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원자력발전은 석탄화력발전 등 타 에너지원에 비해 기후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주장이 널리 퍼져있다. 반면 원전은 오히려 기후변화에 취약하기 때문에 대안에너지로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몇 년 전부터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질수록 가뭄과 홍수, 냉각수 부족, 해수면 상승 등 이상 현상이 원전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례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지난 2018년 유럽 지역 일부에서는 냉각수 온도 상승과 격납건물 안전 요인으로 인해 원전 가동률을 낮추거나 발전을 정지한 바 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유럽 지역 원전의 냉각수 문제는 종종 매스컴에 오르내린다. 극한의 조건에서 원전의 안전한 가동이 가능할까.
1. IAEA의 원전 운영 외부 위험 요인
2003년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전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위험 요인으로 △대기와 해양의 온도(Temperatures of the air and the sea) △바람의 패턴과 빈도, 폭풍우(The patterns, frequency and storminess of winds) △수위 상승 등 강수 특성(The characteristics of precipitation such as higher peak levels) △해수면 상승 및 이상 현상(Rises and anomalies in sea levels) △하천의 유량(The flow rates of rivers) 등을 언급한 바 있다.
이후 IAEA는 2018년 <기후변화와 원자력발전(Climate change and nuclear power)>에서 이 같은 유형들을 ‘점진적 기후변화(Gradual Climate Change, GCC)’와 ‘극단적 기상 사건(Extreme Weather Events, EWE)’ 두 가지로 분류하고, 적응 방식을 제시했다. 전자는 후자 대비 점진적인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점진적 기후변화(GCC) 카테고리에는 △높은 평균 온도(Higher mean temperatures) △평균 강수량 감소(Lower mean precipitation) △해안 및 건조 지역 주변 강풍의 빈도 증가(Increased windiness near coasts and dry areas) △해수면 상승(sea level rise) 등이 포함됐다. 구체적으로 냉각 효율성이 줄어들거나 냉각수 온도 상승, 유량 감소는 발전소 출력 감소 및 가동정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해안에 위치한 원전의 경우 염분으로 인한 장기 부식 및 장비 오작동 유발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두 번째 유형인 극단적 기상 사건(EWE)은 폭염과 극서, 강우, 가뭄, 강풍 및 폭풍 등이다. 원전은 과거 데이터에 기반해 이 같은 사건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미래에 발생할 사건의 심각성을 예측하는 데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이다. IAEA는 “기존 원전은 단적인 기상 사건에 취약해질 수 있으며 향후 부지 및 설계는 변화하는 기후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운전 허가 요구 사항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정돼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2. 이상고온과 냉각수(온배수)
발전소, 산업단지 등에서는 장비의 과열을 식히기 위해 다량의 냉각수가 필요하다. 원전에서 사용되는 냉각수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원자로에서 우라늄 핵분열로 만들어진 열에너지를 전달받는 1차 냉각수와 증기발생기를 통과하면서 증기로 변환돼 터빈을 돌리는 2차 냉각수, 터빈에서 배출되는 증기를 다시 물로 응축시키기 위한 3차 냉각수가 있다.
3차 냉각수의 경우 해안가 주변에 위치한 원전은 바닷물을, 내륙은 강물이나 호수, 저수지 물을 사용한다. 3차 냉각수는 취수할 때보다 6~7℃ 정도 올라간 상태에서 배출되는데 이를 온배수(thermal discharges)라 부른다. 100만kW급 가압경수로(PWR) 기준 원자로 1기에서 초당 약 50~60t의 냉각수가 배출된다. 냉각수 온도 규정과 온배수 관련 규제 기준은 국가마다 상이하다.
온배수는 취수 전에 비해 따뜻해진 상태로 해양에 배출된다는 점에서 수산업적 피해와 해역 온도 상승, 나아가 해양에 흡수됐던 이산화탄소가 다시 대기로 방출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그동안 논란이 됐다. 즉 온배수는 ‘열오염(thermal pollution)’이라는 것이다. 유엔해양법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에서는 에너지의 해양유입을 오염의 한 형태로 보고 있다.
원전이 기후변화에 취약하다는 이유 중 한 가지는 다량의 냉각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냉각수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강 주변 혹은 해안에 위치할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두 가지 문제점을 유발한다. 첫 번째 냉각수 부족 문제와 함께 폭염 등에 따른 수온 상승 영향에 따른 발전소 가동 중단 사태. 두 번째는 지구온난화 심화에 따라 해수면 상승과 빈번해지는 허리케인, 홍수, 쓰나미로 인한 위험이다.
3. 여름마다 반복되는 원전 출력 줄이기
기록적인 폭염이 유럽을 휩쓸었던 지난 2018년. AP통신 등에 따르면 8월 4일(현지시간) 프랑스전력공사(EDF)는 라인강과 론강 인근에 위치한 4기의 원전을 정지시켰다. 원전이 냉각수로 사용할 수 있는 하천의 온도와 수량은 제한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규제 기준 이상의 뜨거운 온배수가 하천에 배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독일도 폭염으로 인한 하천수 온도 상승으로 그론데 원전과 브로크드르후 원전의 출력을 낮췄고, 스위스도 하천 생태계와 원전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뮬베르그 원전의 출력을 89%로 줄였다.
가뭄으로 인해 강의 수량이 줄어 냉각수가 부족해지거나 기온이 일정 수준 이상까지 치솟으면 냉각수로 적합하지 않은 온도로 변하게 되고 원자로 출력을 줄이거나 가동을 중지해야 한다. 또 수온이 일정 기준 이상 상승하면 어류가 집단 폐사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폭염 속에서 원전 가동으로 데워진 냉각수가 방출될 경우 상황은 더 악화된다.
2003년에도 기록적인 폭염으로 유럽에서는 사망자가 속출했다. 당시에도 독일과 프랑스 지역 일부 원전은 폭염 영향으로 가동률을 낮추거나 냉각수 부족 등으로 문제를 겪었다. 프랑스 규제기관은 원전 냉각기능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17기를 대상으로 가동 중지 권고를 내렸다.
눈여겨볼 점은 당시 프랑스 정부가 일시적으로 온배수 규제 온도를 24℃에서 30℃로 상향했다는 점이다. 온배수 기준 온도를 그대로 유지하게 될 경우 가동 중단 혹은 원자로 출력 감소로 인해 전력 공급량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미국 내륙의 원전 입지 지역에서는 물 공급 문제를 둘러싼 법적 분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캐롤라이나(Carolinas)주의 카타우바(Catawba)와 조지아(Georgia)주 및 플로리다(Florida)주의 아팔래치콜라(Apalachicola)·채타후치(Chattahoochee)·플린트(Flint) 강 유역 등이 그 예다.
올해도 전 세계는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프랑스 EDF는 최근 브리핑을 통해 이상고온 현상으로 가동률을 낮춰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프랑스 남부 지역의 경우 강물 온도 상승과 가뭄이 겹치면서 충분한 양의 냉각수가 부족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