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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열쇠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 16:18~19)
* 반석(헬:페트라) ; 바위, 돌, 반석, 70인역에서 히브리어 셀라와 추르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케프의 역어로 2회 사용 되었다.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창49:24)
반석(히:에벤) : 돌, 돌무더기, 바위, 반석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신32:4)
반석(히:추르) : 바위, 절벽, 반석
구약에서 반석이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다 같이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 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10: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2:4~5)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반석과 산 돌로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를 반석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왜 그랬을 까요?
동일한 말씀이 구약 성경에서 아브라함에게 사용되었읍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2)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신데 아브라함을 복이 될지라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 처럼 여겨질 수도 있읍니다.
베드로에게는 반석이라고 하셨읍니다. 반석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말씀인데 왜 그렇게 말씀 하셨을까요?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그리고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17:6)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인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거룩한 백성들의 조상으로 택하셨읍니다.
복이란 히브리어 바라크인데 하나님 앞에 무릎꿇다. 무릎꿇고 기도하다란 뜻입니다.즉 복이란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택하신 것입니다.천하 만민이 네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 하셨읍니다.(창22:18참조)
예수님은 베드로를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할 제자로 택하셨읍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니라"(막3:35)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하셨읍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반석이라 하신 것은 사람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베드로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 몸은 거룩한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복의 근원도 되고 반석도 될 수 있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멸하시겠다고 경고를 하십니다.(고전3:17)
예수님은 그리스도와 함께 성전이 되고 반석이 된 거룩한 제자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공동체(헬:에클라시아)를 세우시겠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것은 세속적인 교회도 아니고 베드로의 교회도 아닙니다.
헬라어 에클라시아를 교회로 번역해서 사용들을 합니다. 성전이 무엇이고 교회가 무엇인지 바르게 알았으면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에는 세상에 하나 뿐인, 성소와 지성소와 번제단이 있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이 있었읍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BC 170~165 경 부터 세운 유대교 회당(쉬나고게)가 예루살렘에만 200여개나 있었읍니다. 이들은 참된 예배란 피의 제사가 아니라 율법연구와 기도가 참된 예배라고 주장을 하면서 귀족과 부요한 제사장 중심의 사두개파 권력에 도전을 합니다. 그로부터 안식일 회당예배가 바리새파 중심으로 운영되었읍니다. 안식일 회당예배는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들이 제사장 중심의 유대교 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이들이 피의 제사를 거부한 사건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이시며 속죄일의 수소와 숫염소의 피를 상징하는 메시아의 보혈을 거부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이런 주장을 폈더라면 그것은 타당한 주장이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1~12)
예수님은 피의 제사(메시아의 속죄 양의 제물)를 거부한 유대교의 쉬나고게를 통해서는 인류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셨고, 생명이시며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시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권세를 주셨읍니다.(요3:16)
예수님은 유대교의 회당이 아닌 "나의 에클라시아"(그리스도의 에클라시아)를 세우시겠다고 하셨읍니다.
교회(헬:에클라시아) : 집회, 회중, 공동체, 민회
에클라시아는 주전 5세기경 무렵부터 헬라 시민의 대중 집회를 표현하는 단어로 사용되었읍니다. 이 집회는 일년에 30~40회 정도 정규적으로 모임을 가졌는데 지역마다 조금씩 달랐고 긴급을 요할 때에도 모였읍니다. 70인역에서 에클라시아는 회중, 집회, 총회를 뜻하는 히브리어 카알의 역어로 사용되었읍니다.
에클라시아는 교회 보다는 하나님 백성의 모임, 공동체, 총회의 뜻으로 번역되어 사용되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읍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하늘 나라와 천국 복음을 전할 공동체(히:카알)를 세우길 원하셨읍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업과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과 심판을 선포할 하나님과 성령과 예수님과 함께할 동역자, 그들이 성전이고 그들의 모임이 바로 그리스도의 에클라시아, 그리스도의 빛을 드러내는그리스도인의 공동체가 세워질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교회라는 용어는 에클레시아로 표기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영어로 church, 독일어로 kirche, 스웨덴어로 kyrka 등으로 사용하는데 그 어원은
계1:10 "주의"(헬:퀴리아케 : 주께 속한, 주의)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지금 사용하는 교회의 어원은 퀴리아케로서 주님께 속한 공동체란 뜻입니다.
큰 교회에 가 보면 예배당을 제1성전, 제2성전 등으로 표시해 놓고 교회 건축물을 지을 때 ㅇㅇ교회 성전 신축공사로 표기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바른 표기법이 아닙니다.
유대인들도 회당을 성전이라고 부르지 않았고 현재도 성전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성전이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계21:22)
또한 건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성령이 거하시는 성도들의 몸이 성전이라고 사도 바울은 가르쳐 줍니다.(고전3:16)
예루살렘 성전이 성전인 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지성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성전은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숨을 거두실 때 성소와 지성소에 가리워져 있던 휘장이 찢겨짐으로 인해서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는 더 이상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공간이 아니었읍니다. 이 성전은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서 파괴되면서 그 자취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읍니다. 지금은 그 곳에 황금돔, 이슬람의 모스크가 세워져 있읍니다.
성경 말씀에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특정 건물과 공간을 통해서 임재하신다는 기록은 없읍니다. 그러므로 교회 건물을 화려하게 지어놓고 성전이라고 칭하는 것은 바람직한 표현이 아닌듯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세울실 터인데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음부(헬:하데스) : 70인역에서는 스올(히:셰올)의 역어로 사용되었읍니다. 하데스를 음부로 번역해 놓았는데 그 뜻을 바르게 알았으면 좋겠읍니다. 하데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죽음과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신의 이름입니다. 로마 신화에서는 플루톤, 디스 파테르, 오르쿠스 등으로 나타납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지구가 있기 전에 티탄이라는 신들의 세계가 있었는데 하데스는 크로노스와 레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신들의 왕 제우스와 바다와 폭풍의 신 포세이돈 등과는 형제지간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제1세대 신입니다. 아버지 크로노스는 불길한 예언을 듣게 됩니다. 자신의 아버지 처럼 자신도 자식에게 쫓겨 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자식들을 낳는대로 다 먹어 버립니다. 아내 레아가 제우스를 낳고 한 아들이라도 구하고 싶어서 제우스 대신 돌을 먹이고 제우스를 아말테이아에게 맡겨서 성장하게 됩니다. 제우스가 커서 형제들을 구하고자 메티스로 부터 구토제를 구해 어머니 레아에게 건네 줬는데 크로노스가 그 구토제를 마신 후에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을 토해 내고 제우스는 그들을 구해 냅니다. 제우스와 그 형제들은 크로노스를 포함한 티탄의 신들과 전쟁을 하여 그들을 몰아내고 오림푸스의 제 1세대 신들이 됩니다. 그리스의 신화가 아닌 문학에서도 하데스를 지하 세계의 신, 죽음의 신, 죽은 영혼이 거하는 지하 세계 등으로 표현되어져 있으며 그 신화와 철학이 유대교에 그대로 전해졌읍니다.
하데스란 죽음과 어둠의 세계를 주관하는 신의 이름입니다. 그리스 신화와 문학에 등장하는 하데스는 냉정하고 차갑고 인정이 없는 악하고 죽음과 불행을 안겨주는 죽음의 신 이름입니다. 사탄의 모습과 동일하지요.
권세(헬:퓔레) : gate,door로서 대문, 성문, 문을 뜻합니다.
음부의 권세는 하데스로 통하는 문, 죽음과 어둠의 신의 흉내를 내는 사탄의 세계로 통하는 문, 즉 죽음과 어둠을 들여 온 사탄의 멸망의 세계로 가는 통로를 뜻합니다. 원어로 풀어보면 번역의 미흡함을 알 수 있지요.
예수님은 죽음의 문이, 사탄이 죽음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음부)이 결코 그리스도 공동체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 증거로서 예수님은 사흘만에 부활하셨읍니다. 스스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서 죽음의 세계를 이기는 승리자가 되셨고 그 유업을 우리에게 주심으로서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을 상속자가 되게 하셨읍니다.
마16:19의 말씀에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무엇이든지(헬:에안) ; 언제든지, ~하는 때에는, ~일지라도
*이 구절을 가지고 카톨릭은 예수님이 천국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셨으므로 베드로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라고 가르칩니다. 베드로가 제1대 교황이라고 주장하는 카톨릭은 베드로의 권한을 교황과 사제가 이어 받았다 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고해 성사를 통해 죄를 고백하고 신부가 보석(죄의 값; 기도,미사참례,금식 등)을 주고 사죄하면 죄가 없어진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정작 베드로는 카톨릭이 주장하는 고해성사나 성도 위에 군림하는 그 어떤 행동과 표현을 한 사실이 없읍니다. 사도 바울은 내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고 내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마음 속에는 세상의 유혹과 세상의 법이 자신을 이끌어 가는 것을 보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고백을 합니다.(롬7:18~25참조)
또한 요한복음 20장 23절 말씀의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이 성경절을 가지고 카톨릭은 동일한 주장을 합니다. 이 성경절의 사하다라는 단어는 헬라어 아피에미로서 용서하다 석방하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의 기도에 나오는 "사하여"에 사용된 단어와 동일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6;12)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용서를 구하는 성도들이,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가르침대로 사는게 아니겠지요.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형제가 잘못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라고 질문했을 때 예수님은 일곱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하라고 이르셨읍니다.(마18:20) 여기에 사용된 용서라는 단어도 아피에미로서 동일한 단어입니다.
성경 말씀에 또는 초대교회의 속사도 시대까지 베드로를 어느 누구도 교황이라고 부르지 않았고 기록하지 않았읍니다. 베드로가 카톨릭의 교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카톨릭만의 주장이고 속임수입니다. 또한 사도 시대에 베드로를 포함하여 어느 누구도 고해 성사를 주고 받은 사실이 없고 이 성경절을 그렇게 해석한 사실도 없읍니다.
약 13세기 이후부터 시작된 카톨릭의 고해성사 제도는 트렌트공의회 (1545년)에서 사제의 권위와 함께 공식 체택되었읍니다.
예수님이 천(heaven:하늘)국(kingdom;왕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셨읍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물리적으로는 그 어떤 것도 받지 않았읍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무엇을 주셨고 베드로는 무엇을 받았을까요?
예수님은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선포하셨고(마5;20)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읍니다.(마7:21)
천국은 좋은 씨를 밭에 뿌린 사람 같으니 자라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는다라고 가르쳐 주셨고(마13:19~23)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끝이 온다고 알려주셨읍니다(마24:14)
천국 열쇠란 씨와 동일하게 천국 복음을 뜻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천국 복음을 들었고 다른 제자들도 가르침을 함께 받았읍니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을 제치고 베드로에게 이르신 것은 베드로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을 했고 그 고백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이기 때문에 베드로와 같은 신앙을 가진 모든 제자들에게도 동일한 말씀이 선포된 것으로 이해 되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천국 복음을 가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간 열 처녀에 비유해서 가르쳐 주셨읍니다.(마25;1)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해서 신랑이 올 때 불을 밝혀 영접하여 들어갔읍니다. 이 기름이 또한 열쇠입니다.
늘 깨어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며 복음을 선포하고 사는 자가 되어야 하겠지요.
이 밖에도 천국은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으로도 선포하시고(마22:2), 어린 아이에 비유하시고(마19:14), 품꾼의 품삮을 정산하는 주인에 비유하여 가르쳐 주셨읍니다(마20:1~16)
어느 때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전해질 것이고 그 초대에 응하는 자와 응하지 않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복음은 어린아이 처럼 순수하게 받아들인 자들의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먼저 받았든 늦게 받았든 상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동일합니다.
바울은 주께서 모든 악에서 나를 건져내시고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신다고 고백합니다.(딤후4:18)
천국 열쇠는 오직 예수님만이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늘 깨어 있어서 굳센 믿음으로 말씀에 바르게 서서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복음을 선포하고 증거하며 살아야합니다. 그 복음이, 그 말씀이, 내 안에 계셔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이, 바로 천국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자신이 받은 은혜의 씨로, 은혜의 빛으로 다른 사람에게 천국 복음을 전함으로서 생명을 구원하는 사역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그리스도라고 고백을 합니다.(마16:16) 예수님은 너에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라고 말씀하십니다.(마16:17)
그리고 나서 18절과 19절을 통해서 오직 그리스도의 공동체의 세움과 천국 열쇠 말씀이 이어집니다.
혈육과 지식이 아닌 하늘 아버지께서 알게 하신 지식과 인도하심에 따라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동역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집이라고 말합니다.(고전3:9)
사탄의 세속적 유혹의 온갖 간계를 물리치고 승리한 성도들이 오직 천국 복음으로, 천국의 열쇠로, 그 씨앗으로, 그 빛으로, 복음의 말씀을 전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역할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해야될 사역이며 의무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결실을 맺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말씀하셨읍니다.(마13:23)
오직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모든 것이 판단되어지고 심판주 앞에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게 됩니다.(히4:12~13)
우리의 사역은 생명의 말씀으로 하나님과 동행함으로서 성도들을 생명책에 기록되게 할 수도 있고,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심판의 책에 기록되어 지게 할 수도 있읍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의 책임과 의무가 얼마나 중합니까.
사도 베드로의 가르침에도 자기가 죄를 묶고 푸는 권세가 있다고 주장한 사실이 없읍니다.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1:7~11)
형제의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고 생명을 구원하는 사역이야말로 가장 큰 사역이며 사역의 목적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18~20)
복음을 전하는 사역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분부하여 알게하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지 사람의 지식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읍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사모하고 그 가르침대로 사는 자와 늘 동행하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정한, 성정이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인간이었읍니다.(마26:69~75)
베드로는 자신을 특별히 여기지 않았읍니다. 그런데 카톨릭의 사제들이 자신들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성경을 오도해서 베드로를 초대교황이라고 주장을 하고 그 권한이 카톨릭으로 계승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2:5)
베드로는 너희도 산 돌(예수 그리스도)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성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 기도, 복음선포, 사랑과 나눔 등)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이릅니다. 이어서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0)
베드로는 자신을 제사장이라고 하지 않았읍니다. 그런 베드로를 교황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오히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성도들이 제사장이라고 표현을 하였읍니다.
왕같은(헬:바실레이오스) : 70인역에서 히브리어 마믈리카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왕국, 통치권을 의미합니다.
신약에서 단 1번 사용되었읍니다. 왕같은 보다는 왕의가 더 맞는 표현입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을 왕(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들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 목적이 빛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덕)을 전하게 하려하심이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베드로의 서신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라고 말합니다.(벧후1:1)
성도들이 특별한 날에 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석하고 세상적으로 살으라고 가르쳐 주신 성경절도 없읍니다. 또한 사도권이 계승된다고 말씀하신 성경절도 없읍니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히5:11)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신앙지식과 믿음이 약하여 어린 아이같은 모습에 머무는 것을 나무랍니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리스도 예수를 증거할 충분한 지식과 믿음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을 제자 삼아 가르칠 은혜와 부르심을 받았읍니다.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계1:18~19)
사망과 멸망이 있는사탄이 범죄한 세계의 열쇠도 예수님이 가지셨고
심판주도 예수님이시고(약5:7), 죄의 속량도 예수님의 은혜이고, 천국의 열쇠도 예수님만이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다만 그 분의 도구이며 동역자이며 지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택하심과 부르심의 그 크신 은헤로 모든 형제들에게 거룩하게 봉사할 권한과 능력을 주셨읍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벧후3:12~18)
베드로는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사모하라고 말합니다. 그날에 하늘이 타서 풀어지고 모든 물질(땅)이 불에 녹고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약속의 의가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세상의 지식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자들에 의해서 풀릴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에 이른다고 경고합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1~4)
새 예루살렘 성이 하나님께로 부터 내려와서 천국에 있을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준비될 것입니다. 그 곳은 늙음도 병듦도 굶주림도 억울함도 외로움도 없는 완전한 세상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계18:4~5)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경고 하십니다.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비치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계18:23~24)
바벨론은 속임수로 성도들을 유혹하고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교회입니다. 권위와 거짓 교리로 하나님을 모독하고 그들들을 미혹해서 헛된 예배를 드리게 하고 그들에게 맞서는 의로운 성도들을 죽이고 선지자들을 죽인 교회입니다. 이 교회가 어디일까요.
천국 열쇠는 신부나 목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천국복음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할 모든 성도들이 다 가지고 있읍니다. 우리는 그 열쇠로 생명을 구원하는 사역을 감당하는 동역자이며 주의 지체들입니다. 주님께 부르심을 받았고 주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주신 소명을 감당해야 될 거룩한 왕이신 주의 제사장들입니다.
평신도라는 말은 성경에 없읍니다. 사도 바울과 베드로의 가르침 처럼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제사장이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해져서 복음을 선포할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히5:12,벧후3:18참조)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그들이 내 백성의 속죄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그들의 죄악에 두는도다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동일함이라 내가 그들의 행실대로 벌하며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리라"(호4;6~9)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얻어지는 은혜입니다. 오직 성경 말씀만이 바른 신앙의 등대가 될 것입니다.
말씀이 없는 사역은 죽은 사역입니다. 장차는 제사장과 백성이 동일할 것이라고 하셨고 사도 베드로도 모든 성도들을 왕이신 그리스도의 제사장들이라고 했는데 성경 말씀을 무시하고 교회 직분을 임의적으로 만들어서 성도 위에 군림하는 직제의 교리는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사도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8~9)
오직 성경 말씀만이 신앙의 표준이고 성경 말씀만이 신앙의 결론이어야 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12:4~12)
성령의 은사에 의해서 교회의 역할과 사명이 주어지는데 한 지도자의 역량 안에서 직제와 역할이 만들어지고 있읍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1~12)
목사(헬:포이멘) : 목자, 70인역에서 히브리어 라아의 역어로 사용됨
라아 : 히브리어로서 풀을 뜯기다, 먹이다, 사귀다, 양육하다, 목자
예수님도 자신을 선한 목자(포이멘)라고 하셨는데(요10:11~15) 동일 단어로 목사라고 번역을 해 놓았읍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벧전5:2~4)
성도들을 양육하고 가르치고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르신 소명 앞에서 자원함으로 순수하게 봉사해야 하는 목자적 직분입니다.
목자장(헬;아르키포이멘) : 목자장,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을 의미함.
예수님은 목사장이 아니라 양을 치는 양무리의 목자장이십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모든 직제나 용어가 완전히 성경적이지도 않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주시는 능력을 따라 직제와 사역이 감당되어지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모든 사역자들이 고민하며 기도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해결되어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모든 사역들, 성경 공부, 전도, 선행, 말씀 가르치는 일, 모든 악한 것과 병을 고치는 일 등은 성도들이 감당해야될 부르심의 소명입니다. 복음 선포와 구속 사업의 참여는 신부, 목사, 교황, ~장 등 교파적으로 만든 직제의 역할을 맡은 사역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은혜와 부르심을 입은 모든 성도들이 각자 받은 부르심과 주신 은사대로 지체적 역할을 감당하는 오직 그리스도의 에클라시아가 되어야합니다.
예수님은 거룩하고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예수님의 에클라시아가 세워지기를 원하십니다.
그 에클라시아의 사명이 생명을 구원하는 사역이며 천국의 빛을 전하는 거룩한 빛의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천국 열쇠, 그것은 믿음과 부르심과 성령의 은사를 받은 모든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생명을 구원할 천국 복음의 말씀입니다.
첫댓글 모든 지체들은 천국열쇠를 모두 받았읍니다. 그 열쇠로 천국 문을 활짝 여십시요. 두드리면 열릴 것입니다. 수 많은 생명을 그 문으로 인도하십시요.
그 길이 나와 여러 지체들이 받은 거룩한 부르심의 소명입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