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정리* 연가/ 박철영
돌아오라는 말은 못 하고
소식이라도 달라는 말은 알아들었으리
먼 동구까지 떠나간 뒤
사무친 마음 외면할 수 없어
집 나간 딸을 애절하게 기다리던
지어미의 달을 받아 안은 갈치천
방천 위로 일렁이는 바람의 횟수를 귀로 헤아리며
떠나간 길을 물굽이로 지웠으리
발치께로 참방참방 젖어든 시간을
슬몃 아랫목으로 끌어당겨
어루만져 주던 손길 잊을 수 없었으리
당산 아래 어둔 길목 지워지고
인적 끊긴 적막이 불면처럼 욱신거리면
윗목 놓인 호롱에 심지를 끌어올려
성냥불을 간절하게 옮겨 붙이곤 했지
그럴 때마다 누나의 손가락은 가늘게 떨었고
서울행 마지막 열차를 타겠다는 말에
늑막까지 차오른 숨이 뒷산을 타자
수런대던 대숲은 말을 끊어버렸지
부뚜막 불기운이 한겨울 구들장을 빠져나갔고
소식 없던 밤을 바라보던 눈빛으로
가끔 당산 고개를 굽어보는 것은
행여 뒤안 대숲 소란한 틈에
자근자근한 말소리 들리나 싶어서였지
*전북 남원시 소재
율촌 아라리/ 박철영
꼭두새벽 어둠을 따라붙은 사람들
공단 가르는 8차선이 바빠졌다
얼굴까지 푹 눌러쓴 빵모자와
넥 워머에 가린 목덜미 위로 쏟아진
빨간 신호등에 갇히고 말면
응답 없는 침묵에도 꼼짝해선 안 된다
거대한 조선소가 바로 코 앞인데
고만고만한 일당의 전사들이
늦어진 몇 분分을 항명하지 못한 채
무기력한 얼굴로 투항하고 있다
거대한 제국주의에 맞선
아랍의 전사들을 경계하듯
출입 센서가 인식한 바코드는
전사처럼 단련된 노동자만 가려낸다
원청에 재 재 하청 된 시급한 출근길
명랑한 노랫가락으로 흥을 돋우지만
안색들은 야적장 철판처럼 냉랭하다
비만한 스피커가 햇살을 말아 올릴 즈음
국민체조 구령에 맞춰
유연하게 몸을 푼 다국적 노동자들
낭랑한 노래 가사는 안전이 최우선이라지만
작업량을 채워야 할 하루는 빠듯하다
본사 층 수만큼 내리 도급된 하청은
거대 자본의 탐욕을 위한 수단인데
최저 시급을 미끼로 고용된 사람에게
배부르고 등 따스운 것이 최고란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
점심 때 줄 늘어선 궁색도 그렇고
더디 지는 해가 긍휼 같은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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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식정리* 연가 외 1편/ 박철영/ 문학들 여름 68호
박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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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9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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