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요셉이 믿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믿지) 못하는 새로운 애굽의 왕인 바로가 등극하자 이전 보다 훨씬 힘든 노역에 시달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그들에게 벽돌을 만들 때 필요한 짚이 제공되었지만 이제는 벽돌을 만들 때 필요한 짚을 일하는 백성들이 직접 주워오도록 하면서도 만들어 내어야 할 벽돌의 수효는 이전과 똑같게 유지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은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에서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그 죄의 댓가로 평생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만 먹을 것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쉼 없이 일을 하는 이유가 ‘죄’ 때문인 줄도 모르고 죄의 종으로 평생 노역에 시달리는 그것을 자기의 의라고 착각하며 살다가 죽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죄인으로 살고 있는 인간의 모습인데 이러한 인간들이 지고 있는 그 짐은 그들의 조상들도 능히 메지 못했던(행15:10) 율법의 짐이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께서는 이렇게 율법의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자기에게로 와서 그 짐을 내려놓고 쉬라고 하시는데 그 구체적인 방법은 바로 예수를 믿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백성들의 무거운 짐을 예수께서 대신 십자가로 지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예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죄 아래의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여전히 죄에게 종노릇을 하고 살고 있다.
이처럼 세상은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애굽왕 바로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율법의 짐을 지우고 그것을 지키게 함으로써 계속 자신의 의로 살게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왕으로 인해 점점 더 힘든 노역에 시달리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율법의 의를 쌓으면 쌓을수록 그 짐은 더 과중해지기 때문에 평생 그 짐에 허덕이다가 결국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오로지 자기 자신의 수고와 애씀으로 율법의 의를 쌓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그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을 헛되게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 믿는 자는 결코 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수고하고 무거운 율법의 짐을 예수께 맡겨버렸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의 삶은 팍팍하고 힘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우리가 진정한 쉼을 얻을 방법은 무엇인가?
(갈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그것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예수께 내려놓은 자들은 동시에 또 다른 새로운 짐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지시고 사도바울이 졌던 그 짐과 동일한 것인데 그 짐을 함께 지기 위한 목적으로 모이는 자들에게 비로소 쉼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으로 교회로 모이는 자들이 성도이다.
(딤후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교회로 모인 성도들이 서로 짐을 지는 것은 결국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 전하는 일에 항상 힘쓰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법이 온전히 성취되고 사랑의 완성이 이루어지며 이것이 성도에게 있어서 진정한 쉼이 되는 것이다.
첫댓글 아멘^^
은혜로운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