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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신앙 유산의 상속자들
부제: 히브리서 11장을 묵상하며
설교 목적:
히브리서 11장을 중심으로 믿음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믿음의 내용에 대하여 신앙의 영웅들이 바라던 기대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특히 이 위대한 믿음의 유산을 물려받은 오늘 우리의 위치에 대한 히브리서 기자의 설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설교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위치와 신분, 그리고 소임에 대하여 다시 한번 각성하게 될 것이다.
설교 개요:
1. 창조의 면류관인 인간
2. 하나님 성전의 문지기
3. 믿음이 바라는 것
4. 위대한 신앙 유산의 상속자들
5. 하나님의 성회
1. 창조의 면류관인 인간
성경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시작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입니다. 창조 이야기는 6일 동안 하나님이 세상을 차례로 만들어가시는 과정을 웅장하게 들려줍니다. 성경이 들려주는 창조 이야기에서 맨 처음의 세상은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사막과 같았고, 캄캄한 새벽 같은 어둠 속에서 하나님의 신이 비둘기처럼 수면 위를 날고 있었습니다.
거기서부터 하나님의 창조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빛을 만드셨습니다. 그 결과 밤낮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궁창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실 때 그 궁창은 커다란 솥뚜껑과 같아서 그 위에 물을 가두었고 아래에도 물이 있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하늘과 바다가 생겼습니다. 이렇게 둘째날이 지나갔습니다.
하나님은 궁창 아래에 모인 물을 한 곳으로 모으시고 뭍이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육지가 솟아났습니다. 그리고 땅에는 온갖 채소와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모든 식물들에게 빛을 비추어 자라게 할 태양을 만드시고 밤을 비추어줄 달과 별들도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아직 하늘과 바다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섯째날 하늘에는 새들이 날게 하시고 바다에는 물고기들이 헤엄치며 다니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제 온 세상은 밝아졌습니다. 우주에는 해와 달과 별이 빛나고, 공중에는 새들이 날아다니고, 바다에는 물고기들이 뛰놀았습니다. 그리고 땅에는 온갖 식물들이 우거졌습니다.
그런데 땅에는 풀을 먹고 살아갈 짐승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조의 마지막 날 땅에서 살아가는 짐승들을 만드셨습니다. 그 짐승들은 배로 기어 다니기도 하고 네 발이나 두 발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온갖 짐승들이 식물을 먹으면서 성장하고 그 수가 늘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맨 처음에는 캄캄하고 아무 소리도 없었는데 창조가 시작되면서 세상은 점점 밝아지고 온갖 아름답고 생기발랄한 소리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었고 멋진 교향악과도 같았습니다. 온 세상은 창조의 하나님을 노래하는 영광으로 충만했습니다. 하나님도 그것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정말 아름답고 충만한 세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그 모든 과정은 이 세상에서 가장 웅장하고 위대한 일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완벽하게 갖추어진 것 같습니다. 만물은 충만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만물을 다스리고 돌보아서 더욱 충만하고 아름답게 가꿀 사람이 아직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 위에서 만물을 바라보며 그 빛나는 영광과 찬송을 지휘하여 하나님께 영광의 노래를 부르게 할 만물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를 힘입어서 만물이 번성하고 충만할 수 있도록 가꾸는 농부와 같은 역할을 할 것입니다.
공허하고 혼돈하던 땅에 질서를 부여하고 생명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활동이라면,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활동을 이어가는 존재입니다. 이 위대한 임무를 감당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부여하셨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모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뛰어난 지혜와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기도와 예배 가운데 하나님이 하신 일을 생각하노라면 그 위엄과 영광 앞에 압도되어 감격하면서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시편 8:4~5
성경은 이 세상과 인간에 대하여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이 세상은 하나님의 손길로 아름답고 충만하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창조활동의 마지막에 인간을 지으시고 그 머리에 왕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그 왕관은 인간이 만물의 관리자이며 통치자임을 나타내는 표시였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영화롭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는 세상이라는 왕국을 하나님이 어떻게 만드시고 가꾸시고 충만하게 하셨는지를 들려줍니다. 이 세상이라는 하나님의 왕국은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에 모든 만물을 다스릴 왕의 대관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이 보는 가운데 인간에게 영화와 존귀라는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학자들은 인간을 하나님의 창조의 왕관(the crown of God's creation)이라고 말합니다.
2. 하나님 성전의 문지기
여기서 우리는 영화와 존귀로 관을 쓴 인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인간은 어떤 존재입니까?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에서 왕으로 세움을 입은 존귀한 자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에 동참하는 동역자요 대리인입니다. 창조의 동역자라는 말은 인간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다는 말이 아니라 공허하고 혼돈한 땅을 잘 가꾸어 생명으로 가득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막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인간에게 특별한 능력을 부여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처럼 인간이 특별한 지혜로 무엇을 만들기도 하고 가꾸기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 인간이 지혜와 힘을 모아 일을 하면 사막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바뀌어집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문화를 보면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6일 동안에 완결된 것이 아니라 인간을 통해서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위대한 세상을 지으시고 더욱 번성하고 충만하게 만드시려고 인간을 자기 형상으로 지으셨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우리 인간이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지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도 중에 이런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그 능력과 위엄을 가지고 하늘에 계십니다. 땅에는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이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전에는 어둠과 혼돈이 있었지만 이제는 빛나는 영광과 아름다운 창조의 소리가 온 천지에 가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장 높은 곳으로 인간을 부르시고 거기에 세우십니다. 그때 인간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경배하고 모든 피조물을 향하여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지휘를 시작합니다.
이런 감격과 확신과 상상력을 담은 노래가 시편 100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만물을 향하여 하나님을 경배하자고 이끄는 찬양을 보겠습니다:
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시편 100:1~5
이렇게 보면 인간이 서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 분명합니다. 우리는 지금 하늘의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모든 피조물의 찬송과 영광을 모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사장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씌워 주신 영화와 존귀의 면류관을 쓰고 모든 피조물을 향하여 축복하고 다스리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하나님이 임재하신 거룩한 성전입니다.
사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으로 인도된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생명수가 온 땅으로 흘러나오는 축복의 근원입니다. 바로 그 가운데 사람이 서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본래 모습이며 사명입니다. 그것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제사장의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땅은 거룩한 땅이며 우리는 그 가운데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이런 소임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귀중한 것인지를 깨달은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며 기도했습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시편 84:10
이것은 성경만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고귀한 진리이며 교훈입니다.
3. 믿음이 바라는 것
히브리서 11장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일에 모범이 될 만한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에 대하여 설명함으로 시작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음의 내용은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바라는 무엇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엇을 바랐습니까? 여기서 바란다는 말은 소망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는 말입니다. 믿음은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분명히 일어난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의심은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은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심으로 그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사람들은 무엇을 바랐고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기초에 대하여 말합니다. 믿음의 기초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과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장차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를 기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창조주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그들은 노아요 아브라함이며 모세와 모든 예언자들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는 방주를 예비하라 하셨고 아브라함에게는 고향을 떠나라 하셨습니다. 노아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주시려고 방주를 예비하라 하셨고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이 장래에 유업으로 땅을 주시려고 고향을 떠나라고 명하셨습니다.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은 자기 자손들과 장막을 치면서 이리 저리 옮겨 다녔습니다. 그들은 마치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기 때문입니다(히 11:10). 그 성은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구상하시며 만드시는 도시입니다. 그 성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세워질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본향을 떠나왔습니다. 본향(헬. 파트리스 patris)은 아버지가 사시던 땅입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주시는 더 나은 본향을 향해서 나그네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삶을 가리켜 말하기를 ‘나그네 인생’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그들이 지금 본향을 찾아가는 중이기 때문입니다(창 23:4, 출 47:9).
그들의 본향은 본래 갈대아 우르이며 하란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돌아갈 본향은 그곳이 아닙니다. 다시는 그곳으로 갈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1:16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이 바라던 더 나은 본향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인도하신 그 성은 어디입니까? 시편 기자는 그 성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4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5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6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7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시편 107:4~7
하나님이 그 백성을 인도하신 성은 하나님이 세우실 예루살렘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그 성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1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 받으시리로다
2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
시편 48:1~2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이 찾고 바라던 더 나은 본향은 하나님의 성이며 시온산에 있습니다. 그 성의 터는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지으실 것입니다. 그 성의 터는 높고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그 모습을 보고 온 세계가 즐거워합니다. 그 시온산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가 있는 곳이며, 그곳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며 자기 서원을 갚으며(시 65:1),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습니다(시 128:5). 그 성이 바로 시온산에 있는 시온성이며 예루살렘성입니다.
그러면 이제 믿음의 조상들이 바라던 것이 무엇인지 정리해보겠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고향인 본향을 떠나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시는 본향을 향해 가는 나그네들이었습니다. 그것은 더 나은 본향입니다. 그 본향은 하나님이 지으시는 성이며 그 성에서 만백성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복을 받으며 천하만민이 그 복을 받아 누리며 즐거워할 것입니다.
이 본향은 마치 에덴동산처럼 이 모든 땅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땅이며 그 땅으로부터 복이 흘러나와 만국을 적시고 번성하게 할 것입니다. 그 거룩한 성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모하고 바라던 본향입니다. 그 본향에 들어가는 것은 그 자체로 상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들어간 사람들은 최초의 인간처럼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존귀하신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온 세상만물의 찬양과 감사를 모아 하나님께 바치는 영광스러운 직분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상급을 바랐기 때문에 모세는 애굽에서 제 아무리 높은 지위와 부귀를 준다고 해도 그것을 마다하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좋아했습니다(히 11:24~25).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본향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그 본향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만드시는 거룩한 성이며, 에덴동산처럼 온 세상을 다시 풍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동산이며, 동시에 그 본향에 들어간 사람들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인간을 위해서 계획하신 그 본분과 특권을 수행할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세상은 다시 영광과 충만으로 빛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1장 16절의 더 나은 본향은 ‘하늘에 있는 것이라’는 구절은 다시 해석되어야 하겠습니다. 더 나은 본향은 하늘의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거하시는 성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하겠습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투테스틴 에뿌라니우’(tout’ estin epouraniou)로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늘에 속한 것’이나 ‘하늘의 특징을 가진 것’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기도문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구절이 나옵니다(마 6:9). 이때 ‘하늘에 계신’은 헬라어로 ‘엔 토이스 우라노이스’(en tois ouranois)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전치사 엔(en= in)이 분명하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1장 16절의 본향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시는 땅의 거룩한 성을 의미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4. 위대한 신앙 유산의 상속자들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두 가지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그 상상은 제가 기도를 드릴 때 제 마음 속에 떠오른 것으로서 그 상상을 하면서 기도를 드릴 때 제 마음은 감격과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더 이상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 눈물만이 흐를 뿐, 그리고 ‘오! 주여~!’라는 신음만을 낼 뿐이었습니다.
그 하나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지존하신 하나님 앞에서 모든 만물을 대표하여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습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지위이며 본분임을 상상 가운데 볼 때에 얼마나 감격스럽던지요.
첫째는 하나님이 창조하시며 모든 것을 운행하시는 일이 그 규모와 권위에 있어서 너무나 엄청나고 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위대한 일에 우리를 동참하게 하신다 생각하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이처럼 생각해주십니까?’하는 시편의 고백이 이해되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이 모든 만물 위에서 그것을 관리하도록 위임받은 인간이 얼마나 놀라운 재능과 지혜를 받았는가 하는 깨달음입니다. 그 재주로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가 정말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그 재주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등지고 혼돈과 어둠이 짙어지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큰 낭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위대하지만 그 본분과 지위를 깨닫지 못할 때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내는지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우리의 본분을 잘 감당해야 하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이것이 기도 중에 깨달은 것이며 받은 은혜였습니다.
지난 금요일 저녁 기도 시간에 제가 본 두 번째 상상은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에 대한 그림입니다. 제가 기도 시간에 그런 상상을 하게 된 이유는 그 전에 성경을 읽으면서 묵상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일 설교를 준비하려고 아침에 성경을 읽고 저녁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히브리서 11장 마지막 구절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11:39~40
이 본문을 새번역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39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아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판은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40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계획을 미리 세워두셔서,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성에 이르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이 그들의 믿음에 대해서 증거를 받았다는 말은 그들의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평가를 얻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더 나은 본향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시는 거룩한 성입니다. 그 성이 완성되어 다시 만물이 생명으로 충만하게 되며 그 가운데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거룩한 옷을 입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만물을 축복하는 그런 세상을 보지는 못했다는 말입니다.
다시 한번 성경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하나님은 처음부터 세상과 인간을 향한 위대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 계획이 너무 크고 영광스러워 그것을 본 사람은 누구라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을 느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계시가 지극히 크므로 너무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자신의 육체에 가시를 허락하셨다고 말했습니다(고후 12:7).
성경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실 때부터 에덴동산을 지으시고 자기의 형상으로 지으신 인간을 거기로 들이신 후에 그들과 함께 위대한 창조의 일을 계속하시고 완성하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범죄와 배반으로 온 땅에 사람이 흩어지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본향을 떠나라 하시고 하나님이 지으실 더 나은 본향을 향해 인도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그 이후에 나오는 성경의 모든 인물들은 더 나은 본향을 찾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영광과 부귀가 아무리 클지라도 그것으로는 온 세상을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룰 수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도리어 그것들은 커질수록 더 나쁜 결과를 낼 뿐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지으시는 터를 가진 거룩한 성에 들어가야 한다고 그들은 확신했습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시고 그 백성들은 거룩한 제사장의 옷을 입고 머리에는 면류관을 쓰고서 세상을 공평과 정의로 다스릴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빛나는 영광이 비치고 만국이 기뻐하면서 시온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거룩한 성을 약속으로 주셨을 때 믿음의 사람들은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아벨과 노아,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요셉, 그리고 모세와 여호수아, 사사들 중에는 삼손과 입다와 드보라, 다윗과 모든 예언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기에 박해와 심문과 채찍질과 죽음 앞에서 이런 것을 구차하게 피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앞에는 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시면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그 위대한 계획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하나님 나라’라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에 나오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행렬을 지어 하나님의 거룩한 성에 들어가는 길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들이 그 성도들의 행렬에 동참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더 나은 본향이자 터가 높고 아름다운 시온성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요, 교회를 통해서 만물이 충만하게 될 비전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계획을 세워두셔서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성에 이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더 좋은 계획은 무엇입니까? 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 나은 본향을 약속하셨고 그 성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것이 예루살렘이며 시온산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버리고 배반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 좋은 계획을 실행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민이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에 동참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더 나은 본향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하늘과 땅이 통일되는 것입니다(엡 1:10). 그리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만방에 드러나고 심지어 하늘에 있는 권세자들에게까지 하나님의 각종 지혜가 알려지게 되는 것입니다(엡 3:10).
그러므로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이 바라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 교회를 통하여 새롭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언약을 상속하여 더 나은 본향을 바랐으며 시온산을 사모했다면, 이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이 속히 오셔서 창세 이후로 계획하신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에 교회라는 상속자가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자신들의 시대를 달리면서 그 이후의 세대에게 바통을 전달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 바통을 들고 뛰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시는 날에 결승점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아니면 그들의 달음질이 허사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중요한 임무를 맡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신앙 유산을 이어받은 상속자들입니다.
이것이 기도 가운데 제가 상상하고 바라본 우리들의 위치이며 영광스러운 소임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교회를 바르고 건강하게 세워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온 세상의 교회들이 서로 연합하여 주님을 섬겨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5. 하나님의 성회
오늘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지위와 위치에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성경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우리의 위치를 다음과 같이 새롭게 설명했습니다.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히브리서 12:22~24
먼저 우리가 이른 곳은 시온산입니다. 이곳은 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약속하신 본향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이스라엘 땅에 있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우리가 하늘의 예루살렘에 와 있다는 말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만드시는 예루살렘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천만 천사가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구름처럼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우리를 응원하고 있습니다(히 12:1). 그들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입니다(12:23). 본래 하나님이 자기의 장자라고 부르신 사람들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입니다(출 4:22). 그러므로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새 이스라엘인 우리를 향하여 바통을 들고 열심히 뛰라고 응원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합시다.
우리는 또한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에덴동산에 들어왔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화염검을 들고 그 동산으로 들어가는 문을 지키는 천사들을 순종하게 합니다. 우리는 만민의 창조주이요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동시에 자손들과 세상을 향하여 축복합니다.
또한 우리 앞에는 온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앞서 가신 성도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가 항상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 피는 아벨의 피로다 더 나은 의로운 보혈입니다.
우리 교단의 정식 명칭은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성회라는 말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에서 온 말입니다. 성회(聖會)는 거룩한 모임(holy assembly)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요,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 곧 새 이스라엘입니다. 그처럼 거룩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본향에 동참하여 거룩한 나라와 택하신 백성으로 그리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면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세상을 축복할 사람들입니다. 그런 거룩한 모임을 교회라고 부르고 또는 하나님의 성회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알려주는 가르침을 따라 우리의 본분과 우리의 신분, 그리고 우리의 위치를 바르게 깨닫고 분명한 확신과 소명의식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에 동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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