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의 세계
손익태
관객들은 알고 있지
서로 속고 속아야 마술 이라고
흰색과 검은색은 자웅동색 이라며
마술을 거는 자본의 세계
원근법과 입체기법 등을 자연에서
오려내어 문화사조라며 마술의
기본을 외우게 하는 입시학교
목 잘린 장미를 포장해
만남과 이별의 기호품으로
선물하는 플라스틱꽃 전시장
교란과 가증으로 현실보다 더 화려하게
포장하는 여의도 원형지붕 금뺏지의 마술
고양이와 개를 사람처럼 옷 입히고
삼시세끼 밥상 위에 초식동물과 생선의 살을 놓고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사기치게 하소서-
고양이와 개들에게 기도하며 사는 마술의 세계
농경 시대 살아계신 우리의 신을
우주과학 시대 사멸한 잡신을 불러내어
우리의 왕이라며 머리 조아려라
원하는 것을 내놓으라며 내놓지 않으면
가슴에 못 박으며 자신이 곧 신이라며
수리수리 마술을 거는
글로벌 네트워크 세계화 시대
히말라야 설산이 무너져 내리고
남극 빙벽이 녹아 내리고
북극 곰들의 터전이 사라지는
절묘하고 신비한 마술의 세계
----손익태 시집, {모난 것은 살아 있다}(근간)에서
현명한 자를 찬양하면 현명한 자가 그 권력을 가지고 행패를 부리고, 정의로운 자를 찬양하면 정의로운 자가 그 권력을 가지고 행패를 부린다. 돈과 명예와 권력은 물론, 현명함과 정의도 다 부질없는 것이고, 따라서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라는 것이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고 할 수가 있다.
노자의 ‘무위자연의 철학’은 그러나 그의 앎(지혜)의 극치이며, 그는 무위자연의 반대방향에서 끊임없이 학문연구를 하며 그 사상의 힘으로 전인류의 스승이 되었다고 할 수가 있다. 노자는 손익태 시인의 [마술의 세계]의 주인공이며, 그 사기꾼의 힘으로 영뭔불멸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모든 지혜란 사기 치는 기술이며,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까지는 이론철학을 공부하고, 대학졸업 이후, 즉, 취업에서부터 죽을 때까지는 그 ‘이론철학’을 실천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농부는 곡식값이 비싸야 하고, 장사꾼은 더 많은 이익을 남겨야 한다. 의사는 사시사철 환자가 많아야 하고, 변호사는 언제, 어느 때나 소송사건이 많아야 한다. 명인과 명장은 자기 자신의 작품으로 큰돈을 벌어야 하고, 오늘날의 다국적 자본가들은 전인류의 호주머니를 털어 더 큰 부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전략과 전술은 필요한 것은 빼앗고 착취하는 교육제도의 산물이며, 이 싸움에서의 최종적인 승리자는 소위 세계적인 명문대학교 출신들이라고 할 수가 있다.
서로를 속이고 속여야 마술이 되고, 흰색과 검은색이 자웅동색이 되어야 마술이 된다. 마술의 세계는 사기의 세계이며, “원근법과 입체기법 등을” “문화사조”로 익혀야 대사기꾼, 즉,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의 전사로서 성공을 하게 된다. 목 잘린 장미는 최고급의 인식의 전사의 꽃다발이 되고, 이 꽃다발의 모조품인 “플라스틱꽃”은 “만남과 이별의 기호품”으로 사용하게 된다. 국가를 교란시키는 그 가증스러운 농단으로 자기 자신의 돈과 명예와 권력만을 챙기는 국회의원들, 고양이와 개에게 자연에서의 살 권리와 죽을 권리를 빼앗고 ‘반려동물’이라는 미명 아래, 그토록 더럽고 교활하게 동물학대를 자행하는 인간들, 농경시대의 신과 단군시조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유목민의 신인 예수를 믿으라며 그 신도들의 돈주머니를 가로채 가는 목사들----. 손익태의 [마술의 세계]는 오늘날의 ‘사기꾼 천국’을 풍자한 시이며,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사기치게 하소서”라는 그 간절한 기도가 울려 퍼지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고대 스파르타에서는 어린 아이들에게 사기 치는 법과 도둑질 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사기 치는 법과 도둑질하는 법을 가르쳤기 때문에 스파르타 국민들은 대단히 뛰어났고, 그 결과, 스파르타는 그리스의 최고의 국가가 되었던 것이다. 먹고 사는 것도 전쟁이고, 공부를 하고 기술을 연마하는 것도 전쟁이다. 문화예술도 전쟁이고, 스포츠와 오락도 전쟁이며, 이 세상의 그 모든 일들 중에서 싸움이 아닌 것은 없다. 하지만, 그러나, 이 전면적인 싸움의 국면에서도 도덕과 예의범절과 법률이 있지 않으면 안 되는데, 왜냐하면 우리 인간들은 사회적 동물들이기 때문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은 도와주어야 하고, 좌절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한 줄기의 서광과도 같은 용기를 심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상호 원조에의 의지도 있어야 하고, 상호 결사에의 의지도 있어야 한다. 분업과 협업을 통해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분배하는 공동체의 의지도 있어야 하며, 이 공동체의 의지를 통해 그가 소속된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최고급의 지상낙원으로 가꾸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자연은 만물의 터전이지, 우리 인간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모든 생명체들은 모두가 다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지, 우리 인간들만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선천적인 권리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인간들 역시도 늙고 병들면 모기 한 마리와 파리 한 마리조차도 이기지 못하고, 우리 인간들이 죽으면 제일 먼저 구더기들이 그 시체를 다 파먹게 된다. 한 줌의 흙에서 태어나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생명의 법칙’ 앞에서, 우리 인간들은 더없이 겸손해지고, 이 세상에서 잠시 빌려 쓴 천연재화들을 다 두고 떠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러나 이 자연의 법칙과 생명의 법칙을 끊임없이 거스르며 수명연장을 꾀하고, ‘부의 대물림’을 하는 우리 인간들의 오만방자함 때문에, 히말라야 설산이 무너져 내리고, 남극과 북극의 빙벽이 무너져 내린다. 사유재산은 신의 은총이 아니라 ‘자연의 재앙’이며, 이 ‘자연의 재앙’ 때문에 손익태 시인의 [마술의 세계]는 그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다.
사유재산은 사기이고, 사유재산은 만악의 근원이다. 사유재산은 불 타고, 사유재산은 대폭발을 하며, 전인류를 소멸시킨다.
사유재산도 있을 수가 없고, 소유권도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연은 만물의 공동터전이기 때문이다.
"애지" 주간 반경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