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아유월치차경 상권
3. 봉법품(奉法品)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께서는 무슨 까닭에 보살이 법을 받들어 지니는 것을 찬탄하셨겠느냐?
보살은 불도(佛道)에 뜻을 두어 끝내 물러나지 않는 까닭에 각궤(覺軌:佛法)를 굳게 지니고 또렷이 분별해 알아서 법계(法界)를 벗어나지 않으며,
불가사의 한 경적(經籍)을 체득(逮得)하였고 총지(摠持)를 얻었으므로 늘 처하는 곳마다 동요함이 없으며, 법구(法句)를 따라서 일체의 의문을 물었느니라.
모든 법은 자연 그대로임을 깨달아 집착하지 않고 총지를 지니되 의지하지 않으며,
총지만을 따르거나 경본(經本)만 주장하거나 하지 않고 마음 속으로 항상 성인을 흠모하고 좋아하며,
도(道)를 공경하고 일체의 법에 대하여 받아들이는 바도 없고 법을 받아들여 행하지도 않기 때문에 곧 올바른 법을 연설하느니라.
마음을 잘 조복하여 행동거지가 안온하며 적연하고도 바른 법을 강설하며, 이렇게 법을 지니지만 의지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느니라.
모든 것은 자연 그대로여서 그 자체가 거룩한 도[聖道]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나니, 이런 이치를 획득하면 아예 잃어버리지도 않고 몸소 수행하며 몸이 항상 견고하게 머물러 세속은 머무를 곳이 아님을 아느니라.
무엇을 보살이 항상 관찰한다고 말하는가?
일찍이 이러한 것을 보지 않고 몸이 진리에 편안하게 머물며, 스스로 바른 법을 따르고 모든 경계는 평등한 것이어서 가고 옴이 없는 것이라는 이러한 견해를 내나니, 이것이 모든 불ㆍ보살께서 설법하신 것이니라.
이러한 진리를 체득하여 청정하고 때 없으면 일체법(一切法)은 합해지는 것도 없고 흩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보리니, 모든 경전을 관찰해 보아도 홀연히 나타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니라.
그런 까닭에 이런 견해를 내지 않나니, 모든 법은 작용이나 조작이 없으므로 그러한 견해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모든 법을 실체로 보지 않으면 가질 것도 없으며 법계는 허공과 같다는 이치를 깨달아 경적(經籍)을 연설하며, 모든 물질의 모양은 그대로여서 조롱하거나 희롱할 대상도 없고 아무런 형상도 없는 것이다.
마음을 여의었으므로 마음도 없으며, 그 마음 역시 얻을 수도 없다고 아느니라.
가량 마음을 얻을 수 없다면 그것은 곧 도심(道心)으로서 오고 감이 없을 것이요 적연(寂然)한 마음으로 수행할 것을 강설하지만, 그 말 자체도 없는 것이어서 흠모하여 구할 바가 아니니라.
모든 법에 대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여 의지 할 대상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에 기대지도 않고 법의 모양을 일으키지도 않느니라.
항상 경전(經典)만을 따르는 것이 곧 보살법으로 집착할 것도 없으며, 열반도 또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이런 이치를 설하여 밝게 나타내었느니라.
종성(種姓)이란 사모할 대상도 아니라는 이러한 견해를 내어 모든 종성을 버리며, 보살행을 체득했다지만 그 또한 얻을 법이 없는 것이다.
저 오고 가는 모든 것에 대하여 오고 감이 없다고 생각하고,
모든 지혜는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없는 것이라고 굳게 믿어서 동(動)하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으며,
물러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모든 법을 받들어 지니지만 급하게도 하지 않고 느리게도 하지 않는 이러한 것을 법을 지녀 보살도를 증득하였다고 말하느니라.
이미 성인의 수행법을 증득하였으나 그 또한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이와 같은 보살대사가 되나니, 그것을 이름하여 법을 받든다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 법은
일찍이 물러난 적이 없나니
경(經)을 이와 같이 받들어 지니면
이것을 곧 법을 지녔다고 말하느니라.
모든 부처와 불법에 대해 강설하되
자연의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 내지 말고
매우 깊어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
이것을 곧 법을 지녔다고 말하느니라.
일찍이 모든 세계를 헐뜯지 않고
불가사의한 법계에 대해
그 이치를 증득하여 이룩하면
그것이 곧 법을 지니는 것이니라.
법을 받들어 은근히 보호하고
모든 부처님께서 행하신 바에 대해
마음 속에 집착함 없으면
그것이 곧 법을 지니는 것이니라.
고집하여 나아가거나 후퇴함 없으면
모든 법은 자연 그대로이니
그 모든 경전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법을 지니는 것이니라.
적멸(寂滅)에 머물지 않고
받들어 지녀 큰 자취 실천하며
저 경전을 따라서 순응하면
그것이 곧 법을 지니는 것이니라.
항상한 도로써 법신(法身)을 삼고
미묘한 말씀 흠모하여 구하며
게으른 마음 멀리 버리면
이것이 곧 법을 지니는 것이니라.
경을 들으면 받아 지녀
배우기를 생각하고 열심히 익히며
성품 어질고 편안한 경지에 노닐면
이것이 곧 법을 지니는 것이니라.
항상 담박하고 편안한 이치 강설하고
경을 지니되 집착하지 않으며
무상행(無想行)을 증득하여 이룩하면
이것이 곧 법을 지니는 것이니라.
견고한 마음으로 도에 머무르고
밝은 지혜로 머무름 없음을 수행하며
몸에 대하여 몸은 없는 것이라고 아나니
그의 견해 깊이가 이와 같다네.
이 몸은 공(空)한 것으로서
법계와 평등한 것임을 알아
감도 없고 옴도 없으면
몸의 모든 모양 분별한 것이니라.
모든 부처님과 보살께서
강설하신 법
이러한 경전(經典:法) 널리 체득하면
이것이 곧 법을 지니는 것이니라.
모든 법 작용함 없고
저 세계도 매우 청정하니
이러한 경전 받들게 되면
이것이 곧 법을 지니는 것이니라.
모든 경전 자세히 살펴보면
보이던 것이라 하는 것도 볼 수 없나니
만약 모든 법 볼 수 없다면
저것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이 모든 법계는 모두 공(空)한 것
곧 법계에 대해 강설하나니
스스로 모든 모양 여의면
형상도 없어지고 조롱하거나 희롱할 대상도 없으리라.
마음에 모든 존재 버리면
뜻에도 얻을 것이 없나니
가령 마음에 체득할 것 없으면
이런 생각 가장 훌륭하니라.
뜻하는 바에 마음 두지 않고
법의 조용하고 고요한 이치 강설하지만
그 말은 없는 것이라서 집착 않아야
이 마음 진정 존귀하리라.
능히 이런 법 받들고
일어나는 바에 집착 없으며
모든 세계에 의지하지 않으면
이것이 곧 법을 지니는 것이니라.
보살이 받드는 법
이와 같아서 경적(經籍)과 상응하나니
거론할 대상 없는 것에 의지하지 않고
작용 없음을 나타내 보이네.
이와 같이 훌륭한 가르침 행하고
저 모든 종성(種姓)을 따르며
이런 이치 증득하였기 때문에
그 종성을 찬양하였느니라.
이러한 종성으로 태어나면
보살이 될 수 있다 말하리니
능히 이 총지(摠持)를 따르면
그것은 곧 법을 지니는 것이니라.
깨달아 모든 법 보지 않으면
모두가 나아갈 곳 없으리니
만약 마음 치달려 이르게 되면
이것은 올바른 법 되지 못하리.
작용하는 법에 이르러도 나아가지 않고
모든 법 깨달아 알며
총지(摠持)를 분별하여 깨달으면
조작도 없고 동요하지도 않으리라.
따르지 않아야 할 법을 버리지 못하면
그것은 곧 법을 만드는 것이라네.
늘어남도 없고 줄어듦도 없는
총지(摠持)법에 대해 즐거워해야 하리.
제법은 법이라 함이 없어서
강설하는데 집착함이 있지 않으면
온갖 경전을 얻지 못한다 여기니
이것이 곧 법을 지킴이니라.
아난아, 나는 그런 까닭에
보살행(菩薩行)을 연설하여
미묘한 도 체득하게 하나니
이것이 곧 모든 경을 찬양함이니라.
아난아, 나는 그런 까닭에
법 받드는 이를 노래로 칭송하나니
중생들로 하여금 현묘한 도 생각게 하여
이러한 무리들을 개도(開導)하느니라.
이렇게 무수한 법 항복 받음은
보살이 찬탄하는 바로서
훌륭한 방편으로 영원히 안온하게 하므로
이 경을 찬탄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런 까닭에 여래(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께서 보살의 총지법(摠持法)을 찬양하는 것이니, 이렇게 이치를 나타내 보이는 것도 또한 훌륭한 방편이 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