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봉초등학교를 설립하게 된 동기와 설립당시의 상황과 과정을 2005년 9월 20일 인곡마을에 계시는 정영호 어르신의 기고로 문건을 만들어 보관하다가 동문카페에 등재합니다.
이글은 우리모교 부지를 들꽃 온누리 고등학교에서 소유권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작성하였습니다.
태봉초등학교 설립내역
본교 학구내 마을은 오산, 입곡, 인곡, 태봉, 동전, 묵지 6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학교 설립당시 6개마을에서 출생한 아동이 초등학교 입학정년이 되어도 진동국민학교에는 한학년에 한학급씩 6학급뿐이었기 때문에 진동면 전체의 입학 정년이 된 아동을 모두 입학시킬 수가 없는 실정이었다. 따라서 입학정년이 된 아동의 부모는 정원 이외에는 10세가 넘어도 학교에 보낼 수가 없어 자식들을 무학, 무식자로 만들 수 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이런 안타까운 사실에 직면한 석문(石門) 6개마을 학자, 유지, 구장어른들께서는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마음으로 임시 분교라도 설립하기 위하여 학교 관리기관과 여러 차례 협상을 거듭한 결과 정부 지원은 불가하다는 사실을 알고 설립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자체적으로 조달하여 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의하였다.
1.학교설립 추진위원회 구성
6개마을에 거주하는 학자, 유지, 구장 등 20여명으로 태봉초등학교 설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2.학교건립 위치선정
당시 진동초등학교 하야칠이(河野七二) 교장의 현지 출장에서 현재의 학교위치가 최적지라는 자문을 받아 학교건립 부지로 선정했다.
3.부지매입 자금조달
당시 일제가 대동아 전쟁을 일으켜 지역주민들의 살림살이가 말할 수 없이 어려웠으나 아이들의 배움을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감수 하겠다는 일념으로 자금마련에 착수하였다. 우리지역 6개 마을의 재력있는 출향인사의 협찬을 얻기 위하여 정대현, 이정옥 두어른이 일본으로 출행해서 묵지마을 출신인 이기선(경주이씨). 김우권(김영김씨) 사장을 방문하고 학교 설립의 취지와 진행과정을 설명하고 도와줄 것을 호소하여 두분의 사장님께서 거금을 협찬해 줌으로써 부지 매입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또한 지역민도 궁핍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십시일반으로 보리쌀 1되박 2되박씩이라도 최선을 다하여 자금조달에 동참하였다.
4.부지조성 작업
당시에는 오늘날과 달리 부지조성 기계 장비가 전무했던 시대라 순수 인력으로 부지조성 작업에 임하여 지게, 바다리, 소쿠리, 괭이 등으로 건물, 운동장등의 위치를 마을별로 분담하여 조성하였고 남여노소 불문하고 모두 다 동원되어 주민의 피땀으로 학교 부지를 조성하였다.
5.자재확보 및 목재조달
6개마을 주민이 보유하고 있는 임야에 재목이 될만한 목재가 있는 산에서 정도에 따라 대가없이 기증을 받았는데 학교에 보낼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목조를 기부할 수 없다는 재목 소유주와 충돌이 일어나는 등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였다. 농사 지어서 일본놈에게 빼앗기고, 놋그릇 쇠그릇 등도 모조리 빼앗기면서 우리 후손 교육터전 만드는 일이 그렇게 아까우냐며 겨우겨우 설득하여 목재를 확보하는등 숫한 어려움이 있었다.
이때 일본에서 사업을 하던 김우권 사장 소유의 어성골(동전고개 밑)산에 있던 수기나무를 기증받아 다량 벌목하여 이를 학교를 짓는 재목으로 활용하였다.
6.자재의 운반
산에서 벌목한 목재를 산에서 마을까지 운반하는 것은 각각의 마을에서 책임졌으며 마을에서 학교부지 까지는 쇠발통 소구루마(우마차)등을 동원하여 운송했다.
7.목수동원
당시에는 우리 주택들이 목조집이었기 때문에 마을에 몇명씩의 목수들이 있었고 이 목수들을 무임금으로 동원하여 먹줄로 표시하여 짜구, 도끼로 다듬어서 재목을 조공하였다.
8.야외 재재소 설립
인력으로는 학교 건립시한을 맞추기가 어려워 예산이 부족했지만 기계화된 재재소를 건립하기로 하고 태봉마을의 조태승씨가 학교 현장에 야외 재재소를 설치하여 손수 가동하여 작업능률을 향상시켰다.
9.재재소 가동 중의 사고
조태승씨는 학교 건립 시한을 맞추기 위하여 숙련된 일이 아닌 재재소일을 위험 부담을 안고 손수 작업을 진행하였으며 재재 작업중 손가락을 절단 당하는 불행을 당하였다. 따라서 이분은 학교설립의 지대한 공로자이며 우리 태봉초등학교 설립에 대한 열의와 희생정신은 후대들이 우러러 보아야할 덕목이다
본문는 인곡 마을의 정영호씨가 백부 정대현씨 등께 들은 사실을 중심으로 기고하고 태봉초등학교 22회 졸업생 박종윤이 옮겨적었다 .
2005년 9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