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덕포구를 찾아서(2010. 봄)
지인들과 함께 봄날의 손님이 되어 그 빛깔에 호흡하는 모습을 느꼈다. 계절만큼이나 지천에 형형색색의 꽃들이 수를 놓느라 분주하다. 겨울 내내 깡말랐던 나뭇가지에서 생명력을 과시하듯, 피어난 꽃잎들이 봄을 맞이했다.
망덕포구의 봄도 내 어릴 적의 향기로 맴도는 것이다. 옛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그 향기에 절로 취하고 만다. 친구가 나를 부르지 않아도 그 소리는 푸른 섬진강 하구의 언저리에서 환영처럼 맴돌았다. 망덕포구는 섬진강 발원지 전북 진안에서부터 곡성 압록으로 굽이굽이 이어져 흘러 전남 광양에 있는 망덕까지 흘러 포구를 만든 곳이다. 망덕포구 바로 앞에는 작은 동산이 있는데 그곳이 배알섬이다. 역사와 유래가 깃든 아담한 섬이다.
내 고향과 가까운 곳이다. 옛날에는 나룻배가 있어서 태인도에 사는 사람들은 나룻배를 교통수단 삼아야만, 망덕포구에 올 수 있었다. 지금은 광양제철소가 태인도에 펼쳐져 있으며 다리가 연결되어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을 뿐이다. 배알섬은 해수욕장 역할도 했다. 여름방학 땐 으레 배알섬 해수욕장에서 튜브를 타고 놀았다. 태인도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면 망덕포구에서 나룻배를 타고 배알섬에 모래밭 길을 걸어서 갔다. 지금은 백사장에 사람들은 간데없고 푸른 수목들만 버팀목처럼 기다리고 있다. 세월의 뒤안길에서 격세지감을 느꼈다.
섬진강 건넛산 언저리에서 해변도로를 만드는 길을 닦느라 산들이 신음하는 소리가 귓전에서 맴도는데 현실을 대신하는 억지 몸부림의 섬진강은 탁류 되어 흐르고 있다. 공사가 빨리 마무리되어 옛 모습처럼 맑은 강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예전 모습만은 못하겠지만, 그저 바라만 봐도 편안했던 포구의 모습을 품은 풍경을 상상해 본다. 구불거리는 산능선의 자연과 강물이 하나 되어 명경지수를 감탄하게 했던 또 다른 사계절의 풍경이 그리워졌다.
망덕포구에는 윤동주 님의 시비가 친필로 새겨져 방문객을 맞이하며 푸른 섬진강과 마주하고 있다. 오랜 세월 속에 묻혔던, 시집 ‘하늘과 바람과 시’ 유고집이 윤동주 시인의 친구인 정병욱 교수의 고향 집에서 숨겨 보존되었다. 정병욱 교수의 모친께서 마룻바닥 아래 고이 간직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까지 주옥같은 시어들이 살아 꿈틀거리겠는가! 그 덕분에 윤동주 님의 시는 더욱더 빛나고 있는 것이리라.
윤동주 님의 (별 헤는 밤)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낭송해 본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중략~~~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 할거외다."
사람은 살아가는 자체가 고행이라고 했던가? 그렇지만 우리는 변하지 않는 자연의 이치에서 살아간다. 자연을 잘 맞이하고 보내면서 나의 삶에도 늘 새로운 도전을 하리라 다짐했다. 오늘도 내 마음에 찬란히 빛나는 별들을 헤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