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인류사의 중심을 말할 때 ‘세계사’를 떠올리곤 합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본다면 인류사는 곧 자연과학의 역사였다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자연과학은 그 초기부터 인류의 삶 그 자체였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묻는 생존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었습니다.
자연과학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자라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고대문명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로 이어졌지만
철학과 자연과학이 나뉘게 되는 과정에서 한 번 심한 굴절을 겪었습니다.
원자 개념이나 진화 개념까지도 포함했던 자연과학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철학적 발전에 밀려났고
이후 로마의 실용주의와 기독교의 내세중심적 세계관에 밀려
아예 가치나 의의가 형편없는 추락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 사이에 철학까지도 종교권력에 무릎을 꿇어야 했고
히파티아 같은 위대한 수학자가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또한 이 무렵을 전후해서 연금술이라고 하는
인간의 부질없는 탐욕에 대한 집착도 생겨나 2천여 년의 역사 속에서
갖가지 형태의 연구를 통해
오늘날의 화학이 자리 잡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지만
그로 인해 자연과학의 역사는 구불구불하고 거칠며 험한
굴절을 경험해야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했던
갖가지 사고(事故)도 일어났고
물리적 사실이 무지를 기반으로 한 상상력이나 종교적 인식과 결합하면서 빚어낸
헤아릴 수 없는 불행과 비극들도
거의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금술은 길게는 2천 년, 아무리 짧게 잡는다 하더라도 대략 1천3백 년이라고 하는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인류의 삶과 함께 해 왔습니다.
지구의 한쪽에서는 금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으로,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장생불사’의 영약(靈藥)을 찾거나 만들어보겠다는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사실 우리의 현실에서도 이 흔적은 여전히 많은 삶을 지배하고 있기도 합니다.
물리적 사실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이 만들어낸
플로지스톤이라고 하는 개념 또한 그 안에 있었고
그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연과학적 노력들에 이르기까지,
자연과학의 역사는 장엄하고 숭고하다는 결론을 낼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나
그 안에는 부끄럽거나 단죄해야 할 수많은 일들도 있다는 사실을 봅니다.
그런 것들의 한 단면을 살피는 것은
전체 자연과학의 역사가 지니고 있는 얼굴을 볼 수 있는
눈을 여는 작업일 것이고,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그와 관련된 것들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키작은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