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홍재~문덕봉~고정봉~그럭재~고리봉~상귀삼거리
"....비는 분말처럼 몽근 알갱이가 되고,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쏟아져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면서 칠흑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적시고 있었다....". 전북 정읍 출생인 작가 윤흥길이 인근의 원광대 국문학과를 졸업할 당시 발표한 작품 '장마'의 한 구절이다.새벽 밥상을 차려놓고 아내는 식탁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지금 바깥은 주룩주룩 비가 엄청 쏟아진다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서로 속내를 너무 잘 아는 부부지간인지라 이렇게 비가 쏟아져도 등산을 떠나겠느냐 하고 묻는다기보다 이제 나잇살도 어지간하니 건강을 염려하시라는 당부일 테다.
주룩주룩 쏟아지는 빗속에서 버스에 오르니 안성휴게소 근처에서부터 비는 긋기 시작하더니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비홍재에 득달할 때까지는 거의 비다운 비는 쏟아지지 않는다.그러나 하늘에는 비를 잔뜩 머금고 있는 먹장 구름들이 그들먹하여 수틀리면 금방이라도 빗줄기를 퍼부을 기세로 우거지상을 풀지 않고 있는 거였다.남원시 대강면 풍산리 쪽과 그 반대 쪽인 고개너머 동쪽의 주생면,금지면 방면 사이를 잇는,21번 24번 국도가 한데 힘을 합쳐 교통하는 고갯길 비홍재,비홍재 고갯마루에서 남쪽 산록을 차지하고 있는 '원조경'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조경수 재배지 사이로 지맥의 산길은 발행이 된다(11시5분).
비홍재의 이정표
조경수 재배지 입구의 길목에는 빛바랜 검은 색 산길안내를 위한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오늘 산행의 주요 멧부리와 날머리까지의 거리가 자세하게 적혀 있다.조경수들 사이의 널찍한 임도를 지나고 본격적으로 숲길로 기어들어 완만한 치받잇길을 올려치면 걀쭉한 꼴의 멧부리 한복판에는 2001년에 복구한 삼각점을 간직하고 있으며,한켠에는 문덕봉-고리봉 등반안내도가 담겨 있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는 해발 360.7m봉이다.지맥의 산길은 이곳에서 좌측 10시 방향으로 꼬리를 잇는다.아름드리 노송들을 비롯한 끌밋한 노송들이 줄을 잇는 산길을 따라 200여 미터쯤 발품을 더하면 돌무더기 행색의 봉긋 솟구쳐 있는 멧부리가 기다린다.
남원시 대강면과 주생면에 걸쳐 있는 포곡식 산성인 비홍산성의 망루나 망대가 차지하고 있던 성터로 여겨지는 해발 380.3m봉이다(11시23분).비홍산성(飛鴻山城)은 남원시 대강면과 주생면에 걸쳐 있는 전북 문화재자료 제 174호로 지정이 되어 있으며 높이는 6m에 폭은 4.7m,그리고 길이는 900m쯤으로 추정을 하고 있는 포곡식 산성(산기슭에서부터 능선을 따라 정상부까지 계곡을 하나 또는 여러 개 감싸고 축성하는 산성)이다.비홍산성의 망루나 망대 노릇을 하였을 것으로 여겨지는 380.3m봉의 남쪽 턱밑에는 다갈색의 솔가리더미나 다름이 없는 행색의 봉분인 전주이가의 묵묘가 자리하고 있다.
비홍산성
이러한 행색의 380.3m봉을 뒤로하고 비홍산성의 성벽이 남아 있는 성터를 벗어나면 다갈색의 솔가리가 푹신한 노송들의 산길이 꼬리를 잇는다.한 차례 부드러운 안부를 거쳐 비탈을 올려치면 넙데데하고 아름드리 노송를 비롯한 노송들이 엄부렁한 해발 381.7m봉이다. 381.7m봉을 뒤로하면 골리앗 덩치의 송전철탑의 곁으로 이어지고,다갈색의 솔가리가 푹신하고 끌밋한 노송들이 줄을 잇는 산길은 머지않아 안부사거리로 산객을 안내한다.남원시 대강면 옥택리 옥전부락 방면과 그 반대 쪽인 고개너머 동쪽의 주생면 내동리 사이를 잇는 등하행 산길이 넘나드는 안부 사거리, 곰재다.
빗방울이 흩뿌려지는가 하더니 이내 사라지고 밍근하기까지 한 바람이 일렁거리지만 숲의 후텁지근함을 달래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산길은 울멍줄멍한 바위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집채만한 바위들 사이로 오르막 철계단이 인도하고 통나무 말뚝과 로프를 이용한 안내난간이 뒤를 이으며 가풀막진 오르막을 안내하고 있다.길쯤한 꼴의 마당바위들과 소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진 암릉에서는 시원스런 조망이 있게 마련이다.우측으로는 순창군 일대의,좌측으로는 남원시 일대의 산하가 시원스럽게 조망이 된다.
그러나 조망은 시원스럽지만 후텁지근하고 무더운 날씨로 팥죽땀은 밑빠진 물항아리처럼 줄줄거리고 가뿐 숨소리는 휘모리장단으로 치닫는다.헐떡헐떡 가뿐 숨을 몰아쉬며 애면글면 가풀막진 치받잇길을 올려치면 사방팔방 거침이 없는 조망의 멧부리가 기다린다. 해발 598.1m의 문덕봉 정상이다(12시30분).길쯤한 멧부리 한켠에는 산불감시철탑이 우뚝 서 있고, 정수리 한복판에는 1981년에 재설한 삼각점(남원26)이 번듯하다.어느 틈에 잿빛으로 우거상이었던 비 구름들은 흰 뭉개구름으로 바뀌어 있고, 그들 사이도 제법 성글어 파란 하늘 사이로 간간이 햇살까지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거였다.
앞으로 넘어가야 할 지맥의 울퉁불퉁한 등성이가 한눈에 들어오고 저멀리 고리봉이 아스라하게 조망이 된다.마냥 조망의 호사에만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다.아직도 넘어야 할 멧부리가 수없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길쯤한 꼴의 문덕봉 정상을 뒤로하는 산길은 가파른 내리막의 험상궂은 암릉길이다.가파른 내리막에는 철계단이,천길단애의 바위 에움길에는 통나무 말뚝과 로프를 이용한 안전난간이 안전산행의 책임을 맡고 있다.그러한 모양새의 암릉길은 한 차례 넘어서면 다시 엇비슷한 행색의 암릉길이 거푸 산객을 몰아세우곤 한다.
그러한 행색의 알릉길을 따라 30분여의 발품을 들이면 오르게 되는 붕긋한 멧부리가 해발 605m의 고정봉 정상이다.해가 저무는 방향으로는 순창의 산하가,해가 떠오르는 동쪽으로는 남원의 들판과 산하가 시원스럽게 조망이 되는 고정봉 정상을 뒤로하는 산길은 데크계단이 안내한다.오르락 내리락하며 꼬리를 잇는 바위들의 산길을 따라 30분여의 발품이면 해발 557.5m봉이다.소나무들만이 엄부렁하고 봉긋한 해발557.5m봉에서 지맥의 산길은 좌측 9시 방향으로 급커브를 그리며 산객을 안내한다.
가파른 내리받잇길이 기다린다.육산의 내리막 산길이라면 나를 듯이 내달을 텐데, 울퉁불퉁 바위들이 널려 있는 산길이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조심조심 내리받잇길을 내려서면 지맥을 가로지르는 널찍한 임도고갯마루로 지맥의 산길은 슬며시 꼬리를 드리운다.대강면 송대리 송내마을 쪽과 그 반대 쪽인 고개너머 동쪽의 금지면 서매리 방면 사이를 잇는 임도가 넘나드는 고갯길 그럭재다(13시44분).그럭재 고갯마루 한켠에는 서낭당 고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돌탑이 무너져 내린 것인지 주변에는 돌들이 널려 있으며, 그 곁에는 문덕봉-고리봉 등반안내도가 담겨 있는 입간판이 우두커니 서 있다.
그럭재
그러한 행색의 그럭재를 뒤로하고 끌밋한 노송들이 줄을 잇는 치받잇길을 올려치면 크고작은 돌들로 봉분을 조성한 묵묘가 차지하고 있는 멧부리로 이어지고,그곳에서 좌측 10시 방향으로 꼬리를 잇는 산길은 바야흐로 암릉의 산길로 다시 변화를 서두르기 시작한다.집채만한 바위들이 줄을 잇는 오르막에는 안전설비가 마련이 되어 있어 그다지 위험스러운 구간은 아니다.해발555.3m봉을 좌측으로 우회를 하고 다시 맞닥드리게 되는 가파른 바위들의 오르막을 헐떡헐떡 올려치면 비로소 오르게 되는 봉긋한 멧부리가 해발 629m의 삿갓봉 정상이다(14시58분).
전주이씨의 묵묘를 턱밑에 두고 있는 삿갓봉 정상을 뒤로하는 산길도 여전하게 울퉁불퉁 바위들이 줄을 잇는 암릉길이다.앞으로 오르게 되는 고리봉이 사뭇 다가와 있다.소나무와 크고작은 바위들이 한데 어우러진 암릉길은 들쭉날쭉을 기본으로 하게 마련이다.그리고 바위와 바위사이에는 산객들의 방심을 용서할 줄 모르는 마귀가 숨어 있으니 주의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바위 오르막이 좀더 가파른 행색을 띠기 시작한다.덩달아 팥죽땀은 줄줄거리고 가뿐 숨은 휘모리 장단으로 치닫기 시작한다.팥죽땀이 줄줄 흘러내릴수록 갈증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마련이다.
배낭에 준비한 식수가 조금 전부터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이 걱정이 된다.밑천이 달랑달랑하면 내둥내 잘 견디던 갈증도 더 심하게 돋우기 마련이다.들쭉날쭉하며 꼬리를 잇는 암릉길은 이윽고 가풀막진 오르막으로 꼬리를 잇는다.고리봉 정상으로의 막바지 오르막인 거다.타들어가는 듯한 갈증을 참아가며 애면글면 올려치면 비로소 오르게 되는 봉긋한 멧부리가 해발 708.1m의 고리봉 정상이다(16시10분).사방팔방 거칠게 없는 정수리 한복판은 경주김가의 묘지가 차지하고 있다.예전에는 작은 바가지 하나 엎어 놓은 것 같은 봉분에 묘비조차 세워져 있지 않았던 묘지가 작금에는 묘비와 상석,그리고 둘레석까지 갖춘 어엿한 틀을 갖추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곁에는 1981년에 복구한 삼각점(남원311)이 번둣하고 이곳이 고리봉 정상임을 고하는 빗돌이 아담하다.고리봉 정상에서의 조망도 이전의 여느 멧부리에서의 조망 못지 않다.이러한 행색의 고리봉 정상에서 지맥의 산길은 좌측 9시 방향이다.누런 자일의 고정로프가 안내하는 내리막은 통나무와 로프를 이용한 안전난간이 인도하고, 스텐레스 말뚝과 자일을 이용한 안전난간이 안내하는 바위 절벽길이다.우측 바로 발밑은 천길단애의 바위절벽 에움길이다.안전난간의 도움을 받아 험상궂은 바위 내리막을 벗어나면 좌측으로 금지면 방촌리 만학골(1.8km) 방면의 등하행 갈림길이다.
천장군 묘
만학골 갈림길을 뒤로하고 20분여의 발품이면 다시 좌측으로 서매리 매촌마을(3.4km) 방면으로의 등하행 갈림길이 기다린다.산길은 여전하게 꺽다리 노송들이 줄을 잇는다.그러한 행색의 산길은 천장군 묘역의 곁으로 이어지고,곧바로 오르게 되는 해발 601.9m봉을 넘어서면 지맥의 산길은 좌측 9시 방향으로 급커브를 그리며 꼬리를 잇는다.다갈색의 솔가리가 보기좋은 소나무 숲길은 등성이 우측이 온통 산불피해를 입어 거무튀튀하게 말라죽거나 그을은 흔적의 소나무들이 줄을 잇는다.
산불피해지역을 지나고 나면 오르게 되는 멧부리가 해발401.4m봉이다.동남 방향으로 천황지맥의 최종 날머리가 한눈에 들어오고, 바둑판처럼 농지정리가 반듯한 금지들판이 아름답게 부감이 된다.401.4m봉을 뒤로하는 지맥의 산길은 좌측 10시 방향으로 슬그머니 방향을 틀며 꼬리를 잇는다.우측 방향인 남쪽으로 섬진강 건너 흑록으로 번득이는 동악산이 한눈에 들어온다.산길은 바야흐로 널찍한 수렛길과 한데 어우러지더니 왕복2차선의 차도삼거리로 슬며시 꼬리를 드리운다.도상거리 59.5km의 천황지맥의 대미를 장식하게 되는,오늘 산행의 날머리가 되는 상귀3거리에 비로소 득달한 것이다(18시10분).
금지들판과 섬진강
고리봉 근처에서부터 식수를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한 모금씩 입 안만 간신히 적셔가며 고초를 겪은 탓에 산행시간이 퍽이나 불어났다.타들어가는 목은 침까지 삼키지 못할 만큼 말라 있어 물의 귀중함을 새삼 느낀 산행이었다.그리고 온종일 우중산행을 겪을 줄 알았는데, 날씨는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다소 맑아 조망의 호사는 마음껏 누린 산행이었다.그러나 장마통 날씨가 으레 그렇듯이 후텁지근함이 산객들을 끈덕지게 물고 늘어진 하루였지 싶다.
(산행거리;13.7km.소요시간;7시간) (2022,6/30)
(아래)천황지맥 지도5 비홍치-상귀3거리(지도를 클릭하면 확대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