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론불교-9>
부처님 치아 사리 캔디 불치사에, 스리랑카의 보물
사진 1: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불치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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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실론(스리랑카) 불교를 주마간산 격으로 대강 소개했는데, 이번에는 실론에서 가장 유명한 불치사(佛齒寺)에 대해서
소개해 보고자한다. 실론불자들은 이곳 불치사를 참배하는 것을 매우 성스럽고 자랑으로 생각한다.
공식 이름은 스리 달라다 말리가와(Sri Dalada Maligawa)라고 하는데, ‘성스러운 치아사리 사원’ 정도의 의미가 된다.
스리랑카 캔디 시(市)의 캔디 왕궁 내에 있는 부속 건물에 있는 사원이다. 이 사원에 부처님의 치아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인도와 실론 역사에서 이 부처님의 치아사리는 누가 소유하여 봉안 하느냐에 따라서 권력의 정통성을 인정받아 왔다.
캔디는 실론의 마지막 왕조가 있던 도시이다. 이 불치사는 유네스코에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 부처님의 진신(眞身) 치아 사리가 실론의 왕궁까지 오게 된 연유(緣由)는 너무나 드라마틱 하다. 부처님은 45년간의 설법을
마치고 기원전 483년에 인도 쿠시나가라 에서 열반 하셨는데 이것을 ‘마하 빠리닙바나(mahä Parinibbhäna)’라고 부른다.
큰 열반(入寂)에 들었다는 의미로서 부처님께 부여하는 경칭용어이다. 부처님이 대반열반에 드시자 백단향 나무 장작을 사용해서 화장(火葬)을 했고, 화장 후에 아라한 케마가 잿더미에서 불에 타지 않은 생생한 부처님의 송곳니를 발견, 부처님을 존경하여 봉안하도록 브라마떼 왕에게 헌상(獻上)했다. 이 부처님의 치 사리는 국가의 왕실 보물이 되었다. 이후 이 부처님의 치 사리를
소유하여 봉안하는 왕은 권력의 정통성을 인정받을 정도로 귀하게 여긴 왕실의 특급 보물로 인정되어 대대로 계승되어 왔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면 누가 이 불치를 소유 하느냐에 따라서 권력의 정통성이 부여될 정도로 신성한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부처님 대반열반 이후 800년이 지난 기원 후 4세기 무렵, 이 불치는 칼링가의 구하시브 왕이 소유하게 되었다.
이 나라에서 한때 불치 숭배를 단념하여 없애려고 하자, 기적이 일어났다. 이에 당시 빤두 왕은 불교로 개종(改宗)하고 더욱더
불치를 숭배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후 몇 차례 위기가 있었고, 결국 불치를 보호하기 위해서 은밀히 실론 섬으로 보내지게
되었는데, 전설에 의하면 부처님은 실론 섬은 5천년간 불법이 흥성하여 안전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었다고 한다.
불치가 실론 섬으로 단타와 헤마말라가 모시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왕 키르티 메가하와르나는 너무 기뻐하며 왕실로 맞아 드렸다. 그는 왕궁 내에 성스러운 불치를 봉안할 사원을 짓고 페라헤라 축제를 해마다 열어서 불치를 숭배하도록 했다.
그리고 성스러운 부처님 치 사리는 아바야기리 비하라(무외산사Abhayagiri Vihāra)의 비구들이 매일 의식을 집전하고 관리하도록 맡겼다. 이 무외산사는 실론의 북쪽에 위치한 고대 왕국 아누라다뿌라에 있던 큰 사원으로 한 때 상좌부와 대승불교가 공존했던 사원이다. 중국의 동진 구법승 법현 스님이 이곳까지 와서 자료를 수집하고 수행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역사적 사건이다.
지금은 무외산사는 없어졌지만, 한 때는 수천 명의 비구들이 수행하던 불교연구의 센터였다. 지금은 마하 비하라인 큰 절(大寺)만 그대로 존속하고 있는데, 이 사원에는 인도 아소카 왕의 딸인 비구니 상가미따가 보드 가야의 보리수 가지를 가져와서 이 사원에 이식(移植)하였는데 지금도 건재하다. 다시 부처님 치아 사리로 돌아가 보자.
사진2:엄니가 있는 코끼리가 불치 사리가 들어 있는 관을 등에 싣고 행진한다.
사진3:1885년 경 캔디의 에살라 페라헤라 모습
아누라다뿌라에서 시작된 이 페라헤라(행진) 축제는 지금도 캔디에서 매년 7월이나 8월에 열리는데, 이 불치를 코끼리 등에
태워서 시가지를 행진케 하고 있다. 이 불치 사리를 코끼리 등에 태우고 거리를 행진할 때는 캔디 지방의 다양한 춤 공양을
올리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이 불치 사리는 스리랑카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보물 같은 존재이며 상징이 되었다.
지금의 페라헤라 축제는 ‘에살라’와 ‘달라다’ 축제가 합쳐져서 하나가 된 것인데. 에살라 축제는 기원전 3세기 때부터 신에게
빌었던 기우제에서 비롯되었다. ‘달라다’ 축제는 이 성스러운 부처님의 치아 사리가 4세기 무렵 인도에서 실론에 오는 때부터
시작된 것인데 지금은 하나로 합쳐져서 캔디 페라헤라 축제가 되었다.
사진 4:에살라 페라헤라에서 춤 공양을 올리는 남자 무용가들
지금의 축제는 캔디 왕조의 키르티 스리 라자싱헤 왕(재위1747-1781) 때 시행됐는데, 그 이전에는 왕실에 봉안되어 일반인들은 친견(親見)할 수가 없었다. 키르티 스리 라자싱헤 왕은 칙령(勅令)을 발표하고 많은 군중들이 친견하여 숭배할 수 있도록 일반에 공개하여 행진하면서 축제를 개최하도록 했다.
1815년 캔디왕조가 영국에 패망하자, 불치 사리의 보호 관리가 불교승단으로 이양되었고,
왕의 부재 시에도 관리업무를 볼 수 있도록 ‘디야와다나 닐라메’라는 장관급 관료를 임명했는데 현재도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불교승단과 왕실과 이 장관급 관료가 열쇠를 각각 갖고 있으며, 서로 합의하여 동의했을 때, 불치 사리관을 열수 있다.
사진 5:디야와다나 닐라메 장관이 조심스럽게 불치 관을 운반하고 있다(재직 1975-1985).
불치 사리 이운 축제는 스리랑카 최대 종단인 시암 니까야의 두 파인 말와떼 파와 아스기리야 파에 의해서 의식(儀式) 집전이
주도된다. 축제 총괄 진행은 ‘디야와다나 닐라메’ 장관이 맡아서 진행한다.
사진 6: 코끼리 등에 불치 사리 관을 태워 행진하고 있다.
4세기부터 아누라다뿌라에 봉안된 이 불치 사리는 부처님과 똑 같은 상징성도 있었지만, 군주의 권력의 상징 기능을 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 불치 사리를 봉안하는 불치사원을 항상 왕궁 바로 옆에 세워서 숭배해 왔다. 아누라다뿌라, 뽈로나루와, 담바데니야, 야빠후와와 쿠루네갈라 왕국에서도 차례로 이 불치를 소유해서 권력의 정통성을 과시하면서 숭배해 왔었으나 감폴라 왕국 때는 니얌감빠야 사원에 봉안되었고, 코테 왕국 시에도 어딘가에 보호 되었다가 두 명의 비구 장로에 의해서 캔디 왕국으로 이운
되었다고 한다. 위말라다르마수리야 왕은 왕궁 옆에 2층의 법당을 지어서 불치 사리를 봉안했다.
1603년 포르투갈이 캔디를 공격했을 때는 다른 은밀한 곳으로 이운했다가 라자싱하 2세 왕 때 다시 옮겨와서 봉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 8각형의 건물로 불치사를 짓고 해자를 만들어서 봉안하여 불자들과 일반인들에게도 참배하도록 하고 있다.
필자도 지금까지 십여 차례 친견한 바 있다.
첨부파일:
사진 7: 불치 사리를 친견하는 필자
이곳 캔디에는 불치사도 유명하지만, 불교출판회(Buddhist Publication Society) 또한 영어권 독자들 에게는 널리 알려진 이름 난 출판사이다. 1958년에 설립된 이 불교출판회는 빨리경전을 영역 또는 싱할라어로 번역하여 출판하고 있다.
전 세계 3천여 회원들에게 영역서(英譯書)를 보급하고 있다. 실론의 섬 암자와 숲속 암자 불교학파를 창시한 독일출신 냐나티로카 큰 스님, 냐나포니카 큰 스님, 미국출신 비구 보디스님과 실론 출신 나라다 대장로스님, 삐야다시 대장로와 버마의 마하시 사야도 대장로 큰 스님과 영국 출신 비구 나나몰리의 저서를 많이 출판했다. 이 출판회에서 발행되는 ‘법륜(the Wheel)’과
‘각엽(覺葉 the Bodhi Leaf)’ 시리즈의 서적들은 불교전반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다룬 불서들이다.
사진8: 이 불교출판회를 이끌었던 주역들로서 좌로부터 아베에세케라 거사,
삐야다시 대장로와 냐나포니카 대장로(Mr. Abeysekera, Ven. Piyadassi Thera,
and Ven. Nyanaponika Thera)
나는 그동안 스리랑카에 여러 번 갔고, 갈 때 마다 거의 매번 캔디 불치사에 들러서 부처님 치아 사리를 친견했고,
바로 옆에 위치한 불교출판회 서점에 들러서 불서 몇 권이라도 사서 읽는 것을 습관처럼 했다. 지금은 인도에도 인도 승려들에
의해서 불교가 부흥되고 있지만, 35년 전 만해도 스리랑카 불교를 통해서 인도불교의 원형을 짐작할 뿐이었다. 실론 불교는 인도불교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기에 그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실론 불교는 그 원형의 모습을 서구 열강의 침입으로 많이 파괴되자 태국과 버마에서 남방 불교의 계맥을 다시 이어와서 옛 전통을 계승해 가고 있다.
실론의 연대기인 역사서《대사大史 Mahavamsa 마하왕서》는 실론의 왕들에 의해서 빨리어로 쓰여졌다.
기원전 543년 인도 벵갈에서 실론으로 온 비자야 왕자 이야기부터 실론 아누라다뿌라의 마하세나 왕(334-361)에 이르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1837년 처음으로 영역판이 나왔고, 1912년에는 독일어판이 출판되었다.
이 역사서는 경전 텍스트는 아니지만, 상좌부 불교를 공부하는 데는 필독서이다. 실론의 초기 종교사(불교)이며,
싯다르타 고오타마(부처님)와 인도 고대시대 불교, 부처님 열반 이후 경전결집 역사 등이 기록되어 있다.
부처님의 진신 치아 사리 또한 이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또 역사서로서《도사島史 Dīpavamsa 디피왕서》가 있는데,
기원후 3세기에 편집된 것으로서 실론과 인도 고대사가 기록되어 있고, 불교의 부파(종파)에 대한 기록 등이 있는 《마하왕서》와 더불어서 아주 중요한 사서이다. 실론 사람들은 마하왕사나 디파왕사라고 하지 않고 ‘왕서’라고 발음한다.
‘a’를 ‘아’로 발음하지 않고 ‘어’에 가까운 발음을 하기 때문이다.
《小史Cūḷavaṃsa 쭐라왕서》는 《Mahavamsa》의 연속적인 사서이다. 기원후 4세기부터 1815년까지의 기록이다.
6세기에 마하나마 라고 하는 비구가 기록한 사서로서《대사大史 Mahavamsa 마하왕서》와 함께 실론의 2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상좌부 불교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겐 필독서이다. 독일의 윌리엄 가이거라는 학자가 《마하왕서》는 1912년에 《쭐라왕서》는 1930년 번역을 완료했고, 영역되어 옥스퍼드대학 출판부에서 발행되어 영.독어권에서 널리 읽히고 있다.
해동영한 아카데미 원장
이치란 박사