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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아빠를 만난 ‘희자’는
아스팔트 똑바른 길을 새로 산지 얼마 되지 않은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리고 있으니 몇몇 젊은이들이 손을 흔들면서 지나간다.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어우러진 숲 속으로 뻗어 있는 길 아래로는 북한강물이 흘러가고 유리알처럼 청록색의 물 색깔을 띤 강물은 언젠가 울릉도 도동항에 입항하면서 바라다 본 바다 색깔을 연상케 하였다.
청정지역인 울릉도 도동항에 입항할 때도 바다 색깔은 푸르렀고 항구에 비춘 아름다운 석양의 황홀했던 정경을 아직도 잊지를 못한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정경 속에 묻혀서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길이 다 각기 따로 있고 생각들이 모두가 따로 있다 보니 인간의 삶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화려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항상 불행이 따라다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송 정수가 오늘 생전 처음으로 자전거길 을 달리게 된 것은 모처럼 먼촌 동생이 자전거를 새로 사서 타고 왔기에 그도 오래간만에 자전거를 타고 싶어서 잠시 빌려서 타고 나오다가 보니 의암댐이 저 멀리 바라다 보였다.
자전거를 더 타고 더 나가게 되면 내리막길의 강변을 바라보며 달릴 수가 있겠지만 정수는 더 이상 가지 않고 집으로 돌아서기로 하였다.
체육공원을 뒤로 하고 천천히 페달을 밟고 강물을 따라 올라오는데 이번에는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는데 무슨 대회의 상품이 걸린 모양이었다.
정수는 승용차가 겨우 교행할 만한 길이기에 천천히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오는데 자전거를 탄 아이들이 천방지축 앞만 보고 달려오는 것 같아서 한쪽으로 자전거를 세우고 서 있다가 그들이 다 지나간 다음에 다시 자전거에 올라앉아서 페달을 밟기 시작하였다.
얼마를 타다 보니 하도 오래간만에 타서 그런지 궁둥이도 아프고 다리도 아파서 난간에 다시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을 하였는데 길이 구부러진 곳이 나타나는 순간 비호같이 앞으로 무엇이 다가오는 느낌을 받음과 동시에 공중 잡이로 나가떨어진 것이다.
갑자기 어깨가 무슨 돌로 맞은 것처럼 아프고 코피까지 터져 나오는 중에 일어서려고 하였으나 일어서지를 못할 정도로 허리와 다리에 통증이 심하였다.
“ 많이 다치셨나요.”
그때 가냘픈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서 겨우 쳐다보니 화려한 스포츠복장과 하이킹 모자에 검은 안경을 낀 여성 서너 명이 다가오더니 그 중의 한 여인이 정수의 팔을 잡아 일으키는데 “아얏” 소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어디가 그렇게 몹시 아프신가요.”
그들은 정수의 코에서 코피까지 터져 나오는 것을 보고는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코를 막으면서 잠시만 진정을 하라는 것이다.
정수는 다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으니 팔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통증이 심하고 다리를 들 수가 없을 정도로 아팠기 때문이다.
“ 119를 어서 불러야겠네.”
한 여자가 그런 소리를 하더니 전화를 하는 것이다.
정수는 일어서지도 못하고 앉은 채로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는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통증이 계속되는 것이다.
여자들은 정수 주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왜 차가 오지 않느냐며 걱정을 하는데 마침내 싸이렌 소리가 들리면서 119차가 도착하였는데 소방관 세 명이 내리더니 정수의 상태를 점검하고는 보조 대에다 뉘이고 차는 달리는 것이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자 간호사가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고는 서둘러서 X레이를 찍으라고 하더니 환자를 촬영실로 데리고 가는 것이다.
환자를 눕히고 어깨를 이리저리 돌려서 사진을 찍고는 다시 왼발의 무르팍까지 찍은 후에 응급실로 내려갔는데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간호사의 설명에 의하면 어깨뼈에 금이 가고 왼발의 복사뼈도 금이 가서 깁스를 하고 입원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상대방 여인은 입원을 하라는 말을 듣고는 자기가 수속을 밟겠다는 말을 하였다.
그 소릴 들은 정수는 상대방에게만 잘못을 인정하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아서 입원비는 자신이 부담을 할 테니 어서 돌아가라고 하자 그들은 너무 걱정 마시고 가만히 계시라고만 하였다.
얼마 후에 수속이 다 끝났는지 일행 중의 사고를 낸 여인이 다가오더니 내일 다시 뵙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뜨는 것이다.
그들이 간 다음에 가만히 생각을 하니 이번의 사고는 저쪽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이쪽의 잘못이 더 컸던 것이 사실이었다.
문득 부딪치고 나서 그 녀가 다가와서 한 말이 생각이 나는 것이다.
“ 주위의 강물이 너무 아름다워서 잠시 한눈을 팔면서 달리다가 고만 앞에 계신 것을 뵙지를 못해서 사고를 내고 말았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
그가 정중하게 사과를 하는데 정수야말로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으니 한눈을 팔기는 매일반이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오늘 서로의 운이 잠시 나빠서 그런 사고가 난 것은 맞는데 문제는 동생에게 무슨 변명을 해야 할지가 걱정이었다.
정수는 혼기를 놓쳐도 너무 많이 놓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치 노총각의 신세로 살아온지어언 35년째이지만 아버지가 하시던 농사일을 하면서 외롭게 살고 있었다.
지방의 유명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가정형편을 생각해서 독학으로 고시 공부를 하기로 하였다.
그가 결심을 하고 공부에 매달려 3년 만에 1차 고시에 무난히 합격을 하고 나니 하늘을 날을 것 같았지만 2차 시험인 면접시험에서 합격을 기대하였던 결과 발표는 뜻밖에도 실패였던 것이다.
자신하고 덤벼들었다가 실패한 다음에 다시 응시를 하였고 이번에도 학과에는 자신을 하였으나 면접시험에서 두 번째로 불합격을 하였으니 그로서는 실망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학교를 다닐 때에는 사실 공부를 할 시간이 없어서 공부를 등한히 하긴 하였지만 성적은 항상 상위에 속하자 선생님들은 그 실력이면 고등 고시에 도전할 만 하다는 격려를 해주셔서 그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2차 시혐에서 낙방을 하자 평소에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던 아버지는 다음에 한번만 더 보고 만일 안 되면 그 다음에는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셔서 정수도 아버지의 말씀에 동감을 하였다.
그리고 다음해에 다시 3차 도전을 하였는데 이번에도 학과시험은 무난하게 합격을 하였지만 문제는 먼젓번 모양으로 면접에서 다시 실패를 하면 어떻거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자꾸만 드는 것이었다.
최종 발표가 있기 까지는 그야말로 밥맛이라고는 하나도 없어서 그는 시원한 바다나 보고 오겠다는 생각으로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 건널목을 건너던 중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우회전하던 차로 인해서 공중으로 나가떨어지는 바람에 머리가 깨져 피투성이가 된 채 응급실로 실려 갔던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뇌는 다치지 않았으나 어깨 늑골이 골절이 되어 반년동안이나 병원 생활을 하고 겨우 퇴원을 하게 된 것이다.
그가 요행을 바라던 3차의 고시 공부도 낙방으로 막을 내린데다가 교통사고까지 겹쳐 고생을한 것이니 그는 더 이상 고시공부를 중단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친구들이 와서 위로하는 말마다 차라리 그 힘을 들여서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였다면 합격을 해도 몇 번을 했을 거라고 하였으나 그 말을 들으니 공연히 오기가 생겨서 그는 다시 결심을 한 것이니 몇 번이고 도전을 해서 기어코 고시에 합격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반년이 지난 다음에 다시 책상에 앉고 보니 먼젓번과는 사뭇 다르게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느낌이 오는 것이다.
머리를 다친 후유증으로 인해서 머리가 이따금씩 아플 것이니 그 때마다 약을 먹는 것을 잊지 말라던 주치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짐작을 할 만 하였다.
그러나 정수는 이제 와서 갑절의 노력을 다 하면 먼저의 실력이 다시 살아나겠지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였고 한해를 쉬고 나서 그 다음 해에 다시 도전장을 던졌던 것이다.
그런데 그 무렵에 그렇게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한동안 병원 출입을 하시기 시작을 하더니 농사를 하시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 쇠하셔서 나중에는 몸져누우시는 것이다.
일이 이렇게 꼬여 들기 시작을 하는 가운데 시험일자가 다가와서 응시를 하였는데 시험문제가 먼저와는 사뭇 다르게 출제가 된 것도 문제지만 시험을 치루는 당일 예상치도 않게 배탈이 나는 바람에 시험을 제대로 보지를 못한 결과 이번에는 학과 시험에서조차 낙방을 한 것이다.
게다가 그동안 자리에 누우셨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말았으니 정수는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렇지 않아도 당뇨로 인해 살이 많이 빠지신 어머니는 더욱 쇠약해지시는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아버지가 하시던 농사를 계속해야 하니 정수의 앞날은 양수겸장(兩手兼將) 어느 것도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고시공부를 하던 정수의 나이는 어느 듯 삼십 줄에 접어들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는 아들을 불러 앉히고 하시는 말씀이 어미가 쇠약해서 밥도 제대로 못해줄 판이니 될 수 있으면 하루라도 빨리 장가를 들라는 것이다.
고시공부에 정열을 쏟다가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병환으로 고생을 하시는데 결혼이라니 그에게는 얼토당토한 말씀이지만 어머니가 여북하시면 그 말씀을 하시랴 하는 조바심이 가슴을 찌르는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우선 농사라도 지어야 먹고 살겠기에 호미자루를 들고 막상 일을 하자니 정수로서는 농사일을 배우지를 않았기에 어떻게 농사를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였다.
하루 종일 아버지가 하시듯이 밭에 나가서 작물을 가꾸다 보니 언제 책을 들여다 볼 시간이 있으며 언제 잠을 제대로 잘 시간이 주어지는 것인가 .
그렇다고 퍼데 하고 앉아 있을 수도 없어서 일하는 사람을 얻어서 일을 배우기도 하고 때로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일일이 파종에 대한 문의까지 해가면서 농사를 짓고 나서 가을의 수확물을 결산해보니 평시의 반도 소출이 나지를 않는 것이다.
정수는 이렇게 3년간이나 농사를 배워 겨우 먹을 것을 마련하였으나 이러다 보니 고시공부는 자연적으로 하지를 못했고 그것을 항상 속상해 하시던 어머니는 그런지 3년 만에 아버지를 따라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어머니인들 농사도 하지 못하던 자식을 보는 것이 얼마나 괴로우셨을 것이랴!
정수는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한 것이 성공도 하지 못한 그 놈의 고시공부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니 진작 다 때려엎고 어머니 말씀대로 장가나 갔더라면 하는 생각에 하니 불쌍하게 돌아가신 어머니가 얼마나 가여운지 어머니 산소를 부여잡고 한없이 통곡을 하였다.
“ 어머니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 이 못난 자식을 용서해 주세요. 조금만 더 사셨어도 이렇게 후회는 하지 않을 텐데요. 어머니,”
단지 두형제로 자란 정수는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때가 되어서야 어머니를 작별하고 집으로 내려와서 며칠 동안을 방안에만 있다가 겨우 밖으로 나온 것은 일주일이 지난 후였을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정신을 가다듬고 잠시 시골생활을 접으려고 생각을 하였으나 도회지에 나가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문제로 대두되니 그는 도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정수의 자전거와 부딪친 여인은 올해 나이 수물 다섯이 되는 고아 출신 윤 희자였다.
부모의 얼굴도 모르지만 어디 출신인지도 모르는 채 고아원에서 자라던 희자는 마침내 고등학교를 졸업을 한 다음에 평화시장에서 옷 장사를 하는 상점의 점원으로 들어가서 착실하게 일을 하는 중에 틈틈이 공부를 하여 복지사 자격증을 딴 후에는 병원의 간병사로 직업을 택했던 것이다.
지난 일을 생각하면 고아원에서의 생활은 원장 아버지의 배려에 의해서 행복하게 자라왔지만 막상 사회에 나와서 학교 동기들이 가족끼리 오붓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되면 자신도 가정을 꾸미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몇몇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휴일을 기해서 자전거 하이킹을 다닌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런 소릴 듣게 되자 자기도 그런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그 멤버에 참가를 하게 되었고 한 달에 한 두 번씩 시간을 내서 자전거 하이킹을 하는 중에 모처럼 춘천의 풍광을 돌아보기 위해서 전철을 탄 것이다.
그날은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만원을 이루었는데 일행 세 명이 어떻게 자리를 잡다 보니 맞은 편 자리에 돌이 지난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를 보게 된 것이다.
희자는 그 아기 엄마를 보다가 소스라쳐 놀란 것이니 자기의 아이도 지금쯤은 다섯 살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철없던 때에 아기를 낳고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남에게 맡기고 그동안 무심하게 살아왔는데 그 아기를 보니 갑자기 아기가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어서 내려야지.”
친구의 말에 따라서 희자는 얼른 자전거를 밀고 전철에서 내려 모처럼 신연강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달리던 희자의 자전거는 뜻하지 않게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희자는 사실 평화시장에 들어가기 전에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남자친구 오 남준을 좋아한 적이 있었다.
고아원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게 되면 원장아버지가 여기저기 칠념을 들여서 아이들을 취직을 시켜 주었는데 공교롭게 희자와 남준은 한 직장인 빵공장에서 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공장에서 하는 일은 매일같이 빵 자료를 반죽을 하고 이를 쪄내는 일로 일도 고되지만 그일 말고 공장의 대청소까지 매일같이 둘이서 다 맡아서 해야 했으니 하루 종일 일을 해도 끝이 없었다.
자고 깨서 밥 한술 얻어먹고 쉴 시간도 없이 일을 하다 보니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게 되자 석 달 일을 하고는 빵공장에서 나왔는데 어디 갈 데도 없다 보니 둘이서 방 하나를 얻고 지나게 된 것이다.
수입이 일정하게 없는 가운데 살다가 어느 결에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하게 되어 할 수없이 희자는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었고 아이가 석 달이 지난 후에 둘은 아이를 도저히 기를 수가 없자 어느 날 교회의 목사님을 뵈옵고 사정 말씀을 드리자 목사님은 그러지 않아도 다른 아이를 몇 명 기르고 있다면서 5년 안으로 아이를 찾아간다는 약속을 하면 길러주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둘은 그 다음에 성공해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져 희자는 평화시장에 취직이 되어서 일을 한 것이다.
서울로 돌아온 희자는 자기로 인해서 부상을 당한 그 분에 대한 미안함으로 인해서 잠을 자지 못하고 바로 다음날 며칠간의 휴가를 얻어서 병원으로 내려간 것이다.
그는 병원으로 가기 전에 화원에서 빨간 장미꽃 다발과 과일을 사가지고 입원실의 문을 연 것이다.
그때 정수는 의사가 다녀간 후라 잠시 누운 채 눈을 감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그때 저쪽의 침대의 여자환자가 앉아 있다가 희자에게 어떻게 오셨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 네. 송 정수 씨를 찾아 왔는데요.”
“ 그러세요. 잠시 주무시는 모양인데요. 거기 좀 앉으세요.”
그의 말에 따라서 희자는 잠시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가 사물함에다 꽃을 꽂고는 정수를 한참동안이나 들여다보고 있자니 문득 학교 다닐 때에 생물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학교 다닐 때 그 선생님은 유난히 희자를 다른 아이와 다르게 불쌍히 여기시고 사모님 몰래 용돈까지 주셨는데 환자의 모습이 그 선생님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희자는 그 선생님을 좋아하고 존경하다가 어느 날 문득 이다음에 자라서 시집을 가게 되면 선생님을 닮은 신랑을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였다.
한번은 선생님이 저녁때 댁으로 심부름을 시키셨는데 그것은 그날 사모님을 통해서 고기를 사다가 구워 먹이고 싶어서 그러셨던 것이다.
그렇게 희자에게 잘 해 주시던 선생님은 뜻밖에도 학교에 오래 계시지 못하고 1년 만에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는데 선생님이 가신다는 소문이 나자 희자뿐 아니라 아이들 모두가 선생님을 붙들고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희자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참동안이나 정수의 얼굴을 보는 사이에 정수는 눈을 감고 있다가 눈을 떠서 보니 낯선 여자가 옆에 있는 것이다.
“ 누구요.”
정수는 희자를 올려다보고는 사뭇 의아해 하는 것이다.
그러자 옆의 여 환자가 나서서 “선생님을 찾아 오셨대요” 하는 것이다“
“ 네. “
정수는 그 소리를 들으며 희자를 보았지만 금방 생각이 나지 않았다.
“누구시죠.”
“ 저. 어제 선생님을 한번 뵈었지요.”
“ ……….”
정수는 얼른 생각이 나지를 않다가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이다.
“ 어떻게 오셨어요. 바쁘실 텐데.”
“ 선생님이 궁금해서 배길 수가 있어야지요. 좀 상태가 어떠신지요.”
정수는 간밤에 통증으로 인해서 잠을 설쳤지만 괜찮다고 대답을 하였다.
희자는 사물함 앞에 놓았던 꽃을 정수에게 주면서 “속히 완쾌하시라고 드립니다.” 라고 하였다.
정수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누구에게서도 꽃다발이라는 것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데 뜻밖에도 꽃을 받게 되자 공연히 얼굴이 달아올랐다.
" 고맙습니다. 앉으시지요. “
그러자 옆의 여 환자가 나서더니 “선생님은 복 받으신 분이네요. 우리 같은 것은 생전 누구 하나 꽃이라는 것을 가져오는 사람이 없는데. “
그러자 정수가 그를 향해 “ 꽃이 가지고 싶으시면 이 꽃을 드릴게요.” 하면서 그 꽃을 그 여자에게 주자 그는 “어머나” 하더니 “이 꽃을 내가 받아도 되나” 하면서 꽃을 받고는 요리 저리 살피는 것이다.
희자는 조금 기분이 언짢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희자가 정수의 상태를 보니 어깨도 다쳤지만 한쪽 다리까지 다쳐서 걷는데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 물은 것이다,
“ 걸음을 걸으시는데 어떠세요.”
그러자 그가 대답을 하기 전에 꽃을 받은 여 환자가 말을 가로챈다.
“ 한쪽 발을 제대로 딛지를 못해서 내가 부축을 해드리고 있어요.”
희자는 속으로 참으로 희한한 여자도 다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하였다.
“ 저 오늘부터 선생님의 간병인이 될 터이니 그리 아세요.”
뜻밖에 그 소리를 들은 정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나는 간병인을 쓰지 않는다고 하였는데요.”
“ 선생님. 저의 직업이 간 병사거든요. 현재 서울의 한 병원의 간병사로 일을 하는데 며칠간 휴가를 맡고 왔으니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 그러지 마세요. 제가 부담이 됩니다. 더구나 서울의 직장은 어떻게 하시려구요.”
“ 선생님 그런 걱정은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돈을 요구하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제 잘못으로 인해 선생님을 다치게 하였으니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지요.”
정수는 그가 그렇게 단호하게 말을 하니 더 이상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날은 저물기 시작을 하고 환자들의 저녁시간이 되자 밥 운반차가 도달하였다.
환자들의 밥은 적은 스텐그릇에다 국과 밥 그리고 반찬 두 개가 차려진채 돌리는 것이다.
희자는 밥그릇을 정수의 앞에다가 놓으면서 맛있게 잡수시라는 말을 하였다.
“식사를 같이 하시지요.”
“식사 걱정일랑은 하지 마세요. 아까 오다보니 병원 근처에 웬 식당들이 그렇게 많은지 아무데나 나가기만 하면 밥은 굶지 않고 올 수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희자는 그 소리를 하면서 저녁을 먹고 오겠다면서 밖으로 나왔다.
희자가 밖으로 나가자 옆의 여 환자가 정수를 보고는 언제부터 아는 사이냐고 꼬치꼬치 물었다.
“그 아가씨 괜찮은 여자 같긴 한데 여자란 함부로 믿어서는 안돼요.”
그리고 그는 밥을 후다닥 먹고 나더니 “ 화장실 가시려거든 미리 말씀을 하세요. 잘못하다가 바지에 오줌을 지릴 수도 있으니까요,” 하는 것이다.
사실 정수가 입원을 하던 첫 날은 얼마나 다리가 아픈지 걸음을 걸을 수가 없었는데 바로 옆의 여 환자가 부축을 해주어서 어려움을 해결 할 수가 있었던 것이지만 얼마나 미안한지 몰랐는데 여자가 붙임성 있게 대해주자 그 호의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그가 병원에 입원을 한 것은 혼자 살고 있는 아파트계단을 밤중에 딴 생각을 하고 내려오다가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온 몸을 굴신을 하지 못했는데 정작 크게 다친 곳은 왼쪽 손가락에 골절이 생겨서 입원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며칠간 쉬고 싶어서 입원을 자청하였다는 것이다.
여 환자는 정수가 들어오던 날 부축을 하면서 정수의 식구에 관한 것을 물었는데 그에게는 의지가 지할 아무도 없다고 하자 눈을 허옇게 뒤집으면서 그렇게 안 보이는데 그렇다니 안되었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는 친정부모가 돌아가신지 아득한 옛날이고 단지 여자형제 뿐인데 동생이 아직 미혼이라서 그게 걱정이라 신랑을 구해 주어야 하는데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차일피일하였는데 댁을 보는 순간 제부될 사람은 이 사람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우선 사람이 순수하고 가정을 잘 이끌어 나갈 것 같으며 더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도 고시공부를 하여 장차 판검사가 될 것이니 이런 사람을 붙잡지 않는다면 누구를 붙잡겠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자기 동생은 언니의 말이라면 백프로를 듣는다면서 대학을 진학시킬 때도 동생은 무용을 하겠다는 것을 자기가 우겨서 의대를 졸업시켰다고 하였다.
그 후에 서울의 모 병원에서 의사생활을 하다가 서울 보다는 시골이 좋다면서 시골로 이사를 하고 나서 몇 년간 병원에서 근무를 잘 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의사를 고만 두고 농사를 짓겠다고 하여 양손을 들어서 막았지만 동생은 자고 깨면 만나는 것이 환자라 이제는 그 생활을 접고 농사를 짓겠다는 것이니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 후에 동생은 채마밭을 사가지고 채소를 기르는데 재미를 붙이더니 요즘에 와서는 연극에 미쳐서 돌아다닌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제는 연극을 고만하고 좋은 신랑감 만나서 시집부터 가라고 하자 돌아온 대답은 언니가 소개를 해주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다른 사람이 소개를 하면 돌려다 보지도 않는다고 하니 어쩝니까. 그것은 내가 소개를 하면 가겠다는 약속까지 하였으니 내 동생과 인연을 맺는 것을 거절하시지 말라고 하였다.
여 환자는 그 말을 하고 나서 사방을 휘둘러보더니 정수에게 귀를 좀 빌려 달라는 것이다
“ 왜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그러는데요.”
“ 아무 소리 하시지 말고 귀담아 들으시면 이다음에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니 들어보세요.”
“ 나는 지금 내 몸이 정상이 아니어서 다른 말은 듣고 싶지 않은데요.”
“ 내 말을 듣다 보면 나중에는 더 들었으면 할걸요. 아무튼 들어 보셔요. 귀를 빌려 달라고 하였으니 혼자만 듣고 남에게는 절대로 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약속하시지요. 그렇게 얘길 하니 약간 호기심이 가지 않으세요. 사실 이 이야기는 남녀 누구나 다 좋아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장차 나의 제부가 되실 분이라서 미리 얘기를 하니까 비밀로 해달라는 것입니다. 얘기의 본질이라고 말할 것 같으면 성인라면 다 알고 있어야 할 상식이라고 할까. 골자를 말한다면 이것은 남녀의 방사에 대한 의학상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우선 남자는 여자와 방사를 시작하기 전에 상대방의 비밀스런 어떤 부위를 보여 달라거나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위기가 조성이 되면 아무리 급하더라도 서두르면 일을 그르친다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겨울에 쇠물을 끓여서 쇠 귕에다가 부으려는데 소가 얼른 쇠물을 먹겠다고 뜨거운 쇠물에 입을 댔다가는 입을 데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녀 어느 누구도 거시기에 시간이 바쁘더라도 이렇게 하면 헛물만 켜고 나가떨어진다는 사실이지요. 두 번째로는 남여의 성행위는 예술적으로 승화하여야지 유치하게 남녀 방위를 중간에 바꿔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잘못하면 김이 샌다는 말이지요. 세 번째로 행위 예술을 할 때에는 절대로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은은하게 음악이 흐르는 것은 좋지만 김장을 할 때에 김치 맛을 보듯이 어떤 흥에 겨워서 좋네. 어쩌네. 말을 하다 보면 중간에 행위자체를 잊어버리고 막걸리를 마시다가 소반을 걷어내 차듯 일어서는 수도 있으니 유의를 해야 합니다. 네 번째는 무어니 무어니 해도 행위 예술의 극치는 하늘이 높은지 얕은지를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파고의 높낮이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온천의 물처럼 신체부위가 노글노글해지는 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은 밥을 차려 놓으면 무엇이 급한지 음식의 맛을 음미하기도 전에 후닥닥 먼저 먹고는 일어서는데 이런 습관을 행위예술에 적용을 시켜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말이지요. 내 제부가 될 분이기에 하는 말이지 다른 사람이라면 알려주지도 않는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내가 한 말에 대해서 혹시 의문이 나신다면 말씀을 해 보셔요. 사실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은 내 동생에게서 들은 이야기이지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내 동생이야말로 이 방면에서는 도사로 통한다고 할만치 내 동생은 의학 공부를 깊이 연구한 수재이니 이런 동생을 신부로 맞이한다면 얼마나 춤을 출 일입니까. 제가 한 말에 대해서 혹시 오해가 생길 수도 있지만 이 말이 여러 곳으로 번지지만 않는다면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가슴에 담고 있던 말을 하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네요. 그러니 아무 걱정하시지 말고 내 동생을 아내로 맞아 주세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셨지요. “
정수는 여 환자가 장황하게 늘어놓는 말을 들으면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자신의 팔자가 어떻게 펴질지 모르지만 어쩌면 이런 기회가 하나의 인연이라고 한다면 피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터져 나와서 하하하 하고 큰 소리로 웃었던 것이다.
“ 왜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각이 나셨나요.”
“ 하하. 그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은 지금까지 장가를 간다는 생각은 꿈에도 한 바가 없는데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그래요.”
아닌 게 아니라 자기는 지금까지 고시공부에만 정력을 쏟았지 결혼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한 바가 없는데 뜻밖에도 결혼이야기가 나오니 그 말이 새롭게 들리고 결혼을 하여 제2의 인생을 펼쳐 볼까하는 생각까지 얼핏 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힐 수가 있는 것인지 여 환자가 그 말을 한 다음에는 그렇게 사람이 달리 보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어느 듯 취침 시간인 9시가 거의 다 될 무렵에 희자가 나타나더니 밖에 나갔다가 모처럼 친구들과 저녁을 먹게 되어 늦게 들어왔다는 것이다.
“ 친구를 만났다니 반가웠겠네요.”
“ 예. 여기에는 중학교 때 친구가 직장생활을 하는데 내 소식을 듣고는 구지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렇게 늦었습니다. 그가 과일을 사주어서 가지고 왔으니 잡수세요.”
“ 저녁 먹고 나서 허출하던 참인데 잘 되었네요.”
옆의 여 환자가 사뭇 좋아하면서 봉지에서 귤과 사과를 꺼내서 정수에게 주고 자기도 하나 를 먹으면서 말을 한다.
“ 아까 들으니 간 병사 역할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그러실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그러자 희자가 왜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하였다.
“ 사실은 내가 이 선생님이 입원하시는 순간 인물됨을 보게 되니 내 동생의 제부로 딱 맞을 것 같아서 하루라도 빨리 성사를 시키기 위해서 내일 낮에 동생을 오라고 해서 맞선을 보기로 하였어요. 그런 사이가 되어 간 병사는 내가 하기로 하였으니 그렇게 아시고 직장으로 올라가세요.”
“ 아니요. 그렇게 할 수가 없는데요. 나는 이 선생님을 내 잘못으로 이렇게 입원까지 하시게 한 것이 미안하기도 하지만 병원비도 내가 지불해야 하고 간 병사를 쓰더라도 내가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여기에 끼어들어서는 안 되니까 그런 줄 아세요.”
희자가 단호하게 말을 하자 이번에는 여환 자가 여기에 질세라 말을 받았다.
“들어보니 댁이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은 맡지만 내가 말을 하는 것은 이미 제부가 되기로 약속을 한 바가 있어서 말인데 후일 병원비나 내시면 되지 않겠어요?”
“ 말씀을 들어보니 답답하시네요. 제부가 되는 것은 나중에 일이고 당장 병원비부터 계산을 해야 하니 오늘은 좀 빠지시면 안 될까요.”
“ 하하. 일이 이상하게 꼬이는 것 같은데 그러지 말고 우리 제부짜리에게 물어봅시다. 그래 간 병사를 이 분으로 결정을 하실 건지 말씀을 좀 해보세요,”
아까부터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아직 여환자의 제부가 된다는 약속도 한 바가 없는데 자기는 이미 여환자의 제부로 결정이 된 것처럼 말이 돌아가고 있어 정수는 이 자릴 어떻게 해야 면할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밖에서 유난히 커다랗게 노크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희자는 누가 와서 찾는가 하고 밖으로 나가니 문 앞에 웬 사람이 떡 받히고 서 있더니 손을 내밀며 희자의 팔을 꽉 잡는 것이다.
“ 오래간 만이야. 여기 왔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왔지.”
희자가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아! 거기에는 오 남준이 서 있었던 것이다.
“ 희자야 아기가 지금 다섯 살이고 지금 엄마를 기다린다고 하니 어서 가자.”
너무도 갑작스럽게 아기 아빠를 만난 희자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기만 하였다.
金 斗 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