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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노래(시 3:1-8)
오늘 읽은 시편은 말할 수 없이 위험한 가운데서 사는 사람들이 하루 밤을 무사히 지내고 나서 부르는 아침의 노래입니다. 시편 제목에도 나와 있는 대로 이 시는 다윗의 시인데 그가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입니다.
이 시의 역사적인 배경을 생각하려면 구약 사무엘 하 15장에서 18장까지를 읽어 보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누이 다말을 욕보인 그의 형 암논을 죽인 일로 인해서 가정에는 찬바람이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압살롬은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전배 50명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은 일찍이 일어나 성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서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는 그 사람을 불러서 “너는 어느 성 사람이냐?” 물어서 아무 성 사람이라 대답하면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공의를 베풀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압살롬이 왕께 대하여 딴 마음을 품고 이스라엘 무리 가운데 왕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사람들을 꾀어서 그들의 마음을 도적질했습니다. 이렇게 왕이 모르게 4년 동안을 준비한 압살롬이 왕의 허락을 받아 헤브론에 가게 되었고 거기 가서는 자기가 이 나라의 왕이 되었다고 선언을 하고 요샛말로 하면 쿠테타를 일으켰습니다. 더구나 압살롬의 세력이 커지는 것 같으니까 예나 지금이나 대중은 승산이 큰 쪽으로 붙기 마련이어서 압살롬에게 오는 백성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사자가 다윗에게 와서 전달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이스라엘 백성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대세가 이만합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 왕은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모든 신복들에게 “여보게들, 우리 다 함께 일어나 이곳을 피하세. 그렇지 않게 되면 여기 있는 우리는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고 압살롬에게 해를 볼걸세. 어서 빨리 가세. 저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서 해하고 칼로 성을 칠까 두렵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은 궁궐을 비워 놓고 신복들과 그를 따르는 수백 명의 백성들과 함께 피난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모든 백성은 이 억울한 사정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서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왕과 모든 백성은 기드론 시내를 지나 정처 없이 목표한 곳도 없이 무작정 광야 길로 행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같이 피난길에 나선 사람들에게 어서 다시 성으로 돌아가라고 만류했습니다. 나와 같이 나서서 공연히 고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충성된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들의 왕 다윗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면서 왕이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살든지 죽든지, 왕과 같이 운명을 걸고 따라가겠다고 나섰습니다.
다윗은 너무도 창피하고 기가 막힌 노릇이었습니다. 다윗을 반역하여 일어나 정적이 다른 사람이 아닌 그의 아들인 것을 생각할 때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면서 올라갔습니다. 그를 따르는 백성들도 한결같이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따라 올라갔습니다. 므비보셋의 사환, 시바 같은 사람은 다윗을 맞아서 위로하며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처량한 형편에 있는 다윗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반면 다윗의 일행이 바후림에 이르렀는데 게라의 아들 시므이같은 사람은 대세를 판단해 보니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기는 신세인 것을 알아채고 저주를 하며 다윗 왕의 모든 신복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고 야단이 났습니다.
“피흘린 자여, 비루한 자요,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 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청하였느니라.”
이 때 다윗 왕과 같이 가던 아비새 장군이 “대왕이시여, 이 죽은 개 같은 것이 어떻게 내 주 왕을 저렇게까지 저주할 수 있습니까? 저로 하여금 저놈의 머리를 당장 베어 버리도록 허락하시옵소서.” 이 때 다윗 왕이 아비새 장군에게 “여보게, 저가 저주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 다윗을 저주하라 하신 거야.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말할 수도 없어. 이것 보게. 아니, 내 몸에서 난 아들이 지금 나를 죽이려고 하는 판국인데 하물며 베냐민 사람이야 말할 것 있겠나? 하나님이 시키신 거야. 저더러 나를 저주하도록 내버려둬. 혹시 하나님이 나의 이 원통함을 감찰하실는지 알겠나? 오늘날의 그 저주를 잘 참으면 그것 때문에 언젠가는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실 것일세” 하였습니다.
시므이는 다윗의 일행을 계속 따라오면서 돌을 던지며 티끌을 날리며 저주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은 도망치고 압살롬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게 되고 많은 사람이 압살롬을 향하여 “왕이여 만세! 왕이여 만세!” 하며 환영하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언제든지 강자 편에 서서 아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히도벨 같은 사람은 압살롬이 자문을 청할 때 “왕의 아버지가 머물러 궁을 지키게 한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소서. 그렇게 하면 왕께서 왕의 부친의 미워하는 바 됨을 온 이스라엘이 들으리니 이렇게 되면 왕을 모시는 사람들이 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압살롬은 궁궐 지붕에 장막을 치고 온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추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이제 내가 1만 2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다윗의 뒤를 쫓아가 저가 피곤하고 약해졌을 때 엄습하게 되면 같이 따라가던 신복들이 다 도망갈 것이고 그때 다윗만 쳐부수면 같이 따라갔던 사람도 결국은 왕께 돌아올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옳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후새같은 사람은 더욱 잔인한 계획을 말했습니다. “왕의 부친과 그를 따르는 자들은 다 용사입니다. 저희는 들에 있는 곰이 새끼를 빼앗긴 것처럼 격분하였고 왕의 부친은 병법에 익은 사람이기 때문에 잘 때도 백성과 함께 자지 아니하고 어느 굴에 숨어 있을 것이요. 그러니 온 이스라엘에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모래같이 온 국민을 왕에게로 모으십시다. 그리고 왕께서 친히 전장에 나가시고 우리가 일시에 덮치면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고 전멸하고 말 것입니다.”
다윗이 이런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언제 어떤 모양으로 압살롬의 군대에게 변을 당할는지 알 수 없는 불안한 그리고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다윗은 그의 신앙을 버리지 아니하였습니다. 이 역경을 돌파한 위대한 신앙의 간증을 들을 수 있습니다.
1. 다윗은 어떤 역경을 당했습니까?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1-2절)
원수가 많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압살롬의 편을 들어 달려들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의롭고 바로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원수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대적들도 의인 한 사람을 하나님의 허락 없이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마귀들이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지만 우리 스스로가 바로 서 있으면 이 마귀도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데 때로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듯한 불행에 직면하곤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민입니다. 온 세상이 나를 대적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도와주신다는 확신이 있을 때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 같고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것 같을 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젊었을 때 일을 생각해 보세요. 그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웅덩이에 던짐 받아 비참하게 죽을 뻔 했습니다. 때마침 애굽에 가는 대상이 있어서 그들에게 돈 얼마를 받고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런 어려움과 시달림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셨나 의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힘썼습니다.
청년으로서는 정말 이기기 어려운 시험과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유혹을 잘 물리쳤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큰 상이 있어야 마땅한데 상은 고사하고 감옥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처럼 정말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할 수 있을까 불평할만도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감옥 안에서도 죄수의 몸으로 있으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감옥 안에 있으면서 오해를 받아 고생하는 관원의 꿈을 잘 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관원은 정말 요셉의 해몽대로 복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만 그 사람은 요셉의 고마움을 갚겠다고 말만 하고 잊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요셉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볼 때 그는 사람으로서 참기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의심하거나 불평이나 원망, 아니 한숨 한 번 내쉬지 아니하고 굳건히, 그리고 늠름하게 모든 시련을 극복했습니다. 이렇게 했더니 종래 애굽의 총리 대신으로 높이 올리움을 받지 않았습니까?
창세기 마지막 부분에 보면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 형들이 말하기를 “이제는 아버지도 세상에 안 계시니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라며 걱정하였습니다. 사람을 보내서 요셉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였습니다.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이 말을 전해 듣고 있던 요셉이 울었다고 했습니다. 왜요? 자기 마음속에는 형들에 대한 미움과 없고 원수 갚을 생각은 더구나 없는데 왜 이렇게 생각할까 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요셉이 그 형들에게 말하기를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인의 생명을 구원하려 하였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위대한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지금은 너희가 모르나 이후에는 알리라”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제한된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알 것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이 이 어려움을 통해서 나에게 또 무슨 큰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그러시나 하면서 믿음으로 기다리게 됩니다.
바울과 실라를 보세요. 빌립보 지방에 가서 말씀을 전하여 되었는데 한 곳에 기도하는데 점치는 귀신 하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자가 귀신 들려 귀신의 힘으로 점을 치는데 그녀의 주인은 그것으로 많은 이득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 여종이 바울과 실라를 쫓아와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라고 했습니다. 여러 날을 그러기에 불쌍해서 그 여종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는 귀신이 나가 깨끗해졌지만 반면에 귀신을 통해서 점치던 것을 못하게 되니까 그 주인의 수입이 없게 됐단 말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바울과 실라를 잡아다가 시 당국에 고발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하고 있소.” 이 말을 듣자 거기에 모였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관리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튼튼히 지키라고 지시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를 깊은 옥에 가두고 발을 착고에 튼튼히 채웠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바울과 실라가 잘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억울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한 마디의 원망도 불평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그들과 함께 하시는 사실에 대해서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밤중에 찬미하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사막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주님이 나의 선한 목자가 되어서 나와 함께 하셔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위험스러운 곳을 걸어가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가 그 이유를 다 모릅니다. 때로는 실패의 골짜기, 때로는 질병의 골짜기를 걷습니다. 때로는 눈물의 골짜기를 걷습니다. 왜요?
어두운 골짜기를 걸을 때에야만 오직 목자의 인도를 따르고 목자에게 의지하게 됩니다. 내 주의 사방이 캄캄해서 보이지 않을 때에 오히려 눈을 들어 새벽별 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됩니다.
욥 같은 사람도 얼마나 어려움을 많이 당했습니까? 우스 땅에서는 소위 유력한 사람이었습니다. 7남 3녀의 자녀를 두고 재산도 넉넉한 다복한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자랑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이렇게 하나님이 자랑하고 마귀가 시기 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욥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그 많던 소유, 그 훌륭한 자녀가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노릇입니까?
이 때 욥은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으려 경배하며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니라.”라며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자신 있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었느니라.” 이 때 사탄이 얼마나 악하나 보세요.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만은 해하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욥을 치는데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했습니다.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처량합니까! 재산, 자녀 다 잃고 건강까지도 잃었습니다. 욥의 아내도 와서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 이때 욥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않겠느냐? 이렇게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훌륭한 신앙입니까? 그는 친구들의 말에도 영향받지 않고 신앙을 굳게 지켰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승리를 거두게 될 때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했습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신앙의 간증입니까?
2. 다윗은 어떤 역경 속에서도 요동치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3절)
하나님이 누구신지 다윗은 분명히 알았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역경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를 드시는 분이십니다. 바울의 간증대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합니다. 그 까닭은 우리 안에 보배이신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기 대문입니다. 우리가 넘어지나, 아주 넘어지지 아니함은 하나님의 오른 손이 우리를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셨습니다. 선한 목자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이 쓰러질 때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모든 문제의 해결의 열쇠가 되십니다.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 교회의 문제의 해결이 되십니다.
하나님이 돕지 않으시는 것 같을 때 오히려 그를 가리켜 나를 돕는 자라고 고집하고, 의심날 때 한층 더 신뢰하는 그 믿음이 참 신앙입니다. 신앙이란 환난과 역경 속에서 오히려 즐거워합니다.
4절에 보면 기도의 응답을 말씀합니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4절)
하나님께 기도드리면 이루어 주실 것을 믿는 소박한 신앙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믿음의 소유자는 걱정할 필요가 조금도 없습니다. 어떠한 역경 중에서도 요동치 않는 믿음입니다. 이런 신앙이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평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5절에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베드로가 어떻게 천사가 와서 깨우도록 감옥 안에서, 그의 생명이 언제 어떻게 될는지 알 수 없는 환경 속에서도 깊은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까? 주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보세요. 도단 성에 있을 때 아람 군대가 3중 4중으로 포위했습니다. 그의 종은 눈이 둥그래지고 겁이 나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 아들의 눈을 밝히 뜨게 해 주십시오” 그랬더니 아람 군대를 막아 서 있는 하늘의 군대와 병거를 보았습니다. 거기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믿는 사람은 마음의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6절 말씀대로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3:5-6절에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였습니다.
이제 7절을 보십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왜냐하면 과거의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신앙 체험을 생각하고 현재에도 신앙의 용기를 얻게 되며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소년 대 맹수들과 싸워 이겼습니다. 골리앗과 싸워서 이겼습니다. 사울 왕의 핍박 속에서도 건져 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귀한 체험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이 하나님께 있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고 또 그를 믿으므로 안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8절 말씀에 보면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그래야겠습니다. 우리 중에 견디기 어려운 환난을 당하신 분 계십니까? 주님을 의지합시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건져 주실 줄을 믿습니다.
첫댓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