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아벨은 그 하나님을 믿음으로 양의 첫 것의 피를 내어 드렸다(‘히다’다).
2)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종교 행위 행위를 빗댄 것이다.
나. 본론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제물)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히 11:4)” 오역이다.
(시아이 아벨 파라 카인 프로세넹켄 토 데오, 디 헤스 에마르튀레네 에이나이 디카이오스)
“믿음(여격)으로 아벨은 가인에 비해 온전한 제물을 그 하나님(관사 없음)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게 되었으나(수동태)”
여기 기록되어 있는 ‘믿음’은 아벨의 자기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온 믿음이다. 하나님의 믿음과 똑같다. 믿음(피스테이)은 ‘여격’이다. 아벨이 소유하고 있는 그 하나님의 믿음이다.
1) 아벨은 그 하나님을 믿음으로 양의 첫 것의 피를 내어 드렸다(‘히다’다).
아벨은 그 하나님의 믿음으로 양의 첫 것의 피를 내어서 드렸다(히다다) 가인은 제물을 온전히 태워서 드려야 함에도 하나님의 믿음을 소유하지 않고 자신의 믿음으로 온 정성을 다해 경작하여 거기서 나온 제물을 드린 내용이다. 이 제물이 불의의 제물이다. 이 내용은 모두 비사(히다)로 되어있는 중요한 내용이다.
오늘날 종교 행위 중 하나인 물질을 드릴 때 정성을 다해 드린다. 돈을 드릴 때는 구겨진 것을 다리미로 펴기도 하고 목욕도 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정성을 기울여 준비하는 것이 보통이다. 특별한 날은 더 신중하게 한다. 사람에게 칭찬받는 행동이 책망받은 가인의 행위임을 알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다.
2)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종교 행위 행위를 빗댄 것이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쉬우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였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래서 기록된 내용을 아주 자세히 보아야 한다. 아벨의 행위는 종교 행위가 아님을 말씀하고 있다. 이것을 놓치면 큰일이다. 비사(히다)로 되어있어서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좋아하는 그 어떤 것도 받으시지 않는다. 모두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탐진치(貪瞋痴, 어리석은 것을 무릅뜨고 탐하는 것)가 없는 것만 받으실 수가 있다. 하나 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벨이 드린 양의 첫 것은 지성소로부터 나온 생명의 빛을 상징한다.
그러면 신도들이 드리는 예배, 기도, 십일조, 헌금이 지성소로부터 나온 것인가? 그렇지 않다. 겉 사람의 행위에 불과하다. 지성소는 내면에 있는 생명의 빛이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