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담가 龍潭歌
◎ 용담가는 경신년(1860) 4월 5일 하늘님으로부터 도를 받고 한 달이 채 안 되어 지으신 글이다. 먼저 고향이면서 도를 받은 고을 경주에 대하여, 그 자연과 문화의 아름다움을 찬탄하신다.
1 우리나라의 이름은 조선이요, 우리 고을의 이름은 경주로다. 우리 고을에 있는 성의 이름은 월성이요, 흘러가는 물의 이름은 문수로다. 그 옛날 왕들이 이곳을 도읍으로 삼아 일천 년을 이어가지 않았던가? 동쪽의 도읍인 경주는 옛 나라인 신라의 도읍이고, 한양은 새 나라인 조선의 도읍일세. 우리 동방에 나라가 생긴 후에, 경주와 같은 도읍이 또 있는가? 물의 형세도 좋거니와 산의 기운도 좋을시고. (황금 자라라는 뜻의) 금오산은 우리 고을 남쪽에 있는 산이요, (거북이 꼬리라는 뜻의) 구미산은 서쪽에 있는 산이다. 봉황대의 높은 봉우리는 봉황이 날아가서 빈터로만 남아 있고, 첨성대 높은 탑은 아직도 달과 별을 지키고 있고, 푸른 구슬과 노란 구슬로 만든 암수 한 쌍의 피리는 일천 년의 역사를 가졌던 신라의 소리를 지켜 내고 있다.
◎ 옛 도읍 경주에 대한 찬탄이 이어진다.
2 어화, 세상 사람들아, 이렇게 아름다운 옛 도읍의 경치를 구경하소. 고을의 동쪽에 있는 세 개의 산은 신선이 살고 있지 않다면 이상하다. 서쪽에는 고을을 품어주는 으뜸가는 산이 있으니, 공자와 맹자 같은 학문의 풍속이 어찌 이곳에 없겠는가? 훌륭한 인물은 땅의 신령한 기운을 타고 태어난다고 하니, 밝고 어질며 총명한 선비가 어찌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겠는가? 더구나 구미산은 동쪽 도읍인 경주에서 으뜸가는 산이 아닌가? 곤륜산 산맥 하나가 뻗어 내려 중국 문화가 생겨났고, (또 한 갈래는) 우리 동방으로 뻗어 내려 구미산이 되었으니, 여기서 우리나라의 문화가 꽃피었구나. 어화, 세상 사람들이여, 나도 또한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이처럼 아름다운 옛 도읍 강산을 보전하여, 세세토록 자손만대에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 구미산 아래서 일가를 이루었던 선조의 훌륭한 모습을 찬탄하고, 사십 평생을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탄식하신다.
3 기이하고 장엄하구나, 기이하고 장엄하구나, 구미산 기운이 기이하고 장엄하구나. 거룩한 가암 최씨에게 복과 덕을 주는 산이 아닌가? 구미산이 생긴 후에 우리 선조가 나셨구나. 산의 음덕인가 물의 음덕인가, 나라를 위하는 충신(정무공 최진립 장군)의 모습이 장하시도다. 가련하구나, 가련하구나, 우리 아버님이 가련하구나. 아버님은 구미산 용담의 빼어난 경치 속에서, 도덕과 문장을 닦으셨네. 산과 물의 좋은 기운을 받으셨건마는, 출세하여 이름을 날리지 못하시고, 구미산 기슭에 정자 하나를 지어 용담정이라 이르고, 그곳에서 글이나 읽고 사는 평범한 선비가 되어 다음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네. 가련하구나, 가련하구나, 우리 집안 운수가 가련하구나. 나도 또한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님께 죄를 지은 것이 아닌가? 불효를 못 면하니 세상 다하도록 슬프고 울적한 일이 아니겠는가? 때를 잘못 만난 사나이로서 헛되게 세월만 보냈구나. 사람이 살아가면서 해야 하는 모든 일들을하다 보니,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느덧 마흔 살이 다 되었구나. 사십 년을 살아온 평생이 겨우 이 모양인가? 이제 와서 어쩔 것인가? 어쩔 수가 없구나.
◎ 기미년(1859) 늦가을에 가족들과 함께 용담정으로 돌아올 때의 상황과 심경을 말씀하신다.
4 구미산 용담을 찾아오니, 흐르는 것은 물소리요, 높은 것은 산일세. 좌우로 산과 냇물을 둘러보니 산과 물은 옛날과 같고 풀과 나무는 정을 품고 있으니, 불효한 나의 마음이 그 아니 슬프겠는가? 까마귀와 까치는 날아들어 나를 조롱하는 것 같고, 소나무와 잣나무는 울창하게 자라 맑은 절개를 지켜 내니, 불효한 나의 마음에 슬픔이 절로 일어난다. 가련하다, 나의 아버님이여. 아버님의 음덕으로 후손의 경사는 없을 것인가?
◎ 경신년(1860) 4월 5일 용담(와룡암)에서 도를 받던 상황을 간결하게 말씀하신다.
5 아내와 자식들을 불러 타이르면서 그럭저럭 지냈는데, 하늘님의 은혜가 가없는가. 글로 어찌 기록할 수 있으며, 말로 어찌 표현할 수 있겠는가? 경신년 사월 초오일에 만고에 없는 다함없이 큰 도를 꿈인 듯 생시인 듯 받았구나. 기이하고 장하구나, 기이하고 장하구나, 나의 운수가 기이하고도 장하구나. 하늘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네. 『세상이 열리고 난 지 오만 년이 지났지만, 그대 같은 사람을 만나기는 처음이다. 나도 세상이 열리고 난 다음 (나의 뜻을 이루고자) 노력했으나 아무런 공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대를 만나서 공을 이루게 되었다. 나도 공을 이루게 되었지만, 그대도 바라던 뜻을 얻게 되었으니, 이또한 그대 집안의 운수로구나.』
◎ 도를 받은 감격과 기쁨을 말씀하신다.
6 이 말씀을 듣고 나서 나는 마음속으로 홀로 기뻐하며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어화, 세상 사람들이여, 다함없는 운수가 닥친 줄을 그대들이 어찌 알겠는가? 기이하고 장하구나, 기이하고 장하구나, 나의 운수가 참으로 기이하고 장하구나. 산수가 빼어난 구미산의 좋은 경치에서 다함없이 큰 도를 닦아내니, 오만 년을 열어 갈 운수로구나. 만세에 으뜸인 장부로서 좋을시고, 좋을시고, 이내 신명 좋을시고.
◎ 도를 받은 기쁨을 구미산의 경치로 표현하신다.
7 구미산의 좋은 풍경이 온갖 사물의 형태로 생겼다가 (하늘님께 도를 받는) 나의 운수를 맞이하였구나. 나뭇가지 가지마다 나뭇잎 잎마다 좋은 풍경을 미덕이 있는 사람이 즐기는 것 아니겠는가? 온 하늘 아래에 있는 명승지로 첩첩한 골짜기와 수많은 봉우리, 기이하게 생긴 바위와 괴상한 돌들이 산마다 이렇게 아름답겠으며, 억조창생 수많은 사람들이 사람마다 모두 다 나와 같겠는가? 좋을시고, 좋을시고, 나의 신명 좋을시고. 구미산의 빼어난 산수풍경이 아무리 좋다 해도 내가 아니면 이렇게 좋을 수 있겠으며, 내가 아니면 이렇게 아름다운 산수풍경이 우리나라에 있겠는가?
◎ 도를 받은 감사함을 구미용담에 대한 애정으로 표현하신다.
8 나도 또한 신선이라 이 세상을 떠나 하늘로 간다해도, 그곳에서조차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나의 선경 구미용담 같은 곳은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다. 천만 년이 지나가도 나는 구미용담을 잊지 않겠다고 맹세하지만, 무심한 구미용담이여, 내가 잊기도 전에 그대가 먼저 무너져 평지로 변할까 봐 애달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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