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참선 법문 Ⅰ
4. 화두(話頭)와 관심(觀心)
따라서 우리가 도(道)를 알려면 화두[한 생각 일어나기 전의 자리]를 보아야 하며, 이것이 곧 마음을 관하는 것[觀心]이다.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이전의 본래면목은 바로 마음이다. 그러므로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이전의 본래면목을 본다[看, 참구한다]는 것은 곧 마음을 관(觀)하는 것이다. 성품은 곧 마음이며, '듣는 자기의 성품을 돌이켜 듣는다'[反聞聞自性]고 하는 것은 관(觀)하는 자기 마음을 돌이켜 관하는 것[反觀觀自心]이다.
'청정한 깨달음의 상[淸淨覺相]을 원만히 비추어 본다'고 할 때의 '청정한 깨달음의 상'이 바로 마음이며 '비추어 본다'[照] 함이 곧 관(觀)이다. 마음이 곧 부처[心卽是佛]이며, 부처를 염하는 것[念佛]이 곧 부처를 관하는 것[觀佛]이고, 부처를 관하는 것[觀佛]이 마음을 관하는 것[觀心]이다. 그래서 '화두를 보라'[看話頭]고 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염불하는 것은 누구인가[念佛是誰]?' 화두를 보라고 하는데 이것은 바로 마음[부처를 염하는 자기]을 관하는 것[觀心]이며, 곧 자기 마음의 청정한 깨달음의 체[自心淸淨覺體]를 관조(觀照)하는 것이고, 또한 자기 성품의 부처[自性佛]를 관조하는 것이다. 마음이 곧 성품이고, 깨달음이며, 부처이다.
이것은 형상이나 고정된 처소[方所]가 없으므로 끝내 붙잡을 수 없다. 청정하게 본래 있는 그대로이며, 법계(法界)에 두루하여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않고, 가고 옴도 없으니, 이것이 바로 본래 그대로 이루어져 있는[本來現成] 청정한 법신불(法身佛)인 것이다. 수행인이 육근(六根)을 모두 거두어 들여, 한 생각이 처음 일어나는 곳을 살피면서 이 하나의 화두를 비추어 보면, 생각을 떠난 청정한 자기의 마음에 도달하게 된다.
다시 면밀하고 담담하게 고요히 비추어보면, 곧 바로 오온(五蘊)이 모두 공(空)하고, 몸과 마음이 함께 고요하여 마침내 한 일도 없게 된다[無一事]. 이때부터는 주야육시(晝夜六時, 24시간)로 행주좌와(行住坐臥)에 여여부동(如如不動)하여, 날이 갈수록 공부가 깊어지면 견성성불(見性成佛)하여 고통은 없어지고 제도하는 일은 끝날 것이다.
옛날 고봉(高峯) 조사께서 이르기를, "공부인은 이 화두를 살피기를, 마치 기왓장을 만 길이나 되는 깊은 못에 던지면 곧장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것과 같이 하라. 이렇게 하여 만약 7일이 되도록 깨닫지 못하면 내 머리를 자르라" 하셨다.
동참(同參)하는 이들이여, 이것은 몸소 겪어 본 분[過來人]이 하신 말씀으로 진실한 말씀이며, 사람들을 속이는 허망한 말이 아니다. 그러나 어째서 현대인들은 화두를 드는 사람은 많아도, 도를 깨치는 사람은 적은가.
이것은 요즘 사람의 근기(根器)가 옛 사람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부인이 참선을 하면서 화두의 이로(理路)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동서남북으로 분주하게 오가며 스승을 찾고 법을 묻기만 하다가, 늘그막에 이르러서는 한 개의 화두도 분명하게 다루지 못하게 된다. 어떤 것이 화두인지, 어떻게 해야 화두를 든다고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하고, 한 평생 언구(言句)와 명상(名相)에 집착하여 화미(話尾)를 가지고 마음을 쓰면서, "부처님을 참구하는 이는 누구인가?", "화두를 비추어 보라" 하면서 계속 하다 보니 화두와는 정반대로 어긋난다.
이렇게 해서야 어떻게 본연(本然)의 무위대도(無爲大道)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며, 일체를 받지 않는[一切不受] 임금자리[王位]에 도달하리요. 금 가루도 눈에 들어가면 눈이 멀 뿐인데 어떻게 큰 광명을 볼 수 있겠는가.
가련하고 가련하다. 훌륭한 젊은이들이 집을 떠나 도를 배우니 그 뜻[志願]은 비범하지만 결과는 한 바탕 헛수고일 뿐이니, 매우 슬프고 불쌍한 일이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차라리 천 년을 깨닫지 못하더라도 하루 공부를 잘못하면 안 된다'고 했으니, 수행하여 도를 깨달음은 쉽고도 어려우며 어렵고도 쉬운 것이다.
이것은 전등을 켜는 것과 같아서, 알면 손가락 한 번 퉁기는 사이에 크게 광명을 놓고 만년의 어두움을 순간에 없애지만, 알지 못하면 기회는 놓치고 등불은 꺼져, 번뇌만 더 늘어난다. 더러 참선을 하면서 화두를 들던 사람이 마(魔)에 집착하여 발광(發狂)하고, 피를 토하고 병이 나며, 무명(無明)의 불꽃이 커져 나와 남이라는 생각[人我相]이 깊어지는 것은 현저한 예가 아닌가.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몸과 마음을 잘 조화(調和)시켜서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기(氣)를 고르게 하기를 힘써서, (마음에) 걸림도 없고, 나와 남이라는 소견도 없어, 행주좌와(行住坐臥)에 항상 현묘한 기틀에 오묘하게 계합[妙合玄機]할 수 있어야 한다.
《註》 -. 오온(五蘊)
불교(佛敎)의 근본(根本) 사상(思想)의 하나로, 세계(世界)를 창조ㆍ구성(構成)하고 있는 요소(要素)를 다섯 가지로 분류(分類)한 것.색(色)ㆍ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의 5요소(要素)의 결합(結合)으로, 색은 육체(肉滯), 수는 감각(感覺), 상은 상상(想像), 행은 마음의 작용(作用), 식은 의식(意識)임.
大晟 新譯
첫댓글 ()()()
氣를 고르게 함에 있어서,,, 꾸준히 수련을 연마하지 않으면 안될것임을 다시 자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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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_
_()()()_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