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95구간(선학역 3번 출구~자유공원, 17km, 2024년 1월 4일) 걷기
서해랑길 95구간이다. 아침부터 마음이 바쁘다. 돈을 벌지 못해도 최소한의 생계는 해결해야 한다. 이른 아침부터 나서기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고 평상시에도 일찍 일어나는 것은 좋지 않다. 아침잠이 많은 이유다. 늦게 자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일찍 일어나는 것이 문제다. 먹고 사는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지난 세월의 경험이다.
가까이 20분 거리에 있는 어머니 집에 들러서 아침을 해결하고 집에 돌아와서 볼 일을 해결한다. 전철을 타고 인천 선학역까지 11시 30분 도착은 빠듯하다. 서울역에서 갈아탄 1호선은 여유가 있었다. 황야문학을 꺼냈다. 윤명자, 윤재훈, 김사랑의 수필과 채홍석의 음악기행, 박정근, 이승영의 평론, 박정근의 희곡, 이애연의 투미를 부탁할께요 단편소설을 읽었다.
윤재훈 작가의 겨울이 오고 있다는 수필에 마음이 쏠렸다. 인연이란 무엇인가?, 국가란 또 무엇일까? 하는 두 주제 속에 작가의 생각과 느낌이 펼쳐지고 있다. 3천 년 만에 한 번 이 지상에 내려오는 선녀가 커다란 바위 위에 옷깃을 스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데, 그 바위가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 한 번의 인연이라고 한다. 부부, 부모와 자식, 형제 그리고 이웃이라는 사회와 국가, 지구, 우주 속에서 인간이 가지는, 내가 가지는 인연의 모습은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가! ‘단칸 셋방’이라는 윤재훈 시인의 시구처럼 풍화된 백골에 119가 와야만 하는 빨간 불은 아닌가?
국가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와 종교, 인종이라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지배와 탄압, 구속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그 지배와 구속, 억압을 방어하는 차원에서 국가를 유지하고 형성한다. 온전히 국가를 이뤄도 현실은 그 속에서 지배와 피지배의 착취와 탄압, 구속이 진행되고 있다. 안타깝고 어리석은 인간 종자의 현실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온전히 존중받고 실현되는 전제 속에서 민족해방, 계급해방의 참다움은 이뤄질 수 있다.
선학역에서 곧바로 문학산으로 이어진다. 인천은, 문학산은 백제 건국(신화)과 함께하고 있다. 주몽의 큰아들 비류가 정착해 왕국을 세운 곳이 인천이다. 그 중심에 문학산이 있다. 문학(文(鶴)산은 두루미, 학에 근거한 산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옛 지명의 남산부터 배꼽산 등 이름이 많았으나 현재는 문학산으로 불리고 있다.
백제 우물, 백제 사신길 등 백제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그 주변에 건물 등 여러 곳에 백제와 연관된 이름을 볼 수 있었다. 사모지(삼호현)고개에서 능허대, 한나루에 이르는 백제사신길은 다양한 이정표로 그 옛날의 발자취를 보여주고 있었다. 사모지공원 조성계획이 있는 곳에는 여전히 쓰레기가 많았다. 그 지역의 둘레길, 천변, 해변, 서해랑길 등 걷기로 조성된 곳에 쓰레기가 많다. 관련 공무원, 지자체장이 걸어 다니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도심지 길도 많이 걷게 된다. 다행히 길을 안내하는 표시와 띠가 곳곳에 눈에 보인다. 때로 조금씩 엉뚱한 길로 들어서기도 하지만, 대체로 안내하는 표시가 눈에 들게 되어 있다. 그렇게 걷다 보면 문화의 거리, 조각 거리 등 많은 볼거리를 만날 수 있다. 오늘 내 눈에 들어왔던 곳은 옥련재래시장이었다. 꽤 큰 시장이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분명 그 시장의 술국에 소주를 먹어야만 했다. 나는 시장을 지나칠 때면 술국(순대국)에 술 한잔을 마시는 그 멋스러움이 흐뭇했다. 아쉽게도 꿀 같은 그 느낌과 맛을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그 장면을 뒤로해야만 했다. 아쉬움에 입안 가득 침만 고였다.
인천의 사거리를 걷다가 다른 지역과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신호가 동시에 네거리에 들어오는 곳이 많았다. 좋아 보였다. 네거리에 신호가 모두 들어오므로 사고의 위험성도 그만큼 줄일 수 있어 보였다. 차 중심의 도로이기보다는 사람 중심의 도로 정책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인천은 항구다. 물류 도시다. 그런 연유로 큰 트럭이 많다. 서울에서는 보기 어려운 트럭, 트레일러 종류다. 도심의 곳곳은 여전히 높고 큰 건물을 짓는 공사가 많다. 이미 아파트 등 높은 건물이 천지다. 서울을 비롯해 대한민국의 도시라는 곳은 도무지 색깔이 없다. 그저 아파트, 아파트가 전부다. 돈과 탐욕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다. 5천 년 역사가 그저 아파트, 고층 건물이 전부다.
어느 도시든 그 도시의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 있다. 그런 곳이라면 엘리베이터가 필요 없는 4층 정도 이하의 주택으로 도시의 특성을 만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서울의 경우 사대문 안에는 3층 이상의 건물에 금지하는 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산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산으로부터 1km 거리 안에는 시야를 가리는 높은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해야 한다. 왜 사람들로 하여금 천혜의 자연경관을 사라지게 하는가. 나는 어디서든 남산과 북한산, 안산, 인왕산, 낙산, 망우산, 용마산, 아차산, 관악산 등 모든 산을 보고 싶다. 고층 건물이 필요하다면 특정 지역을 지정해서 그곳에 마천루 등 온갖 해괴한 고층 건물을 세우면 된다.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지 말고 그 반만년의 역사를 지우는 탐욕을 버려야 한다.
차이나타운을 지나 자유공원 입구 바코드를 찍었다. 5시간 20분이 소요되었다. 4시간이 넘어가면서 아픈 다리는 걷는데 자동이 된 것처럼 되었다. 차이나타운에도 빈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밴댕이 거리가 있는 것도 새삼 눈에 들었다. 인천의 미추홀구, 연수구, 남구, 중구 등 많은 길을 걸었다. 인천역은 1호선의 종점이자 출발점이다. 조만간 다시 와야 한다. 이적 목사가 불태웠던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을 남겨놓았다. 4만 보는 도봉구 와서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