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명 : 이미정
도서명 : 회심의 변질
저 자 : 알렌 크라이더 지음, 박삼종 신광은 이성하 전남식 옮김
페이지 : p.208
출판사 및 출판년도: 대장간, 2012. 12. 20
# 내용요약(summary)
예수님은 제자도로의 부르심을 강조하는데, 회심은 곧 변화를 의미했다.
* 저스틴의 회심 : 저스틴은 유대 그리스도인 노인과의 대화를 통해 “광명의 문”이 열리는 경험을 한다. 노인과의 대화로 주의 말씀이 삶을 변화시키고 추구할 가치가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저스틴은 네 가지 영역에서 마귀의 권세에서 저항할 것을 말하는데, 네 영역은 돈, 섹스, 권력, 그리고 주술이다. 이 문제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며 이렇게 살아가기는 어렵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으면 가능하다고 말한다. 저스틴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침례는 회심의 핵심이라고 가르쳤다.
* 키프리안은 카르타고에서 3세기 중반 직전에 그리스도인이 됐다. 침례가 그의 삶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 ‘자유와 권능’을 부여받고 중독에서 해방됐다. 침례 직후 키프리안은 카르타고의 공동체 지도자로 성장한다.
초대교회 이후 기독교는 매우 빠르게 성장했다. 그리스도인이 사회적으로 주류가 아니었지만, 그들의 삶은 호기심을 가질만한 매력이 있었다. 이것이 교회 성장의 열쇠였다. 당시 교회의 예배가 아름다웠기 때문에 성장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의 아름다운 삶을 통한 전도가 교회를 생명력이 넘치는 공동체로 만들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요인은 그들의 ‘신념’이었다. 이 신념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정복하심으로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었다. 기독교의 매력을 느끼게 하는 또 다른 2가지 실재가 있는데, 하나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신적 권세가 함께 한다는 생각이었다.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이었다.
회심은 신앙의 예비자들이 재사회화의 과정에 자신을 복종시킬 때 일어난다. 회심은 4단계로 이뤄져 있다. ①그리스도인과 잠재적 신앙인이 복음 전도로 접촉된다. ②예비자들이 검증되면 신앙문답과정이 허락된다. ③그들이 충분히 변화됐다고 판단되면 교화과정에 진입하는데, 이때 교리적인 가르침을 받으며 신념에 집중한다. ④마지막 신비입문식은 입교자에게 구원의 신비를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다. ‘사도전승’에서 이를 잘 볼 수 있다.
* 콘스탄티누스의 회심에 대해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312년 10월 정적 막센티우스와의 전쟁에서 십자가를 그려 승리한 사건 이후 회심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이 전쟁 직후 기독교 믿음의 기본 원리를 배우기는 했지만 분명히 신앙문답을 받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종교 교육은 체계적이지 않고, 자기주도적 방식이었다. 말년에 가서야 그는 신앙문답 교육을 받는다. 그가 죽기 전 337년이 되어야 콘스탄티누스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이후 콘스탄티누스와 후계자들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혜택을 주고, 교회에 부를 가져다주었으며 그리스도인이 된 공무원들에게 승진을 보장했고, 황제가 믿는 종교를 고수함으로 사회적 명망을 보장받게 됐다. 이때부터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권능은 거의 불필요한 것이 되었다. 이런 변화들은 회심의 특성을 변질시켰다.
4세기에 들어서자 갑자기 늘어난 대상자들로 인해 신앙문답교육이 이전과는 달리 새롭고 대중적인 성격을 띠게 됐다. 그래서 중요한 신앙문답교사들이 등장했다.
* 시릴의 신앙문답교육 강의의 핵심은 ‘신념’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이단의 공격에 맞설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했고, 4세기 중반 동방에 퍼져있던 교리들과 여러 가지 단점들에 대해서 신중하게 상술했다. 무엇보다 예비신자들에게 수많은 살아있는 믿음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 크리소스톰은 신입 그리스도인의 변화된 삶을 주목했다. 정통 신앙, 삼위일체 교리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는 교리보다는 선교와 목회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크리소스톰은 회심에는 반드시 그 사람의 모든 삶의 영역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 어거스틴이 주교로 있던 히포에서 회심의 여정은 먼저 교사는 구도자들에게 구원 역사의 개요를 설명한다. 이때 구도자들을 회심으로 이끄는 동기는 ‘두려움’이었다. 문답자가 기독교 신앙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에 동의하면 ‘소금의 예식’을 거행한 후, 그는 그리스도인으로 간주됐다. 그 후 몇 주에 걸친 교육을 받은 후 신조와 주기도문을 배웠다. 어거스틴은 침례보다 회심의 변화와 삶의 모습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후보자들의 효과적인 변화를 위해서 어거스틴이 취한 주요 방법은 체계적이고 도덕적인 형태가 아니라 ‘영적인 전투’였다.
* 볼루시안은 귀족이었지만 교회 안에서 중요한 존재가 됐다. 그는 기독교 왕국에서 이교도 신자로 지내다가 어거스틴과의 편지 교환과 조카 멜라니아의 전도로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의 개종은 기독교가 주류가 됐다는 증거였다.
* 캐사리우스가 아를(Arles)의 주교가 됐고, 그가 아를의 주교로 있는 동안 수많은 사람이 회심했다. 캐사리우스는 새로운 제도에서 후견인이라는 지위를 중요시했다. 그는 후견인에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믿음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책임을 강조했다. 캐사리우스는 신념이나 공동체 소속보다는 행동에 대해서, 그리고 후견인이 대자녀에게 심어주어야 하는 덕목에 대해서 강조 했다. 그는 선행을 넘어서서 그리스도께서 주신 교훈을 교인들의 가르치기를 애썼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잘 지키라고 호소했다.
회심의 산물이라 볼 수 있는 ‘기독교 문명’ 즉, ‘크리스텐덤’의 서구화의 특징을 알 수 있는 이야기로, 프랑크왕국의 클로비스 왕에 의한 군인들의 집단 회심과 프랑스 중남부 지역 클레르몽에서 일어난 유대인 집단 회심 사건이 있다. 2가지 경우 모두 어거스틴 시기의 4단계 회심의 여정을 거치지 않고 빠른 시간에 벌어졌으며, 여러 환경에 동기가 부여되어 행해졌다. 전통적인 관점에 의하면 클로비스 왕의 회심은 유럽의 기독교화의 절정기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기독교의 게르만화’의 상징적 사건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회심은 ‘크리스텐덤’이라는 문명화로 귀결되는 것이다.
초기 5세기 동안 교회의 성장과 회심은 단순한 종교적 회심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복음과 교인들이 사회와 사람들을 치유하고 해방시켜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회심이 변질되기 시작하고 4세기 이후 그 어느 때보다 교회는 빠른 성장을 했지만 그 성장은 상투적이고 강제적인 방법에 의한 것이었다. 그에 따른 영적인 부작용이 너무나 큰 것은 말할 나위없다. 초대교회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교회의 삶과 선교를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교회가 과거에서 배운다면 미래에 기여할 확실한 것을 갖게 될 것이다.
# 평 가(critique) :
기독교 선교의 역사는 단순한 종교적 개종의 역사가 아니다. 기독교 선교의 역사는 개인의 영적 회심에서 출발하여 그의 삶을 변화시키고 나아가서는 그가 속한 공동체와 사회의 변화로 이어진다, 특히 21세기 선교전략에서 개인의 구원보다 종족집단의 구원이라는 선교적 전략을 생각할 때, 교회의 역사적 회심에 대한 사건들은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 책은 회심이라는 부분을 초대교회와 여러 교부들의 다양한 역사적 사실, 그로 인한 교회의 성장에 대해서 잘 분석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회심의 사건이 정치적 사회적 요인들과 함께 그 진정한 의미가 변질됨으로 참 그리스도인이기 보다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을 만들어내는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교회 신앙의 가장 놀라운 사건임과 동시에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 회심이라고 생각했을 때, 강요되거나 의식적인 종교적 행위로서의 회심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재발견되고 새롭게 되는 회심의 본래적인 의미를 회복하는 것은 회심 그 자체의 의미를 넘어서서 기독교의 회복이라는 관점까지 나아가게 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선교를 이야기 할 때, 회심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야기들이 왜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할까? 그것은 선교의 궁극적인 목적이 모든 민족과 족속으로 하나님을 믿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면 회심은 반드시 수행되어야 할 과정이며, 또한 무시하거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영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 책이 회심에 대한 역사적 차원을 다루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회심의 변질이라는 측면을 설명하고 있는 것은, 오늘날의 선교를 반성하게 하고 또한 우리 선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 적 용(application) :
초대교회와 신실한 교부들에게 있어서 성도의 회심은 신앙의 핵심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교회가 정교화되고 사회적 위상을 차지하면서 회심이라는 부분이 단순히 종교적 사회적 개종의 의미, 혹은 기독교로의 입회 정도의 개념으로 변질되는 것을 보게 된다. 교회의 부흥은 성경적 명령이며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과업이다. 그러나 수적인 부흥이 완전한 회심을 대신할 수는 없다. 선교전략적인 측면에서의 집단개종 혹은 집단복음화가 회심의 본래의 의미를 희석화 하거나 변질시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집단 개종이나 집단 복음화는 전략적 측면이지 개인의 철저한 회심을 포기하고 얻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한 영혼의 회심과 그로 인한 삶의 변화의 무거움에 대해서 시선을 돌리고, 쉽고 빠르며 다량의 회심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짐으로 나타나는 많은 병리적인 모습들을 우리는 반성하게 된다.또한 선교지에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선교사에게 있어서 교회를 세우고 단체를 조직하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 아닌, 한 영혼의 완전한 회심이 궁극적 목적임을 다시한번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이 완전한 회심을 통해 그들의 삶으로 신앙과 영향력을 드러내고, 전도하며 선교했던 일은 너무나 중요한 것을 알려준다. 역사는 오늘을 돌아보는 거울이며, 미래를 바라보는 창이다. 회심이라는 개인적인 종교적 경험이 역사 속에서 조명됨으로 오늘의 교회와 선교 현장을 반성하게 된다, 또한 미래의 선교적 목적을 다시 주목하게 된다.
나는 위 저서를 직접 읽고 이 Book Report를 작성하였습니다.
서명 : _____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