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의 비명소리
박 혜 숙
이집트 풍의 룩소 호텔 1층이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카지노로 여행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이곳에서 블랙 잿이 신나게 터진다. 인철은 위스키를 주문한다. 이렇게 술을 공짜로 마실 수 있다니. 1달러짜리 팁을 주자 환하게 웃으며 위스키를 놓고 간다. 와우, 달러가 쏟아진다. 이런 신천지가 있다니 놀랍다.
위스키! 다시 외치자 아까 그 남자가 공손히 잔을 건넨다. 해롱해롱해야 돈을 잃을 테니까 고도의 상술을 쓰는 거지만 인철은 많이 땄다.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모양의 특이한 외관을 자랑하는 룩소 호텔이다. 작은 이집트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편안하고 폭 넓은 편의시설을 제공한다. 피라미드의 외관으로 인해 객실의 벽도, 객실을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도 비스듬하다.
“재미있으세요? 내일 6시 기상. 7시 출발이에요. 다른 분들 다 올라갔어요.”
“이 판만 마무리하고 갈게요. 술이 공짜라니.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데.”
“내일 못 일어나서 불쌍한 가이드 힘들게 하지 말고요.”
가이드가 6시 50에 나와 보니 여행객들이 버스 앞에 몰려 서 있다. 늦게 나오면 버스 자리가 불편하니 다들 기를 쓰고 미리 나온다. 모두투어의 서부 여행은 인기가 가장 많아 50명 이상이 여행하는데, 모뉴먼트 밸리 상품은 그래도 여유가 있다. 자리는 매일 로테이션하고 55석 중 34명이 탔으니까 중간까지는 둘씩 안고 혼자 안고 싶은 사람은 뒤로 가는 게 규칙이다. 묘하게 두 번째 자리가 기피 대상이다. 가이드가 말할 때 졸면 제일 힘 드는 자리이고 둘이 앉아야 하니까.
버스에 올라 인원을 세니 한 분이 빈다. 단체 8분, 6분, 부부 5쌍 혼자 여행 온 분을 점검하다 어제 늦게까지 공짜 술을 즐기던 정인철 씨 생각이 났다. 같이 방을 쓴 분에게 물으니 좀 더 잔다고 하여, 가방을 들고 내려와 아침식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고 한다.
인철 씨에게 전화를 거니 다급하게 말한다.
“큰일 났어요. 저희 방으로 와주실래요?”
“왜요? 이유부터 말해 봐요.”
“얼른, 얼른 와요.”
벨을 누르니 문을 여는데, 한 쪽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다. 손을 떼자 눈알이 없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않는다. 가이드도 오늘로 끝인가 보다.
“아아악. 왜요? 다쳤어요?”
“너무 놀라지 말아요. 이쪽엔 원래 의안을 끼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어디 갔어요?”
“그 놈의 술이 웬수지. 웬수.”
어젯밤 인철 씨는 조금 더 마시다 올라왔다. 의안을 넣어두는 상자를 전에 묵은 호텔에 빼놓고 와서 유리컵에다 식염수를 타서 틀니처럼 담가 놓고 잤다. 그러다 갈증이 나서 꿈결에 더듬더듬 컵이 잡혔고, 컵의 물을 마신 기억은 난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나가려고 보니, 의안조차 삼켰는지 없으니 어쩌면 좋으냐는 것이다.
비상상태다. 여행객들에게 아울렛에서 쇼핑을 하도록 넉넉한 시간을 주었다. 아줌마들이 제일 좋아한다. 인철 씨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가면서 이 상황을 영어로 어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다. 다행히 그 병원엔 한국인 의사가 있었다. 빨리 설사가 나오는 약을 먹였다. 30분 즈음부터 하루치의 노폐물이 빠지자 의사가 들여다본다.
“으아악”
“왜? 왜 그러세요?”
“이리 와 여기 좀 봐요?”
“아아악. 내려는 왔는데 끼어있는 건가요?”
“의사 30년에 똥구멍이 째려보는 건 처음이요.”
걸려있는 의안을 꺼내서 세척한 후 눈에 끼었다. 가이드가 마이크를 들고 말하는데 눈은 자꾸 인철 씨를 쳐다보게 된다. 그쪽 눈이 어제까지만 해도 의안인줄도 몰랐는데, 오늘은 누리끼리하고 냄새도 나는 듯하다. 오늘 여행일정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 그를 다른 여행객들도 자꾸 쳐다본다.
“정인철 씨, 마이크 드릴 테니까 한마디 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공짜 술에 팔려 같이 여행하는 여러분에게 폐를 많이 끼쳤습니다.”
“아니에요. 수습이 잘되어서 다행이에요.”
힘내라고 박수를 치며 위로해주는 일행에게 약속한다.
“오늘이 여행 마지막 밤이니 저녁 식사 때 제가 주류와 음료를 쏘겠습니다. 민폐 끼친 벌을 받아야지요.”
8일 간의 미서부 여행. 한 버스에 타고, 밥을 같이 먹는 동안 꽤 친해졌나 보다. 마지막 밤이라는데, 모두들 아쉬워했다. 몸은 고단하여 얼른 집에 가서 푹 쉬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얘기 잘하는 17년 차 베테랑 가이드와 또 여행을 하며, 신세계 탐험을 해보고 싶다.
오늘 만찬이 어느 때보다 기대가 된다. 모하비 사막을 가로질러 달린다. 누가 덕을 쌓았는지 오늘도 날씨는 좋다. 첫날 구름이 끼자 가이드가 물었었다. 용띠 손들어 보세요? 2명이 손을 들었다. 다행입니다. 용띠 손님이 3분 이상 타면 그렇게 비가 많이 옵니다. 그들은 비행기에 구름을 몰고 태평양을 건너온답니다. 믿거나 말거나. 용띠들이 비를 몰고 다닌다는 속설이 있나본데 날씨가 좋았다.
그랜드 캐년을 경비행기를 타고 구경할 때도 구름도 바람도 없어 가장 가보고 싶은 여행지를 마음껏 즐겼다. 여행 일정을 베테랑 가이드답게 참 잘 짠다. 4시간 반을 사막을 가로지르는 것이 지루할 테니까 중간 즈음 바스토우에서 한식으로 식사를 하며 아팠던 허리를 펴게 하는 센스가 대단하다.
여행 중 음식 간이 짜서 힘들었는데, 한국인 식당인 이곳은 간을 슴슴하게 하여 나물을 무치고, 된장국을 끓였다. 나트륨 양이 많아 골치라는데, 서양 사람들은 왜 이렇게 짜게 먹느냐고 가이드한테 물어봤다. 서양 음식은 식재료를 거의 그대로 먹어 스프나 양념한 고기 등 한정된 음식에만 소금을 넣기 때문에 그 정도는 넣어야 필요한 나트륨을 섭취한다.
우리 음식은 밥 빼놓고 전부 소금 간을 하고, 국물을 많이 먹기 때문에 우리가 합쳐보면 훨씬 많은 양의 소금을 먹는다고 설명해준다.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햇빛에서 익은 견과류를 샀다. 피칸, 아사히베리, 블루베리, 망고, 아몬드 등. 현지에서 재배해 말려 맛이 일품이다.
과거 개척시대부터 이렇게 기름진 농작물이 잘 자라는 서부를 향해 사방에서 몰려왔다, 일자리를 찾아 동부에서, 사탕수수 농장에 젊음을 묻었던 한국의 이민 1세대도. 그래서 한 때는 캘리포니아 주가 위에는 농사를 짓고 밑에선 석유를 뽑아내고, 소득 7위까지 올라갈 만큼 미국에서도 살기 좋은 곳이다.
지미 사의 얘기는 차에 타자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실직자가 넘쳐나자 서부의 넓은 땅을 개척해서 꿈을 이루겠다고 이 사막을 건너오던 가족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먹을 것이 다 떨어지고, 오랜 기간의 사막 횡단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의료시설도 없어 아기를 낳자마자 잃은 절망적인 가족 앞에, 기아 상태로 다 죽어가는 흑인을 만난다. 그의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어야 하는데, 먹을 게 아무 것도 없다. 그 때 아이를 잃은 며느리가 그 청년에게 젖을 물린다.
흑백 갈등도, 대공황의 참담한 상황도 어마어마한 휴머니티 앞에서 다 스러져 미국 전 지역에 대공황을 이길 에너지를 불어넣던 문학의 힘에 대해서 일갈한다. 노벨상 작가 죤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를 현장에서 들으니 더욱 실감이 난다.
이 후버 댐이 그 때 세워진 수력발전소이다. 희생된 사람만 99명, 그들을 기리는 위령탑도 세워져 있다. 1930년대에 저런 댐을 건설하다니. 하긴 우리나라 수풍댐도 일제강점기에 세워졌다. 하지만 우리는 후버댐 쪽으로 가진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았다.
미국은 9.11 쌍둥이 테러 후 모든 사고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만약 후버 댐이 폭파된다면 몰아닥칠 엄청난 재앙에 대한 대비이다. 이 댐을 무너트리기 위한 폭탄은 승용차로는 수송할 수가 없으니, 승용차는 통과시키고, 대형 버스나 트럭은 새로 만든 길로 다니며 멀리 바라볼 수밖에 없다.
코리아 타운에서 한국간판을 보자 환호하며 큰 소리로 읽었다. ‘몽’이란 한인식당으로 들어섰다. 삼겹살과 차돌배기를 숯불에 구워먹게 차려 놓았고, 나물반찬도 많고, 상추 쑥갓 파도 새콤달콤하게 무쳐 놓았다. 약속대로 인철 씨가 술을 샀다. 소주1병에 8불이나 했다. 그래도 여기가 싼 곳이다. 다른 데에선 2만 원은 주어야 소주 1병을 마실 수 있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저 때문에 여행하는 기분을 상하게 해 죄송합니다.”
술 한 잔씩을 따라 건배를 하자, 그래도 볼 것은 다 보았으니 괜찮다고 하며 어떻게 의안을 하게 되었냐고 물었다. 못 치기를 하며 친구들과 노는데 자기가 뒤에 있는 줄도 모르고 못을 어깨 너머로 꼬나들다 찔려서 평생 고생했다고 털어놓는다.
지금이야 웃으며 얘기하지만 그로 인한 마음고생을 평생 하며 자꾸 비관하다보니 주타배기가 되었다. 반성하는 의미에서 오늘 이 한 병이 생애 마지막 술이다. 이런 식으로 살다가는 제 명에 못 죽을 것 같아 같아, 이 기회에 술을 끊겠다고 술잔을 엎는다. 술값이 비싸서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정말 단주의 기회가 된다면 그는 여행을 잘 온 것이다.
밤이 되어도 별로 춥지 않다. 친해진 몇몇이 아쉽다며 산타모니카 해변으로 나갔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을 걸으며 파도소리를 들었다. 우리의 꿈을 닮은 별이 하늘 가득 박혀, 내일이면 떠나는 우리를 전송한다.
다음에 다시 오라고.
첫댓글 울해 9월 남미 여행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