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제78호·제83호’ 반가사유상의 이름을 찾습니다 이기환 역사스토리- 주간경향 21,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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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제78호·제83호’ 반가사유상의 이름을 찾습니다

이기환 역사스토리텔러

“세상사에 찌들었을 때 찾아와 영혼까지 치유하고 간다”는 문화재가 있죠. 바로 국립중앙박물관 불교조각실 3층의 단독 전시방에 1구씩 전시됐던 국보 제78호와 제83호 ‘반가사유상’을 일컫습니다.

제83호 반가사유상(왼쪽)과 제78호 반가사유상(오른쪽). 얼핏 보아도 몸집 차이가 난다. /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그런데 최근 한국을 대표하는 이 두 구의 반가사유상 관련 뉴스가 2건 보도됐습니다.

하나는 6개월간 1구씩 전시된 이 두 반가사유상을 100일간 수장고에 격납했다는 소식이었는데요. 국립중앙박물관이 올해 초 “2층 기증관 입구에 전용공간을 마련해 제78호와 제83호를 나란히 상설전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거든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전시실처럼 박물관을 찾는 누구라도 반드시 들러야 하는 상징 명소로 만들겠다고 한 거죠. 그래서 10월 28일 새 상설전시실에 들어갈 두 반가사유상을 재점검하기 위해 일단 지금의 전시실에서 빼낸 겁니다.

또 하나의 뉴스는 ‘제78호’와 ‘제83호’로 통했던 두 반가사유상의 애칭을 공모한다는 겁니다.

지난 7월 1일부터 문화재의 서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문화재 지정번호가 사실상 폐지됐거든요. 그래서 두 반가사유상의 명칭은 그냥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으로 하는데요. 예전엔 제78호와 제83호로 일컬었는데, 이제는 지정번호마저 사라졌으니 마땅히 구별할 방법이 없어진 거죠. 그래서 두 반가사유상의 애칭을 공모한다는 겁니다.

제78호보다 뛰어난 제83호?

 ‘제78호와 제83호였던’ 반가사유상은 과연 어떤 불상일까요. 잘 아시겠지만 ‘반가사유’는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긴 자세를 가리킵니다. 6~7세기에 유행한 반가사유상은 30여구 남아 있는데요. 그중 국보 제78호와 제83호가 으뜸이죠.

그중 제78호(6세기 후반)가 제83호(7세기 초반)보다 50여년 앞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화려한 보관이 눈에 띄는데요. 태양과 초승달을 결합한 특이한 형식으로 흔히 일월식(日月飾)이라고 합니다.

입가에는 고졸한 미소를 띠고 있고요. 그리고 자연스러운 반가좌의 자세, 몸 앞에서 교차된 천의 자락과 허리띠의 율동적인 흐름은 세련된 조각 솜씨를 보여줍니다.

제78호는 머리와 몸체 부분을 따로 만들었다. 때문에 머리 부분에서의 수직철심(노란색 철심1)이 내려오고, 아래에서는 수직의 중심 철심이 복부위까지 올라온다(파란색 철심2). 제83호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수직으로 내려오는 하나의 굵은 사각 철심이 보인다. 머리 따로, 몸 따로 만들지 않고 한번에 빚었다는 뜻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하지만 제78호는 제83호에 비해 저평가된 측면이 있습니다. 높이(80㎝)와 무게(37.6㎏)가 제83호(높이 93.5㎝·무게 112.2㎏)와 견줘 13.5㎝(높이), 74.6㎏(무게)이나 작기도 하고요. 또 얼굴이 사각형이고 허리와 팔의 표현이 비현실적으로 가늘다는 ‘얼평’이 있죠. 제83호와의 상대평가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83호가 일본의 국보 1호(조각 부문)인 고류지(廣隆寺) 목조미륵반가사유상과 ‘쌍둥이’라 할 만큼 흡사하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더 유명세를 탔거든요.

그래서인지 제83호 반가사유상은 석굴암과 더불어 한국의 대표 걸작이라는 평을 얻었죠. 그 때문인지 제83호가 1960년 이후 7번에 걸쳐 2255일의 ‘외유’를 기록한 데 비해 제78호는 단 2회(366일)의 해외전시만 경험했습니다.

1400년 만에 드러난 제78호의 매력 

그러나 최근 최첨단장비로 자세히 들여다보니 제78호의 반전매력이 드러났습니다.

제78호를 두고 비파괴성분 분석과 감마선 필름을 통한 불상 내부 판독, 3D 스캔 등을 동원해 살펴보았더니 곳곳에서 흠결이 나타났습니다. 아니 흠결이 나타났다면서 무슨 반전매력이고요.

제78호는 제83호와 마찬가지로 밀랍주조법으로 제작한 불상입니다. 밀랍주조법은 철심틀을 설치해 점토(내형토)로 불상의 원형을 정교하게 빚고 그 위에 밀랍을 입혀 원형대로 조각한 다음 재차 점토(외형토)를 바른 후 청동쇳물을 부어 주조하는 기법인데요. 내형토와 외형토 사이의 공간을 메운 밀랍 부분을 열로 녹인 후 그 틈으로 청동쇳물을 붓는 거죠.

그런데 감마선 필름으로 들여다보니 제78호 불상의 원형을 빚으려고 만든 철심틀이 분리돼 있었습니다. 즉 점토(내형토)로 맨 처음 형상을 만들 때 몸체와 머리 부분을 각각 따로 만들어 붙였다는 뜻이죠.

왼발의 연화좌(불상이 앉는 자리) 역시 따로 제작해 붙였습니다. 이렇게 별도로 만들어 붙였기 때문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고, 그사이에 청동쇳물이 흘러들어가 거스러미(까칠까칠한 부분)가 나타난 겁이다. 또 하나 제78호를 들여다보니 주조할 때 생긴 구멍을 동판으로 붙여 수리한 흔적이 보였습니다. 게다가 몸체는 구리-주석 합금인 데 반해 수리해 덧댄 동판과 양 옆구리 부분, 그리고 몸체와 떨어진 천의와 보관장식은 구리-납 합금이었습니다. 주조가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에 걸쳐 이뤄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처음 주조(구리-주석 합금) 때 쇳물이 제대로 흘러 들어가지 않아 결함이 발생한 부분은 납땜질로 수리했을 거고요. 또한 본체와는 떨어져 쇳물이 제대로 흘러가지 않은 천의와 보관장식 부분 역시 구리 순도가 높은 ‘구리-납’의 합금 쇳물로 다시 주조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제78호의 이러한 결함은 왜 생겼을까요. 제78호 반가사유상의 두께가 너무 얇았기 때문입니다. 분석결과 제78호의 몸체 두께는 평균 4㎜에 불과했는데요. 이것은 제83호(평균 10㎜)보다 훨씬 얇은 거죠.

즉 6세기 후반 제78호를 제작한 장인은 내형토와 외형토의 사이를 메운 밀랍 공간을 최대한 얇게 둠으로써 흘러들어가는 쇳물의 두께를 최소화한 겁니다.

문화재지정번호가 폐지된 후 예전엔 국보 제78호와 제83호 등으로 구별됐던 반가사유상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검색된다.

밀랍의 두께가 얇으니 청동쇳물이 몸체와 떨어질수록 원활하게 흐르지 못한 겁니다. 그러니 몸체와 멀리 떨어진 천의 부분은 별도로 주조해 붙였겠죠.

이런 궁금증이 생기겠죠. 처음부터 많은 양의 쇳물이 들어가도록 틈을 벌리면 될 일을 왜 그렇게 고난을 자초했을까요. 비용 절감을 위해 적은 청동쇳물로 그렇게 큰 불상을 만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고요. 그 당시엔 그렇게 날씬한 불상을 선호했기 때문일 수도 있죠. 그 이유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어쨌든 제78호의 장인은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결함 부분을 금속 고유의 성질과 고도의 접합 기술로 완벽하게 수리했던 겁니다. 덕분에 육안은 물론 X선 등으로도 구별할 수 없는 완성도를 자랑한 겁니다.

석굴암과 제83호는 최고의 걸작 

그런 제78호 제작의 고초를 거울삼아 완벽하게 조각한 제작자가 바로 50여년 뒤에 활약한 ‘제83호’ 장인입니다.

제83호의 장인은 4㎜에 불과했던 제78호의 몸체 두께보다 2배 반(평균 10㎜) 정도로 제작했습니다. 밀랍을 두껍게 발라 쇳물을 그만큼 많이 넣은 거죠. 통로가 넓으니 쇳물의 흐름도 원활했고요.

또 몸체의 원형을 처음 빚은 점토(내형토)도 고운 진흙만을 사용한 제78호와 달랐습니다. 제83호는 굵은 모래입자가 섞인 사질점토에 식물 줄기를 3㎝ 내외로 잘게 썰어 넣은 내형토로 빚었는데요. 이렇게 하니 쇳물이 흘러들어갈 때 내부의 공기가 바깥으로 원활하게 배출된 겁니다. 고운 입자가 공기를 막은 제78호의 단점을 극복해낸 거죠. 그렇게 하니 몸체 따로, 머리 따로, 연화대 따로 만든 제78호와 달리 한 번에 완성한 겁니다.

또 넓은 통로를 이용해 많은 양의 쇳물을 주입해 입체감과 사실감이 뛰어난 걸작품을 창조한 겁니다. 한마디로 제78호보다 50년 정도 늦게 활약한 제83호 제작자는 청동 합금을 마음껏 사용해가며 실력을 원 없이 발휘한 행운아였던 겁니다. 아마 제83호 제작자의 ‘롤모델’은 힘든 여건에서도 완벽을 추구하며 예술혼을 불어넣은 선배(제78호 제작자)였을 겁니다.

한국 중국 일본 간다라의 다양한 반가사유상. 반가사유는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긴 자세를 가리킨다.

제78호의 제작국은 백제? 

그렇다면 또 하나의 궁금증이 생기죠. 제작국은 어디였을까요. 아쉽게도 두 작품 모두 ‘출토지 불명’입니다. 제78호의 경우 1912년 조선총독부가 일본인(후치가미 데이스게·淵上貞助)에게서 4000원을 주고 구입해 총독부박물관에 기증(1916년)했는데요. 출처 자료가 전해지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죠.

처음에는 신라에서 가장 먼저 불교가 전래된 경상도 안동과 영주 등이 유력한 출토지로 부각됐는데요. 그렇다면 제작국은 신라겠죠. 그러나 제78호에 표현된 천의의 힘찬 기상이 중국 동위(534~550) 양식이며, 이런 양식이 고구려 6세기 불상에서 유행한다는 점을 들어 고구려설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78호의 대좌에서 늘어지는 반복적인 둥근 U자형 옷주름 양식이 백제 부소산성 출토 납석제 반가상과 통한다는 점에서 백제설을 제기하는 연구자들이 생겼습니다. 제78호가 제작된 6세기 중후반부터 7세기 사이는 백제가 절정의 예술 감각을 보여준 시기였거든요. 국보인 서산마애삼존불과 금동대향로, 미륵사탑, 정림사탑 등 백제 예술의 정수라고 하는 작품들이 이때부터 제작됩니다.

제83호 제작국은 신라? 

제83호도 ‘출토지 불명’입니다. 1912년 이왕가박물관이 고미술상(가지야마 요시히데·楣山義英)에게서 2600원을 주고 구입했는데요. 출토지를 두고 경주 오릉설과 경주 남산의 절터설, 충청도 벽촌설 등 여러 설이 제기됐습니다. 역시 세련된 조각기술에 미루어 당대 절정의 예술감각을 뽐낸 백제 제작설이 나왔는데요.

10월 28일 새롭게 마련된 상설전시실에 국보 제78호 반가사유상과 함께 나란히 진열되기 위해 격납고로 옮겨지는 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 /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그러나 장식은 없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는 3개의 반원을 이어붙인 양식은 신라지역에서 주로 보인답니다. 경주 단석산 신선암 마애반가사유상, 황룡사 출토 금동반가사유상 머리편, 경주 성건동 출토 금동반가사유상 등이 대표적인데요. 또 제83호와 비교 대상인 조각상은 경북 봉화 북지리 출토 석조반가사유상(보물)과 앞서 인용한 고류지 목조반가사유상(일본 조각 부문 국보 제1호)이 있어요.

고류지는 특히 신라계 도래인인 진하승이 창건한(603년) 사찰이라는 점이 주목되는데요. 두 불상의 외양을 보면 마치 쌍둥이 같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렇다면 ‘제83호=신라 제작’설이 가장 유력한 셈이죠.

물론 제78호와 제83호 반가사유상의 국적을 100%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떻든 제78호와 제83호는 50여년의 격차를 두고 그 시대를 대표하는 절정의 예술품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막상 지정번호가 없으니… 

저는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문화재지정번호 제도가 해방 이후에도 별다른 고민 없이 답습됐다는 생각 때문에 지정번호의 폐지에 찬성하는 쪽인데요. 그런데 관리번호로만 두고 막상 폐지하고 보니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더라고요. 무엇보다 정확한 문화재 이름을 모르면 검색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같은 종류의 문화재를 비전문가가 어떻게 구별하겠습니까.

제78호와 제83호 반가사유상이 대표적인 케이스네요. 문화재청 문화재검색 사이트에서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써넣었더니 똑같은 이름으로 국보 3건, 보물 2건이 검색되더군요. 국보 중 2건은 제78호와 제83호였고요. 또 하나는 삼성가의 리움박물관 소장으로 국보 제118호였던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고요. 같은 이름의 보물 2건은 보물 제331호와 제643호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라고 하니 너무 헷갈립니다. 좋은 취지로 문화재지정번호를 없앴으니, 보완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이 제78호와 제83호의 애칭을 공모한다니 저도 궁금합니다. 재치있으면서도 심오한 뜻을 지닌 애칭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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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새로운 반가사유상 전시공간이 10월 28일이면 공개된다고요? 종교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누구라도 오묘한 미소와 사유의 철학을 일깨워주는 제78호와 제83호 반가사유상을 바라보며 온갖 근심 걱정, 털어내면 어떨까요.

<이기환 역사스토리텔러 lkh07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