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설'의 일부를 올려둡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올려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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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tion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1889년 4월 26일 비엔나에서 태어나 1951년 4월 29일 켐브리지에서 죽었다. 그의 이론이 20세기의 여러 뛰어난 철학자들의 이론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지금은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사유의 힘과 독창성은 비견할 바 없는 철학적 정신을 보여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천재라고 부르는 것에 기뻐할 것이다. 비트겐슈타인라는 사람 자체와 그의 사유 양 측면 모두를 비범하게 보이도록 하는 본질은 그의 작업에 영감을 얻었던 광대한 부차적인 문학 작품들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 의해, 그리고 그를 아는 다른 사람들이 쓴 엄청난 수의 연구논문이 증거한다. 연구논문들은, 아주 특별한 기술을 소유했고, 종종 지나친 요구를 하긴 했어도 흥미진진하고 성실한 친구였던, 예외적으로 지성적인 통찰력과 지칠 줄 모르는 완벽함을 갖췄던 한 사람을 모두 다 그려낸다. 반면에 그의 작업에 대한 철학적인 대답은 현재 어떤 비슷한 그림을 그려내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그의 작업에 대한 해석과 평가 양 측면 모두에 대한 폭넓은 불일치를 보여준다.
폭넓은 문화적 관심을 가졌던 돈많은 산업가 집안에서 태어난 비트겐슈타인은 맨체스터 기술 대학 공학부 연구 학생으로 등록하면서 1908년 처음으로 영국으로 갔다. 제트 프로펠러 디자인 작업을 하는 동안 그는 점점 더 수학적 문제에 흥미를 느꼈고, 갈수록 심해졌다. 그가 철학자 버틀란드 러셀에게 수리철학을 배우기 위해 켐브리지로 간 것은 1911년의 일이었다. 다음 해 러셀은 항공학을 포기하고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헌신하는 비트겐슈타인을 격려하기 위해 그의 천재성에 대해 충분할 만큼의 확신을 주었다. 1912년, 비트겐슈타인은 '켐브리지 도덕학 모임(Cambridge Moral Sciences Club)'에서 그의 첫 작품을 발표했다. 주제는 "무엇이 철학인가? What is philosophy?"였고, 그것은 매우 초기의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는 것과 이러한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 적절한 방법을 고심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진단과 방법에 대한 관심은 그의 철학적 발전 전부에 걸쳐서 그의 특징적인 것으로서 남겨진다.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와 수학의 기초에 대한 작업을 계속했다. 그의 작업의 많은 부분은 켐브리지에서 진행되었던 지성적인 논의들의 많은 부분에 대해 표면적인 영민성이라고 느꼈던 것을 벗어나기 위하여 갔던 노르웨이에서 행해졌다. 이 기간 동안 그의 첫 번째 저서 "논리철학논고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1922, 이하 "논고")의 논리와 철학에 대한 기초틀인 논리와 언어에 대해 대부분의 발견을 하였다. 이 책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 출판된 유일한 주요 철학 작업이다. 그의 두 번째 주된 작업 - "철학적 탐구 the Philosophical Investigations"(이하 "탐구") - 은 대략 1937년에서 1945년 사이에 출판을 목적으로 작업되었으나 그것이 출판된 것은 그가 죽은 후인 1953년이었다. 이들 작업 둘 다 독특한 점을 가지고 있다. 얼핏보기에 그 하나의 측면은 그들의 대조성에 충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비록 둘 다 그 주된 관심사로서 언어를 채택하고 있기는 하지만 "논고"는 높은 추상성, 이론성, 간결함과 독단성을 가진 반면에 "탐구는" 현실적이고, 기술적이며 다소 두서가 없는 데다, 그 철학적인 목적은 애매하고 가려진 듯 보인다는 것이다. 이들 둘 다 분명히 동일한 저자에 의한 것이지만 그 각각은 철학적 책무의 개념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깊은 변화가 깔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