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명종馬鳴宗 제창자 청(淸) 양문회(楊文會, 1837~1911)에 대한 기사문
"근대 중국 신불교 운동이란 중국 근대에 이루어진 불교 혁신 운동 전체를 의미하고, 그런 의미에서는 근대 불교사상가 대부분이 이 운동에 참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불교 혁신 운동에서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인물은 아마도 양문회(楊文會, 1837-1911)일 것이다. 양문회(사진 1)는 ‘근대 중국불교 부흥의 아버지’로 불리우고 그의 사상은 의심할 바 없이 혁신적 성향을 가지지만, 실제로는 전통 사상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중략) 그는 매일 서호라는 호숫가를 산책하며 마음을 달래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호숫가에 있는 한 서점에서 우연히 『대승기신론』 복사본을 발견하고 깊은 인상을 받아, 자신이 비록 유학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불교 연구에 몰두하기로 결정하였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이는 근대 불교사상가가 될 한 젊은이와 『대승기신론』의 운명적인 만남이라 할 수 있다. (중략) 양문회는 『대승기신론』을 만나며 불교에 뜻을 두었을 뿐 아니라, 이후에도 자기 사상의 근본으로 삼아 “대승불교의 기틀은 『기신론』의 저자인 마명에서 열렸다.”고 단언하였고, 만년에는 마명종馬鳴宗을 제창하기까지 하였다." (김제란, 「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양문회와 『대승기신론』-」, 『월간 고경』 통권 제86호, 2020.6.)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을 가장 간명하고 체계적으로 요약해 놓고 있는 논서는 <대승기신론>이다. 저자는 마명(馬鳴)으로 범어 이름이 아스바고사(Asvaghosa)이다. 그의 생몰연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이설이 있으나 대체로 2세기 초.중엽에 생존했던 인물로 보며, 그의 활동시기를 100~150년경으로 본다.
그는 원래 브라만 출신의 대학자로 총명이 널리 알려졌던 사람인데, 당시 인도의 학문중심지였던 마가다 지방의 여러 도시에서 불교학자들과 논쟁을 벌인 끝에 지고 나서 불교에 귀의 하였다고 한다. 조사전법 법맥에서 서천 12조로 되어 있으며, 부나야사(富那耶奢)의 제자로 되어 있는데, 일설에는 협존자(協尊者)의 제자였다고 하는 설도 있다. 또한 그는 당시 유명한 시인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카니쉬카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신론>의 저자 마명과 시인 마명이 동명이인(同名異人)이었다는 설이 나와 최근에는 이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석마하연론>에는 6명의 마명이 있었다 하고 <출삼장기집>에도 2명이 마명이 있었다 한다. <기신론>을 <마명론>이라 부르는 것처럼 저자를 마명으로 보는 것은 지금까지 통설로 되었으나 어느 마명이었나 하는 점에는 아직도 이설이 남아 있다.
근래에 와서도 <기신론>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어 왔다. 앞서 말한 저자가 누구였나 하는 문제와 또 <기신론>이 인도에서 저술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찬술된 것이라는 주장이 대두되어 이에 대한 논쟁도 계속되어 왔다. 이는 주로 일본의 불교학자들 사이와 중국의 불교학자들 사이에 일어난 논쟁이었다. 특히 중국에서 근대 신불교운동을 주도했던 양문회(楊文會, 1837~1911)와 구양경무(歐陽景武, 1871~1943), 태허(太虛, 1889~1947) 스님 등의 활동기에 <기신론>을 둘러싼 다각적인 주장들이 나와 논쟁이 한 층 가열되었다.
양문회는 중국불교 부흥운동의 아버지로 칭송된 인물이었는데, 그는 일찍이 <기신론>을 읽어본 것을 계기로 불교연구에 몰두하여 나중에 불교경전을 간행하는 등 불교사상을 선양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영국에서 막스 뮐러(Max Muller, 1823~1900)를 만난 적이 있었고 일본의 학자 난죠분유(南條文雄, 1849~1927)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교류하여 불교관계 전적들의 많은 자료를 입수하기도 하였다.
양문회의 사상은 바로 <기신론>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는 <기신론>을 각별히 좋아했으며, “대승불교의 기틀은 마명에서 열렸다”고 말했으며, 마명종을 제창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중국에 와 있던 선교사 리차드 티몬시(Richard Timonthy, 1845~1919)에게 <기신론>을 선물하여 이를 영역하게 하여 1907년 상하이에서 <기신론> 영역본이 나오기까지 하였다. 양문회는 <기신론>이 불교를 배우는 최적의 입문서이고 교문과 종문을 회통하고 여러 경전들을 통섭하여 포괄하는 대승불교의 근본이 되는 것이라 하였다. <능엄경> <능가경> <화엄경> <법화경> 등 대승경전이 <기신론>을 통달하면 저절로 쉽게 이해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주장으로 양문회는 <기신론>을 불교의 우수성을 대변하는 중요한 논서로 간주하면서 중국불교의 전통이 <기신론>을 중심으로 일어난 것이라 하였다. 그는 <기신론>의 주소(註疏)를 교감 정리하여 불교연구의 근본을 삼았다. 그는 이미 많아 알려진 <기신론>의 삼대소인 혜원의 <기신론의소>와 원효의 <기신론해동소>, 그리고 법장의 <기신론의기> 뿐만 아니라 명나라 때 진계가 지은 <기신론찬주>와 덕청이 지은 <기신론직해>, 지욱이 지은 <기신론열망소> 등을 간행하였고 만년에는 수집한 각종 주소를 모아 <대승기신론소해회집>을 발간하였다. (지안스님, 「대승불교 중요 교본 『대승기신론』」, 불교신문 2903호, 2013년4월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