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이 좋아 / 최미숙
결혼하고부터 다니는 미용실이 있다. 뭐든 한번 인연을 맺으면 웬만해서는 바꾸지 않아 지금까지 다닌다. 자주는 아니고 1년에 두세 번, 그것도 앞머리가 눈을 가려 더이상 참을 수 없어야 간다. 손님이 많으면 차례를 기다리느라 지루하기도 하고, 작은 의자에 앉아 장비를 달고 2-3시간을 견뎌야 해 큰맘 먹고 간다. 어쨌든 40년 가까이 갔으니 단골이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파마기가 없이 풀어진 머리가 꼴 보기 싫어 큰맘 먹고 갔더니 공사 중이다. 지난번에 월세가 만만치 않아 2층 건물을 사서 살림집과 가게를 겸한다며 앞으로는 그곳으로 오라고 하기에 문을 열었을 거라 생각했다. 개학이 코 앞인데 더 미룰 수 없어 아파트 부근 남편이 자주 다니는 미용실로 갔다.
처음이라 어색한데 손님까지 많아 한참을 뻘쭘히 기다려야 했다. 내 차례가 되자 가운을 입고 의자에 앉았다. 긴 머리는 조금 자르고 자연스러운 파마를 원한다고 했더니 원장님이 세팅 파마를 권한다. 머리를 약간 자르고 몇 가지 약을 바른 후 열이 나는 기구를 붙인다. 1시간쯤 지나 유연제를 바르고 감은 후 마무리 손질을 했다. 다른 때 보다 30-40분은 빨리 끝나서 다행이라 여기며 거울을 보니 하다 만 것처럼 부스스하다.
집에 돌아와 일을 하는데 새로 한 머리가 계속 신경이 쓰였다. 아무리 자연스럽다 해도 축 처져 있는 것을 보니 화가 났다. 적은 돈도 아니고 거금 12만 원씩이나 주었는데 볼수록 짜증이 났다. 거울 앞에서 신경질을 내고 있었더니 남편이 그러지 말고 다시 가보라고 한다.
다음 날 퇴근하고 미장원에 들렀다. 머리를 보여주며 파마가 전혀 나오지 않았으니 다시 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원장님은 세팅 파마가 원래 그런 거라며 잘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도 약간 웨이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마지못해 앉으라고 한다. 끝나고 거울을 보니 어제보다는 훨씬 마음에 들었다. 원장님도 그때서야 전날보다 낫다고 한다. 단골을 바꿀 기회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 일이 있고 한동안은 미용실을 가지 않았다. 그러다 엄마 초상을 치르고 쉬는 시간이 생겨 단골 미용실을 찾았다. 오랜만에 왔다며 반갑게 맞아준다. 마침 손님이 없어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내 취향을 알기에 길이만 조금 자른다고 했더니 알아서 해 준다. 오래 알고 지내는 사람이 주는 편의는 이래서 좋다.
열기구를 뒤집어쓰고 있는데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미용실에 있으면 시간이 걸려 지루하기는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재미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살을 붙여 배꼽 잡게 하고, 남을 욕하기도 하며, 시댁과 남편 흉도 보고. 자식과 재산을 자랑하기도 한다. 다들 한마디씩 하다 보니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온다. 눈을 감고 손님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가 아니라 ’모든 이야기는 미용실에서 나온다’라는 생각이 든다.
원장님도 빠질세라 한마디 거든다며 엄마 이야기를 시작했다.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러 병원에 갔는데 사람이 많더란다. 다들 가슴에 화-이-자 라는 명찰을 달고 있어 ‘이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본인에게도 같은 이름표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간호사에게 자기 이름은 ‘화이자‘가 아니고 ’오인례‘로 이름이 틀렸으니 맞는 이름표를 주라고 했단다. “하하하”, “호호호” 여기저기서 큰소리로 웃고 난리다. 백신 이름을 모르는 엄마 때문에 병원에 있던 많은 사람이 얼마나 웃었겠냐며 열변을 토한다. 그 장면을 상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일반 상식이 부족해 일어났던 원장 어머니의 재미있는 경험담은 계속되었고, 머리에 보자기를 뒤집어 쓴 손님들은 계속해서 배꼽을 잡았다.
익숙한 것은 사람을 편하게 한다. 반면 새로운 것은, 마주하는 설렘과 즐거움도 있지만 동시에 긴장감으로 사람을 주눅들게 만든다. 그래서 단골을 찾나 보다. 나이가 들수록 오랜 시간 함께 한 곳이 좋다.
첫댓글 우리 동네 병원에도 화이자 이름을 가진 분이 많더군요.
어쩜 저랑 똑같이 미장원 이야기를 쓰셨네요.
교장 선생님은 이발소.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하시겠어요. 하하.
오인례 할머니 말씀에 '빵' 터졌습니다.
혼자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누구나 머리 손질은 꼭 해야되는 일이라 그러겠지요?
'단골' 이 미용실 이야기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요!
최선생님, 역시 글 잘쓰시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단골 미용실에 가면 왠지 마음 편하고 알아서 머리 손질해주니
자세하게 설명 안 해도 되고 좋더라고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미용실 이야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