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를 읽고
세간을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건을 보노라면 언어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보라색 표지의 자그마한 책<언어의 온도>를 손에 쥐고서 이 책의 표지는 체온보다는 조금
은 더 따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자출신의 작가는 직업병처럼 축적된 에너지-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는 습관-를 활용하
여 사람과 삶과 사랑에 관련된 내용을 言, 文, 行 3장으로 나누어 정리한 책이다.
지극히 평범하고 지극히 일상적인 것을 끌어내는 힘이 작품으로 존재하게 한 것이다.
말에도 온도가 있다.
체온(36.5도)보다 높으면 온기의 정이 가는 것이고 그 낮으면 찬 기운이 돈다. 너무 높으면
용광로에 녹아 들어가듯이 없어지는 것이고 너무 낮으면 동태가 되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몸에 탈이 나면 열이 나서 뜨거워지고, 완전
하게 탈이 나면 숨이 멈춰지면서 차가워진다. 그래서 살아있는 생명체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는 따뜻함을 유지해야 한다. 이 때 우리는 과유불급이라고 한다. 가령 위로의 표현을 잘
익은 언어-적절한 온도-로 전달할 때 효능을 발휘하지만 짧은 생각과 설익은 말로 건네는
위로는 부작용을 낳는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임을 전제로 하고 살아가는 것이기에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는 중간지점
에 서서 사람, 사랑, 삶으로 이어지는 일상에서 말의 온도를 유지하는 중심어는 사랑이다.
사랑의 본질은 상대가 원하는 거를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건 작은 사랑인지도
모른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큰 사랑 아닐까?
공자가 인仁을 설명하면서 “너가 원하지 않는 바를 상대에게 베풀지 마라.”고 한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이 책에서 진짜사랑과 가짜사랑을 가르는 기준으로 상대를 자신의 일부로 여길 수 있는지
여부라고 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상대의 낮과 밤도 갖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는 법”이
고, “썸 타는 것은 좋아하는 감정의 확신과 의심이 밀물과 썰물처럼 교차하는 법, 그러다가
의심의 농도가 점점 옅어져 확신만 남으면 비로소 사랑이 시작되는 거” 라고 적고 있다.
상대의 감성과 이성을 녹여서 마치 한 몸처럼 일체화를 이루고 서로가 믿고 맡길 수 있는
경지가 진짜사랑인 것이다.
또한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면서 일정한 공간이 필요하다. 나만의 영역.
삶의 틈이 있어야 든든하다. 빡빡하거나 오밀조밀하면 비바람을 견뎌내지 못한다. 틈이 있
어야 사랑이 싹트는 것이다. 돌 틈 사이에서 주고받은 속삭임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도 시작되었다. 틈 사이를 보는 관찰력이 이 작가의 장점이다. 아는 사진작가 후배가 미물
처럼 보이는 미세한 것에서 자기만의 관점으로 접근하여 작품사진을 찍어내는 것을 보았다.
작가는 보통사람들과는 달리 자기만의 방식으로 시선과 관점으로 접근하여 미세한 틈을 찾
아 정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틈은 옥에 티가 아니고 작품에 하자가 아니다. 겨를이고 여유다.
각막의식수술을 받은 사람은 세상을 처음 본다. 차창 밖은 온통 새롭고 호기심으로 가득하
기에 중얼거린다. 그러나 버스안의 승객 누군가는 정상 아닌 사람으로 비난의 화살을 쏘아
대고 있다. 남의 사정에 조금은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마음의 여유-남을 여餘 넉넉할 유
裕-를 가지고.
필자는 행복을 여유에서 찾는다. 여는 ‘삼시 세끼 먹고 남는 것’이 ‘여’고 유는 ‘계절별로 갈아입을 옷이 있는 상태’가 ‘유’라고 본다. 사람이 밥 세끼 먹고 계절 따라 갈아입을 옷 만 있으면 여유고 행복한 것인데,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생각이 집住까지 확보해야 여유라고 생각하는데 있다고 본다.
다음은 말의 진솔성이다. 그냥 청아하고 정감이 오롯이 들어있다. “니 내 마음 알지”라고
표현하고 싶다. 일전에 경남 진해의 맥주 집에 갔더니 안주이름이 ‘아무거나’였다. 모든 재
료가 들어간 모듬 안주다.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알아서 재료를 조합하고 만든 것이다. 반
면에 교언영색하는 자의 태도다. 내뱉은 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보태게 되고 상대
의 말보다 내 말이 중요하므로 남의 말꼬리를 잡거나 허리를 자르는 빈도가 높아진 상태다.
처음에 한 번 속지 두 번 속지 않는다. 내뱉는 말이 잘못 되었을 때는 곧바로 사과하라.
작가는 ‘먹는 사과는 당도가 중요하고 말로 하는 사과謝過는 순도가 중요하다.’고 적고 있다.
진솔함이 바탕이 되어 신뢰관계는 두터워지고 성장하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육체적 성장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성숙이 되어야 한다.
리더는 전장 터에서 앞장서 먼지 먼저 뒤집어씌우고 여행에서 장애물을 제거하고 함께 가는
사람이다. 학교에서 잘못이 있으면 당구큐대 또는 출석부 모서리로 머리를 맞으면서 리더
는 고통을 수반해야 하는 것인가?
어렵고 힘든 일은 먼저 행하고 이익이나 부산물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거나 생각을
뒤에 두는 것이다. 리더는 실패보다는 시도하지 않았을 때 무력감에 잡히는 것이 더 두려운
일이기에 책임감과 창의적 사고를 전제로 한다.아픔과 고통의 과정에서 성숙해 지는 것이
다.
성숙하다는 의미는 지혜가 생겼다는 것이다.
知(알다)는 ‘卵(알)에서 파생된 글자로 안다는 것은 사물과 현상의 외피뿐만 아니라 내부까
지 진득하게 헤아리는 것’을 말한다.
공자는 “내가 아는 것이 있느냐. 아는 것이 없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묻는다면 비어 있는
데서 출발하여 나는 그 양단을 두들겨 밝혀내리라.”고 했다.
모른다는 것은 배움의 시작이요. 진리탐구의 출발점이다. 비어있는데서 출발한다는 것은 자
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 경험, 가치관, 신념을 통한 단정과 확신을 뒤로 하고 어린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며 양 끝단을 두드리는 것은 좌우 양 끝 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
을 살피고 살펴서 철저한 검증을 통한 진리를 찾아가는 노력이다.
배우고 토론에 임하여서 선입견이나 아집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참여하는 속에 지혜는 영
글어 가는 것이다.
책을 덮으면서,
어느 새 얼굴이 닳아 오르고 마음의 온도가 0.5도 상승한 것 같은 느낌이다. 언어 속에만
온도가 있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도 온도가 있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때 그 진가가 발휘되는 것이다.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주변
을 돌아보아 단점을 들추어내는 것보다는 장점을 발견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자.
마음에 여유가 없이 살아가는 이웃들.
일상의 틈을 나만의 관점으로 글로 표현한 단문에 독자들이 쉽게 반응하는 것이고 여유를
찾기 위해서 잔잔한 영상 같은 것이 떠올라서 독자들의 마음에 온기가 도는 것이고 나도 작
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가슴을 펴고 지갑을 여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