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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건 공장장님께서 제공하신 글입니다. 저무는 帝國의 두 風景 송 호근 -서울대 교수-
1972년 미국령 괌에서 원시인이 발견됐다. 일본군 패잔병 요코이 쇼이치였다. 그는 정글에 뿌려진 전단을 보고 일본 패전을 알았지만 투항을 거부했다. 사령부로부터 별도의 훈령이 없다는 이유였다. 하네다 공항을 가득 매운 인파에 그는 어눌하게 말했다.“살아 돌아와 부끄럽습니다.”야마토 다마시(大和魂)의 아득한 기억이 일본을 강타했다. 2년 뒤, 필립핀 루방섬에서 30년을 버텨온 오노다 히로 소위가 발견됐다. 하산을 거부하는 그를 굴복시킨 것은 옛 상관의 투항명령서였다. 이게 제국 일본의 힘이었다. 인류학자 베네딕트는 「菊花와 칼」에서 일본인들은 공동체와 국가의 은혜를 입었다는 의식을 갖고 태어난다고 썼다. 그래서 은혜를 갚는 것(報恩)이 개인에 우선하고, 그 것을 져버리는 행위는 일본인들이 가장 혐오해 마지않는‘하지(恥)’가 된다.‘살아 도라와 부끄럽다.’는 말은 바로 보은을 져버려 수치스럽다는 뜻이다. 국가의 명령 없이 개인의 생을 도모할 수 없다는 것도 보은과 하지의 소산이다. 國魂으로 무장한 제국이‘大東亞’를 향해 돌진할 때, 개인들은 맹렬하게 투신했다. 가미카제(神風)처럼 그 것은 狂氣를 품고 있었다. 그런데 평화시라면 어떻게 될까? 일본 대지진의 복구과정에서 나타난 두 개의 상반된 풍경에 한국인들은 적어도 두 번 놀랐다. 상상을 초월한 대지진을 당한 일본인들은 어떻게 저리도 침착할 수 있을까? 대성통곡해도 시원찮을 가족과 친지의 죽음 앞에서 어찌 저리도 조용히 嗚咽하는가? 그런데 질서, 배려, 인내에 경이로움을 표하던 한국인들은 식량,약품,모포,생수,전기 부족에 시달리는 부자나라의 이재민들과 느려터진 구제활동, 우그러진 원자로에 바닷물을 퍼붓는 첨단과학 대국의 전근대적 대처방식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이라면 재난지역에 소동이 일어났을 것이다. 췌약한 방제시스템과 국가의 직무유기를 꼬투리 잡아 배상을 요구하고, 구호물자가 변변치 않다고 아우성쳤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재난처리도 신속했을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 시민단체들이 당장 달려들어 도로를 뚫고 통신망을 가설하고, 이재민을 어떻게든 보호했을 것이다. 태안반도를 뒤덮은 기름을 온 국민이 삽시간에 치워버렸듯이말이다. 연평도 포격 당시 피난민 수백명을 찜질방 주인이 무작정 수용했듯이 말이다. 기름과 싸웠던 자원봉사자들이 공식 허가를 받은 것도 아니었고, 찜질방 주인이 군청에 사전 신고를 한 것도 아니었다. 성질 급한 한국인의 습관대로 했을 뿐이다. 일본인의 보은 의식은 거의 문화적 유전자에 가깝다. 국가도 어쩔 수 없는 대재앙을 두고 배상을 요구하고 고통을 토로하는 코드가 인본인의 심성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에게 메이와쿠(迷惑:弊)를 끼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개인적 기질과 욕구를 제어하는 공동규범을 마련해 메이와쿠를 최소화하자는 합의에서‘매뉴얼 사회’가 탄생했다. 개인의 공공성을 촉진한 매뉴얼 규칙망은 戰後 사회재건과 경제부흥에 기적을 불러왔다. 공공질서와 법규를 가장 잘 지키는 조용하고 단정한 사회를 만들었으며, 職務獻身이 가장 높은 워킹 애니멀을 양산했다. 국가를 대신해 기업이 대중동원의 구심점이자 보은의 대상이되자 도요타, 소니, 일본제철 같은 세계 최고의 기업이 속속 탄생했다. 어지간한 자연재해도 매뉴얼로 대처 가능했다. 성공의 신화에 힘 입어 그 매뉴얼화된 행위양식이 관료주의와 결합하자 누구도 범할 수 없는 불문법으로 변했다. 정치도 거기에 갇혔다. 그런데 이번 쓰나미는 행위수칙의 범위를 훌쩍 넘어버렸다. 구호물자의 공중투하는 매뉴얼에 없었다. 학교 운동장에 쳐박힌 자동차들을 치우는 매뉴얼이 없었다. 고령자들이 대피소에서 죽어갈 때에도 어디로 우선 疏開시켜야 할지를 가르쳐 주는 매뉴얼도 없었다. 긴급 제안들은 있었겠지만, 그 것을 허가 없이 시행하면 메이와쿠를 끼칠지 모른다는 생각이 행동을 막았다. 원전 폭발이후 수렵시대의 어둠이 덮친 저 문명도시를 건질 방법이 매뉴얼에는 없었다. 방재시민 단체들도 매뉴얼의 외곽에서 발만 동동 굴러야했다 매뉴얼 사회가 ‘성공의 危機’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부터다. 대중동원의 시대가 가고, 개성 연출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매뉴얼을 뛰어넘는 유일한 힘이 국가 일 터인데, 일년에 한 번 꼴로 바뀌는 정치리더십은 진작 힘을 잃었다. 아이를 업고 마스크를 쓴 채 터널을 빠져나오 는 중년여인의 사진은 그래서 충격적이었다. 저무는 帝國의 매뉴얼에 더 기댈 수 없다는 절박한 모습이었다.
* 소감 필자의 깊은 통찰과 예리한 분석 논리정연한 필법에 경탄한다. 겸하여 일본사회와 한국사회의 대비를 곁들여 독자들로 하여금 음미해보도록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환경에 떨어뜨려진 존재인 것이다. 환경을 파악하면서, 인식하면서, 적응하면서 삶을 실현하는 것이 개개인의 인생역정이요, 또 인류역사인 것이다. 자기보존 본능의 발현에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것이 나를 둘러싼 이웃이요 만물이요 우주라는 환경이다. 환경이해를 통한 바람직한 조화와 공존이 성현들이 제시하는 가르침인 것이다. 마주하는 너에게서 나를 보며 용서하고 포용하자는 것이 사랑의 교훈에 다름아닐 것이다. 그렇게 보면 개인주의보다도 개인의 기질과 욕구를 절제하며 공공성을 앞세우는 것은 분명 선진화라고 생각하며 이런 맥락에서 일본사회는 수준 높은 문명사회라고 생각한다
조상들이 체험하고 전수해준 삶의 지혜가 전통으로 또는 습관의 형태로 우리의 체질화가 되어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런데 국지화된 소집단 사회에서의 불문율화된 생활 규범이 고도로 발달되어 바야흐로 지구촌이라는 통합된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시간・공간적으로 넓게 살아가는 정보공유사회에서는 적절히 Up-Date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매뉴얼은 업데이트 되어야하는 것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의 매뉴얼 중에 개정 개선의 성역은 없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기독교회에서, 바울도 부르짖고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도 설교하는 ‘율법해방’이란 말이 떠올랐다. 전통과 규범은 우리삶의 지혜요 지침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를 가두는 울타리가 되어 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조상들과 선배들이 세워놓은 전통과 기틀을 함부로 무시하거나 버러자는 것이 아니라 시대상황에 맞게, 다시말 하자면 주인공인 사람에게 맞추어 나가자는 것이 本意를 받드는 옳은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역시 溫故而知新이라하겠다. 일전에 ‘망원경을 든 선비’라는 題下로 실학자 홍대용 선생의 사상과 삶을 소개하는 TV프로가 있었다. 250년전의 폐쇄된 사회에서 ‘지구는 둥글고 自轉한다’고 주장하여 종래의 天圓地方설을 否定하고 지구도 하늘의 수 많은 별중 하나라는 인식을 했으며, ‘사람을 중심으로 보기 때문에 사람이 귀하고 동물이 천하지, 동물의 눈으로 보면 동물이 귀하고 사람은 천한 것이다.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다 귀한 것이다’.고 하는 인간중심을 극복한 넓은 우주관을 披瀝하였고, 공자가 周나라(魯나라의 본국)에 태어났기에 주나라를 중심으로 春秋라는 역사를 기술하였는데, 만일 域外에 태어났더라면 다른 관점에서 역사를 敍述하였을 것이다고 하며, 中華思想을 비판하였다. 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無大疑者 無覺”이라하여, 큰 의문을 품고 부단히 노력하지 아니하면 역시 큰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고 한 말은 白眉로 마음에 오래 남을 말씀이 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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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공장장님 께서보내주신 위글을 읽고
급변하는 현실속에서 매사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야겼다는 생각을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