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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그를 안방에 들여놓을 정도로 윤희의 마음이 그를 완전히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이 아니었고 약혼자와의 산재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아직껏 날 이해하지 못하고 있군. 아니,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군. 대답해? 그렇다면 떠나 줄 용의가 있어. 그때 갯가에서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일루 치부하자면 그렇게 하겠어. 단지 우린 잠시 즐겼을 뿐이라구”
“네에?”
윤흰 한동안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그의 얼굴을 쳐다만 보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시 그 뜻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 때가 언제인데 지금에 와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싫다는 사람 그렇게 종용해 남자를 알게 해놓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란 뜻인가, 그래서 늦었지만 약혼자에게 그때 그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윤희는 그의 진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윤희가 아직도 약혼자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다면 보내주겠단 뜻이야.”
“아니예요, 아니예요. 그런 뜻이 아니란 말예요.”
하얗게 질리며 어쩔 줄을 몰라하다 눈물을 글썽이며 그의 품에 안겨드는 윤희, 순결을 미끼로 여자를 옥죄는 남자의 특권인가, 아니면 사랑스런 여인을 만들기 위한 조련인가, 이렇게 순결에 집착하는 여인일수록 냉엄하고 단호히 끊고 맺는 의식이 효과를 보고 그 스스로가 헤어 날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든 다는 것도 이미 터득해서일까?
윤희는 그토록 고민하고 번뇌하면서도 얻지 못했던 답을 무의식 중에 해연히 깨달았고 그 의지를 충분히 그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언제 자신의 의지로 그의 품에 안긴 적이 있었던가.
“사랑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데 의례적인 의식이 뭐가 필요해? 다소 이르다 뿐이지 사위 얼어 죽을까봐 안방 내어 주는 게 우리네 관습이잖아. 장모님이 우리가 여기서 함께 있었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다 알았다고 해도 문제될 건 없어. 문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느냐지. 우리가 사랑하고 떳떳한데 누가 뭣을 탓해? 누가 우리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을까.”
“알아요. 하지만....!”
그래도 윤희는 그의 말을 어설픈 수준밖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겠지만 어설픈 감정을 추방해 주는 신뢰가 있다 하더라도 액면 그대로 그의 뜻을 소화해 내지는 못했다.
그런 와중에 그의 뜻을 다는 모르지만 부분적으로는 그가 자신에게 향하고 있는 애정을 신뢰케 했으며 마음이 다소 동한 것은 사실이나 그 믿음이 내 자신의 믿음처럼 피부에 와 닿지는 않는 것이었다.
그 순간들의 쾌락과 욕구를 위해 서로가 앤조이로서 충실했다면 애초부터 이런 불안이, 심리적 갈등이 있었을리 만무하지만 생의 동반자로의 조건에서는 내 마음에 와 닿는 확신이 중요한 것이었다. 인간의 의식에서 생리적 포만으로 생을 결정지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걱정 말어. 약혼자에 대한 양심의 가책일 뿐이야. 윤희의 그런 순수함이 난 좋은 거야.”
“미워요. 날 왜 이렇게 만든 거예요.”
어린아이가 투정을 부리듯 그의 가슴에서 도리질을 한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는 분명한 의사표시를 하고 자신 또한 이제는 어느 한 쪽으로의 선택을 결론지어야 하건만 불과 한 달여가 채 못 되는 사이에 일어 난 자신의 변화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유부단한 자신이 밉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제 와서 그에게 길들여진 육체로 약혼자에게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었고 돌아 갈 수 있다 하더라도 평생을 미련과 죄의식 속에서 방황할 자신의 모습이 선연히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고 그의 말대로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자니 그 짧은 기간에 수없이 만났으면서도 만날 때마다 성희를 요구했지 영혼을 옭아매는 그 진실 된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기에 그를 믿고 따르는 확신이 절실하도록 가슴에 와 닿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믿어야 한다. 그를 믿는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리라. 훗날 이 선택이 잘 못 되었다 하더라도 이젠 내 인생을 그의 옷걸이에 얹어야 하리라.
윤흰 조용히 눈을 감고 그의 몸짓에 동조하며 한 꺼풀 두 꺼풀 옷을 벗어 내렸다.
주여, 당신을 믿듯이 이이를 믿으려합니다. 당신의 말씀에 따라 순응하듯이 이이를 의지하고 내 영혼을 안주할 수 있게 하는 사랑이게 하소서. 세상 모든 남자들이 여자를 성적 유희물로 여길지라도 이이만은 숭고한 애정을 가지고 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희생과 헌신을 기울이는 참된 동반자가 되게 하소서. 불멸의 사랑이게 하소서.
“울지 마. 계속 눈물을 보이면 내가 파렴치한 놈일 수밖에 없잖아.”
그가 키스하려고 턱을 받쳐 올렸을 때 달랑 눈물이 맺힌 것을 닦으며 하는 말이다.
“아니예요. 기뻐서 눈물이 나왔나 봐요.”
윤희는 하얗게 웃어 보였다.
“고맙다. 윤희가 마음을 내게 주었듯이 나 또한 윤희를 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지킬 거야. 윤희가 내 곁을 떠나지만 않는다면 난 영원히 윤희의 포로야.”
“믿어요. 저 또한 세상이 끝나는 그날까지 오빠의 여자일 거예요.”
“그래. 내가 졸업하는 날을 우리의 결혼 날짜로 잡자구. 복학을 할 때 윤희를 데려가고 싶지만 윤희의 말대로 이전 떳떳한 절차를 절차에 따르는 거야. 윤흴 닮은 아이도 많이 낳구.”
그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가지런한 이빨이 유난히도 반짝이는 것 같았다. 윤희도 고개를 까딱이며 마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