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D조를 해부하다
코스타리카는 과연 승점을 따낼 수 있을까. D조는 각 대륙을 대표하는 전통의 강호가 모인 조다. 우루과이, 잉글랜드, 이탈리아 모두 과거 월드컵 우승 경력이 있다. 하지만 ‘북중미 강호’ 코스타리카만큼은 상황이 다르다. 마치 고래 싸움에 낀 새우 격이다. 코스타리카에 일격을 당한다면 어느 팀도 16강 진출이 어렵다.
우루과이-공격의 핵 수아레스 다양한 수비전술로 상대팀 농락
2006년 오스카 타바레즈 감독 부임 이후 남미 최강팀으로 재등극했다. 확실한 축구 철학과 뛰어난 개인 기량,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지난 남아공 월드컵에선 4위를, 2011 코파 아메리카에선 우승을 차지했다. 이제 우루과이는 더 높은 도약을 꿈꾼다.
타바레즈 감독의 역량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우루과이가 남미 축구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건 타바레즈 감독의 실용 축구덕이다. 에딘손 카바니와 루이스 수아레스를 제외한 모든 선수를 수비적으로 기용하고 상대에 따라 전술 변화를 주어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다.
우루과이는 이미 남미 축구 강호에서 세계축구 강호로 성장했다
그러므로 우루과이 전술을 한 가지로 정의하는 건 무의미하다. 전술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포메이션만 봐도 4-3-3에서 5-3-2까지 매우 다양하다. 지난 콜롬비아전은 다이아몬드 4-4-2를 사용해 중원을 탄탄히 했고 본선 직행이 걸린 에콰도르전서는 5-3-2를 사용해 수비 위주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하나 일관성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수비다. 수비할 때 포메이션은 항상 5-3-2를 유지한다. 발이 느린 중앙 수비수를 고려해 수비진을 깊게 내리고 미드필더진과 수비진 간격을 매우 좁게 형성한다. 이때 공격수는 아래까지 내려가 수비하지 않아 미드필더는 넓은 공간을 메워야 한다.
체력 부담이 크다. 쉽게 중원 싸움에 밀려 공 점유가 어렵다 보니 전술, 전략과 비교하면 경기 운영 효율이 떨어진다. 공격 전개도 단조롭다. 측면 수비수가 돌파하거나 역습으로 한 번에 상대 골문을 노린다.
타바레즈 감독은 이 몫을 아레발로 리오스에게 맡겼다. 우루과이는 다양한 전술을 사용하고 상대에 따라 포메이션을 바꾸지만, 언제나 리오스는 팀의 핵심 자원이다. 덕분에 막시 페레이라와 호르헤 푸실레, 마르틴 카세레스를 조금 더 공격적으로 기용하고 중앙 수비수의 약점을 덜어낼 수 있었다.
코스타리카-열정적이고 공격적 5백 전술과 쟁쟁한 미드필더 가동 여부 변수
월드컵 출전 32개국 중 손꼽히는 약체다. 그런데 시작부터 만나도 너무 벅찬 상대를 만났다. 한두 팀도 아니고 무려 세 팀이다. D조는 디펜딩 챔피언도 16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다.
코스타리카는 북중미 예선서 미국과 멕시코를 상대로 좋은 성적(멕시코-1승 1무, 미국-1승 1패)을 거두며 조 2위(5승 3무 2패)로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했다. 개인기량이 떨어지고 수비진 또한 견고하지 않지만, 팀내 ‘간판스타’ 브라이언 루이스의 날카로운 왼발과 알바로 사보리오의 골 결정력이 큰 힘을 발휘했다.
D조의 배정돼 고민이 많은 코스타리카는 1게임 승리도 벅찰 듯하다.
아주 열정적이고 공격적이다. 5-3-2 또는 4-2-3-1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경기장을 넓게 사용하며 빠른 역습을 시도한다. 그러나 지나친 열정은 오히려 독이다. 자메이카전과 멕시코전만 봐도 그렇다. 아주 좋은 득점 기회마다 조급한 플레이로 날려버리며 도리어 불안한 수비력을 노출했다.
수비진을 낮게 구축하고 5백 수비 시스템(5-4-1, 5-2-3)을 사용해도 속수무책이다. 리더 부재가 아쉽다. 지안까를로 곤살레스, 마이클 우마냐, 조니 아코스타, 주니오르 디아스, 호세 살바티에라로 이루어진 수비진은 노련미·라인유지·대인방어·간단한 공 처리 어느 하나 시원치 않다.
뜻밖의 행운을 기대해야 한다. 코스타리카는 D조에서 이동 거리(2,268km)가 가장 짧다. 첫 상대 우루과이가 4,688km, 잉글랜드가 3,178km, 이탈리아가 3,086km로 일정 부담이라는 변수 속 행운아가 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유망주 조엘 캠벨이란 존재도 있다. 이번 시즌 잉글랜드 아스날에서 그리스 올림피아코스로 임대가 리그 21경기 출전 7골을 기록했고 대표팀에선 지역 예선서 3골이나 터뜨렸다. 하지만 호르헤 루이스 핀투 감독이 강호와의 3연전을 앞두고 5백 전술과 쟁쟁한 미드필더를 포기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잉글랜드-역습으로 축구 종가의 전통 살린다
권토중래(捲土重來). ‘흙먼지를 날리며 다시 온다’는 말로 실패에 굴하지 않고 실력을 길러 다시 도전하는 모습을 일컫는다. 딱 잉글랜드 대표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번 월드컵까지 총 14번의 본선 무대에 올랐으나 1966년 우승을 차지한 자국 월드컵과 1990년 4강에 오른 이탈리아 월드컵을 제외하면 매번 4강 문턱서 무너졌다. 로이 호지슨 감독은 무너진 ‘축구종가’의 자존심 회복을 노린다.
호지슨 감독은 전임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사임한 이후 약 1년 9개월 동안 대표팀을 이끌어왔다. 부임 초만 하더라도 수비 중심 경기를 펼쳐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적절한 신구조화와 실용 축구가 팀을 상승세로 이끌었다. 유로 2012서 프랑스, 스웨덴, 우크라이나를 차례로 제압하고 이탈리아와 치른 8강전도 승부차기 접전 끝에 패했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는 역습을 무기로 월드컵에서 자존심 회복을 노린다.
잉글랜드는 유독 승부차기에 약했다. 지난 20년간 총 7번의 승부차기에서 단 한 번밖에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아르헨티나(73%), 독일(71%), 브라질(64%) 등 여타 대표팀보다 현저히 낮은 승률(17%)이다. 실제 호지슨 감독은 친선경기를 통해 승부차기를 대비하고 싶다는 뜻까지 내비쳤다. 최대한 승부차기까지 안 가는 게 상책이다.
호지슨 감독은 4-3-3과 4-4-1-1 포메이션을 사용한다. 거칠지만 조직적이고 균형이 잘 잡혔다. 공을 갖고 있든 없든 측면 자원이 항상 미드필더를 5명으로 유지해 수비 중심 경기를 펼친다.
그러나 공을 꾸준히 점유하지 못하고 풀백의 강한 압박이 효과적이지 않다. 오히려 측면으로 돌아 뛰는 공격수를 자주 놓치며 실점 위기를 맞았다. 그나마 4-4-1-1을 바탕으로 한 전술이 공격할 때는 측면 미드필더가 높게 전진해 4명의 공격수로 포진하고 수비할 때는 아래서 수비 부담을 덜었지만 지난 독일전서도 드러나듯 무언가 부족하다.
결국, 득점력을 높이는 방법이 최선이다. 잉글랜드는 지역 예선 동안 여러 선수를 시험하며 우크라이나, 몬테네그로, 폴란드를 꺾고 조 1위(6승 4무 31득점 4실점)를 차지했다. 역습 전략이 효과를 봤다. 중앙 미드필더가 찔러주는 긴 패스 또는 측면 공격수가 공을 직접 몰고 돌파해 골을 터뜨렸다.
따라서 호지슨 감독은 공수전환이 뛰어나고 공을 빠르게 전방으로 나르는 미드필더가 필요하다. 앤드로스 타운젠드가 제격이다. 비록 뒤늦게 몬테네그로를 상대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지만, 데뷔전서부터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최우수 선수에 선정됐다.
강력한 경쟁자 시오 월콧이 부상으로 월드컵 출전이 어렵고 알렉스 옥슬레이드 체임벌린 또한 부상으로 오랫동안 전력에서 이탈한 걸 생각하면 타운젠드는 웨인 루니와 함께 잉글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다.
이탈리아-빗장수비 견고 여전히 위력적인 피를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브라질, 독일, 스페인과 같은 팀은 보통 견고한 수비 조직과 창의적인 미드필더, 뛰어난 공격 재능은 물론이거니와 전술능력 및 준비성까지 탄탄하다. 그러나 어느 팀도 이탈리아의 대처 능력을 따라가지는 못한다. 이탈리아는 진가를 나타낼 때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다.
체사레 프란델리 감독은 이탈리아를 최고 팀은 아니어도 최고 팀을 꺾을 팀으로 만들었다. 충격적인 남아공 월드컵 이후 과감히 세대교체를 감행하며 유로 2012서 강호의 면모를 보였다. 다양한 전술운용이 눈길을 끌었다.
빗장수비에다 컴퓨터패스를 구사하는 피를로의 건재는 이탈리아의 막강 전력을 구축한다.
대회 초반 이탈리아는 엠마누엘 자케리니와 크리스티안 마지오를 측면에 기용한 3-5-2 포메이션을 사용했다. 그리고 얼마 뒤부터는 다이아몬드 미드필더를 구성한 4-3-1-2를 사용했고 이후로도 4-3-2-1, 4-2-3-1, 3-4-2-1 등 무수한 포메이션을 사용하며 전술운용에 변화를 주었다.
그러나 월드컵서 사용할 포메이션은 4-3-3이 유력하다. 프란델리 감독은 최근 4-3-1-2로 독일과 나이지리아를 상대했지만, 전술운용을 살펴보면 4-3-3을 여전히 마음속에 두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현 전술은 이전 4-3-3과 4-3-1-2 포메이션을 사용할 때와 다르다. 포메이션 구분 없이 4-3-1-2와 3-4-3 중간 어디쯤이라 보는 게 명확하다.
공격은 최전방 공격수를 몇 명을 기용하든 두 명이 전방에 머무르고 수비는 외면상 4백이지만 다니엘레 데 로시가 자주 아래로 내려가 지오르지오 키엘리니와 측면 중앙 수비수를 맡는다. 그렇다 보니 수비진은 레오나르도 보누치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 수적 우세해갈 수 있었다.
이탈리아는 유로 2012전까지만 해도 러시아를 상대로 3-0 완패를 당하며 심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당시 프란델리 감독은 데 로시를 수비수로 기용하는 3백 전술로 결승까지 올랐다. 약 2년이 흐른 지금 데 로시는 중앙 미드필더로 뛴다.
기존 선수단은 더욱 성장했고 데 로시는 한층 견고해진 수비 덕에 안드레아 피를로를 도와 공격 재능을 뽐내고 있다. 이제 부상이 잦은 이탈리아 공격진만 하루빨리 복귀해 제 기량을 펼친다면 16강 진출은 무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