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비아티는 심플리치오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비판하고, 사그레도도 살비아티 쪽으로 기운다. 특히 지구의 공전과 자전 운동을 통해 밀물과 썰물을 설명하는 부분이 가장 중요하게 다뤄졌다. 그러나 12시간마다 밀물과 썰물이 반복된다는 갈릴레이의 예측은 실제로 6시간인 주기와 맞지 않았다(조수의 문제는 나중에 뉴턴의 중력 이론을 통해 비로소 제대로 설명되었다). 과학사학자들은 조수 이론보다는 코페르니쿠스 천문학 체계의 역학적 문제를 추상적, 수학적으로 설명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과학사적 가치를 찾는다.
이 책은 일단 검열을 통과해 출간되긴 했지만, 그 내용을 알고 화가 난 교황은 1633년 4월 12일 갈릴레이를 교황청으로 소환했다. 이날 첫 심문을 당한 갈릴레이는 이후에도 4월 30일, 5월 10일, 그리고 6월 21일까지 세 번에 걸쳐 심문 당했다. 마지막 심문 다음날인 6월 22일,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오늘날 이탈리아 국회도서관의 일부)에 딸린 방으로 안내된 갈릴레이는 형이 선고되는 동안 무릎을 꿇고 있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리고 유죄 선고가 내려졌다. 1616년의 서약을 어겼다는 것이 중요한 유죄의 근거였다. 형벌로 종신 가택연금과 이후 3년 동안 매주 한 번 ‘7대 고해성시’(시편 6, 31, 37, 50, 101, 129, 142편) 음송, 사후 장례식을 하거나 묘비를 세우는 것을 금지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
첫댓글 몇백년 저시대에 찾아준 근거로 오늘날 달나라 가는걸까요?? 지혜로운자가 되야 할텐데...
쿠웨이트는 지금도 사회적인 국가인가요??~~~~~~~~~궁금...
쿠웨이트는 입헌군주국으로 사회주의 국가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90년 걸프 전쟁 때 이라크에 점령당했다가 1991년 해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