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거 리)
글; 裵 時 昌
배 선생 집안 이야기(1부)
1.줄거리
폐렴으로 2주만에 퇴원했다.뉴질랜드 가족들에게 연락을 하지않았다. 큰 병도 아니였고 안정을 취하면 회복된다고 하니 걱정을 끼쳐주고 싶지 않아서 였다.
퇴원후 나의 허전한 공간으로 다시 돌아와 아내와 통화를 했다. 냉냉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보소, 건강 챙기소" 그 말이 전부였다. 울먹이며 안스러워하던 이전의 모습을 전혀 느낄수가 없었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여위였고 늙어보였다. 하루하루 늙어가고 있는 줄은 알았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늙은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나이는 속일 수가 없는 모양이다. 이 나이 되도록 아직까지 분수를 모르고 꿈에 부푼 청년같이 살고 있으니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거울에 비치는 머리카락이 오늘따라 너무 희게 보여 가슴이 아팠다. 이미 마음도 서글퍼 졌다. 그 서글픔이란 늙어가는 것에 대한 조바심 일 것이다.
살아온 육십년을 뒤돌아보니 한남자로서, 한가장으로서 그리고 한사람의 사회인으로써 한일이 너무없다.
나를 믿고 긴 세월을 함께 살아온 처와 자식들, 그리고 주위사람들에게 미안 할 뿐이다. 살아온 날은 아득히 멀고 살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에 가족들의 보살핌없이 혼자서 병고를 치르면서 많은것을 느꼈다. 남은 여생동안 전능하신 하느님의 뜻에 따라 늘 찬송하며, 기도하며 살아 가야겠다.하느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남산성당 다테오 주임신부님의 마지막 미사 강론 말씀이 생각난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은 육십부터 시작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등산을 좋아하여 전국의 많은 산들을 오르면서 깨달은 진리가 한 가지 있지요. 육십까지는 쉬지 않고 땀방울을 흘려가며 산 정상을 향해 오르는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산 정상에 오르면 바위에 걸터앉아 불어오는 시원한 산바람에 땀방울을 식히면서 올라왔던 험준한 산길을 내려다 봅니다. 그리고 정상까지 올라온 자신을 대견스럽게 생각합니다.
오르막이 가파르면 내리막도 가파르고 오르막이 수월하면 내리막도 수월 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정상에 서면 정복한 기쁨도 잠시, 더 이상 머물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로 下山이 시작됩니다. 산 정상까지 오르는 동안 정신적, 체력적 소모가 많아 하산 할 때는 더 조심하여 내려와야 한다는 것입니다.”라고 강론 하셨다.
(이 강론을 남기기 위하여 "마지막 미사"라는 제목으로 한국가토릭 문화원에 발표했다)
그 강론은 자신을 위해 준비한것 같았다. 강론을 듣고 아까운 젊음이 사라졌구나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이제부터 하느님께 의지하면서 살아온 인생을 차분하게 뒤돌아보고 조심스럽게 험준한 산길을 내려가는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족품에 돌아가서 그 사이 남편없이 외로움을 겪으며 살아온 아내와 함께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부풀었다.
가족생계를 위해 홀로 보낸 10년 세월이 너무나 덧없이 지나갔다. 혼자 겪은 고통과 외로움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혼자 사는 고통은 이길 수는 있지만 즐길 수가 없다는 것을 이번 여름에 체험하였다. 지병인 당뇨병에 합병증이 찾아와 홀로 겪은 병고는 내 삶의 최악 이였다.
밤마다 발작하는 신열에 신음하며 헛소리까지 할 때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를 데리고 갈 저승사자가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죽음의 두려움에 절규했어야 했다. “하느님 저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소박한 꿈을 품고 나 하나를 믿고 시집온 아내에게 살면서 안겨준 죄 너무 큽니다. 이 죄를 다 씻을 때 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요.”라고 간절하게 빌었다.
非夢似夢 간 귓전에 들리는 신음소리 속에서도 가까이 찾아온 죽음이 두려워 울부짖었다. 나는 죽음을 느꼈다. 그 죽음이 두렵다는 것도 느꼈다. 그것을 부정 할 수 없이 받아 드려야한다는 것도 알았다. 퇴원후에 오랜만에 성당을 찾았다.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결국에는 가야할 그 길을, 두려움 모두 털어버리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갈 수 있는 길은 믿음밖에 없다는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겨야 할 유별난 한 가족 이야기가 있다. 이 유별난 가족 이야기를 글로 남겨 보려고 벌써부터 마음은 먹었지만 시작하려고 하니 쓸 이야기꺼리가 너무 많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의 구성은 지난 100년 동안 일어난 이야기들이다.
나의 어린 시절 아버님, 작은 아버님 그리고 아버님 육촌동생인 만수아저씨로부터 간간히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을 살려 작성한 것이고 그 나머지 이야기는 내가 태어난 이후에 직접 느끼고 체험한 생생한 이야기들이며 서너 살 때 의 기억도 살려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우리부모님과 8형제, 그리고 그 자식들이며 설명을 돕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우리가족사 중에 아버님이 사셨던 생애를 기록하는 작업 외에는 팔형제들은 특별히 글로 남길만한 이야기가 없다. 쓸 것이 있다면 다른 가족보다 유별나게 살아 온 것을 글로 적을 뿐이다. 우리 아버님뿐만 아니라 우리 형제들도 남들보다는 유별나게 살았다.
아버님의 기질을 그대로 이어 받았을까. 대범하게 살아온 아버님에 비하면 우리형제들은 그릇이 작다. 우리 형제들 중 에 글로 남길만한 입지적인 인물이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이지만 그러나 이 세상에 잠시 쉬었다 가면서 그냥 훌쩍 떠나기보다는 살고 간 흔적이라도 후세들에게 남겨 보고자하여 시작하였다.
무엇보다도 아버님께서 살아온 인생역정을 그냥 묻어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누구든지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살수가 없다. 가족들은 그 안에서 안주하며 집안의 가풍과 역사를 익혀 한 사람의 사회구성원으로 배출 된다. 그 만큼 집안의 가풍이 인격을 형성하는데 중요하다. 나는 이것을 후세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우리가 살아왔던 아름다운 이야기는 우리가 떠난 후에도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 후손들 역시 뒤따라 흘러와 같은 지류에 합류하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형제들이 만들었던 부끄러운 역사는 모두 거두고 다시는 천륜의 정을 팽개치는 불행한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이글을 남긴다.
재미없는 이야기지만 언젠가 그리고 누군가가 이 글을 읽어 줄 후손들이 분명히 있을 것으로 희망하면서 글을 시작해 보려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