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름다운 본(本) 신외숙
막내 동생 친구 중에 아주 싹싹하고 착한 아이가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언니와 남동생 엄마와 함께 사는데 가정이 참으로 화목했다. 그런데 그 가족은 모두 피가 달랐다. 엄마는 계모였고 언니는 계모가 데리고 들어온 자식이었다. 또 남동생은 계모가 들어와 낳은 아버지의 소생이었다. 그러니까 각각 피가 얽히고 설킨 셈이었다. 그 아이가 우리집에 놀러오자 엄마가 말했다. "세상에 너희 엄마와 같은 사람도 없을 거다. 정말 복 받을 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계속 직장에 나갔고 배다르고 씨다른 자식들은 모두 엄마를 중심으로 생활했다. 엄마는 남편이 죽은 이후에도 자녀들을 모두 공평하게 대한다고 했다. 전혀 차별대우가 없었다. 그 아이도 정직하고 씩씩하게 올바르게 자라갔다.
16년 전, 동대문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의 일이다. 큰 할머니 작은 할머니와 함께 온 가족이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건물 자체가 작은 할머니의 소유였기에 수입은 좋은 편이었다. 작은 할머니는 당시 60대 초반으로 나이보다 젊고 씩씩했다. 그 작은 가게 운영해서 친정 언니와 큰딸 나이 많은 시동생(할아버지)를 부양하고 있었다. 얼마나 성품이 너그럽고 인자한지 며느리들이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렀다. 자녀가 모두 7명인데 그중 둘은 남편의 씨앗이 낳은 아들이었다.
언젠가 그 작은 할머니가 내게 한 말이 생각난다. 여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가 낳은 자식들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진짜 사랑이다.
할머니의 남편은 원래 한의사였는데 재력이 튼튼했다고 한다. 땅과 건물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날 그만 씨앗을 보아 자식을 둘이나 두었다. 그리고 씨앗은 자식 둘을 낳은 지 얼마 안 돼 죽고 말았다. 그래서 할머니가 데려와 키웠는데 이번에는 남편이 죽은 것이다. 할머니는 남편 대신 재산관리를 하면서 첩실이 낳은 자식들도 똑같이 사랑으로 키웠다. 자기 친자식과 조금도 차별을 두지 않고 공부시키고 결혼도 시켰다.
첩이 낳은 두 아들이 작은 할머니에게 다가와 더 사랑받겠다고 엄마 엄마하면서떼를 쓰며 매달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우스운 건 자녀들에게는 그렇게 차별없이 골고루 대하면서도 정작 친언니한테는 냉정한 것이었다. 그 섭섭함을 큰할머니는 (시동생)할아버지한테 하소연할 정도였다.
나이가 많아도 역할은 변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이가 70대인 큰 할머니는 작은 할머니인 여동생과 살면서 온갖 치다꺼리를 다했다. 밥해서 먹이고 빨래해 주고 동생이 등산 간다고 하면 일찍 일어나 김밥 말고 온갖 준비를 다해주면서 투정도 다 받아주었다. 그런데 어쩌다 큰할머니가 몸 아픈 (당뇨병을 앓고 있었음) 하소연을 하면 작은 할머니는 난리가 났다. 자기는 언니에게 투정하면서 막상 언니가 몸 아프다고 하면 성화를 해대는 것이다.
동생아 나 여기 저기가 아파. 나보고 어쩌라구? 병원에나 가보지 그래.
하면서 외면했다. 그러면 큰 할머니는 울면서 조카들을 불러내고 동생이 자기를 구박한다고 서러워했다. 그 작은 할머니는 정말 인정도 많고 나이에 비해 젊고 지혜로웠다. 그런데도 유독 자기 언니에 대해서만큼은 달랐다. 그 할머니가 돈에 찌들릴 때마다 하던 말이 떠오른다. 자식이 일곱이나 되어, 나한테 더 이상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아.
자기 소생 다섯과 첩실이 낳은 두 아들까지 똑같이 사랑으로 키워낸 그 할머니처럼 넉넉한 마음가짐이라면 세상에 두려울 게 무엇이 있으랴. 못 감당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보통 여자라면 상상도 못할 그 마음가짐이 내 나이 오십이 다 되어서야 이해가 된다.
고등학교 친구 중에 잘 웃기고 재미있는 아이가 있었다. 한번은 제 친구들을 데리고 나왔는데 술 잘 마시고 허풍 떠는 몸집이 퉁퉁한 아이가 있었다. 영락교회에 속한 신학교에 다니는데 매일 남자친구 문제로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 친구의 집은 상도동에 있는 대학 교내에 있었다. (25년 전) 교내 한쪽에 사택처럼 있었는데 집 안에 매점이 있었다. 매점은 주로 엄마가 보았지만 그 친구도 함께 보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김밥 말고 먹거리 준비하고 가게 보느라 바빴다. 그애 엄마는 교회 일로 바쁘고 사람들과 교제하느라 바빴다. 그래서 아침이면 엄마가 잠자는 딸을 두들겨 깨우면서 빨리 빨리를 외친다고 했다.
"야! 이년아 빨리 일어나 김밥 말고 청소해, 동생 밥 챙겨 먹이고."
"네, 엄마."
그애는 쫓겨나지 않기 위해 죽어라 일했다. 아버지는 이미 천국 백성이 되었고 엄마 역시 친엄마가 아닌 계모였다. 남동생은 계모가 들어와 낳은 배다른 동생이었다. 계모는 남편이 죽은 이후에 학교 매점을 운영해 살아갔다. 매점 일이 워낙 바쁘니까 전실자식을 일꾼으로 부려먹으면서.
그애는 계모의 등쌀로 중학교는 간신히 나왔는데 고등학교는 계모가 보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날 계모에게 신학교 가고 싶다고 했더니 웬일인지 가라고 했단다. 그런데 돈이 아까우니까 차비와 등록금만 달랑 주면서 온갖 일을 다 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그애는 계모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동생 돌보고 새벽같이 일어나 김밥 말고 오뎅 국물 끓이고 저녁이면 계모에게 "학교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집을 나서는 것이다.
한번은 내가 궁금해서 친구에게 물어 보았다.
"그 친구는 새엄마가 용돈도 주고 그러는 모양이지 옷도 꽤 잘 차려입고 다니던데."
"주긴 뭘 줘, 쌔비는(훔친다는 뜻)거지."
그 말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새엄마가 어떻게 신학교 보내 줄 생각은 했을까."
"응 걔네 엄마 우리 교회 교인이야,"
그 친구는 매점에서 슬쩍 훔쳐낸 돈으로 옷도 사고 화장품 사고 남자친구와 데이트하고 술 마시고 논다는 것이었다. 명색이 신학생이라는 여자가 대낮에 술 마시고 남자 친구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이 당시 내 눈에 얼마나 우습게 보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훗날에 생각해 보니 그 계모도 참 좋은 사람이었단 생각이 든다. 남편도 죽고 없는데 전실 자식을 거두어 신학교 보내고 신앙 안에서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으니 그만하면 착한 사마리아인이라 생각된다.
세상은 모두 자기 편리한 것만 추구하느라 피붙이도 외면하는 일도 다반사인데 따듯한 인심은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아직도 많이 있는 것 같다. 복음을 위하여 일부러 시부모를 모셔오고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경우도 보았다. 그것도 바로 내 가까운 곳에서.
그때 나는 진정한 섬김의 의미를 깨달았다. 사람들은 모두 인정받고 높임 받기 원한다. 더 나아가 섬김 받기 원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예외가 없다. 모두가 정도 차이일 뿐이다. 교회 강단에서 목사는 유난히 섬김을 강조한다. 하나님 섬김뿐만이 아니라 서로 종이 되어 세상과 사람을 섬기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몇 년 전 내게 섬김을 강요한 목회자가 있었다.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섬김이라니ㅡ 그건 내가 꿈도 꾸어보지 않은 생소한 단어였다. 강대상에나 선포되는 말이지 그게 어떡케 나에게 해당되는 말인가. 난 죽었다 깨어나도 섬김의 마음은 없는데. 섬김은 하나님을 향한 말이지 사람, 더구나 목회자를 섬기라는 말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나보고 섬기란다. 그것도 바로 자기를.
하도 기가 막혀서 멍하니 바라보았더니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나를 못 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 이후에도 섬김은 다른 사람한테나 해당되는 말인 줄 알고 살아왔다. 그건 섬김의 은사가 있는 특별한 사람들에게나 있는 것이려니 하고 치부해버렸다. 그런데 내가 속한 성경공부반 GBS에서 2-3년 간 교제하고 난 후터는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세상 살면서 그 흔한 인사치레도 안 하면서 내 중심적으로만 살았다. 그런데 GBS에서는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작은 조원들끼리 서로 섬기는데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피해의식이 강해서 손해보면 죽는 줄 아는데 다른 조원들은 그렇지 않았다. 매주 간식거리도 사오고 조원들에게 식사대접도 잘했다.
같은 조원이 결석하면 관심도 가져주고 문자메시지도 넣어 주었다. 서로 기도 제목도 나누었다. 더구나 상대의 허물이 보이는데도 책망하거나 지적하지 않고 참아주고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나는 대로 툭툭 말을 함부로 하는 데도 웃기만 했다. 나는 살면서 한번도 그런 분위기를 체험해 보지 못했었다. 조그만 허물도 들추어 내 망신 주고 서로 눈짓하며 비웃는 사람들만 만나보았다. 그래서 세상에서 사람이 제일 무섭고 싫었다. 처음에 GBS 한다기에 갈까 말까도 수십 번 망설였다.
사람 대하는 게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가면 또 잘나고 똑똑한 인간들이 세상적인 능력 자랑하면서 내 기(氣)를 죽이겠지 지레 짐작했다. 그러나 리더는 달랐다. 허물을 덮어주는데 익숙했고 화가 나는데도 끝까지 섬김의 자세로 일관했다. 다른 조원들도 정도 차이는 나지만 겸손하고 낮은 자세를 취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고정관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 이게 바로 섬김이라는 거구나.
세상적인 정도나 상식을 떠나서 존재하는 섬김이나 포용력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다. 그것은 돌 같고 얼음 같은 마음도 부드럽게 변화시킨다. 극심한 피해의식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마음도 새롭게 만든다. 앞 부분에서 언급했던 세 경우는 보기 힘든 경우이지만 그래서 더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들과 같은 넉넉한 마음만 있다면 세상이 두려울 게 무어랴.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내어쫓느니라. 이제야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것 같다.
진정한 섬김은 말로 강요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마음으로 실천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또 진정한 섬김은 또다른 섬김을 낳는다. 아름다운 믿음의 본(本)으로. 이번에 우리 GBS조에 새로운 리더가 탄생했다. 지난번 리더의 본을 이어받아 벌써부터얼마나 열심히 조원들을 섬기는지 모른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이제 세례받은 지 얼마 안 됐는데 조원들을 챙기고 솔선수범해서 먼저 섬김을 보이는 것이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