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사자성어(37)>
37. 금슬상화(琴瑟相和)
거문고 금(琴), 비파 슬(瑟), 금슬은 ‘거문고와 비파’를 뜻하고, 서로 상(相), 화목할 화(和), 상화는 ‘서로 잘 어울림’을 의미한다. 따라서 금슬상화라 함은 “부부사이가 다정하고 화목함”을 이르는 말이다. 흔히 정답게 사는 부부를 일컬어 금슬(琴瑟)이 좋은 부부라고 한다.
간혹 ‘금슬’을 ‘금실’로 읽는 수가 있으므로 발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부부사이가 좋아야 즐거움이 따른다”는 말이 있다. 이를 금슬지락(琴瑟之樂)이라고 한다. 거문고와 비파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아름다운 음을 낼 수가 있으므로 금슬이 부부사이를 의미하게 된 것이다.
금슬의 유래는 시경(詩經)에서 비롯되고 있다.
“처자가 좋게 합하는 것이 거문고를 치는 것과 같고,
형제가 이미 모여 화락하고 즐겁다.
(처자호합 여고슬금 형제즉흡 화락차담: 妻子好合 如鼓瑟琴 兄弟卽翕 和樂且湛)라고 했다.
슬(瑟)은 큰 거문고를 말하며, 금(琴)은 보통 거문고를 말한다. 큰 거문고 가락에 맞추어지듯, 아내와 뜻이 잘 맞는다는 것을 말한다.
또 시경에 “요조 숙녀를 금슬로써 벗한다(요조숙녀 금슬우지:窈窕淑女 琴瑟友之)“라고 했다. 조용하고 얌전한 처녀를 아내로 맞아 거문고를 치며 서로 사이 좋게 지낸다는 뜻이다.
여기서 부부간의 정을 금슬로써 표현하게 되었고, 부부간의 금슬이 좋은 것을 금슬상화(琴瑟相和)란 문자로 나타내고 있다.
금슬상화와 비슷한 말로 부창부수(夫唱婦隨)라는 말이 있다.
부창(夫唱)은 ‘남편이 부르다’라는 뜻이고, 부수(婦隨)는 ‘아내가 따르다’라는 뜻이다. 즉, 남편이 앞장서 부르면 아내가 따르는 것이 부부간의 화목한 도리라는 말로 부부의 화합을 가리키는 말이다.
남존여비(男尊女卑)의 봉건시대에 부창부수는 부부의 기본적인 도리로 받아들여졌었다. 그러나 양성평등의 오늘날의 가정에서는 아내가 주도권을 가짐이 보편화되어가고 있다. 가정일도 그렇고 아이들 교육문제도 그렇다. 아내의 발언권이 보다 강한 추세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부창부수(夫唱婦隨)의 한자어의 ‘지어미 부(婦)’가 ‘지아비 부(夫)’ 보다 앞서는 부창부수(婦唱夫隨)로 바꾸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세상이 그만큼 바뀐 것이다.
무릇 부부관계를 화합하게 하기 위하여는 초심(初心)으로 되돌아 가야한다. 처음 만났을 때 얼마나 아름답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는지 모른다. 처음 만났을 때 얼마나 믿음직스럽고 든든했는지 모른다. 첫아이 낳았을 때 얼마나 기뻣는 지 모른다. 그러니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처음 만난 사이인 것처럼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서로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한다. 그런 말은 아무리 많이 해도 괜찮다. 여전히 동반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 시켜 주고,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한다.
흔히 부부는 전생(前生)의 원수들이 만나서 사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금생(今生)에서 원수처럼 지지고 볶아대면서 살아간다고 한다. 이렇게 계속 다투면서 살아가면, 후생(後生)에 다시 부부로 만난다고 한다. 내생(來生)에 좋은 사람을 만나서 살으려면 지금 부부관계를 사랑하고 화합해야한다. 살아 생전에 상대방과 사이좋게 살아야, 다음 세상에 다른 좋은 사람과 인연을 맺어 잘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믿거나 말거나는 각자의 생각에 달려있다.
옛날에 남편의 얼굴에 상처를 낸 여자가 원님의 재판을 받게 되었다.
원님이 상처를 낸 여자애게 말하기를 “네가 어찌 풍속을 허무러뜨림이 이와 같으냐?”하고 꾸짖었다. 그러자 그 여자를 따라와서 곁에 있던 남편이 변명하기를
“제 아내가 저의 얼굴에 상처를 낸 것이 아니라, 마침 저의 집 문짝이 넘어져서 다쳤을 뿐입니다.(오부비상오면 적오가문비도료이:吾婦非傷吾面 適吾家門扉倒了耳)”라고 했다..
그러자 문 뒤에서 성깔이 있는 원님의 아내가 막대로 문짝을 두드리면서 크게 소리 질렀다.
“경박하고 한심한 영감아! 당신이 한 고을의 우두머리가 되어 공무를 하고자 하면 도둑에 관한 일도 있고, 토지에 관한 일도 있으며 살인과 치상에 관한 일도 있거늘, 어찌 아녀자의 일에 감히 나서려고 하는가!”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원님이 그 촌부에게 손짓을 하여 물러가게 하면서 말하기를 “나의 집 문짝도 역시 장차 무너지려하니 너희는 마땅히 속히 돌아가라(오지문비 역장도료 여의속거: 吾之門扉 亦將倒了 汝宜速去)”고 했다.
지엄한 원님조차도 성격이 강한 아내에게는 꼼짝 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쳐불항부(妻不抗夫) 라는 이야기에 나오는 해학적(諧謔的)인 얘기이다.
옛날이 그러했을진대, 가부장(家父長)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요즘 세상에서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필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세계를 정복하는 것은 남자이다. 그러나 그러한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세상 남자들은 애처가이면서 동시에 공처가이기도 하다.
부부간에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많이 참는 집에 화평이 온다 (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泰和)고 했다.
가정이 편안해야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는 법이다. 이를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한다.
금슬상화를 이루기 위하여는 다음과 같은 선각자들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칸트는 “남편된 사람은 아내의 행복이 자신의 전부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컨은 “아내는 젊은이에게는 연인이고, 중년남자에게는 반려자이고, 늙은이에게는 간호사이다.”라고 말했다.
동반자는 보석과 같은 존재이므로, 내 스스로 진심어린 배려와 사랑을 배풀 때 부부화합이 이루어진다. 추석도 지냈으니 이제부터 금슬상화(琴瑟相和)를 더욱 돈독히 해 나가야 하겠다. (2022.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