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통해 본 우리 조상들은 명료한 슬기가 있었으며 삶에 철학이 있고 지혜가 분명히 있었다. 이러한 음악적 심성이 바로 우리 민족이 수난을 극복하고 생존을 지탱해 올 수 있었던 유일한 방편이 아니었나 여긴다. 삶에 있어서의 고뇌스런 슬픔과 희열의 기쁨을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서로가 그렇게 풀어가며 오늘을 보내고 또 내일을 맞이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마도 건강한 삶에 있어서 하나의 방편이 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우리나라 음악이 한결같이 슬프고 한스럽다고들 한다. 그래서 감상이 어렵고 함께 흥얼거리며 향유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선입견이나 편견이 우선한 때문이 아닌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극단적 슬픔을 표현하는 메나리조 <상여소리>의 메기는 소리와 신명난 음악을 대표하는 민요 <쾌지나칭칭나네>의 메기는 소리는 음악적 선율이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쾌지나칭칭나네>라는 노래를 감상하며 슬프다고 느끼기보다는 어깨춤이 덩실덩실 나오게 됨을 느끼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스럽게 느껴졌다는 슬픈 음악은 음악이 슬픈것이라기 보다는 감상한 사람의 마음이 한스럽고 슬프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같은 강물이라 하더라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 건널 때와 환한 대낮에 건널 때의 기분이 다르듯이 음악감상도 그러하다. 대낮에 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는 유람선을 타고 가는 듯한 신명난 뱃놀이 같이 우리 국악도 알고 보면 참으로 신명난 음악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혹여 슬픈 음악이라 할지라도 그저 단순히 한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거침없는 자탄과 푸념의 보따리까지도 숨김없이 풀어내 보이고, 솔직하게 가슴에 사무친 설움을 풀어낼 줄 알았고, 마음속 깊이 응어리진 한을 시원하게 녹여낼 줄 알고 있는 건강한 민족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삼베적삼에서 배어져 나오는 땀 내음과 같은 인간적인 체취가 물씬 풍기는 신명을 여한 없이 펼쳐 보인 아주 건강한 정신에서의 진솔한 음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허다한 사연을 풀어놓고 하나 둘 해결해 나가는 음악적 형식에서 결집력을 느끼게 된다. 한편으로는 응어리진 설움을 거칠게 쏟아내고 또 다른 편으로는 오열의 소리를 어루고 달래듯 감싸안는다. 때로는 서로가 부둥켜 앉고 울부짖어 보고 정화수에 비친 새벽 별빛에 실은 간절한 소망까지를 진실하게 말하는 듯 하다. 상대방의 어스름 따위에 아랑곳할 바 없이 나만 즐겁거나 배부르면 그만인 개인주의는 거부감을 가질 일이지만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는 최소한 그렇지 않다. 누구나 드러내기 싫은 설움과 한을 마음껏 풀어 보이면 그를 위로하며 공감하는 상호간 신뢰가 전재되어 진다.
감내하기 어려운 마음의 때를 풀어내는 것은 날마다 아침이면 누구나 양치를 하고 세면을 하는 바와 같을 것이다. 누구나 자고 일어나면 머리는 흐트러지고 눈곱이 끼기 마련이다. 하루라도 걸러 단장하지 않는다면 그 얼마나 찜찜할까 싶다. 깨끗이 씻을 줄 아는 자가 건강하고 아름답듯, 마음의 때를 진실 되게 풀어낼 줄 아는 것은 곧 현명함일 것이다. 울고 싶을 때 실컷 울고, 웃고 싶을 때 마음 것 웃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건강한 일인가 싶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음악은 건강한 정신에서 발로이며 공동체적 신뢰를 전제로 한 진실한 표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뱃 놀이 하면 생각 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님이 어느날 강을 건너기 위해 나루에서 배를 탔지요 !! 공이 미색이 있어 농을 하고 싶어 "여인에 배를 탔으니 부부의 인연이요 !! 첩이 되어야 겠소 ..!! 하니 여인 강건너 가서 원님이 내리니" 아들아 잘가거라 " 하니 원님이 무슨 소리를 하는게요 .? 하자 "내 배에서 나갔으니 아들 아닌감요" 하하 그리하여 그 원님은 다시는 농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