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두스님이 말하기를 "물건을 물리치는 것이 상이 되고
물건을 쫒아가는 것이 하가 된다." 고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종지는 모름지기 한 글귀를 알아야 하니,
무엇이 한 글귀인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을 때를 바른 글귀라고 하며,
또한 이마에 머무는 것이라 하며,
또한 머뭄을 얻었다 고 하며, 또한 역력하다고 하며,
또한 성성하다고 하며, 또한 이러한 때다." 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때를 가지고 일체의 시비를 모두 타파하여
겨우 이러하면
문득 이러하지 않아서
옳은 것도 깎아버리고 그른 것도 깎아버려야 합니다.
한 덩어리의 불과 같아서 닿으면 바로 타버릴 것이니,
어느 곳을 향할 것입니까?
지금 사대부가 사량과 계교로 소굴을 삼아
이러한 말을 들으면 곧 말하기를
"공에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라고 합니다.
비유하건데 이것은 배가 전복되지도 않았는데
먼저 물로 뛰어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심히 불쌍한 일입니다.
최근에 강서에 이르러 여거인을 만나니
그가 마음을 이 인연에 둔 지가 오래 되었으나
또한 이 병이 깊었습니다.
어찌 그 분이 총명하지 않겠습니까 마는
제가 일찌기 말하기를
"당신이 공에 떨어질까 두려워하니,
능히 두려움을 아는 자는 공합니까? 공하지 않습니까?
시험삼아 한번 일러보십시오." 하였습니다.
그 분이 생각해서 계교로 대답하고자 하기에
이때에 바로 한번 할을 했더니
지금까지 아득하여 실마리를 찾지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 앞에 문득 그대로 놓여있어서
스스로 장애와 어려움을 만든 것이지,
다른 일에 관계된 것이 아닙니다.
그대가 시험삼아 이와같이 공부해 가서
날이 가고 달이 깊어지면 저절로 잘 계합할 것입니다.
만약 마음을 가지고 깨닫기를 기다리며,
마음을 가지고 쉬기를 기다린다면,
미륵부처가 하생할 때까지 바로 참구해 가더라도
또한 능히 깨달음을 얻지 못하며
또한 쉼을 얻지 못하고 점점 미혹만 더할 것입니다.
평전화상이 말하기를
"신령한 광명이 어둡지 아니하여 만고에 아름다우니
이 문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또 고덕이 이르기를
"이 일은 유심으로도 구할 수 없으며, 무심으로도 얻을 수 없으며,
말로도 지을 수 없으며, 말 없음으로도 통할 수 없다."
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진흙에 들어가고 물에 들어가는 노파의
가장 최고의 가르침인데 가끔 참선하는 사람이
다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지나치고,
특별히 이것이 무슨 도리인지 자세히 살피지 않습니다.
만약에 힘줄과 뼈가 있는 사람이
조금 거착하는 것을 듣고는
바로 금강왕의 보검을 가지고
단번에 이 네갈래 갈등을 끊어 버린다면
생사의 길도 또한 끊어지며
범인과 성인의 길도 또한 끊어지며
계교하고 사량하는 것도 또한 끊어지며
득실시비도 끊어져서
그 사람의 본분자리가 분명하고 깨끗해서
잡을 곳이 없게될 것입니다.
이 어찌 쾌활하지 않으며, 이 어찌 통쾌하지 않겠습니까?
보지 않았습니까?
옛날에 관계화상이 처음 임제스님을 참례할 때
임제스님이 그가 오는 것을 보고 문득 법상에서 내려가
곧 바로 가슴을 움켜잡으니,
관계화상이 '알았습니다. 알았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임제스님이 그가 이미 투철하게 깨달았음을 알고
곧 밀어내서 다시 말로 상량함이 없었습니다.
이때 관계화상이 어찌 알음알이로 서로 상대하여 얻었겠습니까?
옛날에는 이와같은 모범이 있었는데,
지금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가지고 공부하지 아니하고
다만 헤아리고 비교하는 거친 마음으로 공부합니다.
관계화상이 처음에 만약 조금이라도 깨달음과 증득함과
쉬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있었다면,
가슴이 움켜 잡혔을 때 바로 그때 깨달았다고 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문득 손발을 묶고 온 세계를 둘러 한바퀴를 돌아 오더라도
또한 깨달음을 얻을 수 없으며 또한
쉼을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일상에 계교하고 안배하는 것도 식정이며
생사를 따라 옮겨 흐르는 것도 또한 식정이며
두려워 하는 것도 또한 식정입니다.
그런데 지금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 병을 알지 못하고
다만 이 속에서 생멸하니,
경교 가운데 이른바, '식정을 따라 행동하고
지혜를 따르지 않는다.' 는 것이 이것입니다.
이 때문에 본지풍광, 본래면목에 어두우니
만약 한때라도 놓아서 일체 헤아리고 비교하지 않으면
홀연히 알음알이가 사라져
콧구멍을 밟아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곧 이 정식이 진공묘지가 되어
다시 특별히 얻을 지혜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미혹할 때에 동쪽을 불러 서쪽이라고 하다가
깨닫고 나서는 곧 서쪽이 문득 동쪽이어서
따로 동쪽이 있지 않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 진공묘지가 태허공과 더불어 수명을 가지런히 합니다.
다만 이 태허공 가운데서 도리어 한 물건이 장애가 됩니까?
한 물건의 장애도 받지 않아서
모든 물건이 공중에 왕래하는 것이 방해되지 않습니다.
이 진공묘지도 또한 그러해서
생사와 범성과 구염이 조금도 붙을 수 없습니다.
비록 붙을 수 없으나,
생사범성이 그 가운데서 왕래하는 것은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이와같이 믿음이 미치고 보기를 철저히 하면
바야흐로 나고 죽음에 대자유를 얻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비로소 조주의 방하착과 운문의 수미산과 더불어
조금 상응함이 있게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믿음이 미치지 못하고 내려놓지 못한다면
도리어 청컨댄 하나의 수미산을 짊어지고 도처에 행각하여
눈 밝은 사람을 만나서 분명히 들어 보이십시오.
한번 웃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