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1945 의 구성 구도는 1938년경부터 문동기가 블라디보스톡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인데요. 이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의 ABC조차 모르거나 망각한 중대한 오류입니다.
일본육사 출신 독립운동가들이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한 때는 일제시대 초기였습니다. 무식한 이들은 일본육사 출신은 친일파라고 하지만, 쟝재석 총통도 대국의 통치자의 체면을 버리고 일본군사학교에 입학하여 3년간 수학하였는데요. 이것은 현대본聆隙?배워두는 것이 애국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일합방 이후 첫번째 내려진 조치가 조선인의 일본육사 유학 금지였습니다. 러시아가 제2의 러일전쟁을 일으키려 하던 1937년까지 조선인은 그 어느 귀족의 자제라 하더라도 일본육사에 입학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러시아가 제2의 러일전쟁을 일으키려 하던 무렵이었던 1937년경부터 일년에 한 명씩 받아주었습니다. 그때 입학할 수 있었던 분들이 6.25 때 나라를 구했었지요.
1943년 만주국 부의황제가 만주제국 군관요원으로 박정희 등 여러 명을 정부 장학금으로 일본육사에서 위탁교육시켰던 것처럼 구한말 고종황제도 대한제국 군관요원으로 정부 장학생을 일본육사에 유학 보냈었는데요. 1910년 한일합방이 일어나자 일본육사의 조선인 생도들이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몇명은 러시아로 망명하여 독립군을 창군하였고요. 이들은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군이었으며, 훗날 좌익으로 불린 공산주의 계열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KBS의 좌익 미화와 달리 1930년대 후반에 좌익이 불라디보스톡에서 독립군을 조직한 사실은 없었습니다.
1930년대 중반기에서 후반으로 넘어갈 무렵 독일의 히틀러는 러시아 침공의 준비로서 스탈린에 불가침조약을 제의합니다. 히틀러에 속은 스탈린은 서부 국경지대는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제2의 러일전쟁 준비에 박차를 거합니다. 그 중에 조선인(고려족) 이주 정책이 있었는데요. 1937년부터 시작된 조선인 이주 정책이 왜 러시아 수백 만 동포 중 대부분이 중앙아시아에 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스탈린의 비러시아계 이주 정책은 소수 민족의 독립운동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정책이었습니다.
문동기가 러시아는 평등의 땅이라고 말하는데, 당시 러시아는 조선인들에게는 전혀 평등의 땅이 아니었어요. 보세요. 일제시대에 그렇게 해외 망명이 많았는데도 35년만에 인구가 8백만에서 3천만으로 증가하였습니다. 이것은 일본은 조선인의 개인 재산을 법적으로 보호하여 주었음을 시사합니다. 그런데, 러시아에서는 1937년부터 블라디보스톡에서 조선인을 발견하는 대로 집이며 토지며 가구를 챙길 틈을 주지 아니하고, 심지어 가족을 데려올 틈조차 주지 아니하고 열차에 실어 쉬지않고 열흘 달려 중앙아시아 허허벌판에 내려놓았던 것입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무슨 사업을 했었든, 무슨 전문직에 종사했었든 조선인은 모두 빼앗기고 빈몸으로 중앙아시아 허허벌판에서 농사를 지어야 했습니다.
스탈린의 이주정책의 목적은 민족주의 말살이었습니다. 따라서 1937년 이후 러시아에서는 독립운동은 불가능하였습니다. 조선인은 보는 대로 붙잡아다가 열차에 짐짝처럼 꾸역꾸역 집어넣어 수만리 동떨어진 곳에 갖다가 내려 놓았는데 무슨 독립운동을 한다는 말입니까? 단지, 1939년 독일 나치군이 러시아를 공격하자 그때부터 조선인에 대한 처우가 조금 개선되었을 뿐입니다. 조선인에게 러시아군 입대 기회를 주어 2차 대전 전투장으로 보낸 것입니다. 좌익은 그것을 독립운동이라고 하는데, 러시아 편에서는 조선인 부대는 러시아군의 일개 하급 부대였을 뿐이예요. 그리고 김일성 등이 레닌그라드로 갈 기회를 갖지만 그것은 레닌그라드 전투에 투입되기 위해서였을 뿐이었습니다.
1937년 이후 블라디보스톡에서는 독립운동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었다는 사실은 우리 민족 근현대사의 ABC 임에도 KBS 는 마치 그 시기에 문동기와 최운혁이 블라디보스톡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던 것처럼 구도를 잡아놓았으니 이는 공영방송이 두고두고 비웃음을 살 치명적인 오류입니다. 만약 문동기가 정말 그 시대에 블라디보스톡에 갔었다면 그의 눈이 동태눈이 아닌 이상 러시아에서 조선인은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집과 땅과 재산을 다 빼앗긴채, 심지어 가족과도 헤어진채 러시아 군인들에게 끌려가 짐짝처럼 열차에 던져지는 광경을 보았을 것입니다. 과연 문동기의 눈에 그것이 평등으로 보였을까요?
KBS의 역사왜곡/ 최운혁 눈은 동태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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