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학교 다니면서 봄, 가을로 한 번씩 소풍을 갔다. 그때는 몰랐는데, ‘소풍’이란 거닐 소(逍), 바람 풍(風), 글자 그대로 바람 속에 거닐며 노는 것을 뜻하는 말이었다. 마음 설레며 기다리고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산과 들로 쏘다녔던 소풍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가득 바람이 분다. 그런데 우리 동기회는 그런 봄 소풍을 ‘친구의 날’이란 이름으로 연례 행사로 치러왔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도 모를 만큼 오랜 전통이 되었고, 어디를 갔는지도 헷갈릴 정도로 많은 추억이 쌓였다.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동기들이 가족을 데리고 한데 모여 하루 종일 먹고 마시고 노래하며 회포를 나누었다. 천안의 광덕산, 대전의 계족산, 부안 선유도 등지에서 만났던 기억이 나고, 처음엔 5월 5일 어린이날에 만나다가 후엔 4월 마지막 주말로 바뀌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행사의 이름도 당초 ‘야유회’로 부르던 것을 내가 제안해서 그렇게 바꾸게 되었다. 그러던 우리 ‘친구의 날’이 2017년부터 3년 동안 화려하게 변모했다. 2017년 초에 전남 광양에 사는 이준태 동기가 그해 ‘친구의 날’ 행사를 1박 2일의 남도여행으로 갖자면서 참가자들의 숙박과 식사 비용 일체를 자비로 부담하겠다고 제의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그해는 섬진강 따라 전남 광양‧순천지역으로, 다음 해는 경북 안동지역으로, 또 다음 해는 충북 충주호 주변 지역으로 매번 이틀 동안의 단체여행을 즐겼다. 나는 세 번 모두 아내와 함께 행사에 참가했다. 행사 때마다 소싯적의 소풍처럼 즐거웠고, 동기 친구들과의 인연의 소중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모교 졸업 50주년을 맞으며, 그 세 번의 여행을 주선하고 준비해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는 뜻을 담아 그때의 추억들을 차례로 소환해본다. 2017년 3월, 때 이른 봄날이었다. 남도의 화신(花信)을 전하며 이준태 동기가 초청한 남도여행에는 130여 명 정도의 동기들이 참가했다. 전북 임실 옥정호의 호숫가에서 만난 우리는 구담마을에 있는 김용택 시인의 생가를 둘러본 다음 거기서부터 섬진강변을 함께 걸었다. ‘섬진강 문학길’로 이름 붙여진 그야말로 최상의 걷기 코스였다. 섬진강의 물빛은 더없이 맑았고, 우리는 너나없이 시인이 되는 듯했다. 모든 인류 문명이 ‘시와 사랑의 강물 속에서’ 발원한다고 한 아인슈타인의 말이 문득 생각났다. 중도에 잠시 머물며 작은 음악회도 갖고 이곳저곳을 들려가다가 한참 어둑해질 무렵에야 광양 매화마을에 도착했다. 저녁식사 시간에 쫓겨 갓 핀 매화꽃을 제대로 즐길 수 없는 게 몹시 아쉬웠다. 어둠 속에서 문향(聞香)으로 대신 만족한 다음, 광양 시내로 들어가 광양불고기를 안주 삼아 오랜만에 본 친구들과 소주잔을 나누었다. 그동안 쌓인 회포를 풀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짧았다. 밤늦도록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정작 서너 시간도 못 잔 락희호텔의 최고급 시설이 너무 아까웠다. 다음 날은 봄비가 촉촉이 내려 한결 운치를 더했다. 오전 일찍 광양 백운산 자락에 있는 옥룡사지 동백숲을 찾아갔다. 마침 동백꽃이 장관이었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꽃송이보다 길 위에 떨어져 있는 꽃송이가 더 붉게 빛났다. 봄비 속에 꽃길을 걸으며 우린 모두 이번엔 가수가 되었다. 떼어지지 않는 발길을 겨우 돌려, 일제강점기에 윤동주 시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육필 원고가 보관되어 있었다는 광양 광덕포구의 정병욱 생가도 방문했다. 마지막으로 들른 순천시는 실로 축복의 고장이었다. 우리나라 제1호인 ‘순천만 국가정원’이 인공의 축복이라면, 개펄과 갈대밭이 펼쳐진 ‘순천만 습지’는 자연의 축복일 것이다. 친구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기에 비바람 부는 텅 빈 순천만 습지가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우리는 바람 속을 걸었고, 바람처럼 다시 헤어졌다. 남도여행을 준비하느라 애써준 황왕규 서울지역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 동기들, 특히 통 큰 기부로 특별한 추억을 선물해 준 이준태 동기에게 감사드린다. 행사 첫날 저녁 식사 모임에서 내가 미리 준비한 졸시 “섬진강 황어떼”를 낭송했는데, 그때 섬진강에서 황어는 한 마리도 못 만났으나 우리 친구들의 어울림은 영락없는 황어떼의 모습이었다.
푸른 강의 흰 모래톱 위로 솔솔 솟아나는 아지랑이 따라 금빛 황어들이 물보라 치며 달뜬 봄바람을 휘몰고 가네. 쪽빛 하늘에 핀 꽃구름 속으로 종다리들 힘차게 깃을 치는데 고기떼 살여울 가르는 소리 자진가락마냥 숨차 오르네.
일월성신의 빛살만 쫓아 허허바다를 돌고 돌면서 거센 바람 거친 너울을 뚫고 오죽 안간힘으로 지나왔던가. 화사한 길은 바라지도 않고 혼자는 눈길조차 아니 주면서 서로 잦추고 서로 부축인 얼마나 순박했던 한길이던가.
지금까지도 기적이라면 꽃이 진다 두려우랴. 이만치로도 천복이라면 봄이 간다 서러우랴. 매화꽃잎 반가운 손짓에 우르르 몰려갔다가, 못내 그립던 솔향기 위로 파드닥 솟구쳤다가,
원도 한도 없이 헤쳐왔으니 이젠 태어난 데로 돌아가고자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채로 아스라한 꿈길을 더듬어가네. 돌아가 점점이 분신을 낳고 포말처럼 산산이 스러지고자 흩날리는 꽃눈깨비 맞으며 황어떼가 마지막 소풍길 가네.
2018년 ‘친구의 날’ 행사의 행선지는 경북 안동이었다. 대구에서 ‘엔유씨전자’를 경영하는 우리 동기회의 자랑스러운 기업인 김종부 회장이 대부분의 경비를 도맡아 초대하였다. 이번에는 150여 명으로 더 늘어난 동기들이 전국에서 먼 길 마다않고 모여들었다. 나는 전에 두어 번 그곳을 여행한 경험이 있는 데다, 우리나라 양반문화의 본고장이요, 항일독립운동의 성지(聖地)라고 할 수 있는 안동지방에 특별히 매력을 느껴온 터여서 더욱 반가움이 앞섰다. 우리가 안동을 찾은 날은 4. 28. 마침 충무공 이순신 탄신 기념일이었다. 첫 방문지인 안동 하회마을은 왜적의 침략으로 이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섰던 때 바로 이순신 장군을 천거해서 나라를 구하게 했던 명재상인 서애 류성룡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친구들과 하회마을을 둘러보고 마을을 휘감고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동네길을 도란도란 산책했다. 서애 선생을 모신 ‘병산서원’을 코앞에 두고도 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려 대신 ‘도산서원’으로 향했다. 도산서원은 서애의 스승으로 영남의 최고 성리학자인 퇴계 이황이 제자 유생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부러울 만큼 넉넉한 배움터였다. 서원을 나온 후 원래는 나의 제안으로 이 고장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임청각’도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차량 진입의 어려움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안동시내 식당에서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치고, 얼근히 취한 김에 부근에 있는 ‘월영교’ 산책길에 나섰다. 안동댐 아래로 흐르는 물길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는 강물 위의 분수 쇼까지 어우러져 참으로 아름다웠다. 다리 한가운데 팔각정 모양의 ‘월영정’이라는 정자 위에서 우리는 한동안 춘흥(春興)에 함께 젖었다. 호텔에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서 다음 날 아침 안동시 외곽에 위치한 ‘이육사 문학관’을 찾았다. 육사는 윤동주와 함께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민족저항시인이고, 또한 의열단 등 여러 독립운동단체에 들어가 항일독립운동을 펼치다 17번이나 투옥되고 결국은 옥중에서 순국한 독립투사이다. 평소 독립운동에 관심이 많고 시를 즐겨 쓰는 나로서는 각별하게 마음에 모시고 있는 선열이기도 하다. 문학관에서 육사 시인의 외동딸 이옥비 여사로부터 친절한 환영의 인사말까지 들을 수 있었다. 문학관 내의 강당을 빌려 우리는 작은 음악회도 열었다. 이번 안동여행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도타운 정을 나누면서 아울러 국난극복의 슬기로움과 숭고한 독립정신을 깨우칠 수 있는 매우 뜻깊은 기회였던 것 같다. 여행을 총괄 준비해준 이종웅 재경지역 회장, 많은 경비를 자청하여 부담한 김종부 동기에게 특별히 감사드린다. 나는 첫날 월영교 산책길에 친구들 앞에서 또 졸시 “봄밤에”를 낭송했다. 강물은 잔잔하고, 달빛은 눈부셨다. 잊을 수 없는 밤, 우정의 봄밤이었다.
여보게, 친구 우리 모처럼 만났으니 얼근히 취한 김에 샛강길로 함께 거닐어 보세 길섶엔 민들레꽃들이 지고 휘파람새 울음마저 이울었어도 하늑거리는 잔물결 소리 꿈결인 듯 얼마나 반가울 건가 사랑하는 이들 하나둘 떠나보낸 뒤 속절없이 덤덤한 일상이라고 씁쓸한 웃음으로 탁배기잔 건넬 때도 스치는 눈이슬을 왜 몰랐겠는가 가끔 손잡고 외롭지 말자는 괜스런 말다짐은 거두었네만 정작 우리에게 두려운 건 아무도 찾지 않는 외로움이 아니라 아무나 잊어가는 일이 아니겠는가 어데서 불어온 실바람인지 강둑 너머로 고즈넉이 사라지고 창망한 밤하늘의 별을 헤치며 쪽배는 또 어디로 흘러갈 건가 저 아스라한 고요 속으로 우리도 함께 흐르고 흘러 강물이 되세 달빛이 되세
2019년 ‘친구의 날’은 충북 충주호를 둘러싼 제천, 충주, 단양 지역을 찾는 여행이었다. 그곳은 우리나라의 중원이면서 절승지로 알려진 고장이다. 이번에 친구들을 초대한 주인공은 이종웅 동기였다. 전기회사 사장이 우리나라 최대의 발전용량을 자랑하는 충주댐으로 친구들을 부른 것이었다. 어김없이 130여 명의 친구들이 전국에서 불원천리하고 운집했다. 봄 햇살이 싱그러운 4월의 마지막 주말이었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서로 반가운 손을 부여잡고 ‘충주댐 물문화관’을 방문했다. 앞으로 머지않은 장래에 물 부족의 위기를 맞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드는 듯했다. 인근에 있는 음식점에서 민물고기 매운탕으로 맛있는 점심을 들고 나서,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충주호’를 주유했다. 말이 호수이지 바다처럼 가도 가도 끝없는 물길이었다. 우리는 한 시간여 후에야 맞은 편에 있는 청풍문화재단지에 닿았다. 충주호를 제천 쪽으로 넘어가면 ‘청풍호’라고 부른다. 그런데 단지 안의 높은 언덕에 올라 조망하는 청풍호는 아래에서 보던 그 드넓은 호수가 아니었다. 겹겹이 산봉우리에 에워싸인 호수는 차라리 내 가슴으로 껴안고 싶은 한 폭의 그림일 뿐이었다. 다산 선생이 “안소건곤 장경우주(眼小乾坤 掌輕宇宙)”라고 했던가. 그날 저녁 우리는 호수가 한눈에 바라뵈는 청풍리조트에서 만찬을 즐겼다. ‘친구의 날’ 행사 때면 늘 잊지 않고 준비해오는 군산 고석담 동기의 홍어회 맛이 그날따라 일품이었다. 다음날 서둘러 제천으로 향했다. 제천은 의병(義兵)의 도시임을 자랑한다. 구한말 위태로운 나라를 구하고자 의암 유인석이 이끄는 수많은 의병들이 가장 먼저 일어나고, 가장 치열하게 싸우고, 가장 많이 희생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제천 시내에는 ‘의병전시관’이 말끔하게 건립되어 있었다. 마침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뜻깊은 해이기도 해서인지 전시관을 둘러보는 친구들의 눈빛이 더욱 의기(義氣)에 차 보였다. 우리 일행은 의병전시관을 나와 제천의 또다른 명소인 약초시장에 들렀다가 인근 식당에서 석별주를 곁들인 오찬을 함께했다. 청풍호 주변의 명물 음식이라는 황금떡갈비로 안주를 삼았다. 모두들 불콰해진 얼굴로 다시 만날 날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대부분의 행사 비용을 찬조해준 이종웅 동기와 꼼꼼하게 행사를 챙겨준 채진석 재경지역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 동기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친구의 날’ 행사는 모교의 전체 동문사회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단결력을 지닌 우리 동기회의 트레이드마크로 알려져 있다. 나는 재경남성회장과 총동창회장을 역임하면서 다른 선후배 동기회에서 그 행사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또 부러워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친구의 날’ 행사가 이태째 중단되어 너무 아쉽다. 앞으로 우리 모두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는 행사를 꼭 이어갔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진실로 행복한 순간 중의 하나는 친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밤새도록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라고 한다. ‘친구의 날’ 행사는 내게 바로 그런 행복의 순간을 갖게 해주는 특별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중고교 동기가 누구인가? 나의 인생에 더 소중한 친구가 또 있는가? 친구를 정의한 말 중에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를 능가하는 명언은 없을 것이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가족이라면, 친구는 내가 선택한 가족이다.” 모쪼록 소중한 친구들의 건강 백수를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