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생각'은 조영남이 1972년 발표한 곡으로,
흘러가버린 세월 앞에 추억만 오롯이 남은 고향의 풍경이 그려지는 곡입니다.
이 곡을 작곡한 정풍송은 정욱이라는 예명으로 가수로 활동하기도 한 작사가겸 작곡가로
1941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나 국민학교 시절 '내 고향 남쪽 바다'로 시작하는 김동진의 가곡 '가고파'를 듣고
작곡가를 꿈꾸었고, 김동진교수가 있던 서라벌예대로 진학해 작곡을 사사하였습니다.
1967년 이영숙의 '아카시아의 이별'로 가요계이 먼저 노크한 정풍송은 수많은 가요를 작사 작곡하여 히트시켰고,
월남파병 당시에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현지언어로된 곡을 작곡하여 보급하였습니다.
정풍송이 작곡한 대표적인 가요에는 조용필의 '허공', 한상일의 '웨딩드레스', 이상렬의 '아마도 빗물이겠지'
,최희준의 '길', 한혜진의 '갈색추억',나미의 '미움인지 그리움인지', 나훈아의 '흰구름' 등
졍겨운 곡들을 주로 많이 작곡하였습니다.
옛생각
강삼숙사 정풍속곡 조영남노래
뒷 동산 아지랑이
할미꽃 피면
꽃댕기 매고 놀던
옛 친구 생각난다
그 시절 그리워
동산에 올라보면
놀던 바위 외롭고
흰구름만 흘러간다
모두 다 어디갔나
모두 다 어디갔나
나 혼자 여기 서서
지난 날을 그리네
그 시절 그리워
동산에 올라보면
놀던 바위 외롭고
흰구름만 흘러간다
모두 다 어디갔나
모두 다 어디갔나
나 혼자 여기 서서
지난 날을 그리네.
작곡가, 작사가, 방송인, 화가로 활동중인 이 시대의 기인인 조영남은
1945년 황해도에서 9남매 중 7번째 아들로 태어나지만, 한국전쟁 때 온 가족이 월남하여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천 흔히 삽다리로 더 알려진 삽교면으로 피란을 내려와 정착하게 됩니다.
서울대학교 성악과를 다니던 그는 1968년 등록금을 벌기 위해 주한 미 8군 쇼 단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1969년에 '딜라일라'라는 번안 가요로 한국 가요계에 정식 데뷔를 하면서 가요계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1970년 김시스터즈 내한 공연에 초청가수로 노래를 불렀는데 신고산타령을
'와우 아파트 무너지는 소리에'로 개사하여 불렀다가 당국의 미움을 사 군대에 입대하게 됩니다.
당시 대통령 박정희 앞에서 이애리수의 '황성 옛터'를 부를 것을 요청 받았지만 결국
'각설이 타령'을 불러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데, 한국 최초 여성 변호사였던 이태영변호사의 도움으로
당시의 위기를 모면했다고 합니다.
세시봉에서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 김민기, 양희은 등 여러 가수와 함께 노래를 부르게되고,
세시봉에서 만난 윤여정과 결혼을 하였으나, 이혼을 하고 공백기를 갖게됩니다.
이 시기에 서로 의지가 되어주었던 김한길과의 인연으로 '화개장터'라는 곡을 발표하게 되고
그 곡으로 80년대 최고의 히트곡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1970년에는 '제비', 번안곡 '고향의 푸른 잔디'와 '최신사댁 세째딸', '물레방아 인생', '조국 찬가' 같은 곡이 있고
'내 생애 단 한번만이라도' 등으로 히트하였으며 한편으론 흘러간 인가가요와 민요, 가곡을 많이 취입하였습니다.
대표곡으로는 화개장터, 모란동백이 있습니다.
2003년 KBS연예대상 공로상, 2011년 MBC연예대상 공로상등을 수상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