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틸리히의 비존재와 바르트의 무성에 대한 논의를
다룬 논문 하나가 출판된 것을 보았습니다.
꼼꼼히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이 논문이 깊이가 있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틸리히와 바르트의 무성에 대한 논의는 결국
다시 헤겔과 하이데거의 철학이라고 하는 열쇠를 통해서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 신학에 있어서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이 제공한 논의 가능성은
지대합니다.
하이데거를 무신론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결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카톨릭 사제가 되기를 꿈꾸었고
바르트, 몰트만, 융엘, 틸리히와 같은 수많은 현대 신학자들이
그 사상으로부터 신학적 해결에 대한 중요한 열쇠를 받아들였던
하이데거는 언제나 "오직 신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라고 말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하이데거의 존재론 논의에서
인간 현존재는 "무"로 될 수 있는 불안 앞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왜 존재이고 오히려 무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무인 것이 존재인 것 보다는 훨씬 쉬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에서 하이데거는
존재가 존재되는 것 앞에서 무는 무화되고 만다는 표현을 합니다.
융엘은 이것을 받아들여 우리의 존재가 존재되도록 떠받치는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는 무가 아니고 존재임을 설명합니다.
우리는 불안앞에 서는 존재입니다.
끝없이 우리를 무화시킬 수 있는 요소는 산재해 있습니다.
무언가가 되는 것 보다는 되지 않는 것이 더 쉬워 보입니다.
누가 우리의 존재를 떠받치고 있는 것일까요.
무일 수 있는 불안으로부터 우리의 존재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령이십니다.
이것을 알때 우리는 무로의 불안 앞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