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범어사(金井山梵魚寺) /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본사(本寺)
- 부산시 금정구 청룡동
금정산 고당봉 아래 금샘(金井)이 있다.
금빛 물고기가 노닐었다고 했다.
낙동강에 저녁 노을이 질 때 산 전체가 붉게 물들고 금샘에 금빛이 비춘다고 하여서.
내 경험에는 보름달 뜨는 날, 이 금샘에 달이 들어온다.
황금빛으로 샘이 물들고 잔바람에 이는 물결은 고기가 노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금샘이지 않을까?
금샘은 산에 막혀 노을질 때 붉게 물들지 않을 것 같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동국(東國)의 남산에 명산이 있어서 그 산정에 높이 50여 척의 거암(巨岩)이 있고,
그 바위 한가운데 샘이 있으며 그 물 빛은 금색(金色)에다 물 속에 범천(梵天)의 고기가 놀았다.
그래서 산명을 금정산(金井山)이라 하고, 절을 범어사(梵魚寺)라 한다.”
고 하였다.
(다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발췌)
범어사는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나온다.
영주 부석사를 창간하고 3일 뒤에.
(사적기엔 흥덕왕(재위 826~835년) 때 창건, 702년 입적한 의상대사가 창건할 수 없다.
당에서 귀국한 670년 이후, 678년으로 볼 수 있다. 의상의 제자 표훈대사가 주석한 범어사,
신라 화엄십찰의 한 곳이다.)
창건과 관련된 설화가 있지만 굳이 여기에서 기록하지 않겠다.
임진왜란 등으로 소실된 것을 조선시대 숙종 때 중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명학(明學)이란 중에 대한 설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는 전국을 다니면서 절의 창건 설화를 들으면서 허황함을 느낀다.
굳이 이렇게 영험함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이 절과 인연이 깊은 고승으로는 창건주인 의상과 신라 십성(新羅十聖) 중의 한 사람인 표훈,
일생을 남에게 보시하는 것으로 일관한 낙안(樂安), 구렁이가 된 스승을 제도한 영원(靈源),
근대의 고승 경허(鏡虛), 한용운(韓龍雲), 동산(東山) 등이 있다.
(다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발췌)
범어사 가람 배치도
범어사에는 따로 부도밭이 없는 모양이다. 숲 속 여기저기 선사의 탑이 있다.
일주문이 보이는 곳. 하마(下馬),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은 이 하마가 잘 지켜지고 있지 않다.
조성된 주차장 면적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여기저기 주차된 차량들을 보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 들어가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관람 시간이 지날 수도 있어서. 어느 선사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성보박물관 마당에 있는 석탑.
성보박물관 마당엔 500년쯤 된 은행나무와 사진과 같은 소나무가 있다.(반송盤松)
은행나무를 촬영하려니 그 밑에서 누워 계신 분들도 있고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다.
일주문 / 보물 제1461호
범어사의 일주문은 특이하다. 대다수 절들의 일주문은 한 칸이고 높다.
투박한 원형 돌기둥의 일주문. 조선시대 숙종 때 지어진 것으로 나온다.
<조계사> 현판은 그 당시 제작, 진경시대 동국진체의 특징을 보이는 단아한 해서체이다.
좌우의 현판은 '해사 김성근(海士 金聲根, 1835~1918)'이 78세에 쓴 것이라 한다.
걸려 있는 현판은 모각(模刻)이라 한다.
일주문의 뒤
일주문을 지나서 바라본 천왕문, 사천왕 목각이 좌우에 서 있다.
장흥 보림사 사천왕상을 본 떠 만든 거라고 하나 아직 보림사를 못 가봤다.
광목천왕(光目天王/西)....노여움, 들어가면서 좌측.
다문천왕(多聞天王/北).....즐거움, 들어가면서 좌측 2번째
증장천왕(增長天王/南)....이익 증진, 들어가면서 우측 2번째.
지국천왕(持國天王/東)....기쁨, 들어가면서 우측.
천왕문을 지나서 본 불이문.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둘이 아닌 하나. 진리도 둘이 아닌 하나.
불이문과 뒤편 보제루를 맞추면 계단이 엇나가 있다. 이게 가람 배치의 묘미이다.
보제루 앞에서 본 불이문의 뒤.
보제루(普濟樓).
보제는 '널리 중생을 구한다'란 뜻이다. 보제루에서 설법이 이뤄지곤 한다.
숙종 때 지어진 것이라고 하나 여러 변천을 걸친 건물 같다.
보제루에서 본 범종각. 나중에 가 보지는 않았다.
절 마당을 가로질러 비로전에 먼저 갔다. 일체 건물의 대웅전 방향에 비로전이 있다.
비로자나삼존불. 주불 좌우엔 문수/보현 양 보살이 있다.
조선시대 효종 때 조성, 그 당시 양식 그대로라 한다.
삼층석탑 / 보물 제250호, 신라
보제루에 '금강계단(金剛戒壇)' 현판이 있다. 조계종 종정을 지낸 '동산 대선사'의 글씨이다.
석등 /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16호. 신라
관음전
대웅전 우측(마당에서 봤을 때)이다.
관음전 현판은 김정희서파를 자처하던 하성파(河星坡)의 글씨다.
관음보살에 대한 글은 없고 후불탱화가 고종 때이라 적혀있다.(책 - 명찰순례)
대웅전 /보물 제434호.
선조 35년에 초창하고 효종 9년에 중창. 신조(新造) 삼존불을 모셨음.
효종 9년 중창하면서 모신 삼존불.
그 솜씨가 비로자나삼존불과 같다. 대웅전 삼존불은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책 - 명찰순례)
정문에서 보아 좌측(동) 동방 약사여래
정문에서 보아 우측(서) 서방 미타여래, 이 탱화는 고종시대로 추정. 확인할 수는 없지만.
길이 참으로 아름답다.
지장전.
'촬영하지마'라는 안내가 있어서 내부를 촬영하지 않았다.
책 명찰순례에서 지장전에 대해 언급이 없다.
한 동으로 지었지만 칸막이로 3칸, 나한전, 독성각, 팔상전 등이다.
책 명찰순례에서는 건성으로 보았다고 글이 있다. 왜 건성으로 보았을까?
독성전의 문은 독특하게 아치 모양을 하고 있다.
독성각의 문양이다.
산령각
약사전에 현판이 없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짙은 해거름이 낀 경내
보이는 산은 의상대 방향이다. 경내가 아름답다.
종루에선 법고를 두드리고 템플 스테이에 참석한 사람들이 합장하며 듣고 있다.
시작하고 조금 지난 뒤에 녹음 하였는데 4분 44초. 아마 5~6분 법고를 치는 모양이다.
법고가 끝나니 범종각에서 여운이 길게 늘어지는 종소리가 들린다.
저녁 예불 시간에 절에 오면 느낄 수 있는 거다. 이런 게 좋다.
등 굽은 어머니는 오늘도 대웅전에서 108배를 하셨는가? 무엇을 위하여?
오직 자식의 무운을 비는 마음일 게다.
범어사 바로 뒤에 대성암이 있지만 지나친다.
금강암 팻말이 앙증맞다. 가는 길이니 들려봐야겠다. 북문으로 오르는 길.
계곡 물소리가 법고 두드리는 소리와 같다. 시원하다.
얼핏 신문에서 본 기억이 오른다. 금강암은 한자로 현판을 쓰지 않고 한글로 썼다.
대자비전도 한글로.
범어사에서 북문까지는 1.7km. 오르는 길이 그리 가파르지 않다. 완만한 경사이다.
북문에서 본 고당봉. 북문에서 1km 남짓. 다음에 가야지.
산성길을 따라 동문까지는 3.8km. 임도를 따라 금성동까지는 3.2km.
북문에서 잠시 쉬었다. 7시 50분, 배가 고프다. 준비한 삶은 달걀 2알과 과일.
오후 4시 경, 김해 내외동 집에서 출발. 경전철을 타고 대저역에서 지하철 3호선으로 갈아탔다.
미남역에서 하차,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동래역, 동래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범어사역까지.
범어사역 5분 출구, 길 안내가 자세히 되어 있다. 범어사까지 3km. 버스 정류장까지 150m.
환승의 여유가 있다. 오후 5시 10분. 걷기에는 늦은 시간이라 버스로 환승.
범어사 매표소 앞에 5시 25분 도착. 매표소에선 문화재 관람료를 받고 있지 않다.
부산시에서 보존하여 주는 모양이다.
범어사 경내 관람 1시간 20분, 북문에 도착하니 7시 50분.
금성동에서 '산성버스(마을버스)'를 타고 구포역에서 127번으로 환승, 집에 오니 9시 50분.
내일 게으름이 안 생기면 통도사로 가야겠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 명찰순례(최완수 지음)에서 내용을 많이 빌려왔다.
* 진경시대, 동국진체 등등은 따로 시간을 내어서 공부하고 그 내용을 첨부로 올리겠다.
*2020년 11월 19일, 내용 보완하여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