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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생명의 성질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 - 사무엘상 15장 29절 "
이스라엘의지존자(능력)"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이스라엘의 소망"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미국표준역(ASV)에서는 "이스라엘의 승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승리란 무엇인가? 신. 구약 전체에서 첫 번째로 승리가 언급된 곳은 사무엘상 15장 29절이다. 여기서 승리는 거짓이 없고 변개함이 없다고 말한다. 오, 승리는 바로 한 인격이다. 어떤 물건이나 일은 인격이 아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승리는 한 인격이다. 승리는 어떤 물건이나 일종의 체험이 아니요 어떤 일도 아니며 한 인격이다. 우리는 이 인격이 누구인지 안다. 이 인격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어제 나는 여러분에게 승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고 우리의 체험도 아니라고 말했다. 오, 승리는 한 인격이다! 승리는 당신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당신을 대신해 살아 나타난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얻은 승리는 거짓이 없고 변개함(후회함)이 없다. 승리가 살아 있는 인격이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자!
오늘 저녁은 어제 저녁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승리가 무엇인가를 말할 것이다. 즉 이기는 생명의 성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할 것이다. 성경에는 이기는 생명의 성질에 관하여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다섯 가지만 언급하겠다.
이 생명의 의미 - 개선된 생명이 아니라 바뀐 생명임
형제자매들은 승리가 개선된 생명이 아니라 바뀐 생명임을 주의하라 승리는 내가 개선된 것이 아니라 바뀐 것이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구절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있다. " 이제는 내가 산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성경 구절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가? 오직 한 가지 곧 생명이 바뀌었다는 뜻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내가 아니요 나와 조금도 관계가 없다. 근본적으로 내가 아니요 나와 조금도 관계가 없다. 악한 내가 좋은 나로, 더러운 내가 청결한 나로 고쳐진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아니요"이다. 오늘 사람들은 승리란 계속 진보하는 것이고 실패란 계속 퇴보하는 것이라는 커다란 오해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성질을 내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만일 내가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할 수 있으면 승리할텐데 라고 말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승리는 당신과 무관하고 당신과 상관없음을 기억하라.
어떤 형제는 울면서 자신은 승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 형제에게 "형제여, 참으로 당신은 승리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그는 또 자신이 승리할 수 없고 조금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 하나님은 형제에게 자신 안에서 승리하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나쁜 성질을 좋은 성질로 고치고 당신의 강퍅함을 온유하게 고치며 염려를 기쁨으로 고치시려는 의도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당신 자신의 생명을 다른 생명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어떤 자매는 나에게 " 다른 사람은 쉽게 승리하지만 나는 승리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나는 남보다 성질이 나쁘고, 나보다 생각도 깨끗하지 않으며, 남보다 교활하고, 자신을 통제하지도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그렇습니다. 당신은 승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승리할 방법도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당신은 사람이 조금 더 얌전하고 성질이 더 낫고 생각도 단순하면 승리하기가 더 쉽다고 생각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사람이 남보다 온유하고 거룩하며 온전하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 사람이 밖으로 나가고 그리스도가 들어오셔야만 승리할 수 있다. 사람이 남보다 악하고 더러우며 흠이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 사람이 밖으로 나가고 그리스도가 들어오시게 하면 승리할 수 있다. 성질이 아주 악하고 부도덕한 사람이 주 예수를 믿어야 할 뿐 아니라 성질이 아주 좋고 도덕적인 사람도 주 예수를 믿어야 한다. 이와 같이 성질이 아주 악하고 부도덕한 사람이 승리할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성질이 보다 좋고 도덕적인 사람도 승리가 필요하다. 승리는 바로 그리스도이시고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자.
한번은 한 자매를 만났다. 나는 그녀처럼 승리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자매를 본 적이 없다. 그녀는 " 만일 당신이 승리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을 만나 보려 한다면 나를 찾으시고, 승리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 보려 한다해도 역시 나를 찾으십시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실패로 인하여 마음 아파했고 심지어 자살까지도 시도했었다. 그녀에게는 정말 소망이 없었다. 그녀가 이런 말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주 예수님은 좋은 환자를 만나셨군요. 주 예수님은 오늘 왕진하실 일이 생겼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죄와 교만으로 가득했고 또 자신의 성질로 가득했다. 만일 당신이 승리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녀에게서 이 많은 것들을 들을 때 당신 자신도 그녀에게 전염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승리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녀의 이런 말을 들은 후 아마 당신은 정말 소망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 감사하며 찬양하자. 여기에 복음이 있다! 만일 당신이 거쳐도 고쳐지지 않는다면 바꾸어 버리면 된다.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하자. 이기는 생명은 고쳐지고 개선된 것이 아니라 바꾸어진 것이다. 만일 당신이라면 이것을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는 어떤 것도 어려울 것이 없다. 문제는 당신이 승리하는가,그리스도께서 승리하는가에 달렸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다면 당신이 지금보다 열 배나 나쁘다 하더라도 문제없다.
형제자매들이여, 승리란 무엇인가? 승리는 당신 자신이 이기는 것이 아니다. 승리한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대신해 이기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승리는 바로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볼 수 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복건(福建) 사람들이 남을 욕할 때 하는 말 중 "죽어도 변한게 없다"는 말이 있다. 그 뜻은 좋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북평에서 형제들에게, 우리 각자는 다 자신에게 "죽어도 변한게 없다" 고 말해야 하나고 한 적이 있다.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하자. 우리는 고쳐진 것이 아니라 바꾸어진 것이다!
어떤 자매는 나에게 개선하는 것은 무엇이고 바꾸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 가지 비유로 말하겠다. 만일 내 손에 낡고 헤어진 성경 한 권을 가지고 있다 하자. 이것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책표지를 한 겹 더 싸고 풀로 붙이고 아마 금박으로 칠 할 것이다. 또 성경 속에서 없어진 글자를 채워야 하고 잘 안보이는 것을 다시 써 넣어야 할 것이다. 많은 절차가 필요하고 또 얼마나 많은 시일이 걸릴지도 모른다. 또 잘 고쳐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 한 권을 새것으로 바꾸는 것은 일 초면 충분하다. 당신은 나쁜 것을 내게 주고 나는 좋은 것을 당신에게 주어 바꾸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당신에게 주셨으므로 당신은 조금도 힘을 들일 필요 없이 바꾸기만 하면 된다.
또 한 가지 비유를 인용하겠다. 몇 년 전 내가 시계 하나를 샀는데 시계 점포에서는 그것에 대해 2년간 보증을 서 주었다. 그러나 이 시계는 내 집에 있을 때보다 시계 점포에 있을 때가 더 많았다. 시계가 하루 이틀 정도 가다가 정확하지 않아서 다시 점포에 가져가 수리하고 또 수리했다. 나는 한 번, 두 번, 열 번이나 왔다갔다해서 피곤했다. 계속 수리를 했지만 결국은 고치지 못했다. 나는 시계 점포에서 다른 것으로 바꾸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점포 측은 그런 규칙이 없어서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점포에서 2년간 보증을 서 주었지만 그저 계속 수리를 해 주었을 뿐이다. 이렇게 8개월 동안 점포측은 다른 것으로 바꾸어 주지 않고 수리만 해주었고 결국은 고쳐지지 않았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할 수 없이 그 시계를 거기 버려 두겠다고 말했다. 사람의 방법은 계속 수리하고 고치는 것이다. 이 년 동안 나는 매일 수리하다시피 했다. 사람은 바꾸어 줄 수 없다. 사람의 방법은 계속 수리하는 것이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방법은 수리하거나 고치는 것이 아니라 대치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이사야 61장 3절을 보기로 하자.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대치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은 재를 좋게 수리하시는 것이 아니라 화관으로 재를 대신하신다. 하나님은 슬픔을 수리하시는 것이 아니라 희락의 기쁨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근심을 수리하시는 것이 아니라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는 것이다. 고쳐서 변케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밥법이 아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바꾸는 것이다.
몇 년 동안 계속 고칠 수 없는 나를 바꿔 주신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한다. 이것이 거룩함이요 온전함이다. 이것이 승리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이다! 할렐루야! 이제부터 그리스도의 온유가 나의 온유이다. 이제부터 그리스도의 거룩함이 나의 거룩함이다. 이제부터 그리스도의 기도 생활이 나의 기도 생활이다. 이제부터 그리스도와 하나님과의 교통은 나와 하나님과의 교통이다. 이제부터 내가 이기지 못할 만큼 큰 죄가 없다. 이제부터 내가 이기지 못할 만큼 큰 시험도 없다. 왜냐하면 승리는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어떤 큰 죄를 두려워한단 말인가? 그리스도께서 무슨 큰 시험을 두려워한단 말인가?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한다!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이제부터는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이다.
이기는 생명의 원칙 - 보상이 아니라 선물임
승리는 선물이지 보상이 아님을 기억하기 바란다. 선물이란 무엇인가? 선물이란 당신에게 값없이 주는 것이다. 당신이 수고로 얻은 것은 보상이다. 당신이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값없이 얻은 것은 선물이다. 하나는 당신과 조금도 관계가 없고 당신이 조금도 힘들일 필요 없이 당신에게 값없이 주는 것이다. 또 하나는 당신 자신이 일하고 힘들여야 소유하는 것이다. 우리가 말한 이기는 생명은 당신이 힘들일 필요가 없는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57절을 보자,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오, 이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예비한 것이다. 우리의 이김은 자기 힘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값없이 얻는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우리가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은 구원은 값없이 얻는 것이지만 승리는 자기를 의지해 얻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구원받는 데 있어서 공로가 쓸모없고 조금도 행위를 더 할 수 없고 다만 단순히 십자가 아래 와서 주 예수를 구주로 영접을 하면 된다. 이것이 복음이다. 우리는 행의로 구원받을 수는 없으나 구원받은 후에는 선행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당신이 선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는 없으나 선을 행함으로 이기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당신에게 말하지만 당신이 선을 행함으로 구원받을 수 없듯이 당신은 선을 행함으로 이길 수 없다. 하나님은 분명히 당신이 조금도 선을 행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또 지금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해 살고 계신다. 육신에서 나온 것을 하나님은 조금도 원치 않으신다. 우리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주 예수님을 의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구원받은 후에는 마땅히 선한 행위를 가지려고 하고 아주 선하게 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당신에게 묻겠다. 당신이 구원받은지 여러 해가 되었는데 당신은 얼마나 선하게 되었는가?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하자. 우리는 조금도 선하게 될 수 없다. 이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되 값없이 주신 것임을 인해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하자!
고린도전서 15장 56절에서는 죄와 율법과 사망에 대하여 말하고, 57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김을 주셨다고 말한다. 이 이김은 죄를 이길 뿐 아니라 율법과 사망을 이긴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속은 죄악을 이길 뿐 아니라 능히 율법도 이길 수 있으며 율법을 이길 뿐 아니라 사망도 능히 이길 수 있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여러분이 앉아있는 자리를 한 바퀴 돌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이김을 주셨다는 복음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다.
아마 당신은 어떻게 해야 시험을 이길 수 있을가 하고 생각할 것이다. 또는 어떻게 해야 내 성질을 이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내 교만을, 어떻게 해야 내 질투를 이길 수 있을까하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 당신은 얼마나 많은 힘을 들이고 얼마나 많이 실망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복음을 전해 주겠다. 주 예수의 온유가 바로 당신에게 값없이 주어졌고, 주 예수의 거룩함도 당신에게 값없이 주어졌다. 주님의 기도가 당신에게 값없이 주어졌고,주 예수의 모든 것이 다 당신에게 값없이 주어졌다. 당신이 주 예수를 영접할 때 주 예수의 모든 것이 다 당신의 소유가 된다.
할렐루야! 이것이 복음이 아니면 무엇인가! 당신은 쉬지 않고 기도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하나님과 간격 없는 교통을 갖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소극적인 것들을 처리하고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당신은 성질을 내지 않기 위해서 매우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은 죄를 자백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죄 짓는것을 중단하지는 못한다. 당신이 자주 하는 거짓말을 고치려고 많은 힘을 들이지만 거짓을 말할 것이다. 나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생각해 보았지만 어떻게 해도 고칠 수 없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 두세 마디를 하다가 거짓말을 하게 된다.
오늘 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주 예수님의 거룩함과 인내와 온전하심과 인애와 미쁘심을 당신에게 값없이 주신다는 이 복음을 전해 주겠다. 하나님은 원하는 자에게 이것들을 주신다. 주님과 하나님이 누리는 친밀한 교통, 주님이 사셨던 거룩한 생활, 그리스도의 온전한 아름다움을 당신에게 주신다. 이것은 하나의 선물이다. 당신이 자기를 의지해 승리하려 한다면 또 다른 이십년이 걸려도 당신의 성질을 고치지 못하고 당신의 교만을 제할 수 없다. 이십 년이 지난 후에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여기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이 있다. 이는 곧 그리스도의 인내가 나의 인내가 되고 그리스도의 거룩함이 나의 거룩함이 되는 것이며 그리스도와 하나님과의 교통이 나와 하나님과의 교통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모든 미덕들이 나의 모든 미덕들이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구원이며,그분이 우리에게 값없이 주고자 하시는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당신은 행위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죄인을 보았는가? 나는 이런 사람을 많이 만났다. 당신이 죄인을 만날 때, 그에게 당신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고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었으며 하나님께서 주 예수를 당신에게 주셨기 때문에 당신은 다만 영접하면 된다고 말해줄 것이다. 이와 같이 형제자매들이여, 내가 한 메시지를 전해 주겠다. 당신은 무엇을 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셨다. 하나님께서 주 예수를 당신에게 주셨기 때문에 당신은 다만 영접하면 승리하게 된다. 구원받기 위해 당신의 노력이 필요치 않듯이 이김 또한 당신의 노력이 필요치 않으며, 이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이다. 구원이 우리가 힘들이지 않고 얻는 것이듯 승리 또한 힘들이지 않고 얻는 것이다.
여기 당신에게 줄 성경 한 권이 있다하자. 이 성경 안에 있는 글자는 당신이 쓴 것이 아니요 책 표지도 당신이 만든 것이 아니요 금박도 당신이 입힌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다 남이 당신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 이기는 것도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선물이다. 우리는 서서히 한 단계의 승리에서 다른 단계의 승리에 이를 수 없고 서서히 거룩함에서 거룩함에 이르고 온전함에서 온전함에 이를 수 없다. 만일 이 세상에 이기는 자가 있다면 그의 이김은 분명히 주 예수에게서 얻은 것이다.
최근에 나는 한 자매를 만났다. 그녀는 이십 년에 걸쳐서 그녀의 교만과 성질을 이기기를 바랬다고 말했다. 그 결과 이십년 동안 이기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갈수록 나빠지고 아무런 방법이 없게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당신의 노력으로 당신의 교만을 이기고 성질을 이기려고 한다면 또 다른 이십 년이 걸려도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만일 오늘 당신이 죄에서 해방받기 원한다면 빨리 하나님의 선물을 받으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당신에게 주시는 것이므로 받기만 하면 당신의 것이 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승리이시다. 당신이 그분을 당신의 승리로 영접한다면 당신은 즉시 승리하게 된다.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하자. 그녀는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준 이 은사를 받았다. 오늘 당신은 자신의 일에 대한 공허함과 생활의 실패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면 당신은 이기게 된다.
당신은 로마서 6장 14절을 잘 알 것이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라." 왜 죄가 여러분을 주관치 못하는가? 이는 여러분이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 율법아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수차 말했듯이 율법 아래 있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일하는 것을 말한다. 율법 아래 있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일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은혜아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일한다는 말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일한다면 죄가 우리를 주관할 것이다. 우리가 일한 결과는 바로 죄가 우리를 주관하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일하신다면 죄가 주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율법 아래서는 내가 일하는 것이고 은혜 아래서는 하나님께서 일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죄가 결코 우리를 주관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이것이 바로 승리이다. 우리 자신이 노력해서 만들어 낸 것은 결코 승리가 아니다. 승리는 값없이 얻는 것이다.
만일 여기에 어떤 사람이 많은 죄를 범하고 지칠 정도로 죄를 범하여 더 이상 그리스도인 답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당신에게 말하지만, 여기서 만일 그 사람이 다만 이 은사를 받는다면 그 사람은 즉시로 승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김의 원칙은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은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 선물을 받는다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
이 생명을 얻는 방법 -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임
이기는 생명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어떤 것이지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것을 얻을 수 있을 뿐 이것에 도달할 수는 없다. 얻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얻는다는 것은 어떤 것을 취한다는 것이다. 도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도달한다는 것은 당신이 어느날 이르게 될지도 모르는 먼 길을 서서히 걸어가는 것이다. 할렐루야, 그리스도인의 이김은 서서히 걷고 또 걷는 것이 아니다. 한번은 내가 고령에 올라가는데 오신량 형제가 나에게 산에 같이 올라가지고 요청해 왔다.
우리는 서서히 걸었는데 걸을수록 나는 힘이 들었다. 어느 정도 올라갔을 때 내가 오 형제에게 얼마나 더 가야 하느냐고 물으니가 그는 거의 다 왔다고 했다. 그러나 제법 많이 갔는데에도 아직 정상이 보이지 않고 여전히 더 걸어야 했다. 오 형제에게 몇 번 물어볼 때마다 그는 거의 다 왔다고 말했다. 결국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했다. 만일 내가 가마를 타고 산에 올라 왔다면 나는 고령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고령을 '얻은 것'이다. 이김은 우리가 애써서 도달한 것이 아니라 다만 얻은 것이다. 성령과 관계된 모든 것들이 다 영접한 것이다. 이김에 관한 것들도 또한 다 영접한 것이다.
로마서 5장 17절에서는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고 말한다. 여기서 하나님은 이김이 다만 하나의 선물이기 때문에 당신이 영접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신다. 이김은 당신이 서서히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이김은 하나의 선물로 당신 손에 가져다 준 것이므로 당신은 조금도 힘을 들일 필요가 없다. 장 형제에게 내가 이 성경을 선물한다면 얼마의 힘을 들여야 얻을 수 있는가? 손을 내밀기만 하면 일 초에 얻게 된다. 이 성경은 당신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 당신이 집에 돌아가 금식할 필요가 있는가? 당신이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무릎을 꿇을 필요가 있는가? 당신은 앞으로 성질을 내지 않겠다고 결심할 필요가 있는가? 그럴 필요가 없다. 당신은 다만 영접하면 된다. 당신이 이 성경을 받기 위하여 어떤 절차를 밟았는가? 어떤 절차도 없이 다만 손을 내밀면 당신의 것이 된다. 이김은 하나의 선물이다. 당신이 그것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것을 얻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장 30절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구절이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 곧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지혜는 포괄적인 제목이므로 잠시 한쪽에 두기로 하자. 여기서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다음 세 가지, 즉 (1) 의로움 (2) 거룩함, (3) 구속함이 되게 하셨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언제 그분을 우리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는가?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와 주 예수를 우리 의로 영접할 때라고 답할 것이다. 당신이 삼일 동안 운 다음에야 이 의로움을 얻는가? 하나님께 충분히 잘못을 사과한 후에야 이 의로움을 얻는가?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하자. 당시을 대신하여 죽으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당신이 믿을 때 즉시 이 의로움을 얻게 된다. 그러나 주 예수를 거룩함으로 취하는 데 있어서 사람들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헛되게 시간을 낭비하며 노력한다. 당신이 주님을 당신의 의로 영접하는 것은 즉각적으로 얻은 것이다. 이와 같이 주 예수를 당신의 거룩함으로 영접하는 것도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서서히 걸어서 거룩함에 도달하기를 바란다면 당신은 영원히 도달하지 못한다. 자기의 의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자기의 거룩함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도 역시 이김을 얻을 수 없다.
얻는 것과 도달하는 것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오직 한 가지 차이 밖에 없는데 그것은 곧 시간의 문제이다. 하나는 즉각적이고 또 하나는 점차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이 닭을 훔쳤던 것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본래 그는 한 주에 일곱 마리를 훔쳤는데 후에 자신을 개선하고자 마음 먹었다. 그래서 일 주일에 한 마리씩 덜 훔침으로써 육 주가 지난 후 완전히 도적질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서서히 훔치는 양을 줄여갔다. 그러므로 그가 더 이상 도적질하지 않게 된 것은 서서히 도달한 것이지 즉각적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이김은 즉각적으로 얻는 것이다.
지난번 연대(煙臺)에서 나는 성질이 아주 고약한 한 형제를 만났다. 그가 한번 화를 내면 그의 식구들은 모두 그를 무서워한다. 그의 아내와 자녀들뿐 아니라 그의 가게 일꾼들도 그를 무서워한다 때로 그가 집회 장소에서도 화를 내기 때문에 형제들까지도 그를 무서워한다. 그는 나에게 자기 성질에 대하여 조금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만일 당신이 주님을 당신의 이김으로 영접한다면 당신은 즉시로 이기게 된다고 말해 주었다.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한다! 그는 이 말을 받아들였고 이겼다. 어느 날 그는 나에게 "니 형제님, 제가 이김을 얻은지 얼마나 되었나요?" 라고 물었다. 내가 계산해 보니까 한 달밖에 되지 않았다. "이 기간 중 언제인가 제 아내가 병을 앓아 곧 죽을 것 같았습니다. 이전에는 아이가 병에 걸렸을 때 나는 조급해서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왔다갔다하며 안색이 좋지 않고 아주 쉽게 화를 내었습니다. 이번에 제 아내가 병에 걸려서 맥박 뛰는 것이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작은 소리로 하나님께 심지어 당신이 그녀를 데려가시더라도 괜찮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기묘하게도 저의 성질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후에 그의 아내의 상태는 조금 더 좋아졌고, 그 형제는 침을 놓는 의사를 불러다가 침을 몇 번 맞게 하여 인내로 아내를 섬겼다. 내가 떠나려고 하던 날 그 형제는 나를 바래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상하게도 지난 스무 시간 동안 제 아내가 병에 걸렸는데 남의 부인이 병에 걸린 것같이 조금도 다급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재봉 사업을 하는데 항상 여공들을 다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 이 한달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발생했는지 모릅니다. 옛날 같았으면 큰 소리를 질렀을 텐데 이번에는 내 일 같지 않고 또 나는 웃으면서 그들에게 왜 이렇게 만들었냐고 말했습니다. 오, 내 성질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얻는 것이다. 만일 도달하는 것이라면 또 다른 이십 년이 걸려도 도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김은 얻는 것이지 도달하는 것이 아님을 인해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하자! 오늘 여기서 만일 당신이 얻기를 원한다면 즉시로 얻을 수 있다.
인도에 간 어떤 여 선교사가 있었는데 그녀는 화를 잘 내기로 유명했다. 그녀는 자주 화를 냈다. 심지어 그녀는 만일 내가 인내할 수 있다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인내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영적인 도움을 주었던 한 친구가 그리스도를 이기는 생명으로 취하는 비결을 얻은 후에, 이기는 생명은 얻는 것이라는 내용으로 그 선교사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선교사는 편지를 받고서 편지에서 말한 대로 실행하였다. 그 선교사의 친구는 삼 개월 후에 그녀의 회신을 받았는데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당신의 편지를 받고서 저는 이것이 복음임을 알았습니다! 제가 그리스도를 인내로 취할 때 제 성질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과거 저의 실패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삼 개월 간 시험을 한 후에야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 인도의 일꾼들은 아주 장난이 심하고 우둔합니다. 과거에 나는 문을 닫을 때마다 항상 문을 쾅하고 닫았습니다. 내가 화난 것을 그들에게 알리는 것이지요. 그러나 제가 당신의 말대로 실행한 뒤 문을 닫을 때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닫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그렇게 할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오, 죄를 이기는 것은 당신이 힘쓸 필요가 없고 완전히 주님이 당신에게 이루어 주시는 것임을 볼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자신을 힘입어 하려고 한다면 백 년을 더 하더라도 불가능 하다.
형제자매들이여, 거듭 말하거니와 이김은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이다.
이 생명을 얻는 것은 하나의 기적임
바울이 우리에게 한 말을 기억하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3)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른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로 행하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 안에서 행하시어 우리를 거룩케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우리 자신이 힘을 써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이다. 이 거룩한 생명과 온전한 생명은 우리가 힘써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하나님께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나는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기적이 아니고서는 자신의 사악함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실패를 느끼지 못하고 또 자신의 무능함도 보지 못했다. 어떤 사람의 성질이나 교만이나 개성에 대하여 만일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지 않으신다면 정말 구할 길이 없고 어느 누구도 그것들을 이기지 못한다. 죄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사람의 방법은 죄를 억누르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하신다면 하나님은 기적으로 당신의 옛 사람을 제해 버리고 당신의 마음을 청결케 하실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이김이 무엇인지를 보았다면 당신은 얼마나 즐거워하고 기뻐할지!
보통 사람보다 성질이 고약한 한 자매가 있었다. 그녀의 남편과 자녀들 또는 일꾼들 중에서 그녀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리스도인이었다. 성질이 이렇게 불 같은 것에 대하여 참으로 방법이 없었다. 몇 년이 지난 후 그녀는 주 예수를 그녀의 승리로 영접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매우 큰 시험을 당했다. 그녀가 주 예수를 승리로 얻은 그 이튼날 아침 잠에서 깬 후 일층으로 내려왔다. 아래층에서는 남편과 일꾼들이 샹들리에를 달고 있었는데 그 샹들리에는 값비싼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과 일꾼들이 그것을 달면서 부주의로 땅에 떨어뜨려 샹들리에가 깨져 버렸다. 바로 그때 그녀가 위층에서 내려왔다. 남편은 그녀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는 꼼짝못하고 이제 그녀가 얼마나 화를 낼 것인가를 염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는 조용하게 "깨진 조각들은 쓸어버리세요" 라고 말했다. 그녀의 남편은 이상히 여겼다. 평상시 작은 컵이나 접시를 깨뜨려도 화를 냈기 때문에 오늘은 아마 크게 화를 내리라고 생각했던 남편은 그녀의 이러한 상태를 보고 "당신 어젯밤 잘 잤소? 어디 아프지는 않고?" 라고 물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 어디 아픈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셔서 저의 옛 사람을 제하여 주셨어요." 이 말을 들은 남편은 " 이것은 정말 기적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가." 라고 말했다.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하자. 이것이 바로 기적이다.
주일 학교 신문사를 세웠던 트럼블 씨는 영적인 체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기는 생명이 진실로 기적임을 깨달았다. 한번은 어느 장로에게 자신이 자신이 주 예수를 생명으로 영접한 후 성질을 내지 않을 뿐 아니라 성질을 낼 마음조차도 없어졌다고 간증했다. 그 장로는 그에게 당신의 말은 옛 죄들도 제해 버릴 수 있다는 뜻이냐고 물었다. 트럼불 씨가 그렇다고 답변하자 그장로는, "당신의 말을 믿기 때문에 이것이 거짓이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는 결코 사실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후에 트러불 씨는 그에게 함께 기도할 것을 요청했다. 그날 그들은 아주 긴 기도를 했고 그 장로도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였다. 어느 날 트럼불 씨가 그를 만났는데 그 장로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내 일생에서 그날 저녁에 체험한 것과 같은 것을 맛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분투나 능력이 필요치 않고 하나의 기적입니다! 이제는 그런 욕망도 그러한 마음조차도 없어졌습니다. 이것은 참 놀랍고 참으로 기적입니다." 얼마 지난 후 그는 트럼불 쎄에게 편지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일하는 곳에 이사회가 있는데 거기에는 합당하지 않은 악의 세력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거기 있을 때는 항상 자신을 억눌렀으나 이번에 갈 때는 그런 세력에 가담하지 않은 것은 물론 그러한 죄에 대한 마음조차도 없어진 것 같습니다." 오, 이 어떠한 기적인가!
형제자매들이여, 당신에게 처리하기 어려운 일이 있는가? 처리하지 못하는 죄는 없는가? 만일 있다면 주 예수님은 똑같이 우리를 위하여 기적을 행하실 수 있다. 당신이 수년 동안 방법이 없었지만 그분은 즉시 기적을 행하실 수 있다. 당신의 죄가 영적인 죄이든, 육신에 속한 죄이든, 생각에 속한 죄이든, 신체적인 것이든, 기질적인 것이든,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못한 죄이든, 헌신하지 못한 죄이든, 죄를 자백하지 않은 죄이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님은 다 즉각적으로 기적을 행하실 수 있다. 헌신할 수 없는가? 그분은 당신을 헌신하게 할 수 있다. 인내할 수 없는가? 그분은 당신으로 인내하게 할 수 있다. 주님은 위에서 언급한 모든 죄들을 능히 이기실 수 있으시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때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된다.
이 생명의 결과 - 억누르는 생활이 아니라 표현되는 생활임
이기는 생명의 결과는 억누르는 생활이 아니라 표현되는 생활이다.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소유한 '승리'가 대부분 억누름으로서 이루어진 것이라는데 있다. 나이든 여자 분이 한 명 있었는데 그녀는 화가 날 때마다 힘써 성질을 억눌렀다. 곁에서는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속에서는 억지로 누르고 있다. 이러한 억누르는 생활이 몇 년간 계속되다 보면 속에서는 내적인 출혈이 있게 된다. 그렇게 억누르는 생활 안에는 쓰라림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이김은 억누르는 생활이 아니라 표현되는 생활임을 인해 주님께 감사하며 찬양하자! 표현되는 생활은 이미 얻은 것을 살아내는 생활이다. 이것이 바로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 말한 "너희 구원을 이루라"이다. 과거에 우리는 가능한 한 철저하게 감추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한 그리스도의 이김은 담대히 속에 있는 것을 표현한다. 과거에는 억누를수록 좋았지만 지금은 표현할수록 더욱 좋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아 계시기 때문에 나는 사람들 앞에서 그분을 살아내야 한다.
제시 펜 루이스 여사에게 시를 잘 쓰는 한 젊은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어리아이들을 이끌어 이기는 생명을 얻도록 잘 도왔다. 펜 루이스 여사는 그녀가 대체 무슨 방법으로 아이들을 인도하는지 알아보려고 어느 날 특별히 그녀에게 갔다. 그날 그녀는 열 아이들을 초청하여 음식을 같이 먹었다. 음식을 먹고 식탁을 치우기 전에 갑자기 손님이 왔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식탁이 이렇게 지저분한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깨끗한 천으로 식탁을 덮어 버리자는 생각을 짜냈다. 그녀가 좋다고 말하고 깨끗한 천을 가져와 상 위에 있는 지저분한 것을 덮었다. 손님이 떠난 후 그녀가 아이들에게 손님이 상 위에 있는 지저분한 것을 보았느냐고 묻자 그들은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손님은 보지 못했지만 상은 더러운가 더럽지 않은가를 물었다. 아이들은 손님은 보지 못했지만 상은 여전히 지저분합니다."라고 대답했다.
형제자매들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지만 사람들은 속이 더러워도 밖으로는 깨끗하게 보이려고 한다. 우리 마음속의 생각과 느낌을 사람들에게 열어 보일 수 없는데도 우리는 이겼다고 생각한다. 남이 우리를 칭찬할 때 우리는 자신을 겸손하다고 생각한다. 인내를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안에 모든 것이 다만 묶여있는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내가 솔직하게 한 마디 하는 것을 허락하라. "속에서 억누르는 모든 것은 다 이기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나가고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시게 할 때만이 이기는 것이다. 이긴다는 것은 뭔가가 표현되는 것이다.
쉽게 성질을 내는 한 자매가 있었다. 어느 날 하인이 꽃병을 깨뜨렸는데, 화를 내지 않으려고 그녀는 즉시 자신의 침실로 가서 이불을 뒤집어 썼다. 이것은 억누르는 생활이다.
과일 파는 사람이 와서 당신에게 과일을 사라고 하자 안 산다고 해서 떠나갔다고 하자. 다시 와서 두 번째 당신에게 사라고 하자 당신은 사지 않는다고 해서 떠나 갔다. 세 번째로 당신에게 와서 또 사겠느냐고 묻는다. 그 과일 장사는 과일을 팔기 위하여 성질을 억누르고 인내하며 계속 와서 과일을 팔려고 한다. 이러한 것은 이김이 아니다. 이것은 다만 장사하는 방법이다. 성질을 억누르는 것은 이김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이김은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 이김은 마음이 깨끗케 되는 것이다.
오십이 넘은 한 형제가 있었는데 전에 그는 공자의 책을 열심히 읽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주를 믿은지 삼 년이 되었는데, 주님께서 피를 흘려 죄를 씻은 일은 알았지만 기독교와 유교가 어떻게 크게 다른지를 알지 못했다. 유교의 수신은 계속 함양하고 억제하는 것에 성공해야 성인이 된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억제하고 함양하려고 노력하면서 언제나 큰 일은 별 것 아닌 일로 여기고, 작은 일은 없는 것으로 여기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후에 이기는 길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는 "오늘에서야 이김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라고 말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과 다르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은 십자가가 있다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구속의 교리를 전파할 뿐 아니라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전한다. 그 형제는 참으로 공자의 제자였지만, 그의 안에 있는 것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제는 자신이 나가고, 더 이상 자신을 억누르지않으며, 더 이상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형제자매들이여, 나는 이러한 사실로 인하여 할렐루야를 외친다! 승리란 당신의 자아와 그 표현들이 나가는 문제이다. 이기는 생명은 바로 다름 아닌 그리스도이시다.
이상 다섯 가지는 이 생명의 성질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몇 마디 솔직한 말을 하는 것을 허락하기 바란다. 이김은 마치 구원받은 것과 같이 분명한 것이다. 그것을 체험한 분명한 날짜가 있다. 당신이 구원받은 분명한 날짜가 있듯이(물론 어떤 사람은 월, 일은 잊어버린 경우도 있다) 당신이 이긴 날짜를 기록해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언제 이김을 통과했는지 분명한 날짜를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통과해야 할 구체적인 관문이다. 당신이 이미 통과했든지 아니면 아직 통과하지 않았든지 하는 것이지 이 문제에 있어서 "아마"는 없다. 세상에는 이미 구원받았거나 아니면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있지 "아마 구원받은" 경우는 없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는 "아마", 즉 대충 이긴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는 마땅히 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오늘은 다 말할 수 없고 나중에 말하겠지만 이김은 단지 우리 개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우리 모두가 반드시 이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