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과메기
과메기란 말은 국어사전에 없다.
어원은 관목(貫目). 알배기 청어의 껍질을 벗기고 반으로 쪼개 말린 것을 의미한다. 일종의 건청어(乾靑魚)인 셈이다. 과메기는 말린 청어인 관목청어(貫目靑魚)에서 나온 말이다. 꼬챙이 같은 것으로 청어의 눈을 뚫어 말렸다는 뜻이다.
영일만에서는 목이란 말을 흔히 메기 또는 미기로 불렀다. 이 때문에 관목은 관메기로 불리다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관의 ㄴ받침이 탈락되고 과메기가 되었다.
과거 해조류가 풍부한 영일만은 초겨울부터 이듬해 초봄까지 청어의 회유지이자 산란지였다. 겨울철 특별한 먹거리가 없던 영일만에서는 해안에 즐비하게 몰려든 청어가 더없이 좋은 식량자원이었기에 백성들은 이를 저장해놓고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상하지 않고 날 생선의 영양분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는 비법을 옛 선조들은 부엌 살창(채광을 겸한 통풍구)에서 찾았다. 찬 바람에 얼렸다가 솔잎 등 부엌 땔감의 연기에 녹였다를 반복하면서 만든, 얼말린 청어가 바로 과메기다. 그러나 1960년대를 전후해 영일만의 청어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자 과메기의 재료는 꽁치로 대체됐다.
# 영일만의 유일한 족보있는 음식
과메기는 90년대 이후부터 전국 미식가들의 각광을 받아왔지만, 문헌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미로 기록돼 있다. 경상도읍지(1832년)와 영남읍지(1871년)는 영일만의 토산식품 중 조선시대 진공품으로는 영일과 장기 등 두 곳에서만 생산된 천연가공의 관목청어뿐이라고 전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의 영일현(注津條) 편에는 매년 겨울이면 청어가 맨 먼저 주진(注津․지금의 영일만 하구)에서 잡힌다고 하는데 먼저 이를 나라에 진헌한 다음에야 모든 읍에서 고기잡이를 시작했다. 잡히는 것의 많고 적음으로 그해의 풍흉을 짐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과메기를 만드는 방법과 그 맛에 대한 기록도 꽤 발견된다. 이규경(李圭景․1788~?)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청어는 연기에 그을려 부패를 방지하는데 이를 연관목(煙貫目)이라 한다고 쓰여 있고, 규합총서(閨閤叢書․1815년)에는 비웃(청어)을 들어 보아 두 눈이 서로 통하여 말갛게 마주 비치는 것을 말려 쓰는 그 맛이 기이하다는 기록이 있다.
과거를 보러가던 한 선비가 배가 고파 고기의 눈이 나뭇가지에 끼인 것을 보고 찢어 먹었는데 너무나 맛이 좋아 해마다 그 방법대로 생선을 말려 먹었다는 소천소지(笑天笑地)의 기록은 과메기의 독특한 맛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 부엌 살창은 천연 동결 건조장
과메기는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는 냉훈법(冷燻法)으로 만든다. 이는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영일만 청어 말리는 방법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며, 당시 가공장소는 다름아닌 부엌이었다.
농가의 부엌은 밤에 차고 밥짓는 동안은 열과 연기로 따뜻해진다. 아궁이에 솔잎을 땔 때 부엌 안은 연기로 자욱하게 되고 자연히 통풍이 필요하다. 채광을 겸한 통풍구가 바로 추녀 바로 아래에 뚫린 살창이다.
이곳에 청어 몇두름(1두름은 20마리)을 겨우내 걸어두면 찬바람에 얼었다가 부엌 땔감의 연기에 녹으면서 쫄깃쫄깃한 과메기, 즉 관목어가 된다. 연기에 씌어 고기를 말리면 벌레가 안난다는 조상의 지혜가 묻어나는 대목이다.
일제 때만 해도 잘된 과메기를 가마니에 싸서 재우리(평소에는 거름 모으는 곳)에 짚을 덮어 이듬해 여름까지 먹었다고 전해진다. 이때 재우리에는 부악재(물기가 없는 재)를 넣어서 벌레와 곰팡이가 슬지 않도록 했다.
요즘은 진공 포장된 사철 과메기가 출시되기도 하지만, 아직도 겨울철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 보기 좋은 과메기가 먹기도 좋다
흔히 알려진 과메기는 날 것 그대로를 해조류와 함께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회를 말한다. 최근에는 과메기 케첩볶음․ 탕수 과메기․ 과메기 튀김․ 과메기 초밥에서부터 과메기 버거․ 과메기 피자까지 과메기를 소재로 한 음식이 10여가지에 이른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 가공하든 주 재료인 과메기는 자연에 노출된 상태로 얼말린 식품이어서 자칫 위생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주의가 요구된다.
최고의 과메기는 영하 5도~영상 5도의 기온에 초속 6m 안팎의 바람이 부는 곳에서 약 보름 동안 잘 숙성된 것이다. 이런 조건을 갖춘 과메기는 껍질 색깔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이 때문에 껍질이 육질에 잘 붙어있되 은빛을 내는 것이 좋다. 은광어(銀光魚)는 육질과 신선도 면에서 최고의 품질이다. 누른빛은 산패가 진행중이라고 보면 된다.
배 부위는 터지지 않아야 하고, 꼬리 부위는 너무 단단하거나 물렁하지 않으며 탄력이 있어야 한다. 과메기는 반드시 살아있을 때의 모양새 그대로를 유지해야 한다.
- 초고추장․ 미역․ 과메기회 환상궁합 -
▲ 포항 남빈동 해구식당
과메기 회는 비릿하지만 쫄깃쫄깃한 육질이 신선한 해조류와 야채에 뒤섞인 채 초고추장의 화끈함을 만났을 때 제 맛을 낸다.
해구식당(포항시 북구 남빈동) 주인 지씨는 과메기․ 해조류․ 초고추장의 삼박자를 가장 잘 맞추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씨는 과메기가 영일만 일부 해안 마을 어민들의 술 안주감으로 머물던 1980년께 포항 도심에 과메기 회를 처음 선보였다. 한옥 한칸을 얻어 식당을 운영할 당시 지씨는 친정아버지가 술안주로 과메기를 즐긴 것에 착안, 몇두름을 얻어다 처마 밑에 얼말리면서 손님들에게 팔았던 것.
과메기를 싸먹는 해조류나 야채는 미역․ 김․ 깻잎․ 고추 ․배추를 사용하고, 쪽파와 쪽마늘이 집에서 직접 담근 쌈장과 함께 나온다. 이 식당이 손님을 끄는 또다른 비법은 초고추장. 얼핏보면 지씨의 초고추장도 과메기의 비린 맛을 없애주는 식초나 매운 맛을 중화시켜 주는 참기름을 사용하는 면에서는 다른 여느 과메기 식당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문제는 여러 양념류의 배합 비율이지만 다른 유명식당 주방장처럼 역시 대통령이 물어도 가르쳐 줄 수 없는 지씨만의 비밀이다. 초고추장을 만들 때 인근 청송 얼음골의 생수를 쓴다는 것과 원재료인 고추장은 집에서 직접 담갔다는 것만 귀띔해 줄 뿐이다.
이 집은 오후 7시부터 약 4시간 동안 과메기 파티를 벌이는 주당들로 14개의 테이블이 가득 메워져 외지 관광객은 되도록 이 시간대를 피하는 것이 좋다.
문의 (054)247-5801
/포항․백승목기자 최종 편집: 2002년 12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