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을 올릴 수도, 노를 저을 수도 없을 때…"두려워 말라, 나다"
제자들은 먼저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떠났다.
예수는 뒤따라온 군중을 돌려보낸 뒤 갈릴래아(갈릴리) 호숫가의 산으로 올라갔다.
홀로 기도를 하기 위해서였다.
제자들이 탄 배는 뭍에서 멀어져갔다.
예수는 저녁때가 됐는데도 혼자 그곳에 있었다.
이스라엘의 갈릴리 호수 위로 새들이 날고 있다. 2000년 전에도 저렇게 아름다운 노을이 갈릴리 호수를 적셨을 터이다. [중앙포토]
물 위를 걷는 예수…두려워 말라
예수는 왜 산에 올랐을까.
저녁 무렵뿐만 아니었다.
새벽녘에도 홀로 산에 올라가 기도를 하곤 했다.
고요한 시간, 고요한 공간을 뚫고 예수는 기도를 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태오 복음서 6장 10절).
이것이 예수가 올렸던 기도의 골자였다.
하늘이 땅이 되는 일, 땅이 하늘이 되는 일.
그래서 둘이 하나가 되는 일.
그것이 예수의 기도였다.
갈릴래아 호숫가를 걸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노을이 파스텔처럼 호수와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윽고 어둠이 내렸다.
멀리 나갔던 배들도 등을 켠 채 하나둘 부두로 돌아오고 있었다.
당시 제자들이 탄 배는 갈릴래아 호수 어디쯤을 가고 있었을까.
마태오 복음서에는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라고 기록되어 있다.
제자들이 탄 배가 이미 호수로 떠나버리자 예수는 물 위를 걸어서 그들에게 갔다. [중앙포토]
요한 복음서에는 “스물다섯이나 서른 스타디온쯤 저어 갔다.”고 나와 있다.
‘스타디온(stadion)’은 고대 그리스 때 썼던 길이의 척도로 약 185.05m다.
처음에는 185m 경주를 ‘스타디온’이라 불렀다가 나중에는
경주하는 장소를 ‘스타디움(stadium)’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니 배는 호숫가에서 적어도 수 킬로미터는 떨어진 상태였으리라.
당시 호수에는 강한 바람이 불었다.
제자들은 맞바람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다.
파도도 거세게 일었다.
그때 멀리서 무언가가 보였다.
누군가가 호수 위를 걷고 있었다.
그 형체가 제자들을 향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제자들은 겁에 질렸다.
“유령이다!”라고 소리치는 이도 있었다.
유령이 그들에게 다가와 말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Courage! It is I. Do not fear!)”(마르코 복음서 6장 50절)
다가온 이는 예수였다.
예수가 배에 오르자 바람이 멎었다.
갈릴리 호수는 무척 넓다. 영어로는 '갈리리 호수'가 아니라 '갈릴리 바다'라고 부른다.
그만큼 호수의 규모가 크다. [중앙포토]
호숫가에 앉아 어둠이 내려앉은 갈릴래아 호수를 바라봤다.
이 일화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물음을 던진다.
예수 당시에는 돛으로 바람을 받거나 손으로 노를 저어 배를 움직였다.
그런데 맞바람이 불면 돛을 쓸 수가 없다.
게다가 어두운 밤이고 파도도 거셌으리라.
그러니 노를 저어 나아가기도 만만치 않았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제자들은 어찌할 수 없었을 터이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어찌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돛을 올릴 수도 없고, 노를 저을 수도 없을 때. 그런데 파도마저 거세게 몰아친다.
‘인생’이라는 배는 때때로 그런 위기를 맞는다.
그 속에서 허둥대는 우리를 향해 예수는 말한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예수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거기에 어떤 해법이 담겨 있을까.
어쨌든 결과는 놀랍다.
성경에는 ‘예수가 배에 오르자 바람이 멎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예수는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이 탄 배를 향해서 걸어갔다. 이걸 본 제자들은 깜짝 놀라서 "유령이다"라고 소리쳤다. [중앙포토]
파도는 높이 솟구쳤다가 산산이 부서지고 결국 사라진다.
그것이 파도의 운명이다.
우리도 한 줌의 파도일 때는 모든 게 두렵다.
그렇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를 향해 예수는 말한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예수는 왜 “나다(It is I)!”라고 말했을까.
물에 빠져 죽을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에서 왜 뜬금없이 “나다!”라고 했을까.
그것을 알면 맞바람과 파도를 헤쳐가는 데 어떤 도움이 될까.
파도는 늘 두렵다.
하지만 그런 파도 안에도 바다가 있다.
파도의 속성과 바다의 속성은 하나다.
파도가 그 사실을 깨우치면 달라진다.
그 순간 모든 두려움이 소멸한다.
파도가 아무리 산산이 부서져도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도 그런 바다가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다름 아닌 ‘신의 속성’이다.
지금도 갈릴리 호수에 거센 바람이 불면 큰 파도가 일렁인다. 그럼 고기를 잡으러 나갔던 배도 일찍 철수한다. [중앙포토]
[백성호의 예수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