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이 시릴 때 (KOAMI 2011년 1월호)
손발이 뜨거워 고생을 하는 사람도 많지만, 의외로 손발이 시려 고통 받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이렇게 추운 겨울이 되면, 아예 외출하기조차 겁이 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필자의 경우도 예전에는 눈 속에서도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돌아다녔을 정도로 열이 많은 체질이었지만, 나이를 조금씩 먹으면서 양기가 줄어들어, 이제는 그 정도로 열이 많이 느껴지지는 않아서, 가끔이 손발이 시린 것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한 사람들은 한 여름에도 두꺼운 내복과 양말을 신어야만 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정도가 심하게 손발이 시린 경우에 대해 알아보자.
배가 차면 손발도 차다
손발이 시린 경우 중에서 가장 많은 경우를 차지하는 것은 역시 배가 차가운 것이다. 사람 몸의 배는 뿌리에 해당되고 손발은 가지 끝의 이파리로 비유할 수가 있다. 즉, 배에 있는 보일러의 화력이 약하면 손발까지 온기가 제대로 가지 못하게 되므로 손발이 시려지는 것이다. 손발이 시릴 때 직접 손발에 불을 쬐는 것보다 따뜻한 국물을 먹어 배속이 뜨뜻해지면 자동적으로 손발까지도 따뜻해지는 것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또한 식사 때를 놓쳐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면 허기가 들면서 손발이 싸늘해지는 것을 경험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배에 충분한 양기가 공급되지 않으면, 이로 인해 추위를 느끼는 경우가 바로 이에 해당된다. 이렇게 배가 차가와지는 이유도 매우 다양하다. 물론 찬 음식을 너무 많이 먹거나 배를 차갑게 노출시키는 경우에도 배가 차가와지지만, 과도한 부부관계나 비뇨생식계통이 약해져서 단전이 차가와지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성기능이 떨어지거나, 여성의 경우 생리불순 또는 생리통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심한 경우에는 나아가 불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일찍이 남자건 여자건 간에 배가 차면 자손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는 말이 나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장기능이 약해져 배탈 설사가 나거나 대변이 시원치 않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로부터 배탈이 나면 배를 뜨뜻한 아랫목에 대고 지지는 방법을 택하는 것도 다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이러한 경우 배를 따뜻하게 해주는 한약을 쓰거나 배에 뜸을 떠주는 치료법도 효과적이다. 자연스럽게 손발까지 따뜻해지기 때문에, 한의원 치료가 매우 효과적이다.
순환이 안 되도 손발이 차다
손발 자체에 순환이 안 되는 경우에도 손발이 시리다. 이러한 경우 서양의학에서는 레이노드증후군이라고 하는데, 기혈순환이 좋지 않거나 몸에 노폐물이 너무 많이 쌓였을 때도 나타난다. 운동을 해서 순환장애가 해소되면 다행이지만, 운동을 해도 좋아지지 않을 때는 순환을 도와주는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특히 산후에 제대로 조리를 하지 못해 수족냉증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산후풍 치료를 해줘야만 한다. 산후에 함부로 목욕을 하거나 찬바람 쐬는 것을 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시적으로 순환이 잘 되지 않는 경우에는 간단한 침구치료로도 회복시킬 수가 있지만, 증상이 심하거나 오래된 경우에는 한약치료를 병행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여러 가지 원인에 따라 치료방법도 다 달라지므로, 무턱대고 아무렇게나 시도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전문가인 한의사의 진단을 받고 치료에 임하여야 할 것이다.
무조건 따뜻하게 하면 안 되는 경우
손발이 시리다고 해서, 무조건 따뜻하게 하는 치료를 하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손발과 몸 아래는 차갑고 반대로 머리와 가슴 위쪽은 뜨거운 경우를 말하는데, 이럴 경우에는 치료가 훨씬 까다롭다. 당연히 아래는 따뜻하게 해주어야 하지만, 반대로 상부는 시원하게 해주어야 하기에, 치료법이 무척 까다로운 것이다. 이 때 집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반신욕이다. 한의학적인 치료법 중에 ‘水昇火降(수승화강)’이라는 말이 있는데, 글자 그대로 차가운 기운은 위로 올려주고 따뜻한 기운은 아래로 내려준다는 뜻이다. 원래 가만히 내버려두면 차가운 기운은 내려가고 뜨거운 기운은 올라가게 되어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인체에서도 몸의 기능이 나빠지면 이렇게 한쪽으로만 차가운 기운이 몰려가게 되는 것이다. 아래쪽으로 차가운 기운이 몰려가기 때문에, 손발이 시리거나 저린 경우들이 나타난다. 또한 배가 차서 소화가 안 되거나 배탈이 나기 쉽고 생리불순이나 생리통이 나타나기도 쉽다. 이러한 증상이 나타날 때 이렇게 수승화강요법을 하게 되면, 인체 내에서 저절로 순환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마치 적도에서 뜨거운 공기가 올라가서 북쪽으로 이동한 다음에 차가와지면, 다시 내려오는 순환현상이 일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하겠다. 만약 여건이 허락하지 않으면 우선 족욕으로 대체해도 좋다. 옛날 조선시대 우리 임금님들도 족욕을 무척 선호했다고 한다.
부자(附子)이야기
필자의 외증조부는 부자를 드시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마도 열이 많은 체질이었는데, 닭고기와 함께 잘못 드시고 돌아가셨던 것 같다. 실제로 옛날에는 사약의 재료로도 쓰였다고 한다. 사약을 먹고 약기운이 잘 돌게 따뜻하게 했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부자는 매우 뜨거운 독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통 한의원에서 부자를 즐겨 처방하지는 않는 편인데, 필자의 경우에는 냉증 환자에게 많이 처방하는 편이다. 심한 냉증 환자들의 경우에는 부자 정도는 써야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 한 여름에도 내복을 입고 사는 분들의 경우에는 인삼 황기 등의 약성으로는 모자랄 때가 있다. 너무 장기간 먹는 것 같다고 걱정하는 분이 있어, 부자 대신에 인삼 황기를 넣었더니 전혀 효과가 나지 않는 경우도 경험했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수족냉증이 있는 환자 분에게 충분한 설명을 한 후에, 부자가 들어간 처방을 사용하였다. 부자가 성질이 강하긴 하지만, 꼭 사용할 때는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초에 필자의 일가족 세 명이서 해맞이여행을 갔었는데, 그만 여행지에서 감기에 걸려버렸다. 평소 건강을 자신하다가 이번에 아주 제대로 고생을 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매우 심한 오한을 경험했다. 방바닥 온열매트 온도를 뜨거울 정도까지 높이고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썼음에도 불구하고 추위가 가시지를 않았다. 여행지라서 치료를 제대로 안했더니, 한기가 몸속 깊숙이 들어가 버린 터였다. 급기야 생애 최초로 부자처방을 복용하였더니, 그제야 추위가 물러나고 따뜻해졌다. 평소 몸에 열이 많은 필자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인데, 부자를 써야 할 정도로 한기가 심했던 것이다.
이렇게 설령 독약이라 하더라도 체질과 증상에 맞게 쓰면 보약이라는 말이 딱 맞는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한약을 쓸 때는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이 필수라고 할 수 있는데, 만약 다른 사람이 먹고 효과 봤다고 무턱대고 먹었다가는 크게 건강을 해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가까운 한의원이나 주치 한의원으로 찾아가 정확한 진단을 받고 한약을 복용해야만 한다. 이 밖에 척추이상(경추인 경우는 손, 요추인 경우는 발)으로 오는 경우도 있고, 각종 말초혈관이나 신경장애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한방치료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으니, 불편한 사람은 가까운 한의원을 찾아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