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빌게이츠, 스티브 김
한국에도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사람이 있을까?
사람바이러스는 그동안 실리콘밸리에 대한 많은 얘기를 해왔습니다. 실리콘밸리의 견고한 시스템에 대해서도, 그곳이 어떤 천재들을 탄생시켰는가에 대해서도 늘 얘기해왔을 만큼 실리콘밸리는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계속 비교되는 한국의 안타까운 현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는데요. 하지만 그러한 실리콘밸리에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둔 한국인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지금보다 더 척박한 80~90년대에 말이죠.
1. 아시아의 빌 게이츠, 스티브 김
스티브 김의 저서 <꿈, 희망, 미래>
빌 게이츠의 수식어를 달고 있는 스티브 김은 재미교포도 아니고 순수 한국인입니다. 본명은 김윤종. 한국에서 보릿고개를 넘기며 어렵게 살다가 20대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컴퓨터 네트워킹 관련 IT 창업을 했지요. 나스닥에 상장되고 대성공을 거뒀고, 마지막 회사를 매각했을 때 금액이 무려 2조 원이었다고.
스티브 김은 그동안 기업가들 사이에서 유명했지만, 2007년 한국에 영구 귀국한 이후 다양한 자선사업을 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9월에는 KBS 두드림에 출연했었지요. 그는 매우 다양한 계층의 삶을 살았습니다.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냈고, 하루 2만 5천원을 버는 유학생이기도 했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일했던 평범한 엔지니어이기도 했지요. 젊은이들에게 기업가 정신이 요구되는 시대에 스티브 김만큼 적합한 기업 인물이 또 있을까요?
2. 가난한 유년시절, 방황한 대학시절
스티브 김은 철저한 자수성가형 SARAM입니다.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유산이라곤 가난 뿐이라고 말할 정도로, 사업에 필요한 자금도 없었고 미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거나 한 환경적 이점도 없었지요. 워낙 가난했던 한국의 60년대를 보냈던 터라, 중학교에 입학할 때는 누나 교복을 수선해서 물려 입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그때 깨달았다고 스티브 김은 말합니다. 이 환경을 벗어나는 방법은 공부 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대학에서만큼은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들어갔지만, 과가 적성에 맞는 것 같지도 않고, 실험실에 들어가봐도 겉도는 느낌이었다고. 자기가 뭘 해야할지 뭘 좋아하는지도 몰랐다고 말이죠. 지금 세대의 대학생들은 모두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지요?
출처: KBS 이야기쇼 두드림
졸업을 한 스티브 김은 지리멸렬한 한국의 상황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딱딱하고 경직된 대기업 문화가 너무 싫었기 때문이죠. 결국 새로운 도전을 위해 27살의 나이에 단돈 이백만 원을 들고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처음에는 빌딩 청소부에서부터 자동차 부속품 도매 창고까지 고된 노동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그렇게 하루에 번 돈이 고작 2만 5천원이었다고.
8시간 노동을 하고 나면 야간에는 대학원을 다니면서 엔지니어로서의 공부를 해나갔습니다. 영어도 못해서 남들이면 대학원 1년 과정을 3년이나 걸쳐 끝냈다고. 수업도 이해가 안돼서 도저히 질문할 용기가 안나더랍니다. 자기는 동양인이기도 하고 영어도 못해서 위축되기 일쑤였지요. 어느날 용기를 내서 팔을 들어올려 질문을 던졌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고. 민폐인 줄 알았던 자기의 질문에 교수님이 너무도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더랍니다. 그때부터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답니다.
3.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좋은 이유
돌이켜보면 스티브 김은 늘 자기 인생에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꿈에 그리던 대기업에 입사해 화이트칼라가 됐지만, 한달 만에 때려치게 됩니다. 이유는 아무도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기 않았기 때문이라고. 어떤 프로젝트를 하면 대기업에서는 한 부분의 일만 맡게 되어서 전체적인 일을 관망할 수가 없었지요. 그러다보니 자기 일만 열심히 하면 됐고, 압박도 간섭도 없었고, 자신의 성과가 어떻게 반영되는지도 몰랐습니다. 정말 기업의 부속품이 되는 느낌이었다고.
결국 신문에 난 구인광고를 보고 중소기업에 들어갑니다. 직원 30명에 불과한 작은 기업에 찾아간 그는 비로소 일을 하면서 큰 그림을 볼 수가 있었다고 술회합니다. 중소기업은 그에게 무턱대로 광섬유 통신장비를 개발하라는 임무를 줬는데, 방법도 지식도 부족했지만 스티브 김은 자신의 성과가 톡톡히 보이는 일을 즐겼지요. 뿐만 아니라 작은 기업이었던 터라, 제품 개발 뿐 아니라 마케팅이나 영업에도 관여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대기업에서 겪을 수 없던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자신으로 인해 회사가 어떻게 성장해가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동기부여가 됐지요. 머지 않아 연봉이 2배로 올랐고 사장과 둘이 식사 초대도 받을만큼 인정을 받게 됐습니다.
스티브 김은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 가라고 추천합니다. "대기업에서는 과장과 함께 일하지만, 중소기업에서는 사장과 함께 일한다."면서 사장과 함께 일하는 경험은 정말 소중하다고 말입니다. 조금의 성과를 보이면 사장에게 더 많은 일을 얻어낼 수 있고, 자신의 경험과 가치는 커지기 때문에, 결국 여기저기서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된다고요. 물론 한국의 중소기업 생태계는 미국에 비해 열악한 것이 사실이지만, 뭔가를 배우고 습득해나가려는 자세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4. 창업 신화, 2조원에 회사를 매각하다
스티브 김은 급기야 창업을 결심합니다. 경쟁사들의 제품까지 유심히 보던 그는 앞으로 도래할 광섬유 시대를 읽고, 광케이블 사업을 차린 것이죠. 직원 세 명이서 돈을 모아 자금을 모았고, 전에 일하던 중소기업 사장을 찾아가 경영인으로 영입했으며, 투자자 수십 명을 만나며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차린 회사 이름이 파이버 먹스( Fibermux).
자일랜 시절의 스티브 김
스티브 김은 예전 직장의 출장 때 안면을 익혔던 NASA의 직원을 찾아가 시제품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미국은 특별한 연줄이 없어도 제품이 좋으면 채택하곤 하기 때문에 기회의 땅이라고 불리는 것 같습니다. 결국 NASA는 10만 달러치를 주문하면서, 스티브 김은 첫타석부터 홈런을 치게 됐지요. 이후 6년 동안 파이버먹스는 성장을 멈추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6년 뒤 다른 대기업에 540억이라는 아주 좋은 조건으로 매각하게 되었고, 파이버먹스의 직원들은 25배의 배당이라는 해피엔딩을 맞았죠. 어릴 때부터 가난했던 스티브 김은 이때 처음 100억이라는 거액이 수중에 들어왔다고.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두번째 회사인 자일랜(Xylan)을 창업합니다. 이번엔 최고의 엔지니어들을 고용하고 전문 경연인까지 두면서 컴퓨터 네트워킹 시스템 회사를 만들었지요. 회사는 초반부터 상승세를 이어갔고 1993년에 나스닥에서 상장되면서 억만 장자에 오릅니다. 26달러라는 높은 주가에 상장되었는데 당일 날 무려 52달러까지 치솟았다고. 이후 자일랜은 승승장구하면서 연 3,500억원이 매출, 1,500명의 직원, 전세계 60개의 지사가 있는 대기업에 올랐습니다. 96년에는 타임지 선정 초고속 성장 100대 기업 중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고. 이게 정말 한국인이 자수성가해서 가능한 일인지 의심될 정도로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죠. 마지막엔 회사를 무려 2조원에 매각하면서 억만장자 반열에 오릅니다.
5. 사회에 환원하는 자선사업가
비버리 힐즈의 스티브 김 저택. 출처: KBS
억만장자가 된 그는 당분간 일을 쉬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보냅니다. 목욕탕만 11개가 있는 비버리 힐즈 저택에 살면서 옆집 이웃이 마이클 잭슨이기도 했다지요. 세계 각지로 여행을 다녔고, 골프장 36홀을 소유하고, 조수미 씨를 집으로 초대해 오페라 음악회를 열고, 미국 최상류층의 문화를 경험하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도전이 없고 동기부여가 없자 스티브 김은 또 다시 회의에 빠졌습니다. 돈많은 백수 생활이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스티브 김은 2007년 돌연 한국으로 돌아와 자선사업 일을 시작합니다. 오래 전부터 해왔던 장학사업을 더 확장시켜 매년 25억 정도를 사회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꿈희망미래 재단을 설립해 연변과 네팔과 동남아 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하고, 특히 매일 지방 학교를 돌면서 강연을 할 정도로 청소년들에게 쏟는 애정이 각별합니다.
청소년들을 위해 '리더쉽 캠프'를 개발했는데 학생들에게 단순 강연을 주입시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캠프에서 소통하고 리더쉽을 일깨워주고 있지요. 지금까지 수만 명의 학생들이 리더쉽 캠프를 다녀왔고, 학교에서 배울 수 없던 여러 인성교육을 통해 깨닫고 변해가고 있습니다. 리더쉽 캠프에서는 청소년들 뿐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코치도 상시 모집하고 있는데 대학생이나 일반인들에게 늘 기회가 열려 있기도 하지요.
그동안 기업가 정신을 말하기 위해 사람바이러스는 외국의 많은 인물을 얘기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나, 미카엘 헤드, 에반 윌리엄스, 마크 주커버그 등... 하지만 한국에도 실리콘밸리의 성공신화가 있다는 것에, 또 그러한 인물이 자국에서 노블리제 오블리제를 실현하면서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는 것에 저는 긍정적인 미래를 봅니다.
첫댓글 청소년들을 위해 '리더쉽 캠프'를 개발했는데 학생들에게 단순 강연을 주입시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캠프에서 소통하고 리더쉽을 일깨워주고 있지요. 지금까지 수만 명의 학생들이 리더쉽 캠프를 다녀왔고, 학교에서 배울 수 없던 여러 인성교육을 통해 깨닫고 변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