仙山託異靈
창주의 유적을 생각하니 상쾌해지네 滄洲遊跡想餘淸
전날 밤 꿈에 감격하여 故能感激前宵夢
노 두드리며 구곡가 이어 부르네 一櫂賡歌九曲聲
첫 구비에서 고깃배 찾아 오르니 我從一曲覓漁船
천주봉 의연히 서천을 굽어보네 天柱依然瞰逝川
참 선비 한 번 음상한 이후로 一自眞儒吟賞後
그 정자는 그때처럼 풍광 드러내지 않네 同亭無復管風烟
이곡은 선녀가 푸른 봉우리로 변한 곳 二曲仙娥化碧峰
아름답고 빼어나게 단장한 얼굴이라네 天姸絶世靚修容
다시는 경국지색을 천거하지 않으리니 不應更覬傾城薦
깊은 골짜기엔 구름 깊게 드리워있네 閭闔雲深一萬重
삼곡엔 높은 벼랑에 큰 배가 걸려 있어 三曲懸厓揷巨船
공중을 날아와 걸린 그 때가 괴이하도다 空飛須此怪當年
내를 건넌 들 결국 어떻게 할 것인가 濟川畢竟如何用
유구한 세월 귀신 돌봄과 사랑으로 번거롭네 萬劫空煩鬼護憐
사곡의 선기암에 밤 깊어 고요한데 四曲仙機靜夜巖
금계 울어 새벽 되니 깃털 길게 드리웠네 金鷄唱曉羽毛毿
이 사이에 참된 풍류 있으니 此間更有風流在
양구 벗고 월담에서 낚시 하리라 披得羊裘釣月潭
그 때 오곡의 깊은 산으로 들어가 當年五曲入山深
대은이 도리어 수풀 속에 은거했네 大隱還須隱藪林
거문고 빗겨 안고 달밤에 연주하니 擬把瑤琴彈夜月
산 앞의 은자는 이 마음 알리 山前荷簣肯知心
육곡에는 푸른 구슬 여울 흐르고 六曲回環碧玉灣
신령한 자취 아득하고 구름이 에워쌓네 靈蹤何許但雲關
깊은 골짜기에서 도화 둥둥 떠 오니 落花流水來深處
신선의 세월 한가함을 알겠네 始覺仙家日月閑
칠곡에서 노 잡고 또 한 여울 오르니 七曲橕篙又一灘
기이한 천호봉 풍경 가장 볼 만하네 天壺奇勝最堪看
어찌해야 신선이 마시는 유하주 얻어 何當喚取流霞酌
취해 비선을 끼고 학의 등을 타려나 醉挾飛仙鶴背寒
팔곡에는 구름 걷히니 호수가 열리고 八曲雲屛護水開
표연히 노에 맡기고 물 위를 빙 도네 飄然一棹任旋洄
고루암은 조물주의 뜻을 알아서 樓巖可識天公意
유인을 불러 끝까지 찾아오게 하네 鼓得遊人究竟來
구곡에는 산이 열려 눈앞이 트이고 九曲山開只曠然
인가 연기 피는 곳 긴 냇물 내려보네 人烟墟落俯長川
그대는 이곳을 노닐기 좋은 곳이라 말지니 勸君莫道斯遊極
묘한 곳에 오히려 별천지가 있다네 妙處猶須別一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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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곡문화
송나라 주희는 동양적 정서와 사유구조를 집대성했다. 전 시대인 당(唐)대 화엄불교의 이론체계에 자극받고 주염계, 장횡거 등 북송의 철학적 세계관을 비판적 관점에서 체계화 한 것이다. 이 때문에 그가 세운 학문체계를 주자학(朱子學)이라 한다.
주자학은 당면한 정치 사회적 위기의식을 반영했다. 주자학은 사회질서를 지키고, 통일국가를 이루기 위한 시대적 요구에 대한 사상적 근거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 16세기 조선의 퇴계 이황도 당대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에 대한 고뇌의 결과로 퇴계학(退溪學)을 탄생시켰다. 퇴계의 시대는 인의예지를 지향하던 유학의 이상이 짓밟힌 사화(士禍)의 시대였다.
이 같은 사상적인 영향은 자연 풍류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한국 주자학자들은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받아 시를 읊고, 그림을 그리고, 구곡을 빗대 이름 붙였다. 무이구곡은 중국 복건성 무이산 안에 있는 아홉 굽이 계곡을 이르는 말이다. 주자가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남긴 것을 따라서 퇴계도 도산구곡가(陶山九曲歌)를 지었다.
구곡가는 단순히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 것이 아니라 도(道)의 완성 단계를 자연에 투사한 것이다. 한국 유교문화의 본고장인 경북에만 구곡 관련 인문, 자연, 지리적 문화유적이 35곳이나 된다. 경북의 것을 포함해 전국에 100여 곳이나 된다.
퇴계가 선유동을 찾았다가 경치에 반해 아홉 달 동안 머물면서 구곡을 정하고 이름을 새겼다는 문경 선유동구곡, 성주 출신 선비 정구가 김천에서 발원해 성주로 흐르는 대가천의 기암절벽과 아름다운 풍경을 시로 남긴 무흘구곡, 퇴계가 안동의 풍광을 노래한 1곡 '운암'에서 9곡 '청량'까지 20여 ㎞의 도산구곡 등이 대표적인 예다.
경북도가 역사 문화 자연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5곳의 구곡문화(九曲文化) 자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할 계획이다. 경북의 세 곳과 충북 괴산의 화양구곡, 강원 화천의 곡은구곡이 대상이다. 세계유산 등재로 이들 자연유산이 잘 보존되고 보다 가치 있게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출처 : [경북일보](20.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