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권상진 글]
만호가 고향에 돌아와 식당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들과 함께 그를 보러 가는 차 안에서 나는 자못 설레었다. 만호는 고교시절 나와 각별한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였다. 물오른 푸른 잎맥 같았던 시절에 헤어진 친구를 단풍잎 메마른 노안의 늙은이가 되어 만나러 가고 있다니, 강산이 바뀌어도 몇 번이나 바뀌었을 세월이었다. 그 친구 만호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공부하느라 항상 지쳐 있던 나와는 달리 뭔 걱정이냐는 듯 늘 행복한 표정으로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던 그 시절 만호의 모습이 차창에 자꾸 어른거렸다.
만호는 고3 때 같은 반이었다. 그는 힘도 세고 노래도 잘 했다.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매를 가진 만호는 싸움에서 져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약한 아이를 괴롭히거나 폭력적이지는 않았다. 그는 호탕하고 서글서글했으며 쉬는 시간이면 교단 앞에 나가서 한쪽 다리로 박자를 딱딱 맞춰가며 트롯풍의 가요를 신나게 불러제끼곤 했다. 노래를 얼마나 잘하는지 다른 반 아이들이 일부러 구경 오기까지 했다.
어느 날 담임선생이 만호를 내 옆자리에 앉혔다. 그리고는 나더러 만호의 공부를 도와주라고 했다. 만호가 성적이 모자라 졸업 못할 수도 있으니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였고, 만호 성적이 올라야 학반 평균성적이 올라갈 거라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지금 생각하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전매청 고위직에 있던 만호 아버지는 학교에도 가끔 나타나시곤 했는데, 아마 장남인 만호가 학업에 뜻을 보이지 않는데다 맨날 엉뚱한 짓만 하고 다니니 담임선생에게 뭔가를 특별히 부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만호와 나란히 앉게 된 나는 서먹서먹하던 처음과는 달리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친해졌다. 만호는 의외로 내 말을 잘 들었다. 수학이나 영어는 기초를 놓쳐서 힘이 들었지만 암기과목은 시험을 앞두고 외우게 하거나 중요한 부분은 내가 질문을 하여 꼭 기억하게 했다. 그래선지 만호의 성적이 조금씩 올라가서 만호도 선생님도 좋아했다.
나 또한 만호 도움을 받았다. 내게는 만호가 호위무사처럼 든든했다. 가끔 학교 안팎에서 나를 괴롭히던 덩치 큰 녀석들도 만호와 함께 다니는 나를 본 뒤부터는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고3 마지막 학기는 만호와 한 집에서 기거를 하게 되었다. 만호 아버지는 장남의 면학을 위해서 영선못 근처에 한옥 한 채를 전세 내었고, 거기에 함께 있으면서 나더러 만호공부를 좀 보아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신기하고 좋았다. 아담하고 조용한 나만의 방도 생겼으니 만호를 달래서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바람이었을 뿐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만호는 내 말을 듣는 척 하다가는 늘 엇나갔다. 밤이면 자주 여학생을 만나러 나갔고 극장에도 뻔질나게 다녔다. 만호에게 반해서 따라다니는 여학생들도 많았다. 그 중 몇몇은 우리의 자취집으로 찾아오곤 했는데, 나중에 그의 부인이 된 안 여사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나는 만호에게 부디 몇 달만이라도 정신 차리고 공부하자고 회유도 하고 잔소리도 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였다. 결국 그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그 후 나는 그를 만나지 못했지만 고향에 내려올 때마다 간간히 그의 소문은 들을 수 있었다. 만호가 낭랑악극단에 들어갔다더라. 무대에 한번 서 보는 게 소원이라며 그곳에서 잔심부름을 하면서 지낸다더라. 그러다 만호가 중장비기술자 자격증을 따서 사우디로 돈벌러갔다는 소문이 들렸다. 돈을 모아서 자신의 곡을 취입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 만호가 어느 작곡가한테서 곡을 받아 레코드판을 내고 가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들은 만날 때마다 ‘현풍의 김가수’ 만호 얘기를 빠뜨리지 않았다. 현풍의 아가씨들이 만호 손 한 번 잡아보는 것이 영광이라고 할 만큼 한때 만호는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에 들리는 소문은 안 좋은 소식뿐이었다. 술과 담배를 좋아하던 만호가 심근경색으로 가슴을 여는 큰 수술을 했다는 얘기는 이태 전에 들은 소문이었다.
만호네 식당은 현풍읍내에서 좀 떨어진 아름다운 계곡 초입에 있었다. 마당이 너른 아담한 시골집이었는데, ‘초곡묵집’이라는 간판이 대문 나무기둥에 고풍스레 새겨져 있었다. 마당으로 들어오는 차를 바라보며 담배를 태우고 있던 한 노인. 나는 처음에 내 눈을 의심했다. 저 사람이 만호라고? 우리를 보고 빙긋 웃는 저 사람이? 자세히 보니 진짜 그였다. 병을 앓았다던 그는 우리보다 십년은 더 늙어보였다.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만호에게 달려가 손을 잡았다. 나를 알아본 만호의 눈시울이 금세 축축해졌다. 내 마음에서도 뜨거운 뭔가가 울컥하고 올라왔으나 내 손은 나도 모르게 그의 손에 있는 담배부터 빼앗았다.
“이 사람아, 심장이 안 좋다는 사람이 담배를 왜 피우나!”
그때 그의 부인 안 여사가 나와서 일행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단발머리 소녀였던 그녀도 세월의 힘을 피하지 못했는지 머리가 희끗희끗했다. 방에는 이미 닭백숙과 음식들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술잔이 돌고 유쾌한 웃음과 서로의 근황들이 오고갔다. 식사를 끝낸 우리는 마치 수순에 당연히 있다는 듯이 만호의 노래를 청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 현풍가수 김만호 노래는 듣고 가야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만호는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우리를 그의 음악실로 안내했다. 본채 옆에 있는 컨테이너 하우스가 그의 아지트였다. 수백 장의 엘피판들이 벽의 한쪽을 채우고 있었고 낡은 전자오르간이 방 한 구석에 세워져 있었다. 우리는 좁은 공간에 빙 둘러앉아 비로소 가수친구의 라이브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가슴에 비만 온다’는 그의 데뷔곡도 처음 들어보았다. 낮고 굵은 목소리가 멜로디를 타고 내 귀에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목소리는 역시 그때의 만호다웠다. 나는 소리 없이 혼자서 웃었다. 예전에 나는 만호의 노래라면 지치도록 많이 들었었다. 그땐 노래 그만하고 공부 좀 하자 어쩌자 하면서 잔소리도 많이 했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나도 그의 노래를 꽤 좋아했던 것 같다.
‘봄날은 간다’도 한번 불러봐라. 일행 중 누군가가 곡을 청하자 만호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눈을 감고 목을 비스듬히 꼬면서 부르는 만호의 얼굴에는 굵고 가는 주름들이 천천히 누웠다 일어선다. 마치 봄바람에 살포시 누웠다 일어서는 풀잎처럼. 어쩌면 저렇게 자연스럽고 한결같을까. 예전에도 저랬었다. 그 어떤 근심 걱정도 없는 평화롭고 행복한 표정. 사람이 살면서 어째 안 좋은 적이 한 번도 없을까마는 내가 본 만호는 늘 저랬다. 하긴 근심걱정이 없으니 얼마나 자유로운 영혼이었겠는가. 만호가 다 함께 부르자는 수신호를 하자 우리도 하나 둘 입을 모아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음정은 제각각이지만 옛 노래를 옛 친구와 함께 부르니 마음은 청춘의 그때로 돌아간 듯 신나고 즐거웠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서에 봄날은 간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파안대소를 했다. 마른 단풍잎 같은 얼굴의 검버섯들이 꽃처럼 환하게 피어올랐다.
[편집자 주]-권상진 회장이 너무나 멋진 솜씨를 발휘하여 창작한 가히 명문(名文)이라 자랑할 만한 소싯적 추억담이 소중하여 단 한 군데도 손을 대지 아니한 그대로 실었습니다.
첫댓글 권사장 주옥같은 글 잘 읽었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