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렐루야! 해석 제498신 (여호수아 제12신)
할렐루야! 사랑하는 일열낭독운동회원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동안에도 주님의 은총(恩寵) 가운데 평안(平安)하신지요?
신동욱목사 입니다.
오늘이 7월24일(수)입니다.
어제(23일)가 대서(大暑)였고 그저께(22일)가 중복(中伏)이었습니다.
다음 달(月)인 8월11일이 말복(末伏)입니다.
그러니 오늘이 금년(今年) 여름의 (삼복염천(三伏炎天)의) 피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아침 산(山)기도 갈 때에, 그리고 산기도 할 때에 약간의 빗방울이 날렸으나 아직 비(雨)다운 비는 오지 아니했습니다.
제가 매일 아침 기도하는 천마산 큰 골도 계곡(溪谷)이지만 오랫동안 바짝 말라있습니다.
마치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命令)으로 엘리야 선지자님께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어서 그 시냇물을 마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으로 아침, 저녁으로 엘리야 선지자님께 떡과 고기를 물어다 주던 까마귀를 통해서 연명(延命)했으나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後)에 그 시내가 마른 것과 같습니다(왕상 17:2~7)
일기예보(日氣豫報) 상(上)으로는 내일(목요일,25일)부터 주일(28일) 오전까지 계속 비가 내리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가봐야 알겠습니다.
여하튼, 다음 달 8월15일경(傾)까지는 뜨거운 여름이 될 것입니다.
영상(零上) 30도(度)가 넘는, 문자 그대로 염천(炎天)이 될 것입니다.
시원한 한시(漢詩) 한 수(首)를 소개합니다.
당(唐)나라 시인(詩人) 「고병(高騈)」의 시(詩)에 『산정하일(山亭夏日 - 산 속 별장(別莊)의 여름 날)』이라는 시입니다.
『파란 나무 진한 그늘 여름 날 지루하고
누대(樓臺) 그림자 연못에 거꾸로 비친다.
수정(水晶)발 살랑살랑 미풍(微風)이 일고
장미(薔薇)꽃 만발(滿發)하여 뜰에 향기(香氣) 감돈다.』
현대(現代)를 사는 우리의 환경(環境)하고는 전연 다른 환경이지만 잠시 망중한(忙中閑)과 시원함을 주는 시 한 수입니다.
이제 해석 제 498신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 해석할 말씀은, 수5:13~15절까지 말씀입니다.
주제(主題)는, 여리고성 함락(陷落) 기록(記錄)의 머리말입니다.
“여호수아 선지자(先知者)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役事)로 요단강의 마른 바닥을 밟고 건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에 눈(目)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對敵)을 위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軍隊長官)으로 이제 왔노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리어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이까?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수5:13~15)”
출(出)애굽 시(時) 모세선지자님의 인도(引導)를 받는 이스라엘 백성(百姓)이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로 홍해수(洪海水)가 일어나 벽(壁)을 쌓고, 홍해 수 바닥을 밟고 건넜던 것처럼, 여호수아 선지자님의 인도를 받는 이스라엘 백성 역시 요단강 물을 멈추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로 물이 끊겨진 요단의 마른 바닥을 밟고 건넜습니다.
이러한 여호수아 선지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앞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두 번째 표적(標的)을 행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스라엘의 두 번째 지도자(指導者) 여호수아 선지자님 앞에 여호와의 군대장관(軍隊長官)을 파견(派遣)하신 것입니다.
이때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완전무장(完全武裝)을 하고 여호수아 선지자님 앞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 전쟁(戰爭)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도(主導)하시는 전쟁임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상징적(象徵的)으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고 선언(宣言)하므로 이 전쟁이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전쟁임을 나타내신 것입니다(참고, 출3:5)
사랑하는 일열낭독운동회원 여러분!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종과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길은 반드시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앞장 서 싸워주시고, 승리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적(敵)그리스도 사탄이즘(satanism), 공산주의(共産主義) 공산당(共産黨)과의 싸움도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앞장 서 싸워주시는 싸움입니다.
우리 영(靈)의 종들과 거듭난 성도(聖徒)들은 마음과 몸을 성결(聖潔)히 하고 하나님께 기도(祈禱)해야만 합니다.
반드시 승리(勝利)케 해 주실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 대한민국(大韓民國)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할렐루야! 주후 2019년 7월24일
할렐루야! 해석 제499신 (여호수아 제13신)
할렐루야! 사랑하는 일열낭독운동회원 여러분!
지난 한 주간(週間) 동안에도 주님의 은총(恩寵) 가운데 평안(平安)하신지요?
신동욱 목사입니다.
오늘은 7월29일(월)입니다.
금년 여름은 그렇게도 가물었는데 장마끄트머리인 7월25일~28일까지 나흘 동안 제법 비(雨)다운 비가 왔습니다.
제가 아침마다 기도(祈禱)하는 천마산 큰골도 드디어 계곡(溪谷)에 물이 흐릅니다.
비 구경, 물 구경 한 지가 언제인지…
기도(祈禱)하기도 어려웠는데 하나님께서 오늘 아침은 물바람을 맞고, 물소리를 들으면서 기도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시원했던지…
비와 관련하여 송(宋)나라 때의 시인(詩人) 「화악(華岳)」의 시 「취우(驟雨-소나기)」를 소개합니다.
『소꼬리 쪽에 검은 구름이 먹물 붓듯 하더니
소머리 쪽에 비바람 일고 두레박 물 퍼붓듯 하네
성난 물결이 이내 백사장(白沙場)을 휩쓸고
십만(十萬) 군사(軍士) 함성(喊聲)처럼 골짜기에 물 흐르는 소리
개울 서(西)쪽 모퉁이에 사는 목동(牧童)이
이른 새벽 소를 타고 개울 북(北)쪽 풀 뜯기러 갔다가
빗속을 황망(慌忙)스레 급히 개울 건너는데
씻은 듯 비 개이고 산 다시 푸르르네』
여름 소나기의 성질(性質)을 잘 묘사한 시입니다.
삼복염천(三伏炎天) 중에 견디기 힘들도록 후덥지근하고 무덥다가 느닷없이 서쪽하늘에 주먹만한 구름이 나타나고 순식간(瞬息間)에 온 하늘을 덮고 마치 우박(雨雹)이 쏟아지듯 한바탕 소나기가 휩쓸고 가면 개울도 골짜기도 마치 성난 황소(黃牛)처럼 물벼락이 치게 마련입니다.
요즘은 그런 풍경(風景)도 보기 드물어 졌습니다.
나라사정이 답답하기 그지없는데 전능(全能)하신 하나님께서 간절(懇切)한 기도(祈禱)를 들어 주시어서 마치 소나기가 쏟아지듯 시원한 역사(役事)를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국민이 새롭게 깨어나는 축복(祝福)의 기회(機會)가 되기를 아울러 기도합니다.
이제 해석 제499신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 해석할 말씀은 수6:1~21절까지입니다.
주제(主題)는, 여리고 성(城)을 통(通)한 하나님의 역사(役事)입니다.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종 여호수아 선지자(先知者)님을 통하여 항상 언덕에 넘치던 요단 물을 온전히 끊어지게 하시고 백성(百姓)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너게 해 주셨습니다(수3:15~16)
여호수아 선지자님의 인도(引導)를 따라서 백성이 여리고에 가까웠을 때에 여호수아 선지자님 앞에 완전무장(完全武裝)한 여호와의 군대장관(軍隊長官)이 나타나는 놀라우신 역사도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 선지자님과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바로 여리고 성(城)을 공격(攻擊)하게 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엿새 동안이나 하루 한 번, 여리고 성을 한 바퀴씩 돌게 하셨습니다.
맨 앞에는 무장한 군사들이 서고, 그 다음 양각(羊角)나팔을 든 일곱 제사장(祭司長)이 서고, 그 뒤에는 언약궤(言約櫃)를 멘 제사장들이 서고 그리고 맨 뒤에 후군(後軍)이 서도록 하시는 순서였습니다.
마지막 제 칠일(七日)에는 성(城)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울려 불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선지자님의 명령(命令)에 따라서 백성들이 크게 외치도록 하셨습니다.
결과(結果)는,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고 성벽(城壁)은 무너져 내렸습니다(수6:20).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 선지자님에게 명령하시고, 여호수아 선지자님께서 백성들에게 명(命)하신대로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取)하고 성중(城中)에 있는 것을 다 멸(滅)하되 남녀(男女) 노유(老幼)와 우양(牛羊)과 나귀를 칼날로 멸했습니다(수6:20~21).
특별히 우양과 나귀까지 칼날로 멸하라고 하신 까닭은, 당시 가나안 땅의 극심(極甚)한 죄악(罪惡)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짐승들과도 교합(交合)하였습니다( 참고, 레18:22~27 ).
극악한 죄악과 불법(不法)은 마땅히 심판(審判)을 받아 도말(塗抹)되어야만 합니다(참고, 신12:29~32).
사랑하는 일열낭독운동회원 여러분!
오늘 본문(本文) 말씀을 통해서 주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교훈(敎訓)은, 우리 믿는 자들의 모든 싸움은 여호와의 싸움이요, 여호와 하나님께 속(屬)한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전략(戰略)과 전술(戰術)도 하나님께서 지혜(智慧)의 계시(啓示)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고 지혜 주시는 대로 순종(順從)해야만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적(敵)그리스도 공산주의자(共産主義者)들로 말미암아 큰 위경(危境)에 빠져 있읍니다마는, 오늘 본문(本文)에서 주신 교훈(敎訓)대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 싸움을 싸워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대로 전술, 전략대로 저 사악(邪惡)한 원수(怨讎)대적들과 투쟁(鬪爭)하게 될 때에 반드시 승리(勝利)할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할렐루야! 주후 2019년 7월29일
할렐루야! 해석 제500신 (여호수아 제14신)
할렐루야! 사랑하는 일열낭독운동회원 여러분!
지난 한 주간(週間) 동안에도 주님의 은총(恩寵) 가운데 평안(平安)하신지요?
신동욱 목사입니다.
오늘이 8월5일 월요일입니다.
꼭 일주일 만에 해석 500신을 보내드리게 됩니다.
이틀 후(後)인 8월7일이 음력(陰曆)으로 칠월(七月)칠석(七夕)이고, 그 다음 날인 8일이 입추(立秋)입니다.
칠월칠석은 사랑하는 연인(戀人)사이인 견우직녀(牽牛織女)가 일 년에 꼭 한 번 만난다는 날이지요. 까마귀와 까치들이 다리를 놓아주어서 까마귀 · 까치 몸으로 이루어진 다리를 건너서 두 연인이 만난다는 날입니다.
그래서 이 다리를 오작교(烏鵲橋)라고 합니다. 까마귀 오(烏)자, 까치 작(鵲)자, 다리 교(橋)자를 쓰지요.
꿈에도 그리워하던 두 연인이 이와 같이 일 년에 딱 한번 상봉(相逢)하므로 그 두 연인이 흘리는 눈물이 비가 되어서 내린다는 날입니다.
아름답고도 애달픈 이야기이지요.
요즈음 같이 이해타산(利害打算)만이 번뜩이는 젊은이들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는 순애보(純愛譜)입니다.
지금시간이 오후 4시46분입니다마는, 현재 우리 동천교회가 있는 화도읍 기온(氣溫)이 섭씨(攝氏)33.9도입니다.
중복(中伏) 지나 말복(末伏)을 향해서 가는 요즈음이 일 년 중 가장 뜨거운 때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글피인 8일이 (목요일) 입추(立秋)입니다.
가을이 선다는 이야기이지요.
말복이 11일(주일)입니다마는 말복 사흘 전에 입추가 있는 셈이지요.
기세등등(氣勢騰騰)한 더위도 이미 막바지이라는 의미(意味)입니다.
한나절 매미가 기승(氣勝)스럽게 울어대는군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구슬프게 들립니다.
매미는 7년을 준비(準備)하고 나와서 한 여름, 그것도 여름의 끄트머리에 맹렬(猛烈)하게 울다가 간다고 합니다.
견우직녀이야기나 마찬가지로 매미의 일생(一生)도 구슬프기는 마찬가지이군요.
그러나 시각(視覺)을 달리해보면, 견우직녀의 사랑이야기는 동서양(東西洋)을 막론하고 가장 아름다운 순애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매미의 일생도 얼마나 진실(眞實)과 진정(眞情)이 넘치는 일생일까요?
견우직녀나 매미의 삶이 그리워지는 이 시대(時代)입니다.
순수(純粹), 순결(純潔), 진실(眞實), 진정(眞情) 이것들이야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장 귀(貴)한 것들이 아닐까요.
그러나 가장 귀한 것은 진리(眞理)입니다.
요14:6절 말씀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生命)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진리는 곧 우리 주(主)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 분만이 유일(唯一)한 진리이십니다.
헤르만·헷세의 「데미안」의 방황(彷徨)도, 철학자 니체의 「크눌프」의 방랑(放浪)도 다 이 진리에 이르기 위한 방황과 방랑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양(東洋)에서는 「아침에 도(道)를 깨치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餘恨)이 없다」라는 경구(警句)가 있는데, 동양 철학(哲學)의 도는 곧 진리를 말합니다.
도(道)라는 용어(用語)는 길 도(道) 자(字)를 말하는데, 동양철학의 최고봉(最高峰)이라고 하는 노자(老子)선생의 「도덕경(道德經)」에서 나온 단어(單語)입니다.
노자는 속세(俗世)를 등지고 산 속으로 들어가면서 관문(關門)을 지키던 벼슬아치가 「한 말씀 가르침을 베풀어 주시고 가시지요」 라고 간청(懇請)하자 도덕경을 남겼다고 합니다.
심오(深奧)한 철학서(哲學書) 치고는 아주 짧은 가르침입니다.
전체 글자숫자가 오천(五千) 여(餘)자(字)에 불과(不過)했다고 하니까요.
저도 청춘시절(靑春時節) 군(軍)복무(服務)를 마치고 복학(復學)하는 어간에 노자도덕경을 사서 단숨에 읽고 또 다시 정독(精讀)한 바가 있습니다.
이 도덕경에서 노자 선생은 말하기를 「만물(萬物)이 그곳에서 나오고 그곳으로 돌아가는 어머니 같은 존재(存在)가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이름을 몰라서 도(道) 라고 일컬어 본다.」 라고 길 도(道)자를 썼습니다.
만물의 근원(根源), 생명의 근원이라는 뜻이지요.
여기까지 궁구(窮究)했던 노자도 결국 엉뚱한 곳으로 흘렀습니다마는, 제가 30세에 목사(牧師) 안수(按手) 받고 곧 하나님의 은혜(恩惠)를 받고 거듭난 이후에, 노자 선생이 궁구한 이 도가 바로 진리요, 진리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함을 알았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唯一)하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노자 선생을 만나서 이 진리를 깨우쳐 드리고 싶은데 만날 수가 없군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성적(理性的)으로는 아무리 궁구하고 궁구해도 구원(救援)에 이를 수는 없는 것이지요.
요즈음 종교개혁사(宗敎改革史)를 다시 보고 있습니다마는,
롬1:17절 말씀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복음(福音)에는 하나님의 의(義)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義人)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합2:4절 말씀도,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驕慢)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正直)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고 선언(宣言)하시고 계십니다.
이성적인 방황, 육적(肉的)인 방황은 끝이 없고 결국 진리에 이르지 못합니다.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그 분의 거룩하신 십자가(十字架) 구속(救贖)의 은총(恩寵), 죄(罪)를 씻기는 보혈(寶血)의 은총을 믿는 믿음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有一)한 길입니다.
첩경(捷徑)입니다. 진리(眞理)에 이르는 길(道)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할렐루야! 주후 2019년 8월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