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청에 부는 바람/김우선
천불동 계곡의 미친 바람은
마등령에서 내려 오는 길의 암릉과 단풍
열 나흘/달의 한귀퉁이 쯤에서 얌전히 머물다
그예 하룻밤을 못참아
설악골이나 잦은 바위골의 온갖 눈을 휘몰고
대청으로/대청으로/치솟지
가다가/용소골/염주골의
눈까지 몽땅 휩쓸어 올리고
곱게 잠든 천당폭쯤에서/몇 번 맴돌면
그예 천당폭의 미친 바람은
설악골과/잦은 바위골과/용소골/염주골의
깊고 비좁은 밑바닥에서부터
모든 기억과 회한을 끄잡아내어
죽음의 계곡/푸른 빙폭 위에까지
열나흘 달의 고운 달빛으로 환하게
밝혀 놓고야 말지
다시 천불동 계곡에 부는 바람은
미친 바람/금강굴에서/마등령 넘어
오세암/백담사까지/온 설악의 눈을 휘몰고 가
입정한 선승의 화두에 맴도는/미친 바람
열나흘 달의 한 귀퉁이 쯤에서 머물다
그예 하룻밤을 못참고 뛰쳐나와
온 산의 눈을 휘저어/대청으로/대청으로
치솟지
이 산행기를 쓸 이 시각이면 우리 신들메의 세 사람-떠드리, 삐리리, 왕회장나으리-은 소청산장에서 한잔 하고 있겠지. 2박 3일로 백담사에서 용아장성을 넘어 대청봉을 끼고 돌아 화채봉으로 해서 피골로 내려오는 단풍 산행중이다. 그 놈의 허리 부상에 기어코 못 가고 빠져 이 글을 쓰고 있다.
무엇부터 써야하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근 1년 만에 다시 잡아보는 산행기는 처음부터 막막해진다. 쓰라는 강요에 쓰긴 써야 하는데 너무 장황할 것 같기도 하고, 압축하자니 재미가 덜할 것 같고..... 에라 모르겠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써보자.
신들메산악회가 2007년 가을 코다키나발루로 첫 해외 산행을 다녀온 후 최소한 2년에 한 번씩은 해외로 나가자고 한 것이 나의 개인적은 사정으로 근 1년이나 늦어졌다가 이번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결정이 되어 중국의 虎跳峽 트레킹과 옥룡설산을 아우르는 산행을 나서게 된 것이다.
여강에서 북쪽으로 2시간 30분 외곽에 위치하는 호도협은 옥룡설산과 합파설산 사이에 형성된 길이 총 35Km의 협곡으로 아찔한 협곡 아래에는 금사강이 흐른다. 上호도협, 中호도협, 下호도협으로 구성된 호도협은 뉴질랜드의 밀포드 사운드 트랙, 페루 마추피추의 잉카 트랙과 함께 세계 3대 트레킹 코스의 하나로 손꼽힌다. 운남성의 차와 티벳의 말을 교역했던 茶馬古道의 옛 길을 따라 옥룡설산과 합파설산의 만년설산을 조망하며 대자연의 멋을 만끽할 수 있는 천혜의 트레킹 코스이고, 옥룡설산은 중국의 4대설산 중 가장 높은 매리설산(6,740m)을 비롯하여 옥룡설산(5,596m), 합파설산(5.96m), 백마설산(5,430m)의 하나이며 이 중 인간의 접근이 허용된 것은 합파설산 하나뿐이며, 나머지 산들은 全人未踏이라는 것이다.
매리설산 (梅里雪山 , 해발 6,740m ) 은 중국 윈난성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티벳탄(장족)들에게는 가장 신성한 산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1991년 전세계 등반계를 경악하게 한 사건이 여기서 벌어진 이후 중국정부가 등반금지를 시켰다고도 한다.
메리설산의 정상 등정을 하기 위해 17명의 중국 일본 합동원정대가 구성되어서 등정을 시도했지만 정상부 근처에서 눈사태로 인하여 17명 전원이 실종된 사건이 벌어진 곳...... 결국17명이 전원 사망하는 등반계에서 전무후무한 일로 사건은 종결됐지만, 산 뒤에서 실종된 대원들이 산 앞쪽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일을 가지고 티벳족들은 자신들의 神山을 오르다가 禍를 당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옥룡설산에서도 등정을 시도하다 1명이 죽는 사건 이후 중국정부가 나시족의 聖山이라는 이유로 등반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떠나기 전날 大同際 겸 체련대회에서 허리를 삐끗하여 출발하는 날 일어나니 허리가 끊어지게 아프고 제대로 일어나지지가 않는 것이다. 준비는 해야 하는데, 야단났다. 급히 차를 몰아 휘경동의 아는 한의원을 가니 아직 문을 안 열었다. 옆집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집에 와도 별 차도가 없다. 나설 시간은 다가오는데, 다시 집 근처 정형외과에 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니 5일치 약을 지어주는데 거의가 진통제 수준인 것 같다. 그래도 주사 맞고 약을 먹으니 통증은 가라앉았으나 추후가 문제다. 급한대로 약속장소인 화랑대역으로 가니 아직 회원들이 안 보인다. 사실 인천공항까지는 1인당 왕복 최하 3만원이니 차량하나로 이동하고 주차비를 합친다 해도 훨씬 덜 경비가 들어가 차를 가져가기로 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마샘은 연락상의 착오로 바로 공항으로 오기로 했다- 을왕리로 달려 점심 겸 結團式을 한다. 씨끄리 동지가 가져온 양양산 송이버섯과 조개구이, 그리고 칼국수로 배를 채우고 공항에 가니 마샘은 벌써 나와 있다. 서둘러 소주와 맥주를 조달하고 입국장에 들어서 집에 전화를 하니 면세점에서 ‘아이크림’을 사오란다. 첨 들어보는 단어인데..... 결국 못 사고 비행기는 서해 바다를 건너 우리를 칙칙한 안개가 자욱한 성도공항에 내려놓는다.
단둥시가 고향이라는 조선족 가이드 아가씨(얼굴은 박경림 닮았다) 왈, 주저리주저리..... 성도에는 미인이 많고(1년에 200일 넘게 날씨가 습해 해가 안 뜬단다.), 술의 종류도 많고, 산도 많고......등등등.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돌아올 때도 똑같이 떠들어댄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사천성의 성도로 인구는 8천만, 청도의 인구는 천만명.
중간 기착지 호텔에 여장을 풀고 다음날 중국의 첫 번째 음식을 먹는데 영이다. 니글니글한 기름땜시 가까스로 배만 채우고 다시 청도공항에서 여강행 비행기를 탄다. 그런데 이 중국이라는 나라는 참으로 요상한 것이, 만만디라는 것은 익히 들어서 아는 사실이지만 화물 붙이는 곳의 일하는 사람들의 노닥거림이나, 비행기의 연착시간이 장난이 아니다. 餘談으로 우리 이사장 정선생님이 여기 와서 보았다면 전부 職位解除감이란 농담도 했다.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중국의 운남성은 진짜 천혜의 땅이란 생각이 든다. 알맞은 산과 평야, 그리고 雪山. 구름사이사이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진짜 멋있다. 여강의 날씨는 비록 남쪽나라지만 워낙 高度가 높아 우리나라 가을 날씨다.
공항에서 여강시내(인구30만)로 들어오니 북쪽으로 옥룡설산의 위용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나시족 전통 점심식사를 하는데 이곳은 좀 음식이 낫다. 오늘의 트레킹을 위해서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데 우리 8명과 부부 3쌍이 일행인데, 유난히 꼼지락거리는 부부가 있다. 항상 투덜투덜.....말은 왜 그리 많은지. 진짜 떨쳐버리고 가고 싶은 욕구가 불끈불끈.
티벳으로 통하는 천장공로의 좁은 길을 곡예하듯이 2시간 반을 달려 빵차로 갈아타야 하는 교두진에 도착. 다시 지금부터 호도협의 험난한 길을 달려가야 한다. 밑은 난간도 제대로 없는 천길 낭떠러지요, 전날 비는 와서 비포장 진흙길은 미끌미끌, 중간중간 확장공사중으로 바로 앞으로 돌멩이가 굴러 떨어지고, 빵차 운전수는 자신의 운전 실력을 뽐내려는지 핸드폰에다 옆의 가이드와 히히덕거리며 운전하는데, 우리는 뒤에서 막말로 오줌만 안 쌌다 뿐이지, 내리니까 다리는 후덜덜. 그러니 투덜이 부부 내리자마자 세상에 이런 곳을 트레킹시키는 여행사가 어디 있나며 본사에 전화해서 따진다는 둥, 고발을 한다는 둥,,,,, 진짜 얼어 죽을. 아니 그럼 호도협이란 곳이 어떤 곳인가 모르고 왔단 말인가. 그렇다면 지들이 바보지.
우리가 오늘 묵을 티나객잔에서 중호도협의 물가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세계에서 가장 긴 강 - 장강(長江) - 인 양자강이 이곳에 오면 '금사강'으로 이름을 바꾸고 거대한 두 산의 발치로 접어든다. 인도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의 충돌로 야기된 지각운동시 하나였던 산을 옥룡설산과 합파설산으로 갈라놓았다는데 그 갈라진 틈으로 장강(長江)이 흘러들면서 16km의 길이에 높이 2,000m에 달하는 길고 거대한 협곡이 만들어졌다. 호랑이가 건너뛸 수 있다하여 호도협이라 이름 붙여졌다는 곳으로 우리 시골의 홍천강 넓이만한 흙탕물이 내려오다 갑자기 폭 30여m의 호도협으로 빨려 들어가니 그 물살의 힘이란...... 우르릉쾅쾅. 마른 하늘에 날벼락치는 소리가 난다. 박지원이 북행 시 분명 이곳에 오진 않았을 터인데 열하일기에서 표현한 물소리와 흡사하다.
다시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급경사진 길을 다시 올라와 티나객잔에서 旅裝을 푸니 푸른 눈의 유럽파 가족들이 눈에 많이 뛴다. 그 중 한 놈(?)이 우리의 쐬주를 보더니 아는 체를 한다. 연거푸 두 잔에다 고추 장아찌를 먹더니 좀 매운가 보다. 그래도 잘 먹는다.
코타키나발루에서 보던 별이 생각나 객잔 마당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들이 총총 보이기는 하나 코타보다는 못 한 것 같다. 아마 날이 조금 흐려서일 것이다. 소주 한 잔씩 하고 내일의 트레킹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다.
산속의 객잔이라지만 시설은 준호텔급이다. 아침은 몽골인가 어디서 본 것 같은 피자같은 빵(우리 마누라는 ‘난’이라 한단다)에다 계란 후라이 하나를 말아먹는 것인데 맛이 괜찮다. 떠드리와 용팔이는 통하지도 않는 말로 주인 여인네한테 하나 더 달란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시킨 곳에다 안 주고 옆 테이블의 부부팀에다가 준다. 그걸 또 자기네가 시킨 냥 받아먹고.... 떠드리 억울하다며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며 남들은 나와 버린 홀 안에서 기다리다 씩씩거리며 나온다. 결국 더 못 먹었다는 야그지( 이번 일로 인해 더 달라는 중국말 ‘더 게이러’를 가이드한테 물어물어 배웠다).
본격적인 트레킹의 시작이다. 호도협 트레킹은 구름 속을 걷는 것과 같다. 하늘에서 몇 백미터는 됨직한 관음폭포가 떨어지고 까마득한 절벽 밑으로 옥수수 밭과 호젓한 마을이 보이고 거의 90도 가까운 곳에서 양떼들과 말, 소들이 매달려 있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간다. 계속 이 길을 끝없이 가고 싶다. 그 옛날 말방울 울리며 마방들이 가던 길로 계속,,,,, 그러나 우린 지금 반대로 가고 있다. 앞을 보면 끝없는 구절양장 같은 길이고, 옆을 보면 옥룡설산의 산수화가 구름 사이사이로 눈과 함께 보이고, 밑을 보면 누런 금사강이 따라온다. 금사강도 봄이면 푸른 색으로 변한단다. 만년설이 녹아 내릴 때만.....
갑자기 뒤에서 말쑥한 정장을 한 청년이 지나간다. 아하! 여강으로 시내나들이를 가는 모양이다 생각했는데 다음 마을에서 친구또래들과 만나 뒤돌아 온다. 이런 험한 산길이 그들에게는 마실 길이 되는 것이다.
중간중간 만년설인 합파설산의 눈이 녹아내리는 맑은 물이 수없이 흘러내리고, 조망 좋은 곳의 암자도 지나고, 호두나무가 무성한 마을도 지나가고, 합파설산의 광산 길도 지나가고, 말과 양떼를 몰고 가는 목동도 지나가고, 드디어 중도객잔에서 휴식을 하기로 한다. 따뜻한 차를 마시는데 옆의 푸른 눈의 사람들이 먹는 피자 비슷한 후라이가 맛있어 보여 두 개를 시켜 소주 한잔씩. 객잔을 나와 점심약속이 되어있는 차마객잔을 향해 출발하는데 처음부터 얼굴이 익은 사람이 있었으나 확실하지도 않고, 또 알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었지만 이 먼 데까지 와서 하는 마음에 아는 체를 하니 맞단다. 20여 년 전 처음 파견나간 화장실 옆에서 아웅다웅할 때 같이 근무한 기관의 직원이다. 부부와 같이 왔단다. 말로는 안나푸르나, 킬리만자로도 갔다 왔단다.
이 곳의 고도가 대략 2,000m는 넘을 텐데 호도, 배, 사과, 석류, 여주 등의 과일들이 지천이다. 배가 먹음직한 것이 떨어져 있길래 주워서 가다 먹으니 완전 꿀맛이다.
점심 먹는 차마객잔에다 전화로 오골계백숙을 주문해놓았기에 도착하니 오골계가 바로 대령이다. 맛도 괜찮고 고량주 한잔하니 얼굴이 얼콰하다. 이곳 차마객잔의 화장실도 유명하고, 화장실 위에서 바라보는 옥룡설산의 위용은 어마어마하다. 햇빛도 따가워지고 본격적인 오르막길이라 숨이 가빠온다. 고량주 한잔 덜 먹을걸 후회도 해보지만..... 기를 쓰고 올라 전망대에 오니 아주머니가 좌판을 벌리고 과일을 팔고 있다. 이름도 모르고 주는 손길에 받아먹고 보니 맛이 괜찮다. 호두도 사고 떠들다 보니 어여쁜 아가씨가 우리보고 한국인이냐 묻는다. 그것도 한국말로.....서울에서 혼자 트레킹을 왔단다. 어찌 반가운지 와락 끌어안고 프리허그를 하고 싶으나 언감생심. 대단한 아가씨다. 아무튼 서로 무사 귀환을 언약하고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그 유명한 28밴드라는데 막상 가보니 별거 아니다. 그렇다. 이 곳은 반대로 올라오는 코스가 힘든 것이었다. 우리는 빵차로 중호도협까지 가서 다시 거꾸로 교두진으로 나오는 형태지만 이 사람들은 처음부터 반대로 걸어서 반대쪽 샹그릴라 방향으로 종주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군데군데 말을 타고 오는 여행객들도 이곳에서만큼은 걸어 올라간다. 그만큼 가파르다는 뜻이렸다. 나시객잔에서 맥주 한잔하니 또 다른 한국인 여행자들이 반대로 가고 있다. 지금부터 교두진까지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산길 형태로 나무가 없어 금사강의 누런 황토물과 옥룡설산의 흰눈, 그리고 반대편 산 중턱의 푸른 밭과 들을 보고 걷는 길로 단순히 걷는 트레킹 코스로는 최고로 쳐주고 싶은 곳이다.
마을에 도착해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어제 그 빵차로 교두진으로 내려가 다시 버스를 타고 천장공로을 따라서 여강으로 들어간다.
이 곳. 여강의 나시족의 종교를 두고 말이 많았는데 - 떠드리는 이슬람교가 많이 가미되었다 하고, 나의 작은 至論은 이슬람교가 이 곳을 올려면 희말라야 산맥을 넘어오거나, 티벳을 거쳐야 하는데 불가능하다 - 그런데 동파교란다. 그리고 나시족(納西族)은 1000년 전부터 사용해온 독특한 象形文字로 오늘날까지 유일하게 사용되는 순수 象形文字인 샤머니즘 성격을 띤 나시족의 전통종교 동파교의 경전을 기록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상형문자는 고성 안에 담벼락에도 새겨져 있다.
하루를 보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내일 옥룡설산을 오르기 위한 공포 아닌 공포를 잊으려함인지 모두들 창밖의 이국 풍경을 감상하느라 조용하다. 그 와중에도 용팔이는 잠만 잘 잔다. 비행기 타도 졸고, 버스도 마찬가지, 하다못해 저녁때 발 맛사지 하는 데도 잔다. 진짜 부럽다.
씻고 중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우리의 중국식이 아닌 그야말로 니글니글한 요리에 먹는 둥 마는 둥하고 발마사지를 받으러 간다. 전신마사지를 받아보고 싶으나 다른 사람과의 타이밍도 있고 허리도 안 좋은데 괜히 발로 잘못 밟으며 어쩌나 하여 포기한다. 아무튼 시원한 발마사지 받고 호텔로 와서 간단한 맥주 한잔씩에 내일의 산행(피곤하면 高山症 증세가 더 심하다는 가이드의 말씀이 있었기에)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다. --------- 1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