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작품상
무법자들의 도시
이 자 야
동물이 지나다니는 곳엔 흔적이 없다. 그러나 인간이 사는 곳엔 반드시 쓰레기가 남는다.
인구 30만의 작은 도시 ‘몽탁’은 해안을 끼고 있다. 도시의 사방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였다. 작은 도시로 들어오는 길은 오직 하나. 산악 지대를 굽이굽이 돌아 들어오는 외길이 있었다. 이 작은 외곽 도로로 사람들은 오갔다. 본래 이곳은 작은 포구였다. 그런 곳에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크고 작은 공장들이 들어왔다. 그러자 이 작은 도시는 갑자기 인구가 늘어났다. 그러자 한 가지 큰 문제가 발생했다.
도시민들이 쏟아내는 쓰레기 매립장이 없었다. 시장은 산 너머 어느 외진 지역에서 10년간의 매립 허가를 얻어냈다. 그 대가로 도시 주민들은 해마다 쓰레기 세를 따로 냈다. 문제는 좁은 들판에 있는 이 매립지가 계약 기간 5년이 못 돼 한계에 이른 것이다. 더는 쓰레기를 받아들일 땅이 없었다.
그 위에 쓰레기 매립장 주변의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더는 몽탁시의 쓰레기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매립장으로 인한 피해가 한둘이 아니었다. 단체장을 차기 선거에서 낙선시키겠다는 강한 항의가 일어났다. 그곳 단체장은 하는 수 없이 작은 도시 몽탁의 쓰레기 반입을 거부했다.
이때부터 작은 도시 몽탁에서는 큰 문제가 일어났다. 시민들은 날마다 일정량의 쓰레기를 배출했다. 음식 쓰레기, 생활 쓰레기, 쓰다 버린 가전제품들, 먹다 버린 음료수병들….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그런데 그걸 처리할 매립장이 없어진 것이었다. 시장은 궁여지책으로 시민들의 쓰레기를 앞바다에 내다 버리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걸 안 어부들이 들고 일어났다. 바다가 오염된다는 자명한 사실 때문이었다. 여기에 환경론자들이 거들었다. 시장은 생각을 돌려 도시를 둘러싼 산에다 버리기로 했다.
그러자 산 근처에 사는 빈민들이 연일 데모를 벌였다. 그들은 소리 높여 외쳤다. 우리가 봉이냐! 시장은 반성하라! 빈민 무시 행정 철회하라!그러나 시장은 완강했다. 데모에 나선 산동네 주민들을 잡아 가두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이 도시의 환경미화원들이 쓰레기 수거 거부 운동을 벌인 것이다. 환경미화원들 역시 산동네 빈민들이었기 때문이다.환경미화원들이 일손을 놓자 그때부터 도시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제일 먼저 문제가 된 것은 날마다 나오는 음식 쓰레기들이었다. 음식 쓰레기를 수거하지 않자 집집이 남몰래 그것들을 내다 버렸다. 내다 버릴 곳(?)은 골목, 골목 안 보이는 곳이었다. 이를 두고 주민들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왜 내 집 앞에 그걸 버렸느냐? 그럼 너는 안 버렸느냐? 언성이높아지자 칼부림까지 일어났다. 그나저나 인간들이 남긴 쓰레기는 날마다 집 밖으로 나왔다. 미화원들이 손을 놓은 지 보름이 지나자 온 시내 골목길은 쓰레기 천지가 되었다.
온갖 쓰레기들이 골목마다 그득해졌다. 시가지엔 코를 찌르는 악취가 등천했다. 음식물 썩는 냄새, 고물들 삭는 냄새, 그 위에 담배꽁초에 노숙자들 오줌똥에 죽은 동물들의 시신까지 뒤엉켰다. 주민들은 코를 들고 길을 지나다닐 수 없게 되었다. 시장은 연일 쓰레기를 무단 배출한 자들을 잡아들이라고 고함을 질렀지만, 시장 마누라도 몰래 쓰레기를 내다 버리고 있었다.
한 달이 지나자 시가지는 쓰레기로 덮이게 되었다. 하도 쓰레기가 엄청나서 차들도 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에 해충들이 들끓었다. 시가지는 쥐 떼들로 들끓었다. 그로 해서 온갖 전염병이 나돌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었다.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과 고양이도 쓰레기를 남기기 마련이니까 집 밖으로 내쫓았다. 시내엔 지나가는 시민들은 보이지 않고 오직 버림받은 개들만 코를 컹컹거리며 어슬렁거렸다. 시민들은 그들이 무서워도 집밖에 나가지를 못했다. 아이들은 들개가 무서워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학교는 휴강 상태였고 교장 선생은 교실에서 하품만 하고 앉았다.
환경미화원들이 사라진 지 석 달이 지났다. 시정은 마비되었다. 돈 있는 자들은 이 도시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하기 시작했다. 시민의 반이 도시를 탈출한 상태였다. 외부에서 들어오던 화물차들도 이 도시에 들어오기를 꺼려했다. 시장은 텔레비전 화면에 나와 날마다 소리를 질렀다.
“시민 여러분! 함부로 쓰레기 좀 내다 버리지 마세요. 시가지는 물론 골목마다 쓰레기가 지천으로 깔렸습니다. 그 속에 쥐 떼는 들끓고 버림받은 개들이 혀를 빼물고 어슬렁거리고 있습니다. 이런 끔찍한 현실이 바로 여러분들의 목전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지금 이 시각에도 쓰레기를 내다 버리고 있습니다. 정신들 차리세요. 이미 우리 도시는 쓰레기판이 되었습니다. 저는 시장으로서 시민 여러분의 재산과 안전을 지킬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감히 이 시장 시민 여러분에게 엄숙히 경고합니다. 이 시간 이후 쓰레기를 무단 방출하는 자는 기필코 방치하지 않겠습니다. 더 많은 감옥을 만들어서라도 그들을 집어넣겠습니다. 더 엄격한 법을 적용해 처단할 것입니다.”
이런 시장의 엄포에도 시민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쓰레기를 버렸고 이미 이 작은 도시는 쓰레기는 물론 똥오줌 판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사람들은 악취가 넘치는 거리를 코를 들고 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텅 빈 거리엔 집 나간 개들과 굶주린 시민들이 먹을거리를 찾아 나돌고 있었다. 이 도시로 통하는 모든 통로는 차단되었다.
생필품값이 뛰어올랐다. 시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자가 속출했다. 먹을 것도 없는 판에 더더구나 세금은 걷히지 않았다. 공무가 마비되었다. 공무원들도 출근하지 않았다. 나가봤자 월급이 안 나오는 판국이었다. 경찰들도 손을 놓은 지 오래였다.
작은 도시 몽탁은 건달과 깡패들이 설치는 무법천지가 되었다. 대낮에 강도, 살인, 방화 사건이 잇달았다. 사제 폭탄과 총기가 난무했다. 대낮에도 이곳저곳에서 총성이 울리고 비명이 그칠 새 없었다. 밤이 오면 시가지엔 방화범들이 설쳐댔다. 전기가 끊어진 어둠 속 거리엔 불꽃놀이처럼 화광이 밤하늘로 치솟았다. 불을 끌 소방차들도 없었다. 화마는 건물들을 다 삼키고 악마의 혓바닥처럼 가옥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밤마다 시가지 이곳저곳에서 모방 범죄가 속출했다. 대낮에도 강도 강간이 벌어졌다. 그렇게 시가지가 무법천지가 되자 정부에서는 무법자들을 다스릴 헬리콥터를 급파했다. 종일 허공엔 시커먼 헬리콥터가 굉음을 울리며 날아다녔다. 때로 범법자들로 보이는 자들을 발견하면 공중에서 기총 소사를 쏘아댔다.
시민들은 오금이 저려서도 집 밖을 나설 수가 없게 되었다. 도둑 떼가 판을 치고 범법자들이 쥐새끼처럼 죄 없는 시민들의 주택을 털어갔다. 시민들은 굶주렸고 먹을거리가 없어 수돗물만 마셔댔다. 배고픈 시민들은 인륜도 저버렸다.
가난하고 굶주린 가장은 나이 많은 제 부모를 거리로 내쫓았다. 거리엔 때 아닌 미아와 노인들로 득시글거렸다. 그런데도 시장은 연일 아우성만 쳤다.
“거리에 나오지 마세요. 볼일 없이 거리로 나오세요? 미친개 떼의 희생양만 됩니다. 쓰레기통 좀 뒤지지 마세요. 냄새나게 거긴 왜 뒤적입니까? 뒤져봤자 썩은 오물로 전염병만 가중합니다. 병원문도 닫혔습니다. 공장가동은 진작 그쳤습니다. 학교는 문 닫았고 파출소도 텅 빈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거리로 나오는 정신 빠진 시민 여러분에겐 단호한 조처를 할 것입니다. 절대로 나오지 마세요! 죽고자 하는 자 나오세요! 살고자 하는 자 집 안에서 숨도 쉬지 마세요! 이제 우리 시 당국의 여력도 한계에 달했습니다. 죽고 살고는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세요!”
작은 도시 몽탁엔 오직 옴짝달싹할 수 없는 춥고 배고픈 빈민들만 남게 되었다. 법이 있어도 무용지물인 무법자들의 도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