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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글은 어느 정도의 분량이 있습니다.
글이 좀 길지만 시간을 내셔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차분하게 읽으신다면,
여러분의 영혼에 귀한 깨달음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하나님의 계시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계시록 1:4-6,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과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씻으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아시아라는 말은 실제로는 소 아시아를 말합니다. 그것은 인디애나 주 크기만한 조그마한
땅덩어리입니다. 거기에 있던 다른 모든 교회 중에서 그 일곱 교회가 저마다의 특성으로 인해
특별히 뽑혔는데, 똑같은 특성들이 수세기 뒤 계속되는 이방인들의 일곱 교회 시대들 가운데서
발견됩니다.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은 일곱 사자가 살았던 시대를 위하여 그들에게 사역을
주었던, 일곱 사자들 안에 계셨던 동일한 성령입니다.
그런데 `이제도 계신 분', `전에도 계셨던 분', `장차 오실 이' 그리고 `충성된 증인' 그리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나신 이' 그리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되는 이' 그리고
`알파와 오메가' 그리고 `전능하신 이',...
이 모든 표현들은 한 분이신 동일한 인격체이며, 그의 피로 우리를 우리 죄에서 씻어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직함들이며 그를 묘사한 말들입니다.
요한 안에 있던 하나님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최고의 신성을 설명하고 신성을 한 분 하나님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엄청난 오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라 세 분이라고 하는 오류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요한에게 주신 이 계시는 그 오류를 바로잡습니다.
세 분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 직분을 가진 한 분 하나님입니다. 한 분 하나님이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는 세 직함을 갖고 계십니다.
이 놀라운 계시는 초대 교회가 가졌었던 계시이며,
이 계시를 통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푸는 올바른 침례 방식과 함께 회복되어야 하는 계시입니다.
그런데 여기 저명한 기독교 잡지에 실린 내용을 보면 현대 신학자들은 저와 생각을 달리 할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말하기를 "그 가르침은(삼위일체론에 대한 가르침) 구약의 심장이며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신약의 심장이며 핵심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신약은 구약처럼 하나님은 한 분이 아니라 여러분이라는 사상에 맹렬히 반대하고 나섭니다.
그러나 신약은 아버지는 하나님이시고 아들은 하나님이시고, 성령은 하나님이시며,
이 셋은 동일한 분(Person, 위(位), 위격(位格), 인격(人格)으로 번역되기도 함--역주)의
세 면이 아니라, 삼위가 진실로 서로 서로 개인적인 관계를 맺으며 계신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세 인격체(삼위)이시나 한 분이신 하나님(Three Persons but one God)에
대한 위대한 교리를 발견합니다." 그들은 또 이렇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일위가 아니고 한 하나님 속에 있는 삼위입니다.
그것은 삼위일체론의 커다란 신비입니다."
***진짜 신비입니다. 어떻게 삼위가 한 하나님 속에 있을 수 있습니까?
그 말을 증명할 성경말씀은 없으며 또 그것은 그들의 지적인 판단력의 결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각각의 삼위들은, 동일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세분의 신들을 만들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말은 전적으로 그 의미를 잃습니다.
다시 한 번 이 말을 들어보십시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시작이요 끝이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이것이 한분을 가리키는 신성입니다.
이분은 단순히 한 선지자, 한 인간이 아닙니다. 이분은 한분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삼위 하나님에 대한 계시가 아니라 전능하신 자, 일위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계시입니다. 교회가 시작된 초기에는 그들은 삼위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믿음을 사도들 가운데서는 전혀 못 찾으실 것입니다.
이 이론이 들어와 부상되어 니케아 종교 회의에서 주요 교리가 된 것은 사도 시대 이후였습니다.
니케아에서 신성의 교리로 인하여 두 갈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그 분열로부터 두 극단론이 나왔습니다.
하나는 급기야 삼위 하나님을 믿는 다신론으로 들어갔고, 나머지는 일신론으로 들어갔습니다.
물론 그 일은 잠시 동안 일어났지만, 마침내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주위에 그런 것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요한을 통하여 교회들에게 주신 계시는,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요 나는 만유의 주라.
다른 신은 없도다,"였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 계시에 자신의 인을 쳤습니다.
이 점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예수님의 아버지였습니까? 마태복음 1:18절에서는,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친히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 그리고 성령이신 하나님은, 우리는 종종 그렇게 표현하죠,
아버지와 영을 한 분으로 만듭니다. 정말로 아버지인 하나님과 성령인 하나님은 한 분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은 아버지가 둘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신과 아버지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말씀하신 것을 주의해 보십시오.
그 말은 일위 하나님으로 결국 귀결됩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나 성경적으로 사실이므로, 사람들은 그 삼위 하나님이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것은 주후 325년 니케아 종교 회의에서 기본적인 교리가 되었습니다.
이 삼위일체론은(성경에도 없는 말이죠) 로마의 여러 신들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다신론 사상으로부터 나왔습니다.
로마인들은 자신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여러 신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또 조상들을 중보자로 삼아 그들에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것은 옛적부터 섬기던 신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기 위한 일 단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그것을 성서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성도들을 중보자로 삼습니다.
그들은 쥬피터, 베니스, 마르즈 등등 대신에 바울이나 베드로, 파티마나 크리스토퍼 기타
등등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방신을 섬기는 이교를 단 한 분인 하나님과 맞출 수가 없었으므로
하나님을 셋으로 쪼개고 중보자로 조상들을 섬기던 풍습과 같이 성인들을 중보자로 세웠습니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사람들은 세 직분 또는 세 가지 표명으로 나오시는
일위 하나님이 계시다는 걸 깨닫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는 걸 알았지만 하나님은 포도가 주렁주렁 달린 포도
한 송이와 같아서 삼위가 동등하게 동일한 신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환상적인 이론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들이 만든 그 교리에 맞추려고 설교집들이나 설교 말씀들도 그 교리에 짜 맞춥니다.
그러나 여기 계시록에서 예수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이" 라고
명백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신데 그 뜻은 그가 처음부터 끝, 또는 만유의 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이 되시며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는 샤론의 장미이며 골짜기의 백합이며
빛나는 새벽별이며, 의로운 가지이며, 아버지이시며 아들이시고 성령이십니다.
그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일위이신 하나님이십니다.
디모데전서3:16절에서는,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는(하나님은) 육신 안(in)에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가운데 들리우셨음이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 보면 일위(첫 번째) 또는 이위(두 번째) 또는 삼위(세 번째)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육신 안(in)에 나타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위 하나님이십니다.
그 일위 하나님께서 육신 안에 표명되셨습니다.
이 문제는 이걸로 해결이 되리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인간의 형상 안에 오셨습니다.
그렇다고 그게 그를 또 다른 하나님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는 육신으로 표명되신 하나님이며, 동일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에 계시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것은 여전히 계시입니다.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신성은 지금도 비밀(신비)입니다.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 주신 계시로 그가 태초에는 어떤 분이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위대한 여호와께서는 불기둥 속에서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언약의 천사로서 그 불기둥 속에 살았고 매일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는 자신의 강림을 커다란 구름으로 표명하셨습니다.
그리고나서 성경에 예언된 그대로 때가 되어서 하나님은 자기를 위하여 예비하신 처녀에게서
태어난 몸 안에서 표명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막 위에서 거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인간들
가운데서 한 사람으로 거하고자 육의 장막(스케노우=헬라어)을 직접 입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일한 하나님이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몸은 예수님이었습니다.
그 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 안에 거하셨습니다.
그것보다 더 분명하게는 말할 수 없습니다. 자, 그것은 하나님 안의 비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사실은—더 이상 그것보다 분명하게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그가 그 당시에 삼위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셋이 되실 수 없습니다.
그는 일위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이 동일한 하나님께서 육신 안에서 자신을 표명(계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선, "나는 하나님께로서 왔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16장:27-28절에서. 그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죽음과 장사와 부활과 승천을 통해 땅에서 사라지셨습니다.
그 후에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바울에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말씀 하셨습니다.
바울은, "주여 뉘시오니이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나는 예수라" 말씀 하셨습니다.
그는 그 전에는 불기둥, 눈부신 빛이셨습니다. 그는 전에 그가 말씀하신 그대로 돌아가셨습니다. 그가 육의 장막을 입기 전에 취했던 똑같은 형태로 다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것이 요한이 보았던 모습입니다. 요한복음1장:18절에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의 품속에 있는(현재 시제입니다) 독생자가 그를 나타내셨느니라."
요한이 예수님이 어디에 있다고(현재에 말입니다) 말하는 걸 주의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아버지의 품속에 계십니다.
누가복음2장:11절은,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태어나셨습니다. 팔일 후에는 할례를 받고 천사가 그들에게 지시한대로 예수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부모는 제게 윌리엄이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이셨지만 여기
아래 사람들 가운데서 이름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볼 수 있었던 그 바깥 성막은 예수라 불리웠습니다.
그는 영광의 주셨고 육으로 표명된 전능하신 이셨습니다.
그는 아버지이며 아들이며 성령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그런 모든 것입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은 다 불려지는 직함입니다. 그것들은 이름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함이 아니라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런 직함들의 이름입니다.
마치 아들로 태어난 신생아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애기라는 것은 보이는 그대로이고, 아들은 직함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존 헨리 브라운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수천 명의 예수라는 이름이 있고 우리 구주 예수님 이전에도 그런 이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 그리스도로 태어난,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한 사람뿐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 를 주는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그건 모순 아닙니까?
누군가 `아들'이 영원하다고 말하는 걸 들어보신 분 있습니까? 아들들은 시작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결코 시작이 없습니다.
그는 육으로 표명된 영원하신 하나님(여호와)이십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영원하신 말씀에 참되고 충성된 증인이셨습니다.
그는 선지자이셨고 아버지께서 그에게 말하라고 명한 것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성막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시느니라."
하나님은 다른 곳이 아닌 예수 안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직함을 많이 갖고 계십니다. `우리의 의로움' `우리의 평강' `늘 계신 이' `아버지'
`아들' `성령' 등 등...
그러나 그는 인간의 이름은 딱 하나 가지고 계신데 그 이름은 예수입니다.
혼동하지 마십시오. 그는 세 직분 또는 삼중 표명을 가지고 계시는 것이니까요?
이 땅에서는 선지자이셨고 하늘에서는 현재 제사장이시고,
이 땅으로 돌아오시면, 그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전에도 계셨던 이"--그 분은 선지자로 계셨던 예수이십니다.
지금도 계신 이"--그 분은 중보를 하고 계신,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에 동감하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십니다. "장차 오실 이"--그분은 앞으로 오실 왕이십니다.
땅에서는 그는 말씀이셨고--선지자이셨습니다.
모세는 그에 대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백성들 가운데서 끊어지리라." 예수님에 대한 이런 사실들을 잘 보십시오.
이 땅에서 그는 선지자였고 어린 양이었고 아들이셨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그분을 삼위(세 분)로 만들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한 분이신 예수의 표명 또는 직분들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삼위일체론 자들이 신성 안에는 실제로 일위(한 분) 이상이 계신다. 고
주장하며 즐겨 인용하고 있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계시록 5장:6-8절 말씀입니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들이라."
정말로 이 절들은 이 절 하나만 떼어놓고 본다면 그들의 주장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제가 떼어놓고 본 절들이라고 말하는 걸 주의하십시오.
그러나 계시록4장:2-3절과, 그리고 9절-11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이 절을 잘 보시면 보좌에 `일위(한 분)'가 앉아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둘이나 셋이 아니라 한 분입니다).
3절에서 앉으신 이는(여럿이 아닙니다) 벽옥 같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9절에서는 생물들이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여럿이 아님) 영광을 돌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0절에서는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여럿이 아닙니다) 엎드렸다고 말합니다.
11절에서는, 그들이 우리 주 하나님(여러 명의 주가 아님.) 당신이 합당하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또 11절에서 계속해서 보좌에 앉으신 이 일위(한 분)은 "창조주"였다고 말하는데,
그는 곧 구약의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인(창세기1장:1) 예수님이십니다(요한복음1장:3).
거기서 멈추지 말고 계시록3장:21절을 읽어 봅시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또 히브리서12장:2절을 읽읍시다. "우리의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계시록을 쓰신 예수님 자신에 의할 것 같으면, 예수은 아버지와 함께 앉아 계심을 주목하십시오.
그런데 바울 안에 있던 영은(그 영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왜냐하면 이 영은 예언의 영인데
이 영을 통하여 말씀이 오기 때문입니다.) 예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보았을 때 그는 보좌에는 "일위(한 분)"만 계시는 걸 보았습니다.
그런데 앞서 계시록4장:2-3절, 그리고 9절-11절에서 지적했던 보좌에 앉으신 "이"로부터
"어린 양"이 책을 취하는 걸 우리는(시간상 계시록4장:2-3절 후에 따라 나오는) 계시록5장:6-8절 말씀 이전에서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일위(한 분) 하나님"에 대한 비밀입니다. 그는(예수)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고 육신으로
나타 난 바 되었고,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요한이 말한 그대로,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자가 그를 나타내셨느니라." 요한복음1장:18절입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메시야가) 그의 신부를 데리러 돌아와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보이시는
(자신을 알리시는) 때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다시 한 번 인간에게 "다윗의 아들,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이방인 신부들의 신랑"으로서 나타내시기 위하여 나오시는 걸 보게 됩니다.
그것은 "이위(둘)" 하나님이 아니라 단순히 일위(한 분) 하나님께서 자신의 권능을 세 직분들과 직함들로 표명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가 선지자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그 선지자를 통해서만 나올 수 있는 메시야의 징표를 알았습니다.
요한복음1장:44-51절에서,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사람들 속에 있는 마음의 생각들을 분별하는 능력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로 그가 메시야이고,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말씀임을 깨닫게 했습니다.
히브리서4장:12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우물가에 있던 여인이 예수님께서 자기 마음의 생각을 분별하는 걸 들었을 때,
메시야가 그런 위대한 능력으로 알려지리라고 선언하면서 그를 선지자라고 인정했습니다.
요한복음4장:7-26절에서,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 이러라.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 이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성령과 진리 안에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들은 성령과 진리
안에서 예배할지니라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계시록15장:3절 말씀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성도들)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그걸 아시겠습니까? 어린 양, 속죄소(자비의 보좌)에서 우리 죄를 위한 속죄로서 자신의 피를
들고 있는 대제사장은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입니다. 현재 그것이 그의 직분입니다.
그것이 그가 우리 죄를 위하여 그의 피로 변호하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엔가는 그 어린 양은 유다 지파의 사자가 될 것입니다.
그는 능력과 영광 가운데 나와서 왕으로 다스리기 위하여 권세를 취할 것입니다.
그는 이 땅에 장차 오실 왕이십니다. 물론 그가 현재는 왕이 아니란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의 왕이시며 성도들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현재 그것은 영적인 왕국입니다. 그 왕국은 이 세상 체제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나지 않은 것처럼. 그래서 우리의 행동이 세상과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예수가 왕이 되신, 우리가 중생한 세계의 영을 반영합니다.
그래서 우리 여자들은 남자의 옷을 입지 않고 머리를 자르지도 않고, 화장품을 쓰지도 않고
세상이 그토록 좋아하는 다른 것들을 사용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남자들은 술 마시지 않고 담배 피지 않고 죄가운데 빠져 있지도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배는 죄에 대한 지배이며, 이러한 지배는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영 안에
있는 권능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왕국은 무너질 것이지만 우리의 왕국은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일위(한 분)이시고 참된 하나님의 직분들과 표명들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성경 말씀들을 통해 그의 영광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적으로 알려지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성령의 계시로, 영적 계시를 통해서 알려지시는 분이십니다.
육신을 따라 예수로 알려진 이 동일한 분은 불기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돌아와 그의 백성들 가운데 성령으로 거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날 그 불기둥은 내려와서 불의 혀로 갈라져 그들 각자 위에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자신의 영을 믿는 자들에게 부어 주시고 계셨습니다.
자신을 교회 안으로 분리시키고, 그 남자들과 여자들 모두에게 자신의 일부분을 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는 전에 말씀하신 그대로 자신을 그의 교회 가운데 나누셨습니다.
요한복음14절:16-23절에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에게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가룟이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예수님께선 그가 아버지께 기도하여 이미 그들(제자들)과 함께는 있었지만 그들 속에는 있지 아니한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달라고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고 있던 분은 그리스도였습니다. 그 다음에 이십 삼 절에서는,
자신과 아버지를 가리키며, 예수께서 우리가 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런 뜻입니다.
"영이 오리라, 아버지로서 또 아들로서 나타냈었던 그 동일한 하나님의 영이 와서 많은 사람들
속에 나타내리라"--영이신 일위(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거룩한 사람은 교황이니 또는 주교나 목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거룩한 사람은 그리스도,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입니다.
어떻게 감히 평신도들은 말할 권리가 하나도 없다고 성직자들은 선언할 수 있습니까?
각자가 할 말이 있습니다. 각자가 할 일이 있고 각자 다 사역이 있습니다.
성령은 오순절 날 오셔서 각 사람 위에 자신을 갈라 주었습니다.
그것으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한 요한복음14장:20절 말씀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위대하신 자존자(I AM),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참된 교회를 채우려고 영으로 오셨습니다.
그는 원하는 곳엔 어디든지 움직일 권한이 있고 원하시는 자에겐 누구에게든지 임하실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 있는 누구를 "거룩한 자"로 삼지 않습니다.
주의 참된 회중 전체가 성령의 임재로 인하여 다 거룩합니다.
거룩한 것은 회중 전체가 아니라 성령이신 그분입니다.
자 그것은 계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입니다. 구약의 여호와는 신약의 예수님입니다.
아무리 애써 봐도, 삼위일체론의 교리에 초점을 맞추고 말씀을 설명하려고 해봐도,
여러분들은 삼위 하나님이 계심을 증명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는 일위라는 진리를 이해하려면 성령이 주시는 계시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구약의 여호와는 신약의 예수님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도 계시가 필요합니다.
사탄은 교회 안에 슬그머니 들어와 사람들이 이 진리를 보지 못하도록 눈멀게 했습니다.
그들이 눈멀게 되자 로마의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 주는 것을 슬그머니
그만두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삼위 또는 세 부분 안으로 들여 놓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유대인에게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이 따로 따로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유대인은 금세 그 사상이 어디서 유래된 것인지 여러분에게 말해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신조가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채택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이교도라고 경멸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우리들은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합니다. 유대인들도 그 사실을 믿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을 일위에서 삼위로 바꿔놓았습니다.
그러나 저녁 무렵 빛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고 있는 때에
이 진리가 돌아왔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일위입니다. 이 예수는 주요 그리스도입니다.
요한은 계시를 받았습니다. 예수가 그 계시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을 여기 이 성서에 소개하시기를--
"나는(I AM) 전에도 있었고, 이제도 있고, 장차 올 이, 곧 전능한 자라. 아멘"
만약 계시가 여러분들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높이 있다면 위를 보고 하나님께 계시를 달라고
구하십시오. 그게 계시를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계시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와야만 하니까요.
계시는 인간의 지혜나 지식에 의해서나 자연히 부여되지 않고 성령이 부여하심으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성서구절을 암기하고 그게 참 좋다고 생각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라야 합니다. 성경 말씀은 성령에 의하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를 주요, 그리스도라 할 자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받아야만 하며 그 후에야,
성령이 예수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이며, 기름부음 받은 말씀이라는 계시를 주실 수가 있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영이 없이는 하나님의 일들을 알지 못하며 하나님의 영이 계시해 주신 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있는 어떤 것보다도 계시를 위해 더 많이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서를 받아들였고 그 책의 위대한 진리들을 영접했지만 성령에 의한 계시가
그 말씀에 있지 않으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아직도 실제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소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고린도후서 5장:21절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뜻을 아시겠습니까? 그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진정한
의로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그가(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죄를 지었다고 말한 게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어 우리로 그와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면(우리는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우리를
대신하는 대속 물로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또한 우리가
그와 연합함으로써 하나님의 진정한 의가 되었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전자를 부인하는 것은 바로 후자도 부인하는 것입니다. 전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후자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부인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계시가 빠져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 대다수에게 그다지 실감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성서에 있는 좋은 구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씀이 우리에게 살아있는 말씀이 되게 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성령의 계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성령으로부터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 말씀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을 기록하게하신 성령께서 여러분들에게 계시로 깨달게 하시기전까지는,
그 말씀을 여러분의 마음에서 소생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기에, 또한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너무나도 뜨겁게 사랑하시기에 하나님께서 그분이 원하시는 시간에
여러분 모두에게 계시로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살롬~
***윌리엄 매리언 브래넘 형제님이 전한 1,000여개의 설교집 중에 일부는
한국어로 번역되었으며, 그 중 일부는 한국어로 통역된 설교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곳 자유게시판에 올리는 글들은 그분의 설교 메시지에서 일부 발취해서 올리고 있으며,
보다 많은 메시지들을 알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 사이트를 방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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